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장비 없이 염산가스에 노출됐는데... 현대차, 징계 협박

[현장] 산재 사고 잇따른 현대차 아산공장... 사측 "관련법 위반시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것"

등록 2019.09.02 17:37수정 2019.09.0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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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와 현대차 아산공장의 하청 노동자, 전국금속노동조합 관계자들은 '현대차 아산공장 하청노동자 산재사고 방치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산재 피해에 대한 증언을 이어갔다. ⓒ 강연주

   
"8월 4일 현대자동차(아래 현대차)는 청소노동자들에게 '독극물 염산'으로 관내 수영장을 청소하게 했다. 보호장비 하나 없던 노동자들은 청소 과정에서 발생한 뿌연 염산가스에 그대로 노출됐고 이후 심한 두통과 구토 증상을 나타냈다." - 정지선 금속노조 현대차아산공장사내하청지회 조합원

2일 오전, 현대차 아산공장 하청 노동자들이 국회 정론관을 찾았다. 이들은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전국금속노동조합과 함께 '현대차 아산공장 하청노동자 산재사고 방치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잇따라 발생한 산재 사건과 관련해 입을 열었다. 기자회견은 정지선 금속노조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의 증언과 함께 시작됐다. 

정지선 조합원은 "이날 사용된 공업용 염산은 유독물질로, 흡입할 경우 치명적일뿐더러 피부에 심한 화상을, 눈에는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도 사측은 노동자들에게 어떤 보호장비도 제공하지 않았다"면서 "심지어 이들이 청소한 수영장은 현대차 아산공장 문화관에 위치한 것으로 시민들도 함께 사용하는 곳이다. 이런 독성의 물질로 청소할 경우 시민들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사용한 약품은 화학물질관리법상 사고대비물질로 분류된 공업용 염산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해당 물질을 사용하는 노동자는 산업안전법 상의 특별 안전교육 16시간과 유해화학물질관리 16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작업 시 방독면, 내화학장갑, 보호복을 입고 작업할 것도 명시하고 있다. 물질의 위험성으로 인해 작업자들은 특수건강검진 대상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날 현대차 아산공장 관계자들의 주장은 규정된 내용과 배치됐다.

지현민 현대차아산공장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은 "노조가 회사에 항의하며 공업용 염산을 사용한 작업자들을 대상으로 특수 검진을 요구하자 (사측이) 그제야 입장을 내놓았다. 사건이 발생한 지 20일이 지난 후였다"라며 "하지만 회사의 답변은 '아무 문제가 없다'며 말만 특수 검진일 뿐 아주 간단한 검사, 기존 건강검진에 폐활량 검사 하나 추가된 것을 실시한 게 다였다"고 비판했다.

정지선 조합원은 "작업자들에 따르면 건강검진 때도 관리자가 동행했다. (지켜보는 관리자 때문에) 근무자는 의사에게 (본인 상태에 대해)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회사는 그날 일한 노동자들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며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지 않는 일터에서 일하고 싶다. 인간의 존엄성이 제대로 지켜졌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아산공장 내 발생한 잇따른 산재... 사측은 묵묵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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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와 현대차 아산공장의 하청 노동자, 전국금속노동조합 관계자들은 '현대차 아산공장 하청노동자 산재사고 방치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산재 피해에 대한 증언을 이어갔다. ⓒ 강연주

 
현대차 아산공장 인근 지역주민인 배기원 이장은 현대차 원하청 측의 대응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공업용 염산으로 수영장 청소 작업을 진행한 것을 확인하고 (회사 측에) 항의했다"며 "하지만 (회사는) 오히려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본인에게 알려달라고 하더라"라며 불쾌감을 표했다. 이어 "현대차는 지역주민들을 사람 취급 안 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인근 지역주민이 사실 확인을 위해 현대차 박아무개 차장에게 문의하자 그는 노동자들에게 '누가 발설했는지를 추적해서 징계하겠다'는 협박을 했다"며 "노동자들을 염산 테러와 같은 상황에 몰아넣은 것에 대해 일말의 사죄조차 없이 정당한 문제를 제기한 노동자들에게 징계 협박이라니 이 무슨 적반하장이냐"라며 비판했다.

이들이 제출한 녹취자료에 따르면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 문화관에서 염산을 썼든 청산가리를 썼든 농약을 갖다 풀었든 간에 삽교(충청남도 예산군에 위치한 읍)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며 "꼬투리 잡는 얘기"라고 했다. 이어 "(이 얘기를 처음 한) 지역 사람이 누구인지를 역추적해서 그 사람 징계 때리든지 하라, 도저히 안 되겠다"고 말한 것으로 나왔다.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박 차장은) 삽교촌으로 들어가지만 않으면 아무 상관 없다고 했지만 그 물을 사용하는 건 우리 주민들이다"라며 "모든 화학약품을 사용하면 잔류 물질이 남게 될 수 있다. 이들(현대차 관계자)은 주민들의 안전에 대한 의식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지현민 사무장은 아산공장 내에서 발생한 잇따른 산재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8월 4일 염산 노출 사건에 이어 12일에는 현신물류(하청업체)의 이성렬 조합원이 작업장에서 일하다 두개골이 골절돼 쓰러진 채 발견됐다. 13일에는 엔진데킹 작업장에서 엔진이 떨어지는 사고도 있었다"면서 "(사고와 관련해) 실질적 진상규명을 해야 함에도 사측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라고 밝혔다.

지 사무장은 "현재 두개골이 골절된 조합원은 사경을 헤매고 있다. 20일째 의식을 못 찾고 있는 상태"라며 "그런데도 회사는 목격자나 CCTV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사고조사조차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노동자들은 생명을 담보로 일을 하고 있다. 얼마나 더 이런 환경에서 일을 해야 할지 분노가 든다"며 "회사의 성실한 답변과 사과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현대차 측 "필요할 경우 추가 검진 진행하겠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 홍보팀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현재 작업자들을 대상으로 특수건강검진을 진행했고 이상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하지만 필요할 경우 추가 특수검진을 진행해 적절한 조처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시민들의 지적에 부정적으로 답한 현대차 관계자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자체적인 진위를 거쳐 적절한 조처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작업자들에게 보호장비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 화학물질관리법에 어긋난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관련법 위반 사항이 나올 경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수영장에 사용된 염산이 인근 지역인 삽교읍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아산공장은 친환경적으로 제작된 것"이라며 "자체 정화처리 시설이 있어 (공장용 염산이) 외부로 유출될 일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모든 노동계는 안전한 업무를 위한 표준 기준이 마련돼있어야 한다"며 "작업자들을 위한 제대로 된 기준과 철저한 작업자 보호조치가 있어야 한다. 사측은 업무 환경 내 위험 요인에 대해서도 충분히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을 주최한 윤소하 원내대표는 "(현대차 아산공장의 경우는) 전형적인 갑질 사례"라며 "노동자, 지역주민의 요구에 대한 현대자동차의 답변과 책임 규명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정의당 #하청업체 #노동자 #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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