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섬 주민들에 대한 예의를 지켜라"

[꿈틀대는 섬 ③] 약 400개 섬 걸은 강제윤 섬연구소 소장

등록 2019.08.30 15:31수정 2019.08.3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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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약 40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나라다. 정부는 올해부터 8월 8일을 '섬의 날'로 지정하고, 기념하기로 했다. 오마이뉴스는 제1회 섬의 날을 맞아 '꿈틀대는 섬' 기획을 마련했다.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는 섬과 사람들 이야기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편집자말]

서울에서 열린 두 번째 섬 사진전 <당신에게 섬>. 작품 앞에선 강제윤 섬연구소 소장. ⓒ 이혜선

 
20여 년 동안 약 400여 개의 한국 섬을 걸었다. 그의 시처럼 그는, '바람 부는 날에도 섬으로 갔고, 속절없이 그리운 날에도 섬으로 갔다'. 처음에는 구도의 과정으로 섬 걷기를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우리 섬들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 공간인가를 깨달았다. 그 다음부터는 섬에 대한 탐구를 목적으로 걷고 또 걷고 있다. 본디 보길도 섬사람이었던 시인 강제윤은, 그렇게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이 되었다.

이름뿐인 섬연구소가 아니었다. 도로공사로 소멸될 뻔했던 300년 된 전남 완도군 여서도의 돌담을 지켜냈다. 간척으로 썩어가는 백령도의 천연기념물 사곶해변 살리기 활동을 통해 문화재청이 역학 조사를 하도록 만들었다. 진도군이 대형 리조트 회사에 매각하려던 관매도의 폐교를 지켜냈다.

작년(2018)에는 행정안전부와 함께 국회에서 '지속가능 섬포럼'을 개최했다. 섬 정책 컨트롤 타워 설립을 제안했고, 현재 정부에서 설립을 추진 중이다. 전남도의 역점 시책인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자문 활동을 하면서 '섬지원센터' 건립을 제안했고, 센터가 만들어졌다.

문장 몇 줄로 정리될 일들이 이뤄지기까지 20여 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허영만 화백은 "강제윤은 뚝심이 있다, 어지간해서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 흔들리지 않는 뚝심으로 여전히 섬을 걷고 있는 강제윤 시인을 지난 23일 육지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서울에서 연 <당신에게 섬> 전시에 대해 강 소장은 "여전히 섬사람들을 외계인 보듯이 하는 사회적 편견이 있기에 이를 깨고 싶어" 사진전을 열었다고 했다. 그리고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섬의 현안은 "먼 바다 거점 섬에 응급 의료 센터를 만드는 일이 우선이고, 여객선 공영제 추진이 그 다음 시급한 일"이라고 했다.

최근 책 <전라도 섬맛 기행>을 펴낸 강 소장은 "섬 토속음식의 맥이 끊기면 우리는 가장 소중한 보물 하나를 잃게 될 것"이라면서 "정부 차원에서 나머지 섬 토속 음식들에 대한 채록 작업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음식 하나가 쇠락해 가는 섬을 살리고, 지역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강 소장은 특히 섬을 찾는 사람들에게 "오랜 세월 나라의 변방인 섬을 지켜온 고마운 분들"이라며 "섬과 섬 주민들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마땅하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강제윤 시인은 사진전을 두번이나 열었다. 섬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어서다. ⓒ 강제윤

 
"섬에 응급의료센터를 만드는 일이 우선, 여객선 공영제 추진 시급"

- 서울과 통영에서 두 번째 섬 사진전인 <당신에게 섬>을 열었다.
"2015년 <섬나라 한국> 전을 열었을 때는 섬의 화사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려 했었다. 섬에 대해 어둡고, 폐쇄적이고, 때론 공포스럽기까지 한 공간이라는 편견이 지배하고 있었기에 이를 깨고 싶었다.

몇 년 사이 언론방송 매체를 통해 섬이 여행지로 부각되면서 그런 편견은 많이 깨졌다. 그래서 이번 사진전에서는 섬 사람과 섬의 생활 문화를 부각시키고자 했다. 섬 또한 육지와 다름없이 우리 부모, 형제, 자매들이 사는 땅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여전히 섬사람들을 외계인 보듯이 하는 사회적 편견이 있기에 이를 깨고 싶었다."

- 섬연구소 소장으로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섬의 문제는 무엇인가.
"의료혜택 부족과 교통 불편 해소다. 먼 바다 거점 섬에 응급 의료 센터를 만드는 일이 우선이고, 여객선 공영제 추진이 그 다음 시급한 일이다.

몇 달 전 흑산도에서 심야에 교통사고 환자가 발생했었다. 그런데 헬기는 뜰 수 없고 목포에서 경비정이 오려면 4~5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수소문 끝에 인근을 지나던 배의 도움을 받아 목포의 병원까지 이송했다. 사고가 발생하고 무려 6시간이 지난 뒤에야 응급환자가 병원으로 이송된 것이다. 더 위중한 환자였다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육지라면 어렵지 않게 살릴 수 있는 목숨이 섬이라서 살릴 수 없는 경우가 과거에는 비일비재했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래서 섬에 무엇보다 절실한 것이 응급 의료 시설이다. 관광시설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응급 의료 시설이다. 특히 흑산도, 거문도, 백령도, 울릉도 같은 먼 바다의 주요 섬들에는 반드시 응급 의료 센터가 만들어져야 한다. 국민의 생명이 걸린 일이다."

- 어떤 의사가 그 먼 섬까지 가서 근무하겠나 하는 우려가 있다.
"아프리카나 히말라야 오지 같은 곳을 찾아다니며 의료 봉사를 하는 훌륭한 의사들도 적지 않다. 그분들이 한국의 섬이라고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예산만 충분히 확보된다면 그분들을 모시는 일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정부는 시급히 거점 섬의 응급 의료 센터 설립을 추진해야 한다. 어촌 뉴딜의 방파제나 관광시설 공사보다 시급한 것이 응급 의료 센터 구축이다."

-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여객선 공영제'를 공약하는 데 일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섬 주민들의 교통 불편 해소를 위해 줄기차게 여객선 공영제 실시를 주장해왔다. 그래서 지난 대선 때는 캠프 책임자들을 설득해 문재인 후보의 공약으로 여객선 공영제를 관철 시켰다. 하지만 정부 출범 뒤 공약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섬으로 가는 길은 더욱 어려워졌고 여객선의 안전은 개선된 것이 거의 없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재발 방지다. 가장 확실한 재발 방지 대책은 여객선 공영제다. 작은 사고로도 대형 참사를 불러올 수 있는 것이 여객선 사고다. 여객선의 안전을 국가에서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여객선 공영제가 절실한 것은 그 때문이다."
 

전남 신안군 반월도 '후리질숭어 구이' ⓒ 강제윤

   

전남 신안군 흑산도 심리 '홍합전복꽂이'. ⓒ 강제윤

 
"섬 음식은 소중한 문화자산, 전수 조사해야" 

- <통영은 맛있다> 이후 <전라도 섬맛 기행>을 펴냈다. 섬음식(문화)에 주목하는 까닭은?
"우리 밥상에서 사라진 고급스러운 토속 음식의 원형이 외딴 섬들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나 지자체가 한식 현대화니 뭐니 하면서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내겠다고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성공한 것이 무엇 하나 없다. 실패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자꾸 밖에서만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없는 것 억지로 만들려 했기 때문이다. 안에서 찾아야 한다. 원형을 찾아내는 데 투자해야 한다. 전승되는 토속 음식이야말로 우리 음식 문화의 오래된 미래다."

- 육지 음식과 섬 음식이 다르고, 또 섬마다 음식이 다를 것 같다.
"섬은 육지와는 달리 아무래도 해산물 요리가 발달해 있다. 전복포, 성게찜, 꽃게회, 복어곰국, 문어김치, 백년손님 밥상, 피굴, 냉연포탕, 시금치꽃동회무침, 산도랏건민어탕.... 이 생소한 음식들은 결코 특급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의 특별 메뉴들이 아니다. 궁중 음식도 아니다. 오랜 세월 일상적으로 요리되었고 여전히 전승되는 섬의 음식들이다. 요리학교도 나오지 않은 섬 여인들이 쓱쓱 만들어 내는 음식들은 유명 쉐프들의 음식 못지않게 화려하고 격조 있다.

낙지 연포탕을 예로 들면 육지와 섬이 먹는 방식이 다르다. 하의도 사람들이 먹는 연포탕은 우리가 익히 아는 그런 뜨거운 연포탕이 아니다. 냉연포탕이다. 차가운 국물에 삶은 낙지와 야채를 곁들인 요리다. 낙지 살은 쫄깃하고 국물은 고소하고 감미롭다. 여름에만 냉연포탕을 먹는 것이 아니다. 하의도 사람들에게 연포탕은 언제나 냉연포탕이다. 인근의 신의, 장산도 역시 같다."

- 섬음식 문화도 자원이고 자산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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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은 맛있다> 이어 펴낸 강제윤 시인의 <전라도 섬맛 기행>. ⓒ 21세기북스

 "정부 차원에서 한국의 모든 섬들이 가진 소중한 자원을 전수조사해야 한다. 우선 <전라도 섬맛 기행>에서 담지 못한 토속 음식 레시피들이라도 서둘러 채록해야 한다. 외래문화의 유입으로 섬에서도 토속음식은 점차 소멸 중이고 뭍의 음식과 차별성이 없어지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섬. 가족을 통해 전승되던 음식문화도 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섬 음식이 소중한 자산이란 사회적 인식도 없고 지원이나 관리도 없다. 전승되고 있는 섬, 토속음식의 실태 파악도 어려운 상황이다. 섬 토속음식의 맥이 끊기면 우리는 가장 소중한 보물 하나를 잃게 될 것이다. 섬 주민들의 식생활에서, 기억에서 아주 사라지기 전에 정부 차원에서 나머지 섬 토속 음식들에 대한 채록 작업이 이어져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음식 하나가 쇠락해 가는 섬을 살리고, 지역을 살릴 수도 있다."  

"섬 진흥원, 주민들 요구 정책에 반영하는 실행돼야"

- 올해 처음으로 '섬의 날'이 제정되었다. 과제는 무엇일까.
"섬은 생태, 문화, 관광 자원의 보고(寶庫)인 동시에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섬은 국가와 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소외되어 있었다. 섬의 날은 조선시대 공도정책으로 잊혀졌던 섬들이 6백년 만에 공식적으로 부활하는 신호탄이다.

하지만 현재의 국가 섬 정책은 일관성도 없고 지속성도 없는 이벤트성, 한시적 사업이 많다. 그래서 무엇보다 부처 간 사업을 조율하고 장기적인 비전을 가진 섬 정책을 설계할 조직이 필요하다. 정부에서 섬 정책 컨트롤 타워인 가칭 '국립 섬진흥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속히 설립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학자들이 주도하는 단순한 연구기관이어서는 안 된다. 섬 진흥원은 철저하게 섬 주민들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하고 실행할 수 있는 실행 기관이 돼야 마땅하다."

- 섬을 찾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섬은 그냥 관광지가 아니다. 섬 또한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섬에 대한, 섬 주민들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마땅하다. 오랜 세월 나라의 변방인 섬을 지켜온 고마운 분들이기 때문이다."

- 한국의 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벌써 200년도 전에 다산 정약용 선생은 "섬은 우리나라의 그윽한 수풀이니 진실로 경영만 잘하면 장차 이름도 없는 물건이 물이 솟아나듯, 산이 일어나듯 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섬들은 더 큰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강제윤 소장은 한국의 섬들에게 "더 큰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라고 말했다. ⓒ 강제윤

통영은 맛있다 -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

강제윤 지음, 이상희 사진,
생각을담는집, 2013


전라도 섬맛기행 - 남도 섬 전역을 발로 뛰며 발굴한 토속음식 34가지

강제윤 (지은이),
21세기북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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