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앞에 고개 숙인 SK·애경, 뒤로는 야당·언론 로비

[현장] 가습기살균제 참사 청문회 첫날... 특별법 막으려 공모한 정황 드러나

등록 2019.08.27 16:41수정 2019.08.2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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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청문회'가 27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주최로 열린 가운데, 청문회장에 가습기살균제가 놓여 있다. ⓒ 권우성

 
SK와 애경이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 앞에 머리 숙여 사과했지만 뒤로는 사회적참사특별법 국회 통과를 저지하려고 야당과 보수매체 등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정황이 드러났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위원장 장완익, 아래 사참위)는 27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가습기살균체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를 열었다.

28일까지 이틀간 진행되는 청문회 첫날에는 가해 기업쪽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등 재벌총수가 증인으로 채택돼 관심을 모았지만 결국 출석하지 않았다. 대신 최창원 SK디스커리버리 부회장과 채동석 애경산업 부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회사를 대표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피해자에게 사과했지만... 보상대책은 "재판 결과 나온 뒤"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과 제품을 생산한 SK케미칼 대표를 지냈고 최태원 회장 사촌이기도 한 최창원 부회장은 이날 청문회 도중 "가습기살균제로 피해를 보고 고통을 당한 피해자들과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국민 여러분에게 대단히 송구스럽다"고 청중석에 가득 채운 피해자들과 국민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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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청문회'가 27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주최로 열린 가운데, 최창원 전 SK케미칼 대표이사가 증인을 대표해 증인선서문을 위원장에게 전달하고 있다. ⓒ 권우성

 
최 부회장은 "SK케미칼이 노력했다고 하지만 그동안 피해자 고통에 공감하거나 피해를 지원하고 소송하는 데 있어서 부족하다는 따가운 질책도 잘 알고 있다"면서 "청문회를 빌어 법적 책임 여부를 떠나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진일보된 노력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구체적 피해 대책을 묻자 최 부회장은 "지금부터 피해자들에게 마음을 열어놓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경청해서 하겠다"면서도 "재판중이어서 법적 책임을 피할 수도 없고 피하지도 않겠다, 결과가 나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장영신 회장 차남인 채동석 애경산업 부회장도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고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아 결과가 나오면 거기에 맞게 대응하고 사회적 책임도 성실히 하겠다"면서 "피해자들이 우리가 악질기업, 살인기업이라고 말하는데 부회장으로 있는 동안 전부 내가 안고 가겠다"고 역시 피해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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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청문회'가 27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주최로 열린 가운데, 방청객들이 증인들을 향해 '거짓말' '양심선언'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 권우성

 
하지만 두 회사의 알맹이 없는 사과에 피해자들이 반발했다. 청문회 심문위원인 최예용 사참위 부위원장은 "SK도 애경도 피해자와 국민에게 사과하고 피해 대책을 마련할 기회를 놓쳤다"면서 "이번 청문회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옆구리 찔러 사과 받은 느낌"이라고 질타했다.

하지만 채동석 부회장은 오히려 "오랜 기간 검찰 조사를 받았고 사참위에서도 강도 높게 조사해 우리에게도 힘든 일이 많았다"면서 "나도 회사에 온 지 2년 밖에 안됐고 피해자를 생각하는 만큼 우리 직원들도 사랑하고 존중한다. 그 당시 몇몇 분들이 벌인 일 때문에 우리가 한 순간에 살인 기업, 비도덕적인 회사가 됐다"면서 책임을 일부 전직 임원들에게 떠넘겼다.

특별법 통과 막으려 야당-보수언론 로비 정황, 양사 '역할 분담'까지

피해자들 앞에선 고개를 숙였지만 정작 두 회사가 협의체까지 만들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증거 인멸을 논의하고,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아래 특별법) 제정을 막으려고 정부와 국회, 보수 언론을 상대로 로비를 시도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날 최예용 부위원장은 지난 2017년 10월 18일과 11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SK케미칼과 애경산업 고위 임원들이 여의도에서 만나 가습기살균제 현안과 특별법 대응책을 논의한 회의록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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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용 사회적참사특조위 부위원장은 27일 가습기살균제 청문회에서 지난 2017년 10월 18일과 11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SK케미칼과 애경산업 고위 임원들이 여의도에서 만나 가습기살균제 현안과 특별법 대응책을 논의한 회의록을 공개했다. ⓒ 사회적참사특조위

  
1차 회의에는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 SK케미칼 법무실장인 양정일 전무와 불출석한 양성진 전 애경산업 전무 등이 참석했다. 애경산업 쪽에서 작성한 당시 보고서에는 가습기살균제 관련 검찰과 환경부 내부 동향과 특별법 제정 관련 대응 방안 등이 담겨 있었다.

'형사 관련 모니터링'에는 "검찰도 외부 분위기에 따라 공정위와 같이 수사 압박을 받아 움직일 수 있음, 다만 새로 부임한 형사2부 박아무개 부장검사는 검찰 동향 모니터링중이기는 하나 공정위로부터 자료 등을 받은 것이 없고 당장 조치 취할 계획은 없다고 함"이라고 돼 있고 "살인죄 등 명백히 죄가 성립되지 않는 죄책은 무혐의로 종결하고, 나머지 부분은 환경부 실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한부 기소중지로 처리할 예정"이라고 돼 있다.

'환경부 실험 관련 모니티링'에는 "(SK) 85배 농도까지는 폐 손상 증세 나타나지 않고 100배로 농도 올리니 특정 증세가 나타나기도 전에 쥐가 사망하였다고 함"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는 두 회사가 당시 가습기살균제 사건 수사 중인 검찰과 환경부 내부 관계자로부터 동향을 파악했을 개연성이 높다.

특별법 개정안 관련해 "개정안 통과 저지 작업은 상임위가 (2017년) 11월 2, 3주차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므로 미리 움직이기보다는 11월 첫 주에 대응 시작하기로 함"이라고 돼 있다. 특별법은 지난 2018년 7월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지난 2월 15일부터 시행됐다.

특히 보고서에는 "(AK:애경) 현재 김앤장에 개정안 내용을 비판하는 의견서 작성을 요청한 상태로 이후 김앤장과 함께 야당측 의원 등에게 적어도 올해 안에는 법률이 통과되지 않도록 지연시킬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고..."라고 김앤장과 더불어 야당 의원 등을 상대로 로비한 정황도 담겨 있다. 이에 SK쪽은 "원보이스(한목소리) 낼 수 있도록 김앤장 의견서 공유 요청"한다.

아울러 애경쪽은 "일부 보수매체 선정하여 개정안에 대한 비판 기사 보도될 수 있게 조치"하고 SK쪽도 "동참 의사 표시"했다고 돼 있어 보수언론 상대 로비에 양사가 힘을 합친 정황도 드러났다.

11월 1일 열린 2차 회의에는 증거 인멸에 공모한 정황도 담겨 있다. '공정위 대응 관련' 내용에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SK에 요청한 서류 목록을 열거한 뒤, "SK의 경우 전 그룹사에 WPM(문서삭제프로그램)을 사용 중이며, 이 프로그램은 워드나 한글 문서를 정기적으로 강제 삭제하고 파일이 컴퓨터에 남지 않도록 완전 삭제하는 기능 등이 있음"이라면서 "직원은 별도로 보안 처리되어 특정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파일이 보여지는 USB를 사용"한다고 돼 있다.

특히 SK쪽은 '공정위 내부 문건'을 언급하면서 "2012년 사건은 처분시효 도과되어 더 이상 처분이 어렵다는 내용이 있음"이라는 밝혔다. 아울러 "공정위 움직임 관련, 연내 안건 상정은 그대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됨"이라면서 "사건 조사 TF는 사실상 2011~2016년 조사가 부적절했다는 결론 내놓고 진행하는 것으로 파악됨"으로 돼 있어, 당시 공정위 내부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특별법 개정안 관련해서도 "양사 단일안이 완성되면 SK에서 작업할 의원 명단을 공유하고 AK(애경)는 겹치지 않는 범위에서 작업 진행. 김앤장은 (국회) 전문위원들을 중심으로 의견 전달 및 설득 작업을 적극 진행하겠다고 함"이라고 돼 있다.

검찰-환경부-공정위 동향 파악해 공유, 증거 인멸 공모 정황도

이에 양정일 SK케미칼 전무는 "현안이 있을 때 애경과 미팅한 적은 있지만 협의체라고 부르진 않았다"면서도 "애경 보고서에 저렇게 돼 있으면 아니라고 말할 순 없다"고 논의 사실을 인정했다.

검찰이나 환경부 공무원에게 내부 자료를 입수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양 전무는 "2017년 9월에 이미 기소중지 결정이 나와 검찰 모니터링할 정도 상황은 아니었고, 환경부 실험 결과도 나올 시기가 지나서 자료를 확보했고 언론이나 환경부 장관 청문회, 피해자 간담회 등에서 나온 자료를 취합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최예용 부위원장은 "애경은 김앤장 개정안 검토의견서를 토대로 법안 심사 단계에서 통과 저지를 진행했고 야당 의원을 중심으로 접촉하고 SK와 협력해 대관업무를 진행했다"고 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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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청문회'가 27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주최로 열린 가운데, 최예용 위원이 질의하고 있다. ⓒ 권우성

 
이에 양 전무는 "기업과 관계된 입법안이 있을 때 의견을 정리해 전달하고 설명하는 건 일반적인 업무"라고 밝혔다.

SK그룹 문서삭제 프로그램을 언급한 게 압수수색에 양사가 공동 대응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도 양 전무는 "우리가 문서 관리가 원래 그렇게 돼 있다는 것이지 검찰 수사에 공동대응하려는 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가습기살균제 관련 애경쪽 자문을 맡아 증인으로 출석한 최찬묵 김앤장 변호사도 관련 질문에 "변호사 자문 과정에 있었던 일은 비밀보호의무 때문에 구체적 답변이 어렵다"면서 "증거 인멸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날 참고인으로 출석한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관료와 재계, 재벌의 정경유착 폐단들이 기존 시스템조차 제대로 작동 못하게 한다는 걸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보여줬다"면서 "SK그룹의 경우 최태원 회장 출소 이후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데 진정한 책임을 보이려면 가습기살균제 관련 SK의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에 사과해야 한다, 진실을 밝히는 걸 방해하는 임원들도 꾸짖어야 진정성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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