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범 아기 사산해 징역 30년 엘살바도르 여성 '무죄'

법정 투쟁 끝에 무죄 판결 받아내... "여성 인권의 기념비적 승리"

등록 2019.08.20 13:48수정 2019.08.2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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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 법원의 에벨린 에르난데스 무죄 판결을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 CNN

갱단에 성폭행을 당해 사산한 후 살인 혐의로 징역 30년 형을 선고받았던 엘살바도르 여성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AP, 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19일(현지시각) 엘살바도르 법원은 낙태와 살인 혐의로 30년형을 선고 받았던 에벨린 에르난데스(21)에게 "고의로 사산했다는 증거가 부족해 유죄로 볼 수 없다"라고 판결했다. 

판결 후 법정에서 나온 에르난데스는 환호하는 지지자들 앞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정의가 이루어져서 너무 행복하다"라며 "지금까지 해왔던 공부를 계속해서 나의 꿈을 이루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말했다.

엘살바도르의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나 간호대학에 다니던 에르난데스는 지난 2015년 갱단에 성폭행을 당한 후 이듬해 배가 심하게 아파 화장실에 갔다가 아기를 사산한 뒤 기절했다. 

가족에 의해 발견된 에르난데스는 병원에 실려 갔고, 아기의 시신은 화장실의 정화조에서 발견됐다. 성폭행이나 근친상간도 예외를 두지 않고 엄격하게 낙태를 금지하는 엘살바도르에서 에르난데스는 낙태죄로 기소됐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에르난데스가 아기를 고의로 죽였다며 살인죄를 적용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징역 30년 형을 선고했다.

에르난데스는 자신이 임신한 것을 몰랐고, 복통과 출혈은 성폭행 후유증이라고 오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판에서 "만약 내가 임신한 것을 알았더라면 행복하게 출산을 기다렸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에르난데스의 사연이 알려지자 여성 인권단체가 나섰고, 부검 결과에서도 아기는 살해가 아닌 자연사로 확인됐다.

지난 2월 대법원은 고의로 살해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원심을 파기하며 재심을 명령했고, 에르난데스는 33개월 만에 풀려났다. 검찰은 재심에서도 주장을 굽히지 않고 원심보다 더 가혹한 징역 40년 형을 구형했지만, 이번에도 법원은 에르난데스의 손을 들어줬다.

엘살바도르 대통령 "빈곤 여성이 유산하면 낙태 의심받아"

국제앰네스티는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은 엘살바도르 여성의 인권에 대한 기념비적인 승리"라며 "엘살바도르는 여성에 대한 부끄럽고 차별적인 관행을 종식시켜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여성 인권단체들은 "엘살바도르에서 지난 10년간 법정 투쟁을 벌여 낙태죄 판결을 받은 30여 명의 여성을 풀려나게 했지만, 여전히 17명이 감옥에 갇혀 있다"라며 "이번 판결이 국가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여성평등센터 라틴아메리카 협회 이사인 폴라 아빌라 길런은 "엘살바도르 사법 체계가 사산이 범죄가 아니라 응급 사태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라며 "엘살바도르 국민들은 낙태죄가 빈곤한 범죄자로 규정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지난 6월 취임한 나이브 부켈레 신임 대통령도 엘살바도르의 낙태금지법 개혁에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부켈레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빈곤한 여성이 유산을 당하면 낙태를 한 것으로 의심받는 사회적 불평등이 벌어지고 있다"라며 "산모의 생명이 위독한 경우에는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최근에도 에르난데스의 재판과 관련해 "낙태는 반대하지만, 여성들이 유산 후 고통을 겪으면서도 수사를 받아야 하는 것은 유감스럽다"라고 강조했다. 
#에벨린 에르난데스 #낙태 #엘살바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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