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을 이후 TV를 못 본다, 아니 안 본다

['가장 보통의 드라마' 이야기 연작 ②] 한솔아 고생했다

등록 2019.09.01 17:58수정 2019.09.0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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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이었던 고 이한빛 PD의 동생 이한솔이 쓴 책 <가장 보통의 드라마 - 드라마 제작의 슬픈 보고서>에 대한 엄마의 이야기 연작입니다.[편집자말]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솔이보다 더 힘드랴 하면서 <가장 보통의 드라마>를 펼쳤다.역시 힘들고 아팠던 기억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소름이 돋았다. 무방비상태의 온몸이 날카로운 칼에 찔리는 것 같았다. 한빛이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이 아픈 기억들이 가슴을 찌르는 게 무슨 대수랴?

2017년 6월 회사 대표의 사과를 받을 때도 같은 생각이었다. 한빛이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이런 자리, 죽어도 오고 싶지 않은 이 자리, 백번이라도 오겠다고. 그러나 한빛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사과 필요 없다고, 한빛을 살려내라고 울부짖고 싶었다. 아니 살려달라고 내가 거꾸로 그들에게 무릎이라도 꿇고 싶었다. 한빛만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면 진실이 뒤집히더라도 못할 게 없었다. 그럼에도 엄마인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장 보통의 드라마>는 그 해 가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해 가을. 나는 한빛을 두 번 힘들게 할 수는 없었다. 한빛이 너무 가엾고 한빛에게 미안해서이다. 한빛이 잘 자라주었고 사랑스러운 아들임을 엄마인 나는 확신한다. 그랬기에 엄마로서 한빛에게 갚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한빛의 죽음을 진상규명도 못하고 그들의 시나리오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기자간담회부터 분명하다고 확신할 수 있어도 '내 느낌'이면 과감히 잘라냈다. 분노해도 보고 싶지 않으면 눈을 감았다. 진실이 왜곡될 때 받을 상처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이다.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는 내 모습이 불쌍해 가슴을 마구 쳤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여전히 눈치를 보고 있는 내가 가증스러웠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과 청년들은 행간을 읽어주었다. 놀라웠다. 감사했다.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주저앉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의 소리없는 응원으로 나는 조금씩 조금씩 한빛한테 진 빚을 갚아나갈 수 있었다.

형의 죽음 확인하는 것 이상으로 괴로웠던 것

짐작대로 한솔에게는 형을 잃은 슬픔을 가눌 시간도 없었다. 그때 한솔은 군대에 있었다. 어렵게 모은 휴가기간에도 진상규명을 위해 정신없이 뛰어 다니다 새벽에야 들어왔다. 또 이 책을 쓰기 위해 평생 만나고 싶지 않은 tvN과 직면해야 했다. tvN에서 나온 모든 드라마를 이를 갈며 꾸역꾸역 모니터링했던 악착같던 오기. 그 과정들이 어땠을지는 너무나 뻔하다.

형을 만나기 위해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부둥켜 안고 사람들을 만나고 TV를 보았을 한솔. 방송노동자에게 희망을 가져다주길 바랐던 형 한빛 PD의 유지를 이어나가기 위해 설립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저절로 된 것이 아니었다. 한솔의 피땀 어린 눈물이 있었던 것이다. 한솔아 미안하다.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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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미디어카페 후에서 고 이한빛 PD 유가족과 대책위원회, CJ E&M 대표이사와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관련 사항을 논의하고 약속하는 공식 간담회를 진행했다. 2017.6.14 ⓒ tvN ‘혼술남녀’ 신입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


가슴이 아팠다. 더욱이 이 책에는 한솔이의 실천적 삶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다. 한솔이가 형을 이해하기 위해 드라마 제작현장에 들어갔다는 것도 나는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엄마한테 말할 리가 없음을 이해하면서도 혼자 감당했을 상황이 그려졌다.

나는 안다. 형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 이상으로 정작 한솔이를 괴롭힌 건 그들이 던진 말이란 것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던진 "보상금 얼마나 받았냐" "시체팔이 하냐"와 똑같은 공격을 그들은 거침없이 던졌다. 그 참담함을 한솔은 혼자서 어떻게 견뎌냈을까?

농담이란 말도, 무심코 함께 웃어본 기억도 까마득

나는 그 가을 이후로 TV를 못 보고 있다. 아니 안 본다. 한빛 아빠가 뉴스를 켜는 것에도 진저리를 친다. 어쩌다 한빛 아빠가 한빛 관련 뉴스를 기다릴 때도 나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신문에 tvN기사가 나와도 숨이 멎고 아파트 마당에 CJ택배차가 보이면 얼른 눈을 감는다. CJ상표가 섬뜩해 슈퍼마켓도 거의 안 간다. 3년이 흘렀건만 여전히 공포로 다가온다.

국어교사일 때는 일요일 저녁이면 두 아이와 함께 개그콘서트를 봤다. 원래 저렇게 잘 웃는 아이였나 할 정도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두 아이는 엄청 잘 웃었다. 나는 별 흥미를 못 느껴 수업에 활용할 의무감으로 개콘만 봤는데 개콘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저 말이 무슨 뜻이야? 저 장면이 왜 웃기는 거야? 설명을 들어야 이해가 되고 속뜻을 알 수 있었다. 그때마다 한빛은 참 명쾌하게 숨은 의미까지 요즘의 트랜드를 곁들여 설명해줬다.

나는 다음 날 수업시간에 '레알'로 내 생각인 양 잘난 척을 했다. 한빛이 좌르륵 훑어준 젊은 감각 그대로 설명하면 중학생들은 나이 많은 국어 선생님의 현란하고 앞서가는 정보감각에 놀라워했다. 한빛한테 수업 받은 예습 상황(?)을 수업시간 기승전결로 적절하게 녹여내면 아이들은 경이로워하고 나는 우쭐한다.

그러면서도 한빛이 PD가 되리란 생각은 꿈에도 안 했다. 젊은 애들은 드라마를 좋아하고 예능이 요즘 대세니까 이 정도는 다 기본으로 알고 있으려니 했었다. 상식인 줄 알았다. 칭찬해 줄 걸. 또 미뤘다.

이제는 작가는 왜 저렇게 끌어가니, 저 장면은 왜 자꾸 강조되니 하고 물어 볼 한빛이 없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이 함께 TV 앞에 앉아 있던 기억도 아득하다. 하긴 농담이란 말도, 무심코 함께 웃어본 기억도 언제였던가 까마득하다.
덧붙이는 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빛이 머문 시간>에 탑재할 계획입니다.

가장 보통의 드라마 - 드라마 제작의 슬픈 보고서

이한솔 (지은이),
필로소픽,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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