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 경험자가 본 조국 딸 논란

등록 2019.08.25 12:17수정 2019.08.2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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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대학 선생으로 근무하면서 오랫동안 입학사정관 일을 겸해왔다. 요즘 조국 딸의 대학입학 등의 문제로 시끄러운 판이라 지인 선생들과 그와 관련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만일 우리가 고려대학교에서 입학사정을 담당했던 교수라면 조국 딸을 선발했을까?'라는 자문에 이르게 됐다.  

조국 딸이 2010학번이라니 그때만 해도 입시사정을 하면서, 지원자 출신 고교는 물론, 자기소개서(아래 자소서)를 통해 부모 직업이나 가정환경들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아예 자소서는 받지 않는다. 설사 자소서를 받더라도 지금의 자소서에는 조씨 딸 경우와 같이 교외 활동을 통해 얻은 스펙 등을 기재하지 못한다. 심지어 작년부터는 수험생들의 출신 고교조차 알 수 없게 면접 당일 교복 착용도 금지하고 있다.   

십 년 전 입시로 다시 돌아가 본다면, 입학사정관은 일단 조씨의 딸이 유수의 외국어고 출신이라는 점에서 서류를 한 번쯤이라도 더 들여다볼 수 있었을 것 같다. 지역에 소재한 대학인 우리 학교에는 서울 소재 특목고 출신이 지원하는 일도 없지만, 설사 지원을 한다면 '이게 무슨 천지가 개벽할 일이냐'라고 생각할 것이다.

조씨 딸의 자소서를 검토해나가다 보면 고교 시절 모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인턴 활동을 하고, 제 일 저자로 논문을 발표한 사실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 가서는 '피식' 하는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다. 이건 안 봐도 비디오인 게, 배경 좋은 부모가 알음알음으로 알게 된 의과대학 교수에게 부탁해 인턴 일도 하고 논문까지 써 스펙 쌓기에 도움을 받고자 했음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스펙과는 약간 다른 경우지만, 우리 학교 지원자들의 봉사실적 같은 내용을 보면 쓴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고등학교 운동장에는 뭔 잡초가 그리 우거진지, 실적의 대부분이 '운동장 풀 뽑기'이다. '오죽 내세울 게 없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때론 공공도서관의 사서 일을 도왔다는 봉사실적을 제출하는 학생도 있는데, 이도 소문을 들어보면 부모들이 부탁해서 봉사 시간 양을 적당히 늘려 받아오는 것 같았다.

이에 비하면 조씨 딸의 스펙은 화려하기만 하다. 어떻게 보면 맹모삼천지교의 예와도 같이 좋은 부모 밑에 태어나 좋은 환경 아래 좋은 교육을 받은 우리 사회의 이른바 '금수저'의 전형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나는 조씨 딸의 그러한 자소서를 검토한 끝에 합격시켰을까? 불합격시켰을까? 우선은 모 의과대학에 가서 인턴 일을 했다는데 이게 어떤 식으로 어떻게 했는지를 정확히 확인하기는 어렵다. 당연히 면접 시 여러 질문을 통해 이의 실체를 대충 확인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나의 결론에 대하여 절대적인 확신은 못할 것 같다.

가령 조씨 딸이 금수저 출신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부모의 힘으로 엉터리 인턴을 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와는 거꾸로 조씨 딸이 인턴 활동을 나름 의욕적으로 하고 또 고등학교 현장서 배울 수 없는 다양한 교육체험을 했다고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대학 입장에서는 이러한 학생을 선발하고도 싶을 것이다.

게다가 그 문제의 제 일 저자 논문이다. 아무리 맹탕 같은 교수일지라도 조씨 딸이 지원한 해당 대학 전공 교수들은 그 논문과 관련해 당사자에게 몇 가지 질문만 해보면 조씨 딸이 그 논문에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 그리고 그 논문의 성격과 수준이 어떠한 것인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입학사정관이 하는 일이란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수험생이 제출한 자료를 무턱대고 믿는 것이 아니라 면접을 통해 이를 잘 판단해보는 것이다. 조씨 딸의 논문은 글자 그대로 참고자료인데, 그것이 합격의 도구가 될 수도 있고 달리 보면 '양심 불량'으로 불합격의 빌미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거 저런 거 다 떠나서 과연 조씨 딸의 논문이 합‧불합격 여부에 그렇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을까?

요즘도 언론에서 그러한 보도를 하는지 모르지만 입시가 끝나고 나면 서울대학교 합격자 배출 고교 순위를 발표한다. 그러면 그 앞자리에는 늘 과학고, 외국어고 등의 특목고들이 있다. 요즈음 학교 인가 문제로 떠들썩한 문제의 자율형 사립고들도 그 한 자리를 비집고 앉아 있다. 고려대학교 교수나 입학사정관에게 죄송한 말이기는 하나, 이들 역시 명문대학에는 유독 특목고 출신들이 많다는 현실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지금 조씨 딸의 문제로 가장 핏대를 올리고 있는 정치집단이 자유한국당이다. 그러나 그들이 조금이라도 행동에서 진정성을 보이고자 한다면 당장 최근에 있었던 자사고 인가 문제 등과 같이 우리 사회의 금수저 집단을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해내려는 흐름을 저지하는 데 최소한 딴지를 거는 일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이 정부 고위공직자들의 자녀가 자사고, 특목고 출신들이 많은데 정책에 있어서는 다른 입장을 취한다"면서 그 위선을 지적했다. 개인의 자유 의지로 위선의 가면을 벗어 내던지기란 쉽지 않다.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니 그건 '조국 할아버지'라도 힘든 일인 것 같다.

위선자를 비난하는 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러한 위선자들을 만들어내고 금수저들을 양성해내는 기존의 적폐 토양을 갈아엎는 일은 진정 지난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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