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서해안을 오염시키는 과정

‘그들만의’ 뉴스

등록 2019.08.27 08:04수정 2019.08.2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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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이 한동안 시끄러웠다. "북한에서 방사능이 유출됐다"는 댓글들이 여기저기서 달리기 시작해서다. 이 심각한 사실이 메인포털과 메인기사로 나오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문재인 정권이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필자는 쉬면서 코미디언 유세윤의 여름나기 동영상을 보다가 댓글을 발견하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독재의 사전적 정의는 '1인 또는 일정한 소수 집단에 정치권력을 강압적으로 집중시키는 권위정치'다. 그리고 쉽게 말하자면, '독재'와 '통제'라면서 반발하는 집단마저 보이지 않아야 독재다.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그들이 들고 나온 것은 자유아시아방송(RFA)이었다. KBS에서도 나왔다고 한다. 그럴 만 했다. 11년도부터 KBS와 FRA는 방송 업무 제휴를 맺엇으니까. 나는 공영방송에도 나온 뉴스를 두고 정권의 통제라고 말하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건 그들이 뉴스를 해석하는 방식이었다. FRA는 해당 기사에서 '평산에서 방사능이 유출되고있다'라는 확정적 발언을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의혹'과 '주장'이 팩트가 될 때

언론은 직접적인 정황이 확보되지 않는 한 확정적으로 뉴스를 보도할 수 없다. 이는 자신들의 말이 자칫하면 대중을 선동하게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며, '언론'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신뢰 문제와 직결된다. 따라서 단정적이고 감정적이며, 'A는 B다'라는 식의 말은 언론이 아니라 민간이 더 많이 쓴다. 칼럼, 에세이, 유튜브, 사설 등이 이에 속한다.

FRA 뉴스의 시작은 "방사능 물질이 하천으로 흘러들어가 주변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의혹'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주장을 펼친 것은 제이콥 보글이라는 미국의 분석가다. 거기다 FRA는 제이콥 보글이라는 사람이 북한 관련 전문가가 아니란 것 또한 밝혀놓았다. 문단의 시작이 '미국의 민간 북한 분석가인 제이콥 보글(Jacob Bogle)씨는~'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에 있는 민간인 분석가 한 명이 구글 맵에서 제공하는 평산 지역의 지도를 보고 난 뒤, 색깔이 검은 방류지점을 보고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 것이고, FRA는 이를 기사화하여 제공한 것뿐이다. 이게 어떻게 방사능 유출의 팩트가 될 수 있으며, 현 정부의 통제로 인한 기사검열이 될 수 있는가.

얼마 지나지 않아 연합뉴스, 뉴데일리, 매일경제 등으로 방사능 폐기물에 관련된 뉴스가 퍼지기 시작했다. 다만 보도 순서와 참견하는 전문가의 의견만 바꿔놓았을 뿐, "방사능 유출의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FRA에서 나온 뉴스이며, 제이콥 보글이 주장했다"는 주된 맥락은 바뀌지 않았다.

제이콥 보글의 블로그
 

제이콥 보글의 블로그 구글에서 그의 이름만 쳐도 바로 그의 블로그를 관찰할 수 있다. ⓒ 신명관

 
가장 재미있는 건 당장에 스스로를 민간 분석가라고 소개한 제이콥 보글의 블로그를 들어가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영문명만 구글에 쳐도 바로 주소가 나온다. 평산에 우라늄 폐기물 관련 게시글은 현재(9월 24일) 가장 상단, 19년 8월 3일의 게시글에 버젓이 있다.

"North Korea began constructing these uranium milling facilities in the 1980s. While there's only satellite evidence of leakage dating to 2003, it is highly likely that this has been ongoing for decades. The facility itself sits near the confluence of a smaller tributary river the larger Ryesong River, meaning that anything dumped into the tributary will quickly enter the Ryesong."
"북한은 1980년대부터 이런 우라늄 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위성 증거가 있을 뿐이지만, (오염은) 수십 년 동안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시설 자체가 작은 지류 강과 예성강의 합류 지점 근처에 자리하고 있고, 이는 지류에 버려지는 것들은 무엇이든 예송으로 빨리 흘러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제이콥 보글의 블로그)


But he thinks the catastrophe may soon be hard to hide because the toxic leak is now flowing into the Yellow Sea the country shares with neighbouring South Korea and China.
"그러나 그는 독소의 누출이 현재 남한과 중국이 공유하는 황해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재앙을 곧 숨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FRA 미국 기사)


그의 주장대로 본다면, 이미 우리의 서해안은 후쿠시마의 방사능이 아니고서도 별개로 오염이 되어있어야 하는 상황이란 게 성립된다.
  
선택적 사실이 만든 왜곡

평산의 공장은 우라늄의 정련 시설이지 농축이나 재처리를 담당하는 곳이 아니다. 물론 북한이 핵무기 제조 공장을 보유하고 있기에 위협과 더불어 방사능 오염의 문제에서 우리가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게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몇 개의 단어를 빼고, 몇 개의 단어를 가져옴으로서 선택적 사실이 만들어진다면, 그건 더 이상 팩트라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선택적 사실이 대중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순간, 정보는 제 기능을 잃고 선동이 된다.

JTBC는 의혹 제기자인 제이콥 보글에게 직접 접촉했으며, 보글은 스스로 "나는 핵물질 전문가가 아니며, 수년간 구글의 위성사진으로 북한을 분석해왔다"고 말했다. 결국 아무것도 공신력 있는 곳에서 확인된 바가 없는 사실이다. 북한을 분석하려는 사람이기에 악의는 없었겠다만, 그의 논리대로라면 현재 남한의 국민들은 대부분 피폭상태여야 한다. 그는 서해안의 방사능을 측정해본 적이 없으며, 남한의 우라늄 노출 정도에 대해서도 조사한 적이 없다. 물론 우리는 아무 이상이 없이 잘 살고 있다.

모두를 믿되 누구의 말도 믿지 못하는 시대는 한참 전에 도래했다. 모두 유념하자. 사실은 누군가의 입으로 전달되느냐에 따라 사실이 아니게 될 수도 있음을. 글의 분위기, 뉘앙스, 단어 표현에 대한 주관적 선택들을 모두 배제했을 때에야 우리는 특정 집단의 '그들만의 뉴스'에서 벗어나 사실을 찾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http://www.jacobbogle.com/ - 제이콥 보글의 블로그 메인
https://mynorthkorea.blogspot.com/ - 서해안 방사능 누출과 관련된 이슈의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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