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애인 임신시키고 버린 쓰레기'가 아닙니다"

[나는 왜 '나쁜 놈'을 변호했나 12] 어느날 SNS에서 벌어진 일

등록 2019.08.26 11:30수정 2019.08.2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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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청소년을 지원하면 언제나 '피해자 지원도 부족한 마당에 왜 가해자를 돕냐'는 비판이 뒤따른다. 도대체 가해 청소년들은 왜 지원을 받아야 할까. 전국에서 유일하게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돕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가 만난 청소년들의 사연에서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기사 내용은 실화를 토대로 했으나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을 쓰고 세부 사항도 재구성했다. - 기자말     

부천의 한 시의원에게 전화가 왔다. 한 청년이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내가 좀 도와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자료를 받고 사건을 살펴봤다. 하지만 그를 돕고 싶은 생각은 쉽게 들지 않았다. 장애인 여성에게 접근해 즐기다가 임신을 하자 헤어진 사건이었다. 장애인 여성을 울린 녀석을 위해 다른 사람을 고소하는 법률지원은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게 전화했던 시의원은 그 청년이 결백하다며 자청하여 기자간담회 자리까지 마련해 줬다. 무언가 이상했다. 사건을 좀 더 살펴보니 그 이상함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그날도 혜민(가명)의 퇴근은 늦었다. 현승(가명)은 조금이라도 곁에 있고 싶었지만 몇 시간 자고 나면 다시 출근해야 하는 혜민을 길게 붙잡아 둘 수 없었다. 항상 혜민을 걸어서 집에 데려다주는 것은 짧은 만남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달래보기 위함이었다. 며칠 동안 간헐적으로 폭우가 쏟아졌지만 그날만큼은 빗줄기도 가늘어졌다. 현승은 손에 들고 있던 장대 우산을 펼쳐 혜민과 나눠 썼다.

어느날 도착한 의미심장한 메시지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 혜민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혜민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녀는 현승에게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카페 의자에 등을 기댄 혜민은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리둥절한 현승도 무슨 일이냐 묻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혜민은 힘겹게 스마트폰을 내밀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 송도에 사는 스무 살 이수빈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연락드리게 되어 정말 죄송하기도 하고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두서없겠지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연락을 드리고자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끈질긴 수소문 끝에 연락처를 찾아 연락을 드리게 됐습니다. (중략) 본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는 현승 오빠의 아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현승 오빠와 모호한 사이를 이어가며 잦은 교류를 가지고 있었고, 현승 오빠는 제가 질려 저를 버리게 됐습니다. 사실 저 같은 장애인이 싫어서라는 것도 현승 오빠의 친구를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사회에서 말하는 '농아'이자 '벙어리'입니다. (중략) 저는 두 분의 만남에 훼방을 놓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저처럼 순진하게 현승 오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또 다른 피해자가 탄생하는 것을 막고 싶고, 아시기라도 하셨으면 하는 바람에 알려드립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자신을 이수빈이라고 밝힌 여자는 기억에조차 없었다. 당황하긴 현승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눈물이 맺힌 혜민의 눈을 보며 현승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야" 밖에 없었다. 고맙게도 혜민은 그 한마디에 현승을 믿어주었다.

곧 혜민은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통화를 하자며 전화번호를 요구했지만 알려주지 않았다. 보이스톡을 걸었지만 자신은 농아라 통화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전화번호도 알려주지 않고 보이스톡도 받지 않지 않자 혜민과 현승은 "누가 이런 장난을 치는 거야"라며 한바탕 어색한 화를 냈다. 다음날 출근이 부담되었지만 그날만큼은 카페에서 실컷 수다를 떨고 헤어졌다.

막을 새도 없이 퍼진 거짓말들


손에 묻은 비누가 덜 헹궈진 듯 찜찜함은 남았지만 혜민도 현승도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다행히 다음 날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 이어졌다. 그러나 평온은 거기까지였다. 하루가 더 지나자 현승의 친구들에게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수빈이라는 여자를 아냐고 물었다. 현승에게 버림받았다던 이수빈이라는 여자는 현승의 친구들을 단체 카카오톡에 초대해 위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현승과 나눴다는 페이스북 메시지까지 공개했다. 메시지에서 현승은 "내가 20대 초반인데 인생 망칠 일 있어"라며 그녀에게 헤어질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녀의 장애를 비하하며 온갖 욕설을 하는 모습도 그대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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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톡에 공개된 사진 이수빈이라는 여자는 조작된 사진을 현승과 나눈 대화라며 단체톡에 공개했다. ⓒ 김광민

 
자신이 현승의 아이를 낳고 버림받았다는 그녀는 혜민뿐만 아니라 현승의 친구들 전화번호까지 알고 있었다. 이수빈이라는 여자의 주장은 더욱 구체적으로 변해 있었다. 현승이 무정자증이라 피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유혹해 놓고 아이를 임신하자 자신을 버렸다고 했다.

대화 속 현승은 언어 장애가 있는 그녀에게 접근해 원하지 않는 임신을 시켜 놓고 야멸차게 버려버린 나쁜 놈이었다. 하지만 대화를 캡처한 화면에는 현승이라는 이름과 이수빈이라는 이름 사이에 오고 간 대화만 있을 뿐 날짜와 시간은 나오지 않았다. 현승의 친구들이 날짜가 보이는 화면을 보내 달라고 했지만 그녀는 계속하여 현승을 비난할 뿐이었다. 단톡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한 현승은 충격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혜민은 오히려 냉정했다. 혜민은 현승을 설득해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를 찾은 혜민과 현승에게 안내데스크를 지키던 경찰은 휴일에는 사이버수사팀이 운영되지 않는다며 월요일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하필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경찰서를 나서면서 혜민은 "월요일 경찰에 신고하면 모든 것이 잘 해결될 거야. 우리 걱정하지 말자"며 현승을 위로했다. 그때 현승에게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현승씨 맞나요?"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하자 상대는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

"너 무정자증이라면서! 그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여자를 울렸냐! 인간쓰레기 같으니라고!"
 

상대는 현승이 무어라 대꾸할 새도 없이 일방적으로 욕설을 퍼 붙고는 전화를 끊었다. 정신을 못 차리는 현승에게 계속하여 전화와 문자가 쏟아졌다. 하나같이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이 담겨 있었다. 주말 동안 현승은 계속해 걸려오는 전화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문자폭탄에 시달려야 했다.

월요일 현승과 혜민은 출근도 하지 않은 채 경찰서를 향했다. 수사를 진행한 경찰은 놀라운 사실을 알려 주었다. 현승이 장애인인 자신을 농락해 임신까지 시키고서는 버렸다는 글과 단톡에 올렸던 페이스북 메시지 캡처 사진이 각종 사이트와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게시물에는 현승의 전화번호가 남겨 있었다. 이를 본 수 많은 사람이 현승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왔던 것이었다.

현승의 전화번호는 더는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10년도 넘게 써왔던 전화번호지만 바꿀 수밖에 없었다. 전화번호를 바꾸고 나서야 현승은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쉽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휴가를 내고 며칠을 쉬었다. 그리고는 페이스북에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해명 글을 올렸다. 다행히 아직 현승을 믿어주는 이들이 많았다. 현승의 페이스북 친구들은 이수빈이라는 여성이 허위 글을 올린 사이트들을 찾아 현승에게 알려줬다. 게시물은 페이스북 '부천 모임' 페이지, '부천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 미혼모 관련 여러 페이지, 보배 드림 등등 현승이 사는 부천과 관련된 페이스북 페이지를 중심으로 게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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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부천모임 페이지에 올라온 실제 게시물 이수빈이라는 여자는 현승에 대한 거짓 비난을 실명 및 전화번호와 함께 수많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했다. ⓒ 김광민

  
한 페이스북 친구는 이수빈이라는 여자가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한 만삭 사진이 다른 사람의 사진을 도용한 것을 알아냈다. 도용당한 사진의 주인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어 이수빈이라는 여자를 아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전혀 모르는 이름이라고 했다. 이수빈은 페이스북 계정도 카카오톡 계정도 모두 가짜였다. 게다가 수사가 시작되자 해당 계정들은 모두 삭제되었다. 각종 페이지에 올라갔던 현승을 비난하는 게시물 또한 모두 삭제되었다. 마치 이수빈이라는 여자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현승에게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러나 차마 셀 수도 없이 쏟아졌던 문자, 그 속에 담겨 있던 욕설과 비난이 현승의 가슴에 남긴 상처는 쉽게 아물 수 없었다. 더욱이 현승의 페이스북에 찾아와 욕설을 퍼부은 수많은 이들의 글들은 고스란히 현승의 지인들에게까지 읽히고 말았다. 현승은 며칠 사이에 장애인 여성을 임신시킨 후 버려버린 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혜민은 끝까지 현승을 손을 잡아 주었다. 혜민이 없었다면 현승은 어떠한 극단적 선택을 했을지도 몰랐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을 욕하는 것 같은 상황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버티기는 쉽지 않았다.

현승의 사건... SNS 문화 되돌아보는 계기 되어야
 

현승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이수빈이라는 사람, 그의 말에 무작정 현승에게 욕설을 퍼부은 수많은 사람들, 그들이 던진 한 마디가 현승을 얼마나 극단으로 몰고 갔는지 모를 것이다. ⓒ Pixabay


이수빈이라는 사람을 찾기 위한 수사는 이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현승과 혜민은 진위를 알아보지도 않고 그들에게 욕설을 퍼부은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자 준비 중이다. 그들을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할 계획이다. 다만 그들이 현승에게 상처를 주었던 SNS를 통해 공개 사과를 한다면 조건 없이 고소를 취하한다는 생각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현승과 혜민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이수빈이라는 사람, 그의 말에 무작정 현승에게 욕설을 퍼부은 수많은 사람, 그들은 자신이 어떤 짓을 했는지, 그들이 던진 말들이 현승을 얼마나 극단으로 몰고 갔는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현승은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SNS 문화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SNS #페이스북 #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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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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