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은 피해자' 프레임 어떻게 깨졌나

[해설] 국정농단 대법원 판결문에 담긴 사건의 본질은 '정경유착'

등록 2019.08.30 10:57수정 2019.08.3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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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5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 제공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중이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후 석방되고 있다. ⓒ 이희훈

    
"이 사건은 대한민국 최고 정치권력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내 최대기업집단인 삼성그룹의 경영진을 겁박하고,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서원(최순실의 개명한 이름)이 그릇된 모성애로 사익을 추구했으며 피고인들은 정유라에 대한 승마지원이 뇌물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채 거액의 뇌물공여로 나아간 사안이다."

1년 6개월 전인 2018년 2월 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4부(재판장 정형식 부장판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죄 사건을 이렇게 규정했다.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한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 재판장 김진동 부장판사)와 너무도 다른 판단이었다. 순식간에 이재용 부회장은 억지로 뇌물을 강요당한 피해자가 됐다. 그리고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어제(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항소심 재판부 판단이 잘못됐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항소심 판결의 '이재용은 피해자' 프레임도 깨졌다.

사건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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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생방송으로 중계된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대법원 최종 선고를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 혐의는 단순뇌물죄와 제3자 뇌물죄로 나뉜다. 돈을 받는 공무원의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의 연결고리만 따지는 단순뇌물죄와 달리 제3자 뇌물죄는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도 살핀다.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은 그 청탁 대상이 포괄적으로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 개별 현안으로는 그에게 유리하도록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계열사 매각·상장으로 상속세 재원 마련 등으로 존재했다고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포괄적 현안으로서만 부정한 청탁을 인정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모두 인정하지 않았고, 1심 재판부가 일부 유죄로 본 제3자 뇌물죄(한국스포츠영재센터,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를 전부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비선실세'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승마훈련 지원금 36억 3484억 원만 단순 뇌물로 정리했다.

그런데 대법원 다수의견의 판단은 달랐다. 상세한 내용은 같은 날 선고한 '한몸 사건' 최순실·안종범 판결문에서 드러난다.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승계하는 이재용은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들에 대한 지배권을 최대한 강화할 필요가 있었고, 이에 따라 지배구조 개편을 진행해왔다. 삼성SDS와 제일모직 주식회사의 유가증권 시장 상장, 삼성물산 주식회사와 제일모직 사이의 합병, 외국자본에 대한 경영권 방어 강화 추진, 이 사건 합병에 따른 신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삼성물산 주식 처분 최소화,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계획에 대한 금융위원회 승인 추진은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현안들이다."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에 따르면, 최소비용으로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들인 삼성전자, 삼성생명에 대한 이재용의 지배권 강화라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삼성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승계작업에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


즉 박근혜와 최순실이라는 정치 권력과 이재용이라는 자본 권력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주거니 받거니 했다는 얘기다. 이재용 승계작업이라는 큰 틀은 물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개별 현안까지 인정한 박근혜 전 대통령 항소심 재판부와 같은 결론이다. 다만 박 전 대통령 항소심처럼 이날도 영재센터 지원금 16억 2800만 원만 제3자 뇌물죄로 인정됐다.

이재용 항소심 판결은 곳곳에서 깨졌다. 대법원은 삼성이 최순실씨 쪽에 제공한 말 세 마리는 전부 뇌물이고,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업무수첩은 '이재용 승계작업을 도우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사항이 담긴 증거라고 인정했다.

또 뇌물과 횡령 관련 판단이 달라졌으니 삼성의 승마 지원을 범죄수익규제법 위반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재산국외도피와 국회 위증, 미르와 K스포츠 재단 지원(제3자 뇌물) 무죄 판단만 유지됐다. 대법원은 이를 토대로 이재용 부회장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이재용은 뇌물공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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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 그리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대법원판결이 내려진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민주노총 민중공동행동 관계자들이 선고 결과에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날 대법원판결은 하급심처럼 '사건의 본질은 ○○'라고 정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행간 속에 담긴 판단은 '정경유착'이었다.

참여연대도 이날 논평에서 대법원판결을 "국민이 위임한 대통령의 권한을 사적 관계에 있는 이에게 양도해 헌정질서를 훼손하고, 부정한 청탁과 뇌물을 주고받는 정경유착 범죄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대법원 판결로) 정경유착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며 반겼다. 다만 두 단체 모두 '재벌 봐주기'가 되풀이될 수 있다며 파기환송심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관련 기사]
"이재용 승계작업 있었다" 대법원 결론은 '이재용 파기환송' http://omn.kr/1koq2
[현장] 국정농단 대법원 판결 직후 풍경들 http://omn.kr/1kox1
[국정농단 판결문 보기] 오마이뉴스 열린판결문 http://omn.kr/qt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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