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와 상처를 보듬다

[인터뷰] C-ReStory 송예음 대표

등록 2019.08.23 08:47수정 2019.08.2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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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와 '학교폭력' 문제가 공론화 된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이 문제들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오히려 악랄하게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금품 갈취와 폭행, 원치 않는 행위 강요, '빵셔틀', '와이파이 셔틀'로 대표되는 강제적인 심부름뿐만 아니라 메신저 단체 방에 초대해 언어폭력을 가하여 정신적인 고통을 안기거나, 사람의 목숨을 놀이수단으로 활용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기절 놀이'까지 등장하면서 학교폭력의 수법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렇게 학교폭력은 시대와 수법을 떠나 평범하지만 악랄한 가해자가 끝없이 고통 받고 있는 피해자를 괴롭게 하고 있다.

이런 잔인했던 학교폭력이 준 상처를 극복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C-ReStory라는 비영리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송예음씨. 지난 23년 전 심각한 수준의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그녀는 현재 프리랜서로서, 또 학교폭력 피해자로서 학교와 교우관계에서 상처를 받았던 이들을 치유하고, 보듬어주고, 심지어 그들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기까지 하며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있다. 흔히 '개구리 올챙이였던 시절을 모른다'고들 하지만 송 씨는 도리어 자신의 학교 친구들에게 받았던 상처와 아픔을 기억하면서 자신과 똑같은 상처를 받았던 이들을 보듬어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모처에서 만났던 송예음씨는 과연 학교폭력 피해자가 맞는지를 생각하게 할 정도로 시종일관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아픔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과거를 아무렇지 않게 고백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세상에서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과거의 상처 앞에서 무척이나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송 씨는 인터뷰 중에 필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현재의 행복이 중요하지, 과거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면서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다음은 C-ReStory의 대표 송예음씨와의 일문일답이다.
 

23년 전 송예음씨는 학교폭력으로 큰 아픔을 겪었지만, 이제는 자신과 똑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을 보듬어주고 있다. ⓒ 송예음


- 우선 죄송하지만 과거에 대해 들어봐야 할 것 같다. 어떤 일이 있었는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학교폭력을 당했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학교로 입학하면서 힘든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지켜보다가 보면 볼수록 설치고 다니니까 재수 없다고 느꼈던 것 같았는데, 처음에는 3~4명이서 조금씩 건들기 시작한 일이 20명 가까이 돌아가면서 괴롭히기까지 했다.

툭툭 치거나 괴롭히는 식으로 건드렸고, 돈이나 필기 노트, 체육복, 실내화, 교복까지 훔쳐가기도 했고, 몸을 만지는 식으로 성희롱까지 하기도 했는데, 우는 모습을 보고 비하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께 알리지 못하게 출입문도 막고, 화장실을 가거나 친구를 만나는 것까지 통제했다.

선생님께 알려도 효과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날 괴롭혔던 애들은 다른 얘기를 해서 나를 거짓말하는 학생으로 만들었다. 따귀를 때리는 식으로 체벌하는 선생님이 한 분 계셨는데 가해자도 때리고 나까지도 때렸던 적이 있다. 검찰에 고발하고, 언론에 이 사실이 다 알려졌는데도 오히려 학교에서는 서로 '내 잘못이 아니라 학생들이 잘못한 것이다'고 무책임하게 회피하기만 했다.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

- 정말 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를 극복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하다.
"어머니의 무릎 기도로 극복할 수 있었다. 사실 돈이 없어서 사후 치료를 받지 못했는데, 의학의 힘이 아닌 종교의 힘으로 이겨냈다. 누가 봐도 이건 의학적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종교의 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학교에 갈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자기가 기도하던 자리를 떠나지 않으셨는데, 그 기도가 나를 감동시켰다. 그것이 아픔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 고등학교 때 가입했던 기독교 동아리가 인생을 바꾸었다고 들었다. 도대체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
"그 학교폭력 사실이 알려진 후 전학을 갔는데도 변한 건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들어갔는데 '주바라기'란 동아리가 있었다. 기독교 동아리였는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나의 상처에 대해 아파해주었다. 또 내가 괴롭힘 당하는 것을 알고 교실에 찾아가서 괴롭히지 말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학교폭력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 하는 것에 서툴렀는데, 동아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나를 이해해주고, 보듬어주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사람대접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과거의 상처를 회복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과거에 가해자였던 친구들을 용서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하게 된 이유는?
"내가 행복해지고 싶었기 때문에 그랬다. 한번은 동아리 모임을 예전에 다녔던 학교 근처에서 진행했는데, 그게 있기 전부터 아파왔다. 그런데 아픈 걸 다 참고 모임을 가기 전에 학교와 그 주위를 돌아다녔다. 그때 들었던 생각이 '내가 그들을 용서 하는 게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 후로는 화가 나도 매 순간 그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하기도 한다. 나는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괴롭혔던 애들이 과거 일 때문에 행복할 리는 없잖나,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23년 전 송예음씨는 학교폭력으로 큰 아픔을 겪었지만, 이제는 자신과 똑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을 보듬어주고 있다. ⓒ 송예음


- 지금은 과거에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알려줄 수 있나.
"학교폭력이나 따돌림같이 교우관계에서 큰 상처를 입은 학생들이 자존감을 올릴 수 있는 스토리텔링 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 나도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갔지만 썩 좋은 기억은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수학여행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있지 않나, 그런 친구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다. 또 미술치료를 통해 몸과 마음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미술작품을 만들고 이를 통해 심리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을 하기도 하고, 리본공예로 리폼 하는 일도 하기도 한다."

-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인가.
"연애와 결혼, 무척 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대학원 석사과정을 무사히 마치고자 한다. 그리고 인성교육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고, 미술심리를 관련해서 청소년 상담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한다. 또 지금 운영하고 있는 단체의 공식적인 법인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끝으로 오마이뉴스 기사를 구독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왕따를 받을 만한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이 받을 만하니까 받을 만하다고 말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가치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상처를 받은 이들은 상처에 눌려 그 상처에 집중하지 않길 바란다. 왜냐하면 나의 상처는 나만이 이겨낼 수 있다. 그 상처에 얽매여있다 하더라도 그 누구든 나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송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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