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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민주주의 투사도 꺼렸던 한국 언론, 부끄러웠다

[하성태의 드라마틱] 다큐 <우산혁명: 소년 vs. 제국>과 조슈아 웡

19.08.30 20:18최종업데이트19.08.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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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투사의 언어다. 1996년생, 이제 고작 우리 나이로 스물두 살의 투사는 동시대 그 어느 누구보다 불가능을 넘어서기 위한 강렬한 투쟁을 벌여나가는 중이다. 과거 열일곱 살의 나이에 우산 혁명을 이끈 그는 홍콩 데모시스토당 비서장(대표) 조슈아 웡이다.
 
"얼마나 강경하게 진압을 하든, 최루탄 2000여 개를 쏘고, 시위대 700명을 체포한 상황에서, 홍콩 미래를 위한 우리의 용기와 결심으로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 폭우 속 거리행진 나선 홍콩시민들 중국 정부의 강경진압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난 8월 18일 오후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시민들이 빅토리아 공원을 가득 채웠다.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우산을 쓴 시민들이 거리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 이희훈

 
홍콩 시민 300만 명이 거리로 나올 것으로 기대가 높았던 지난 17일, SBS < 8뉴스 >가 보도한 짤막한 화상 인터뷰에서 조슈아 웡은 한국 언론을 향해 홍콩의 미래를 위한 투쟁을 다짐하고 있었다. 그렇게 <타임(TIME)>지 선정 '2014년 올해의 인물'이자 2015년 <포춘>지에서 선정한 "세계 최고의 지도자" 중 한 명이며, 투옥 중이던 2017년엔 노벨 평화상 후보로 거론됐던 조슈아 웡을 한국 지상파 뉴스 화면에서 만나는 일은 분명 낯선 광경이었다.
 
사실 실제 인터뷰에 이어 눈길을 끈 것은 홍콩 현지에서 조슈아 웡과 인터뷰를 진행한 SBS 기자의 취재 뒷얘기였다. 지난 22일자 <[취재파일] 조슈아 웡, 제발 만나줘요…홍콩 민주투사 인터뷰 성공기>는 인터뷰 약속 직전에 조슈아 웡이 인터뷰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등 긴박하게 돌아가는 시위 분위기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진행된 인터뷰 막후 상황을 그리고 있었다.
 
이 중 기사 속 조슈아 웡이 "한국 언론의 인터뷰를 꺼려했던 이유"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왜 홍콩의 시위에 대해 지지하거나 연대하는 발언이 없냐"는 조슈아 웡의 질문에, 해당 기자의 답은 이러했다.
 
홍콩에서 타전된 한국을 향한 쓴소리
 
"홍콩이 처한 상황에 대해 미국 영국은 물론 동남아 여러 나라와 (그의 표현대로) 심지어 일본까지 일국양제에 대한 우려를 표했는데 한국에서는 유독 정부나 정치인들의 발언이 없었다는 겁니다. 생각해 보니 국내 언론에서 홍콩 상황에 대해 수많은 보도가 이어졌지만,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지지나 응원의 목소리는 국내 정치권에서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부끄럽기도,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홍콩 시민들을 응원한다는 말이 지금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계산해야 할 만큼 어려운 말이라는 것도 서글펐습니다."

 
젊은 투사의 송곳 같은 언어에, 날카로운 시선에 진정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낄 이가 이 대한민국에 과연 얼마나 될까.
 
더욱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칼자루 중 하나를 쥐고 있다는 이유로 '반인권'의 대명사인 미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주목하고 그의 한반도 정책에 지지를 보내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양가적 감정을 느낄 법하다.
 
지난 6월, 홍콩 시위 현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단 소식에 신기해 하면서 자부심을 느꼈던 이들은 또 어떠한가. 시위에 나선 홍콩 시민들이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촛불시위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또 어떤가.
 
그러한 복잡한 감정을 느낄 이들이 꼭 봐야 할 영화가 바로 <우산혁명: 소년 vs. 제국>(아래 <우산혁명>)이다. 지난 2017년 미 선댄스 영화제에서 세계 영화 다큐멘터리 관객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평범한 고등학생이던 조슈아 웡이 어떻게 세계적인 인권 운동가이자 투사로 거듭났는가를 그려냈다. 그리고 동시에 2014년 9월, 중국은 물론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던 우산혁명의 궤적에 카메라를 가져간다.
 
평범한 고등학생은 어떻게 투사가 되었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우산혁명: 소년 vs. 제국> 포스터. ⓒ 넷플릭스

 
다큐 영화 <우산 혁명>의 주인공은 이 조슈아 웡과 그의 '학민사조'(學民思潮·Scholarism) 그룹 친구들이다. 조슈아 웡은 15살이던 2012년에 조직한 '학민사조'는 홍콩 정부가 고등학교 정규교육 과정에 중국 공산당의 찬양이 담긴 '국민교육' 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려는 데 반발, 학생들을 규합하고 시민들에게 이 과정의 부당함을 알려나갔다.
 
결국 79일 동안 지속됐고, 하루 최대 50만 명이 참여해 홍콩 도심을 점령했던 대규모 시위를 이끌며 투쟁한 조슈아 웡은 홍콩 우산혁명의 상징으로 남게 된다. 국민교육에 반대했던 학생들의 목소리가 기어이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중국과 홍콩 양국제의 이면을 전 세계에 알린 홍콩 시민 전체의 시위로 번진 것이다.
 
도식적일 순 있다. 서구인의 시각(선댄스 영화제는 미국의 대표 해외 '인디' 영화제 중 하나다)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일부의 비판도 납득이 어려운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해외에서 벌어진 '혁명의 서사'를 엿보는 일이 늘 그러하듯, 잘 짜인 다큐로 간접 경험하는 혁명의 과정은, 그 현장의 아우라는 분명 예상을 뛰어넘는 감흥을 선사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안정적으로 구성된 편집과 리듬감을 자랑하는 다큐의 언어로 세공됐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겠는가. <우산혁명: 소년 vs. 제국>은 그러한 안정감을 바탕으로 조슈아 웡의 일상과 목소리, 투쟁의 과정을 집중하는 한편 자연스럽게 홍콩 우산 혁명의 한복판으로 관객들을 인도한다.
 
정갈한 다큐 특유의 친절함은 덤이다. 내용에서 1990년대 홍콩 시민들의 아픈 사연인 '홍콩 탈출'의 원인도 친절히 설명된다. 1997년 '홍콩 반환'의 배경, 즉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홍콩인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는 조슈아 웡이 투쟁에 나선 결정적인 동인이었을 터. 국내외 저널리스트와 교수 등의 설명이 곁들여진 이 다큐멘터리는 2019년 송환법에 반대하는 현 시위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도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다.
 
조슈아 웡의 목소리는 물론 그의 부모, 친구들의 인터뷰 역시 젊은 투사를 영웅시하기보다 그의 '멘탈리티'를 다각도로 이해하는 방향으로 다큐는 수렴된다. 부모가 걱정할까봐 더 걱정이고, 학교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싶은 학생인 동시에 중국 정부의 국민교육을 반대하고 이를 시민들에게 알려나가는 운동가. <우산혁명>에서는 조슈아 웡의 두 면모가 적절히 제시된다.
 
그럼에도 후반부 우산 혁명의 복판에서 시위를 주도하고, 단식에 나서고,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시위의 기운을 부여잡으려고 하는 조슈아 웡의 모습에선, 실천을 통해 신념과 이상을 현실화시켜 나가는 투사로서의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물론 한 편의 다큐가 한 인물의 속내를 완벽히 다 끄집어 낼 순 없을 것이다. 다만, 홍콩 현대사에 있어 전무후무한 역사를 써내려가는 한 인물을 성실하게 조명한 다큐를 보자면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중국과 현재와 홍콩과의 관계와 같은 거시적 담론도 보인다고 할까.
 
우산혁명 이후, 2019년 또 다시 체포된 조슈아 웡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우산혁명: 소년 vs. 제국> 스틸컷 ⓒ 넷플릭스

 
민주주의라는 '원칙'을 고수하는 10대 청년 투사가 "10년 후 초등학생들이 홍콩의 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외칠 때, 우산혁명 이후 패배에 굴하지 않고 조슈아 웡과 친구들이 당을 결성하고 정치 일선에 나설 때, 다큐 초반의 묘한 감흥은 후반부 진한 감동으로 승화된다. 그들의 투쟁이 홍콩 정부 뒤 중국 공산당에 맞선 목숨을 건 투쟁이었음을 모르지 않기에.
 
그리고 30일, 홍콩에서 비보가 전해졌다. 조슈아 웡이 이날 오전 홍콩 경찰에 전격 체포된 것이다. <연합뉴스>는 이날 데모시스토당은 트위터를 인용, "조슈아 웡 비서장이 오늘 아침 7시 30분 무렵 체포됐다. 그는 밝은 시간대에 길거리에서 미니밴에 강제로 밀어 넣어졌으며, 우리 변호사가 상황을 알아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홍콩 정부의 강공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더해졌다.
 
조슈아 웡의 체포 소식을 접하자, <우산혁명: 소년 vs. 제국>의 에필로그가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리라. 중국 당국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당을 창당하고 선거에서 승리하며 "내일"을 다짐하던 조슈아 웡과 친구들은 다큐 에필로그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송환법을 반대하며 지난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홍콩 시민들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2017년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우산혁명: 소년 vs. 제국>을 소개하며, 조슈아 웡의 체포 전 직접 그와 접촉하고 인터뷰를 한 SBS 기자의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공감을 느끼는 것은 그런 장면 때문일지 모른다.
 
오늘도 중국과 홍콩 정부는 전 세계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면서도, 강공과 유화책을 번갈아 쓰고 있다. 이런 중국과 홍콩 정부의 탄압 앞에 홍콩 시민들이 과연 다큐멘터리의 결말과 같은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냐는 무거운 물음이 겹쳐질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우산혁명: 소년 vs. 제국> 스틸컷 ⓒ 넷플릭스

 
오늘도, 캐나다에 거주한다고 밝힌 한 홍콩인에게 메일을 받았다. 지난 여름 이후, 이 홍콩인은 자신의 개인 메일 계정을 통해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홍콩의 시위 상황을 한국어 이메일로 열심히 알려오고 있다.
 
그는, 홍콩 시민들은, 조슈아 웡과 친구들은 과연 어떤 미래를 맞이할까. 한국과 한국 국민들의 관심을 무던히도 촉구하는 그들에게 우리가 당장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그들을 위한 일을 찾는 노력과 실천에서 미안함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까. 홍콩 경찰의 진압에 실명한 이를 기리기 위해 한쪽 눈을 가린 사진을 올린 배우 김의성처럼, 소셜 미디어 상 '온라인 연대'와 같은 방식으로라도 말이다.
우산혁명 홍콩 조슈아웡 시위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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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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