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 더는 '쌍수'에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서평] 러네이 엥겔른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등록 2019.09.04 09:12수정 2020.11.19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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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에 쌍꺼풀이 없다. 하루는 남편에게 흥분해서 말했다. "우리 동네에서 '예쁘다~' 하는 엄마들 말이야, 알고 보니까 다 쌍꺼풀 수술을 한 거더라. 나도 할래!" 남편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너는 눈이 보석이야, 누가 보석에 칼을 대니?" 나는 감동했다. 어머,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내 눈이 반짝반짝 보석같이 예쁘다는 건가.

남편의 말 한마디에 쌍꺼풀 수술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하지만 예쁜 동네 엄마들을 보면 또 갈등이 생겼다. 나도 '쌍수'(쌍꺼풀 수술) 하면 저만큼 눈이 커질 수 있을 텐데.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해야, 하루라도 더 오래 예쁜 눈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30대 중반, 아이들 유치원 학부모 엄마들과 사귀기 시작할 때의 일이었다. 옛날 일이 갑자기 생각난 것은 러네이 엥겔른의 책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에서 우리나라 성형수술을 언급한 대목이 나왔기 때문이다.
 
"많은 동아시아 사람이 쌍꺼풀을 동경한다. 일시적으로 만들기 위해 눈꺼풀 위에 붙이는 테이프까지 있다. 대부분은 영구적인 쌍꺼풀을 만들기 위해 성형외과로 향한다. (중략) 최근 몇 년간 한국은 성형수술 비율이 가장 놓은 나라가 됐다.

재이미가 한국에 있을 때는 어디를 가든 성형외과 광고가 있었다.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만날 것도 바로 그런 광고다. 버스와 버스 정류장, 길거리 광고판 등 눈을 돌리는 곳곳에는 성형외과 광고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광고에는 대부분 성형수술 전후 비교 사진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에 사는 여성의 5분의 1에서 3분의 1 정도가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139쪽)

못생겨 보여서 수업 결석하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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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 웅진지식하우스

 
나 역시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쌍꺼풀 수술을 권유 받았다. 친구들은 나에게 '눈과 눈썹 사이가 머니까 쌍꺼풀 수술을 하면 예뻐질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내 눈이 마음에 들었지만, 화장을 시작하면서 내 눈에 불만이 생겼다.

눈두덩이에 지방이 있는 편이라 늘 아이섀도를 하면 더 부어 보였고, 아이라이너나 마스카라를 하면 늘 판다처럼 까맣게 번졌다. 눈화장을 생략하니 얼굴이 밋밋해 보여서 속상했다. 방학이 끝날 때마다 쌍꺼풀 수술로 눈이 커져 오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고민에 빠졌다.

사실 30년 전에는 성형수술을 쉬쉬하고 숨기는 분위기였다. 친구들은 자고 났더니 어느 날 쌍꺼풀이 생겼다느니(자연 발생형), 쌍꺼풀을 만드는 테이프를 많이 붙였더니 정말 생겼다느니(후천적 노력형), 눈썹이 찔러서 안과에서 어쩔 수 없이 했다느니(질병 치료형), 엄마가 수술 날짜를 잡아서 어쩔 수 없이 했다느니(강제 수술형) 하며 묻지도 않은 변명을 하곤 했다.

인상이 세련되게 변한 친구들을 보며 부러워하던 나의 성형 욕구를 단번에 꺾은 것은 엄마의 한 마디였다. "수술했다가 '더' 이상해지면 어떡해?" 하지만 유명한 '뚜쟁이'(결혼 중매인)가 먼저 받아본다는 졸업 앨범을 펼쳤을 때, 쌍꺼풀이 있어서 눈매가 시원하고 서글서글하게 나온 친구들을 보며, 쌍꺼풀 수술하지 않은 것을 다시 후회하기도 했다.


노스 웨스턴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 러네이 엥겔른은 한국의 쌍꺼풀 수술 열풍을 서구화된 백인의 아름다움을 미의 기준으로 삼는 문화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전 세계 여성이 '외모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외모 강박'이란, 여성의 능력보다는 외모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여성이 자신의 외모에 불만을 품고 끊임없이 신경 쓰면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오늘 집 밖에 나가기엔 너무 못생겨 보여서' 대학 강의에 결석하고, 해외 봉사를 떠나기 전에 열심히 다이어트를 하는 여학생을 흔하게 만난다. 인터뷰로 만난 많은 여성은 화장을 하지 않거나 옷을 잘 차려입지 않은 날엔 온종일 주눅이 든다고 말한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지만, SNS에 올릴 완벽한 '셀카'를 위해 앱으로 사진을 보정한다고 고백한다.

자기 안팎의 시선들이 만들어낸 '외모 강박'은 여성을 거울 앞으로 끌어들인다. 미디어가 제시하는 예쁜 얼굴과 말랐지만 볼륨 있는 몸매는 우울증과 분노를 일으키며, 여성의 시간과 돈, 에너지를 빼앗아 간다. 그 결과,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발전시키기 위해 써야 할 여성의 재능과 열정이 거울 앞에서 소비되고 소멸한다는 것이다.

칭찬이든 비판이든... 몸평은 이제 그만

저자는 '외모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의 하나로 '보디 토크(body talk, 외모에 대한 대화)'를 멈출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우리 몸을 비하하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내 몸을 비하해도 좋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된다. 부정적인 보디 토크는 여성이 항상 외모에 대해 걱정해야 하고 자신의 몸을 싫어하는 것이 '평범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중략) 외모강박적인 문화에 맞서는 가장 쉬운 방법의 하나는 외모에 대한 대화를 바꾸는 것이다. 이는 외모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271쪽)"

어린 여자아이와 소녀들에게 외모 칭찬을 하는 보디 토크, 건강의 가면을 쓴 다이어트나 운동에 관한 보디 토크, 또래 집단에 끼기 위해 자신을 비하하는 부정적인 보디 토크, 자녀들에게 잔인하게 쏟아내는 보디 토크 등 외모에 관련된 이야기가 습관적으로 이어질 때, 용감하게 화제를 바꿔보자는 것이다.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 훨씬 더 많으니까.

얼마 전, 나는 다시 쌍꺼풀 수술을 권유받았다. '퇴행성 안검하수'. 나이가 들어 눈꺼풀이 자꾸 아래로 처지기 때문이다. 성형외과에서는 대개 눈꺼풀 성형술과 동시에 눈꺼풀 교정술을 같이 한다고 한다. 지방만 제거하고 쌍꺼풀 수술은 안 할 수 없을까. 병원에 물어봤다. 상담실장은 "할 때 하시지 그래요? 같이 안 하시면 나중에 다 후회하시더라고요" 하며 쌍꺼풀 수술을 권했다.

나이 오십이 되어도 나는 쌍꺼풀 수술의 논란 속에 있구나 싶어 쓴웃음이 났다. 기능적으로 크게 불편하지 않아 시술을 미뤘는데, 할머니가 됐을 때 나는 또 한 번의 쌍꺼풀 수술을 권유받을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은 어떤 시술이든지 피부 탄력이 떨어지기 전에 하는 것이 좋다며 쌍꺼풀 수술을 하라고 했다. 며칠 집 밖에 못 나올 테니 다른 피부 시술도 하라며 부추겼다. 나는 친구들에게 엄마의 말을 돌려주며 보디 토크에 제동을 걸었다. 물론 남편의 말도 함께 얹어서.

"이 나이에 '더' 이상해지면 어떡해? 게다가 내 눈은 보석이거든."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러네이 엥겔른 지음, 김문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7


#쌍꺼풀 #외모강박 #러네이 엥겔른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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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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