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역에서 15분,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곳

[써니‘s 서울놀이 47] 한강변에 남아있는 유일한 옛 누정, 망원정(望遠亭)

등록 2019.09.04 16:40수정 2019.09.0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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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좋고 운치있는 옛 누정, 망원정. ⓒ 김종성


서울 망원한강공원(마포구 합정동)을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보면 유서 깊은 옛 누정 '망원정(望遠亭)'을 만날 수 있다. 누정(樓亭)은 누각과 정자의 줄인 말로, 누각은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2층 다락 구조로 높게 지어진 건물이다. 이정표를 따라 10여 미터를 걷다보면 빽빽한 나무들과 단층의 주택가 사이로 산수화 속 건물 같은 망원정(마포구 동교로8안길 23)이 나타난다.
 
망원동 주택가에 정자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2호선 합정역 8번 출구로 나와 도보 15분) 망원정은 1970~1980년대 한강 개발로 다 사라져 버린 강변의 정자 가운데 유일하게 복원돼 명맥을 유지하는 정자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0년 6월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됐다. 
 

솟을 삼문 형태의 망원정 정문. ⓒ 김종성

정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시민들. ⓒ 김종성


조선시대 많은 선비들이 즐겨 찾던 명소 중의 하나이자,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장소로 사용됐다고 한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수양과 독서 산책을 하고, 정자에 모여앉아 시주(詩酒)를 즐기거나 강론을 하는 선비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연산군 시절에는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올라설 수 있도록 확장해 흥청망청 연회를 즐긴 곳이기도 하다.
 
한강에서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정자 안은 아이들이 뛰놀거나 앉아서 쉬기 좋은 널찍한 공간이다. 정자 안 현판에 '喜雨亭(희우정)'이라고 적혀있다. 태종(이방원)의 둘째 아들이자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1396~1486)이 처음 누정을 세울 때 지은 이름이다.
 
1425년 가뭄이 계속되자 세종은 농민의 삶을 살피기 위해 교외로 나왔다가 이 정자에 올랐다. 때마침 비가 내려 온 들판을 흡족하게 적시니 매우 기뻐하며 정자 이름을 '희우정(喜雨亭)'이라고 지어 주었다고 한다. - 망원정 안내장 참조 
 

강변도로 너머로 보이는 한강. ⓒ 김종성

망원정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 김종성


망원정이란 이름은 후일 성종 15년(1484) 성종의 형 월산대군이 퇴락한 희우정을 효령대군으로부터 얻어 고쳐 지었고, 성종이 '望遠亭(망원정)'으로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정자에 오르면 이름처럼 멀리 산과 강을 잇는 경치가 보인다는 뜻으로, 동네 이름 마포구 망원동의 유래가 되었다.
 
아쉽게도 현재의 망원정은 산이나 강보다 차량들이 쌩쌩 달리는 강변도로가 먼저 보인다. 차도 너머로 한강이 희끗희끗 넘실거린다. 정자 발치로 유유히 흘렀을 강물 대신 강변북로를 지나가는 차량들이 빠르게 흘러갔다. 임금이 행차하던 누정이라 삼문(三門)으로 되어 있는 운치 있는 정문도 강변도로를 향해 나있다. 
 

주택가와 어루러져 있는 망원정. ⓒ 김종성


망원정은 유실되었다가 1989년에야 다시 복원됐다. 유실된 이유는 임진왜란이나 6.25전쟁이 아니라 뜻밖에도 홍수였다. 국가기록원에 자세히 기록될 정도로 악명 높은 을축년(1925년) 대홍수다.

그해 7월에 발생한 20세기 최악의 물난리에 암사동 선사유적지가 드러났고, 한강 인도교와 망원정이 떠내려갔다. 홍수는 한강의 형태까지 바꿨다. 강북 지역인 자양동에서 걸어 다닐 정도로 가까웠던 잠실은 홍수로 강 흐름이 바뀌면서 강남 지역이 된다.
 
망원정의 두 번째 주인이었던 호가 풍월정(風月亭)인 월산대군이 망원정에서 지었다는 시가 유명하다. 월산대군은 조선 최고의 모사 한명회에 의해 왕의 자리에 앉지 못하게 된다. 망원정은 아픈 척 병을 가장하고 호를 풍월정(風月亭)으로 짓고, 시(詩)와 풍류를 내세워 연명한 월산대군의 서글픈 사연이 담긴 누정이기도 하다.
 
望遠亭前三月暮 망원정 앞에 춘삼월이 저무는데
與君携酒典春衣 그대와 술 마시려 봄옷 잡혔네
天邊山盡雨無盡 하늘가 산은 다하여도 비는 그치지 않는데
江上燕歸人未歸 강의 제비는 돌아가도 사람은 돌아가지 못하네

四顧雲煙堪遣興 안개를 돌아보니 흥을 풀 만한데
相從鷗鷺共忘機 갈매기와 서로 좇아 사심을 잊는다
風流似慰平生願 이 풍류가 평생의 소원을 위로할 듯하니
莫向人間學是非 인간세상 시비를 배우지 마세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울시 '내손안의 서울'에도 실립니다.
#망원정 #망원한강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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