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든 군인 출동시킨 그들의 유머, 죽음 앞에 멈추다

[미술톡] '옥인 콜렉티브' 떠나는 날 "올해 작가상 후보가 생활고로..."

등록 2019.08.22 08:33수정 2019.08.2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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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억'. 김환기 작가 작품이 기록한 한국 미술품 최고 경매 가격입니다. '868만원'. 한국의 미술 작가들이 1년 동안 작품 활동을 통해 얻는 평균 수입입니다. 극과 극의 양면이 공존하는 한국 미술계를 '미술톡(talk)'으로 들여다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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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인 콜렉티브의 옥인아파트 프로젝트 중 2010년 작업, '볼링 포 옥인'. 당시 작업의 흔적들은 http://okinapt.blogspot.com/ 에서 볼 수 있다. ⓒ 옥인 콜렉티브


철거 중인 아파트 옥상에서 한바탕 볼링 게임이 벌어진다. 볼링공은 철거될 아파트에 누군가 버리고 간 거였다. 투명한 페트병 10개가 볼링핀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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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인 콜렉티브의 2009~2010년 작업, 옥인아파트 프로젝트. ⓒ 옥인 콜렉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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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인 콜렉티브의 2009~2010년 작업, '옥인 아파트 프로젝트'. ⓒ 옥인 콜렉티브

  
아래로는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들이 여기저기 보이지만 옥상에선 바캉스도 열린다. 형형색색 텐트가 쳐져 있고, 자그만 공연과 왁자지껄한 바베큐 파티로 시끌벅적하다. 어디선가 구해온 화장실 욕조엔 산에서 꺾어온 꽃과 초가 물 위를 둥둥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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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인 콜렉티브의 2009~2010년 작업, '옥인 아파트 프로젝트'. ⓒ 옥인 콜렉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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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인 콜렉티브의 2009~2010년 작업, '옥인 아파트 프로젝트'. ⓒ 옥인 콜렉티브


밤엔 철거 직전의 텅 빈 아파트 구석구석을 음침한 공포 체험 하듯이 돌아다니기도 하고, 옥상에선 불꽃놀이도 벌어진다. 청와대 주변이라 야밤의 불꽃을 감지한 군인이 총을 들고 출동하기도 했다고 한다. 놀이 같은 행위들이 변주하고 있는 이 아파트 벽 곳곳엔 '철거'라는 빨간 글씨가 을씨년스럽게 쓰여 있다.

작가그룹 '옥인 콜렉티브'가 선보인 2009년~2010년 작업, '옥인아파트 프로젝트'의 모습이다. 이들은 당시 철거가 진행 중이던 서울시 종로구 인왕산 아래의 옥인 시범 아파트에서 1년 넘게 이 같은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의 작업을 이어갔다. 프로젝트는 실제 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던 김화용 작가와 김 작가의 사정을 알게 된 이정민, 진시우 작가가 주축이 됐고, 이 과정에서 '옥인 콜렉티브'가 결성됐다. 그때만 해도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문제의식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전이었다. 쫓겨나고 내몰리는 현장을 피부로 겪어내면서도 특유의 뼈 있는 유머와 풍자로 현실을 비틀던 옥인 콜렉티브의 작업은 미술씬(미술계)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정민 작가는 당시 프로젝트를 이렇게 회상했다.

"이제 옥인 콜렉티브의 출발점이 되었던 옥인아파트는 생태공원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우리는 2009년 7월의 이상한 오후를 기억한다. 강제 철거라는 황당한 상황에 처한 동료와 급하게 떠난 사람들이 남겨둔 파편들로 가득한 초현실적인 아파트의 안팎은 우선 말을 잃게 하는 스펙터클로 다가왔다. 철거 업체의 인부들이 내던지는 유리창의 괴괴한 소리와 초여름 인왕산의 현란한 풍광은 욕망과 현혹, 그리고 공포가 혼재하는 아수라계(阿修羅界)의 압축태쯤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이정민 작가, 옥인 콜렉티브의 책 'Okin Collective' 중)

사회 향한 뒤틀린 유머... 2018년 '올해의 작가상' 최종 후보까지

이후에도 옥인 콜렉티브는 뒤틀리고 재기 넘치는 작업들을 통해 사회 비판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엔 어이없는 재난 대피 매뉴얼 내용들을 기체조 동작으로 만들기도 하고('작전명-하얗고 차가운 것을 위하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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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인 콜렉티브, '작전명-하얗고 차가운 것을 위하여', 2011 ⓒ 옥인 콜렉티브

 
2012년 스페인 경기 불황 땐 스페인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무작위로 캐스팅해 돈키호테와 산초의 대화를 연기하도록 시키는가 하면('돈키호테 델 까레(거리의 돈키호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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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인 콜렉티브, '돈키호테 델 까레(거리의 돈키호테)', 2012 ⓒ 옥인 콜렉티브

  
콜트 콜텍 노동자와 함께 폐공장 옥상에 올라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변용한 즉흥극을 선보이기도 했다(서울 데카당스-Live,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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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인 콜렉티브, '서울 데카당스-Live', 2014 ⓒ 옥인 콜렉티브

 
"저희 작업에서 감지되는 유머는 저희가 의도적으로 돋보이게 만드는 부분도 있겠지만 사실은 저희가 바라보는 대상들이 이미 장착하고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크레인 위에서 굉장히 오래 투쟁했던 김진숙 위원장 같은 경우도 그분이 크레인 위에서 동지들을 향해 쏟아내는 유머는 정말 세다. 그 센 유머와 처절함이 만났을 때의 그 이상함, 그것이 감동으로 전해져 온다." (진시우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2018 올해의 작가상' 인터뷰 중)

그렇게 국내에서 가장 주목 받는 작가그룹 중 하나였던 옥인 콜렉티브는 결성 9년째인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최종 4인 후보에까지 오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옥인 콜렉티브를 "미디어 속에서 단순화된 관계와 상황에 내포된 양가적이고 중층적인 사람들의 감정, 태도, 상황을 노출시켜, 근대 도시에서 공동체와 개인, 공동체와 공동체, 개인과 개인 간에 존재하는 갈등과 화해, 연대의 의미와 한계 모두를 다룬다"고 소개했다.

"인터뷰 할 때마다 옥인 콜렉티브 언제까지 활동할 것 같아요? 그러면 내일도 당장 그만둘 수 있어요, 라고 얘기한 적이 많아요. 왜냐하면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고, 그리고 또 그래야만 집단을 유지할 수 있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정민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2018 올해의 작가상' 인터뷰 중)

"믿을 수 없다"... 장례식장서 오열한 미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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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옥인 콜렉티브의 이정민(48), 진시우(44) 작가의 발인이 치러졌다. ⓒ 김성욱

 
2019년 8월, 옥인 콜렉티브가 멈춰 섰다. 그룹원이자 부부인 이정민(48), 진시우(44) 작가가 지난 16일 함께 세상을 떠났다. 부고 소식은 두 작가가 지인들에게 보낸 마지막 메일이 18일 공개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빈소는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20일 오전 12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두 작가의 발인이 치러졌다.

관객들 대신 검은 옷을 입은 미술인들이 두 작가 앞에 섰다. 32도를 넘긴 늦더위에도 미술인 100여명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미술인들로 가득 찬 장례식장 지하 영안실 앞의 복도는 사담을 나누는 이 하나 없이 고요했다. 허망한 듯 벽만 쳐다보는 이도 있었고, 눈짓으로 인사한 몇몇 작가들은 서로를 껴안으며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스님은 종을 치며 "삶과 죽음이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니, 밝은 빛을 찾아 앞으로, 앞으로만 가시오"라고 염불을 했다. 가족들은 통곡했다.

두 작가의 시신이 운구차에 실려 장례식장을 빠져나간 뒤에도 미술인들은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10분이 되도록 미술인들은 말없이 서 있기만 했다. 두 작가는 경기도 용인의 한 수목장에 안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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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옥인 콜렉티브의 이정민(48), 진시우(44) 작가의 발인이 치러졌다. ⓒ 김성욱


대부분 갑작스런 소식에 놀란 얼굴이었다. 한 동료 작가는 "여러 가지 힘들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갑자기 이런 결정을 내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안 믿긴다"라며 눈물을 훔쳤다. 끝까지 자리를 지킨 해미 클레멘세비츠(Remi Klemensiewicz) 작가는 "한 달 전 즈음 함께 식사를 했을 때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밝은 모습이었다, 늘 열심히 작업하는 모습만 봐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놀랐다"고 애도했다.

두 작가는 생활고와 그룹 내부 문제를 겪었다고 전해졌다. 지인인 박아무개 큐레이터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마지막 이메일에서 두 작가는 "옥인 내부 문제를 전해 들은 분들에게 의도치 않은 고통을 나눠드려 죄송하다", "옥인의 전체 운영을 맡아온 저희 방식이 큰 죄가 된다면 이렇게나마 책임을 지고자 한다", "바보 같겠지만 작가는 작업을 만드는 사람, 예술이 전부인 것처럼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정확한 사정은 떠나간 이들만 알지 않겠나"라면서도 "만약 두 작가가 생활고로 인해 그런 선택을 했다면 우리 미술 제도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무명 작가도 아니고 '올해의 작가상' 후보까지 올라갔던 브랜드 작가 부부가 함께 작고할 정도라면 국가의 미술 정책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다는 것이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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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옥인 콜렉티브의 이정민(48), 진시우(44) 작가의 발인이 치러졌다. ⓒ 김성욱

 
옥인 콜렉티브 주요 이력

다음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정리한 옥인 콜렉티브의 주요 이력이다.

[주요 전시 및 프로젝트]

2018, 현실비경, 토탈미술관, 서울
2017, 역사를 몸으로 쓰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과천
2017, 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 일민미술관, 서울
2017, 무용수들, 아트스페이스풀, 경남도립미술관, 서울
2017, do it 2017, Seoul, 일민미술관, 서울
2017, 비디오 포트레이트, 토탈미술관, 서울
2017, In the Presence of Others, 주인도 한국문화원, 뉴델리
2016, 제3회 난징국제아트페스티벌-히스토리코드: 결핍과 공급, 난징
2016, EAST ASIAN VIDEO FRAMES:SHADES OF URBANIZATION, Pori Art Museum, Pori
2016, 행복의 나라: 사회 속 미술,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서울
2016, 아트스펙트럼 2016, 리움, 서울
2016, 무엇인가 잘못됐나요? 게임을 만들자!(Rien ne va plus? Faites vos jeux!), 드아펠 아트 센터, 암스테르담
2015, 아시안 아트 비엔날레, 대만국립미술관, 타이중
2015, Survival K(n)it 7, 리가
2015, 안무사회, 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15, EAST ASIAN VIDEO FRAMES, Pori Art Museum, 포리
2014, 제10회 광주비엔날레-터전을 불태우라, 광주
2014, Post-Movement: Night of Café Mueller, 콴두 미술관, 타이페이
2014,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13, No Dance!: Between Body and Media, 제로원디자인센터, 서울
2013, No Mountain High Enough, 시청각, 서울
2013, Acts of Voicing, 토탈미술관, 서울
2012, 진실은 구체적이다 (Truth is Concrete), 쉬타이르샤 헵스트 (Steirischer Herbst) 2012,  그라츠
2012, 파동 The Forces Behind, 두산 갤러리, 뉴욕
2012, 총파업-Stop the city, Take the Street, 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
2011, 안녕 없는 생활들, 모험들,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2010, 옥인 콜렉티브 단독전시 '콘크리트 아일랜드', 테이크아웃드로잉, 서울
2010, 옥인 콜렉티브 단독전시 '옥인 오픈 사이트', 철거중인 옥인아파트, 서울
2010-2018, 옥인 인터넷 라디오 스테이션 [STUDIO+82]
2009.7-2010.11
옥인아파트 프로젝트, 철거중인 옥인아파트, 서울

[주요 퍼포먼스 및 워크숍]

2017, 지시문 2017-무지개가 뜨는 시간처럼, 일민미술관, 서울
2017, [프랙티스-03 말과 위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과천
2016, [프랙티스-02 막간극], 여의도 공원/C-47 비행기 전시관, 서울
2015, [프랙티스-01 폐와 반복], 백남준아트센터, 서울
2014, 작전명-님과 노래를 위하여, 10회 광주 비엔날레, 광주
2014, 서울 데카당스-Live, 페스티벌 봄, 인디아트홀 공과 건물 옥상, 서울
2013, 몸말 워크숍, 아트스페이스 풀, 서울
2013, 플레이그라운드 인 아일랜드 2013, 워크숍, 코타 키나발루
2012, 돈키호테 델 까레(거리의 돈키호테), 길거리 퍼포먼스, 바르셀로나
2012, 한국현대극세사(韓國現代極細事) 디제잉, 사운드 퍼포먼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과천
2012, 작전명-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 19금 퍼포먼스 릴레이, 서울
2011, 작전명-하얗고 차가운 것을 위하여, 갤러리 루프와 동교동 일대, 서울
2010, 옥인 매니페스토-5분간의 혁명, 백남준아트센터(기획_클라우디아 페스타나)
2010, 제주인권회의 워크숍, 제주/서울

[주요상영]

2016,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한국영상자료원, 서울
2015, 아티팩트 페스티벌 15(ARTEFACT FESTIVAL 15), 스툭(STUK), 겐트
2015, 제15회 서울국제뉴미디어 페스티벌, 인디스페이스, 서울
2014, 토탈리콜, 일민미술관/한국영상자료원, 서울
2013, 스펙타클과 우회의 전략, 기 드보르와 국제상황주의 전, 미디어 극장 아이공, 서울
2012, 제4회 오프앤프리 국제영화예술제, 서울

[레지던시]

2013,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12, 앙가(Hangar) 국제 레지던시, 바르셀로나
2011-2012, 금천예술공장, 서울

[소장처]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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