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건강한 사람에게 맡기라지만 조국 때문에 씁니다

[루게릭병 환자가 눈으로 쓴 에세이] 한일관계와 조국

등록 2019.09.01 16:13수정 2019.09.0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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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7년여간 루게릭병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신정금씨가 삶의 의욕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쓴 에세이입니다. 신정금씨는 온몸이 굳은 상태로 안구마우스를 이용해 눈을 움직여 글을 씁니다. 하루 하루 힘겹게 버티고 있는 단 한 명에게라도 작은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편집자말]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큰아이와 전화 통화를 했다. 평소엔 카톡만 하다 남편과 함께 있는 일요일이면 두 아이와 스피커폰으로 긴 통화를 하곤 한다.

큰아이의 목소리엔 지친 기색이 역력하고 풀이 죽어 있었다. 아들은 작년 7월 국내 항공사의 조종사 시험에 합격해서 연수 중이다. 예전 같은 상황이라면 1년 연수를 마치고 지금쯤이면 부기장이 됐을 텐데 요즘 항공사 사정이 워낙 좋지 않아 계속 연수만 시키고 부기장 승진을 미룬다며 속상해했다.

대부분의 선배 조종사들도 비행시간이 줄었고 엊그제는 나리타공항에 가는데 200명 넘게 타는 항공기에 승객 16명을 태우고 갔다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본 홋카이도 공무원들의 한국인 관광객 공항 환영행사를 보도하는 NHK 뉴스 갈무리. ⓒ NHK

 
나는 평소에 정치적 소신이 뚜렷했다. 특히 이번 강제동원 배상판결에 일본 정부가 경제보복를 한 것에 누구보다 분개했다. 얼마 전 고노 외상이 우리 대사를 불러 무례하다 말하는 걸 TV로 보며 그들의 적반하장 태도에 기가 막혔다.

내가 이렇게 스트레스 받고 분해하면 남편과 지인들은 그런 일은 위정자들과 건강한 이들의 몫으로 두고 난 마음 편히 건강에만 신경 쓰며 즐거운 생각만 하라 한다. 남편은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못마땅해하며 말린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 또한 내 모습이니 목숨 다하는 날까지 내 모습대로  살고싶다.

그래서 나는 평소 뱃줄 식사로 하던 일본산 제품을 끊고 국산 제품으로 바꿔 적응하는 중이다. 또 올여름엔 에어컨 안 켜기로 내가 할 수 있는 작고 소박한 애국도  실천했다.

올가을부턴 해외여행에도 도전해 보려고 숙소와 이동차량을 비교적 구하기 쉬운 가까운 일본 여행부터 다니기로 결심 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아쉬워도 그들 나라에서 돈을 쓰고 싶지 않아 이번 사태로 계획을 수정했다.

하지만 이런 나도 아들 말을 듣고 나니 스트레스 받는 아들이 안쓰러워 심란해졌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에게도 치명적 타격을 가해 본때를 보여야 한다 생각했기에 아들이 아니라면 일본에 가는 한국인 관광객이 줄었다는 것에 무조건 다행스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 마음이란 게 이런 것인가 보다. 풀죽은 아이가 가엾다. 어서 빨리 한일관계가 정상화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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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건물로 들어서며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이번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자녀의 입시 논란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착잡했다. 내 아이 둘도 조 후보의 딸과 비슷한 시기에 대학에 들어갔다. 조 후보의 딸은 당시 입시 제도를 잘 이용해서 대학에 간 것 같다. 부모로서 몸이 아파 입시에 도움은커녕 밥 한 끼 못 해먹이고 아이들에게만 맡겨버린 나로선 이번 일을 보며 누구보다 심란할 수밖에 없다.

나는 조 후보가 기득권층이면서도 사회적 약자 편에서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왔고, 또 지식인으로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불의에 맞서는 실천적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였기에, 그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 컸기에, 사람들이 지금 이렇게 실망하는 게 아닌가 싶다.

입시 문제에서 자식에게 유리한 전형을 찾아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조국마저도 자식 문제에선 범부와 다를 바 없었다는 게 씁쓸하다.

하지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만 정의를 말할 수 있다면 자격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누구도 정의를 말할 자격이 없을 것이다. 더불어 양심있는 지식인들도 뒷말이 두렵고 귀찮아 침묵하게 될 것이다. 조 후보의 티끌만으로 그의 인생 전체를 폄훼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우리가 왜 노무현을 잃었고, 노회찬을 잃어야 했는지를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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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공원 앞에서 열린 ‘살리자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에 참가한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사퇴와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지금 조국의 위기를 틈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말처럼 보수세력은 국민 정서를 앞세워 일제히 반격에 나섰고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내려놓지 않기위해 이 기회를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언론과 검찰 그리고 야당의 행태에서 망신주기와 정권 흔들기가 자행됐던 김대중 정부 시절의 옷 로비 사건과 노무현 정부 시절의 변양균 사건이 떠오른다. 그 사건들이 얼마나 개혁의 동력을 떨어뜨렸는지 상기해 보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잘못은 매섭게 비판하되 보수세력에 곁을 줘서 역사를 후퇴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자고 호소한다. 지금 국내외 상황이 녹록지 않다. 문재인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정부임을 한시도 잊지 말고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경제를 비롯한 여러 어려움을 현명하게 극복하고 개혁 역시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 기회에 교육과정도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입시문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점을 개선해 나갔으면 좋겠다. 청문회와 검찰조사를 통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 있었던 조 후보 자녀의 대학입시와 대학원, 의전원까지의 입시 과정에서 조 후보가 어떤 외압을 행사했는지, 장학금 수여 과정에 관여했는지 여부와 그 외 각종 의혹에 대해 사실이 밝혀지리라 믿는다. 아울러 그의 업무능력도 검증되리라 생각한다. 

그가 어떤 외압도 행사하지 않았음이 밝혀지고 그의 업무능력이 검증되어 법무부장관에 임명된다면 좌고우면 하지말고 흔들림 없이 개혁을 완수해서 아무도 흔들지 못하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선봉장이 돼주길 바란다.
#루게릭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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