중증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검토 완료

천주교인권위원회(chrc)등록 2019.08.21 15:05
2018년 가을 유난히 '언니'가 필요한 날이었다. 어쩌다 통화가 된 엄청 바쁜 언니와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협업' 강사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너무 궁금했다. 중증 장애인과 함께 짝을 이루어 강의한다는 것. '그건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렸고 어쩌다 보니 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이하 나야)에 인턴으로 출근하게 됐다.
 
2018년 5월 29일부터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이 법정의무 교육으로 강화됐다. 공공영역에서의 중증장애인 일자리를 위한 투쟁을 해왔던 전장연과 나야에서는 이 교육을 중증장애인이 실시하는 제안을 했다.

언어장애를 동반한 중증장애인이 홀로 한 시간의 강의를 진행하기엔 여러 어려움이 예상되니 협업과정을 만들어 나야에서 진행하게 됐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의 일정(1일 6시간)과 달리 중증장애인의 편의에 맞춰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진행된 교육이지만 그마저도 고된 일정으로 다가왔다.
 
나야에서 선임한 훌륭한 강사들의 강의는 하나하나 놓칠 수가 없는 보석같은 내용들이었다. 너무나 모르고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장애, 장애운동, 장차법, 고용촉진과 관련된 법률 등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비장애인들과의 교육경험이 압도적인 입장에서는 사실 여러 가지 큰 자극적인 경험이기도 했다. 비장애인들은 50명 넘게 충분히 들어가는 강당은 40인으로도 꽉 찬다. 휠체어 탄 중증 장애인들과 활동지원사 분들까지 있다보니 누군가 움직이기 위해서 여러 명이 도미노처럼 움직여야 하는 경험도 새로웠다.

'언니'의 추천으로 중증장애인들과 교육 경험이 있긴 했지만 조력을 받아가며 길어야 3시간 정도 진행했던 경험만 있었다. 처음엔 나를 향해 말을 하는줄도 몰랐고 잘 못알아들어 도움을 얻어야 소통이 가능하기도 했다. 매일 만나다 보니 점점 말하는 것도 알아듣게 되고 보완대체의사소통(AAC, Augmentative Alternative Communication)라는 새로운 소통 방법도 알게 되었다.
 
피말리는 평가
교육내용은 장애의 정의 및 장애유형에 대한 이해 / 직장 내 장애인의 인권, 장애인에 대한 차별금지 및 정당한 편의제공 /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과 관련된 법과 제도 / 그밖에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에 필요한 사항 등을 반드시 포함하여야 한다. 각각의 내용만 하더라도 2박 3일이 모자라는데 1시간의 교육내용으로 만들어 전달도 하고 인식도 개선해야 한다. 심지어 평가 시간은 15분이다! 맛도 좋고 배부르게 먹고도 살 안찌는 음식도 아니고 어떻게 가능할지 감이 오지 않는 상태에서 일단 준비하게 되었다.
 
강의가 시작되는 첫날 노들야학의 학생이자 학교 등에서 인권교육을 하는 오지우님이 짝꿍을 하자고 했다. 이미 인권교육을 하는 강사이니 내가 이것저것 배울 것이 많으리라 예상하면서 흔쾌히 수락을 하였다. 내용을 15분에 맞추어 버무리는 일도 난감한데 둘은 어떻게 협업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감도 없었다. 처음엔 지우님의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두 번, 세 번 물어보게 되었지만 이제는 조금 더 수월하게 소통한다. 짝꿍이 되어 욕심을 내며 이런저런 공부를 해올 것을 강요해보기도 하고 핑크색으로 된 PPT에 놀라기도 하면서 평가를 준비했다. 언어장애가 있는 짝꿍과 함께 우리만의 색을 넣었다. 독특하지만 실제로 도움이 되는 방식을 도입해서 진행하려다보니 15분이라는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거기다 평가자들의 질문은 우리의 영혼을 갈아넣은 설명을 잘 못 이해한 것 같아서 통과가 될지 걱정이 많이 되었다.
 
다행히 지우님과 나는 1차에 합격하였지만, 몇몇 분들은 평가의 규칙에 맞지 않아 아쉽게 탈락하였다. 나야의 실무자로써 이 분들의 삶이 부정당하는 경험으로 남을까 걱정되는 마음이 컸다. 그 분들 한 분 한 분 교육을 이수하며 보였던 열정들이 너무 아쉬워 2차 평가 준비를 함께 하게 되었다. 다행히 함께 피말리는 2차 평가 과정도 대부분 합격하는 기쁨으로 마무리 되었다.
 
걸치적거리는 존재, 그림자로 취급받는 존재가 되는 경험
피말리는 평가에 통과되었어도 끝은 아니었다. 바로 지우님과 교육이 잡혔다. 지우님은 자신의 삶의 경험을 소개하기 위해 동영상을 만들었다. 영상에 나온 일본 아소산 정상에 올라 찍은 사진은 많은 이들이 어쩔 수 없다고 여기던 사회의 장애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법과 관련된 설명은 AAC를 통해 수월하게 전달하도록 했다. 설명보다 질문으로 참가자들을 이끄는 것에 대해 아이디어를 나누고 여러 번 연습하면서 강의를 나갔다. 각자 좋아하는 색으로 된 꽃 브로치를 엇갈려 달기도 하면서 협업짝꿍의 정성을 담았다.
 
그런데 나름 15년 정도 강의를 하면서 참가자들에게 환영을 받아왔던 나는 '걸치적거리는 존재, 그림자처럼 가만히 있기를 바라는 존재'로 취급 받았다. 교육 참가자들은 강직과 언어장애가 있는 짝꿍강사가 한 마디 한 마디 온 몸으로 말을 하는 동안에는 엄청 귀 기울이며 한 단어 한 단어 알아들으려 정성을 쏟았다. 하지만 내가 두어마디 설명을 이어가면 "대충 알만한 내용이니까 빨리 끝내라!"라는 눈빛으로 매섭게 쳐다봤다. 나에게는 위축이 될 정도의 경험을 평생 받아오면서도 꿋꿋하게 사회를 향해 변화를 요구하는 장애운동의 동지들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자라나기도 하였다.
 
귀한 명함을 받았다.

올해 나야는 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고용강사단을 운영한다. 공단은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실효성 있게 진행하도록 300인 미만 사업장에 교육할 고용 강사비를 지원한다. 사업체가 법정의무교육을 이수할 방법에는 간이교육, 영상교육, 사업주에 의한 교육 등 선택지가 다양해 대면교육을 실시하려는 기관을 발굴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한 달에 2회기 정도 재교육을 통해 나야의 강사분들은 강의 역량과 협업의 가능성을 확대하고 있지만 강사를 불러주는 곳은 많지가 않은 현실이다. 수급권의 부분 공제 등 여러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와 노동에 대한 의지 고취하기 위한 7명의 고용강사를 두게 되었다.
 
본격 사업을 시작하는 발족식에서 고용강사 명함을 드렸을 때의 그 표정은 그동안 사업 진행에 대해 회의적이던 마음, 실행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여러 고생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도록 만들었다. 온 얼굴의 주름이 확 펴지며 환하게 웃던 그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 기억은 함께 일하는 것이 우리를 얼마나 성장시키는지 보여줄 것이다. 또한 그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일에 큰 힘이 되리라 믿는다.

협업의 과정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강의하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일방적인 의존과 도움이 아닌 함께 일하는 모습은 어떻게 구현이 될까? 중증 장애인이-시설에서 사회성도 떨어지고 본인 손으로는 글씨를 쓰기도 어렵고, 강직이나 불수의 운동 때문에 차분히 책을 읽기도 어려운 사람이 각종 법령과 지원제도를 외워가며 강의를 한다는 것 뒤엔 어떤 과정이 존재해야할까? 1시간이라는 시간과 제한된 주제를 다루어야한다는 조건, 심지어 의무교육을 받아야하는 사람들의 집중과 흥미도 이끌어내야 하는 일을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까?

처음의 호기심 보다 더 많은 질문들이 때로는 가슴 뛰게 만들고 때로는 온 몸을 짓누르기도 하면서 생겨나고 사라지고 생겨나고 사라지고 생겨나고 사라지고 생겨나는 중이다. 그 궁금함을 엿보고 싶은 사람들이 제발 늘어나길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립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