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종료는 '국가안보'에 도움된다, 왜냐면

[정욱식 칼럼] 한일관계, '재설정'이 필요하다

등록 2019.08.23 18:35수정 2019.08.2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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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 내용을 보고받고 있다. ⓒ 청와대


문재인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발표하자 국내 수구·보수 진영이 안보를 무시한 "백해무익한 자해행위"라는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지소미아 종료가 되레 안보에도 '도움이 되는' 조치라고 본다.

2016년 11월에 졸속으로 체결된 지소미아의 실질적인 주체·사유·목표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미일동맹에 의한,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를 위한, 한미일 삼각동맹을 향한 것이다.'

한국은 미일동맹이 명시적인 적으로 삼아온 북한과는 물론이고 중국 및 러시아와 가장 가까이에 있다. 그래서 미일동맹은 오래전부터 한국을 한미일 3자 MD의 전초기지로 삼길 원했다. 유사시 이들 나라로부터 날아오는 미사일을 가장 먼저 탐지·추적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고, 그 한국이 미사일 추적 정보를 신속하게 미일동맹에 전해주면 미사일 요격 가능성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지소미아, 남북·한중관계까지 고려해 결정해야, <프레시안>).

더 나아가 지소미아는 한미일 3국이 사실상 집단적 자위권을 공유하면서 삼각동맹으로 향하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이는 거꾸로 지소미아 종료가 태동기에 있었던 한미일 삼각동맹을 뒤흔들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한미일 3국의 보수 진영도 이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한미일 삼각동맹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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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은 지난 2017년 7월 6일 오후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독일 함부르크 시내 미국총영사관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만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그렇다면 한미일 삼각동맹은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는 걸까. 

지소미아 종료에 따른 안보적 득실관계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따져볼 수 있다. 군사동맹의 존재 이유는 '공동의 적'에 있다. 이는 곧 한미일이 군사동맹을 추구할수록 그 명시적·잠재적인 적인 북한·중국·러시아와의 관계도 나빠지고, 이들 세 나라의 결속을 야기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신냉전이다.


우리는 냉전 시대의 가장 큰 피해자 가운데 하나였다. 이는 곧 한반도에서의 탈냉전을 도모하면서 동북아 신냉전 출현을 예방하는 것이 사활적인 과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신냉전을 재촉할 위험이 컸던 지소미아에서 발을 뺀 것이 어떻게 안보적 자해행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일부 국제정치학자들은 냉전(cold war)을 '긴 평화'(long peace)라고도 부른다. 3차 세계 대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강대국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냉전 시대 세계 곳곳에선 열전(hot war)이 벌어졌고, 그 결과 1·2차 세계대전 사망자 수보다 많은 약 40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가운데에는 한국전쟁도 있었다.

신냉전 도래시 우리에게 다가올 치명적인 위험도 이런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다. 가령 이런 것이다. 미일동맹 입장에서는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방어력이 강력할수록 북한과의 전쟁은 해볼 만한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북한과 각각 동해와 태평양을 사이에 둔 일본 및 미국과 휴전선을 북한과 맞대고 있는 우리의 입장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고 또한 달라야 한다.

아울러 한미일이 삼각동맹을 추구할수록 미일동맹과 중국의 무력 충돌 발생시에 우리가 정면으로 휘말릴 가능성도 커진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설사 동북아 신냉전을 막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중립적인 위치를 확보해야 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취약성이 안보에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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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 한일 양국이 맺은 첫 군사협정인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결국 2년 9개월여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위 사진은 지난 2016년 11월 23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일본대사가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체결하는 모습. 아래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일본대사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담은 공문을 받은 뒤 청사를 나서는 모습. ⓒ 연합뉴스

 
일찍이 윈스턴 처칠은 "취약성이 안보에 기여한다"라고 했다. 매우 불편하게 들릴 수 있지만, 진실의 한 단면을 담고 있는 말이다. 적대 관계에 있는 쌍방 가운데 어느 한쪽이 완전 방비에 도달할수록 다른 한쪽은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불안감을 가진 쪽도 이내 맞대응을 선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군비경쟁과 안보 딜레마는 격화되기 마련이다.

한국이 지소미아를 종료하고 이에 따라 유사시 미사일 정보를 일본에 전달하지 않게 되면 일본의 취약성은 커진다. 일본은 물론이고 일본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미국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취약하기로 따지면 북한이 훨씬 더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국도 마찬가지다. "취약성이 안보에 기여한다"는 처칠의 말은 바로 상호간에 억제가 작동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는 결코 완전한 것도 아니다. 특히 정치적으로는 모욕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외교'다. 외교를 통해 적대관계를 평화관계로 전환하고 서로를 겨냥한 무력을 줄여나갈 때 더 튼튼한 안보를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소미아 종료 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한일 혹은 한미일이 추구해야 할 것은 '군사' 협력이 아니라 '평화' 협력이 돼야 한다. 아베 정권이 여러 차례 희망을 피력해온 북일정상회담을 지지하고 협력함으로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동참하지 못한 일본의 소외감을 씻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일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설정'(reset)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일본 내에선 한국의 부상과 남북관계의 발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코리아'의 등장이 '일본을 향해 뻗친 대륙의 칼'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최근 일본의 경제 도발도 이를 예방하고자 하는 성격이 짙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이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고도 지속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경제론이 극일보다는 일본과도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자 하는 취지임을 알려나가야 한다.
#지소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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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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