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복득 할머니 소원 '위안부 역사관', 6년만에 시민들이 추진

경남지역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추진위원회 준비모임... 2021년 건립 목표

등록 2019.09.05 14:15수정 2019.09.0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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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지역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추진위원회 준비모임은 9월 5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 윤성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득(1918~2018) 할머니가 2013년 11월 아껴 모은 재산에서 2000만원을 '경남일본군위안부역사관' 건립에 써달라며 내놓았고, 이제 시민들이 그 '기록기억행동'에 나섰다.

경남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경남지역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추진위원회 준비모임"(아래 준비모임)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모금 활동에 나섰다. 준비위는 5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앞으로 추진 방향을 알렸다.

전국에는 서울과 경기, 대구, 부산에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 있다. 부산은 역사관을 개인이 운영하고 있으며, 다른 지역은 관련 단체들이 정부의 지원이 보태져 역사관이 건립되었다.

경남은 오래 전부터 역사관 건립 이야기가 나왔다. 경남은 피해자가 많은 지역이다. 한국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40명 가운데 1/3 이상이 경남 출신이다. 현재 전국에 생존자는 20명뿐이고, 경남에는 4명이 거주하고 있다.

2012년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마산창원진해시민모임은 김두관 전 경남지사 때 간담회를 갖고 '역사관' 건립을 제안했다. 당시 경남도와 두 단체는 역사관 건립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그해 12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증거자료 수집사업 관련 예산이 삭감되었다.

그러다가 고 김복득 할머니가 2013년 11월 기금 2000만원을 내놓기도 했다. 관련 단체들은 이후 계속해서 논의를 해왔지만 별로 진척이 없었고, 올해부터 논의를 거쳐 이날 '준비위' 결성을 선포했다.

역사관은 2021년 건립 목표로 하고, 150여평에 지상 2층 규모로 기금 15억원을 모은다는 계획이다. 역사관 위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송도자 통영거제시민모임 대표는 "위치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 경남에서 가장 피해가 많은 지역이 창원, 통영, 진주의 3곳으로 이중 한 곳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지가 어디에 확보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고 했다.

송도자 대표는 "역사관이 국립이나 도립으로 되면 박제화될 수 있어 민간 주도로 하려고 한다. 이런 운동은 민간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하고 정부와 지자체는 보조 역할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경희 마창진시민모임 대표는 "이제 시작이다. 이 뜻에 동의하는 모든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할 것이다. 참여 단체가 훨씬 많을 것이라 본다"며 "경남도에 역사관 건립과 관련해 공식 제안한 적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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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득 할머니. ⓒ 윤성효

 
"역사적 책무를 이행하는 데 적극 나서야"

이날 기자회견에는 많은 단체들이 함께 했다. 준비모임에는 창원과 진주, 통영, 김해 등 여러지역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경희 대표는 "지금 아베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상황이고, 한국과 일본 정부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해방 74년이 됐지만 식민지배 하의 과거사가 제대로 청산, 정리되지 않은 탓이다"며 "민간단체들이 역사관을 세워 그 진실을 기억하고 전달하고 교훈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송도자 대표는 "2013년 김복득 할머니께서 건립기금을 내놓으셨고, 그동안 무거운 무게를 안고서 역사관 건립을 위해 노력해왔다"며 "6년의 세월이 흘러버렸다. 이렇게 선포식을 하게 되어 할머니께서 하늘에서 내려보면서 흐뭇해 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김윤자 경남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정부에 등록한 피해자의 1/3 이상이 경남 출신이다. 왜 그렇게 많은 할머니들이 피해자가 되었는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며 "할머니들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해방이 되어 고향에 돌아와도 공감을 얻지 못하고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할머니들은 살아서도, 돌아가셔서도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기를 그렇게 염원했다"고 했다.

준비모임은 회견문을 통해 "중요하고 시급한 역사적 책무는 경남 도민 모두가 함께 힘을 모을 때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경남도와 시군 지방자치단체 또한 이 역사적 책무를 이행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과 정의를 위한 범시민 기록기억행동
"경남지역 일본군 '위안부'역사관" 건립 추진에 나서며


2013년 11월, 경남최고령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였던 고 김복득 할머니께서 자신이 아껴 모은 재산 2000만원을 경남지역 일본군'위안부'역사관 건립에 써달라며 기부하셨습니다.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돈 많이 벌게 해주겠다고 해서 속아 간 곳이 위안소였다. 또 이런 일이 일어날까봐 두렵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일본군위안소는 피해여성에게 있어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은 두려운 말이었습니다. 피해여성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끔찍한 고통을 안은 채 조국에 돌아와서도, 고향에 돌아와서도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국가와 사회는 그 고통을 철저히 외면하며 멸시와 냉대로 피해여성들에게 침묵의 굴레를 씌웠습니다. 그렇게 반세기가 흘렀습니다.

1991년 8월 14일, 반세기의 침묵을 깨는 피맺힌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가해책임을 발뺌하는 일본정부의 뻔뻔한 거짓말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내가 피해자다"라며 기자회견을 자청한 고 김학순 할머니. 침묵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다가올 고통의 두려움을 떨치고 마침내 세상을 향해, 일본정부를 향해 외쳤던 일본군'위안부'피해 생존자의 첫 공개증언은 세상을 흔들어 놓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터져 나온 피해여성들의 "나도 피해자다"의 미투 물결은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운동과 함께 일본을 비롯한 세계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이루어 일본정부의 국가범죄 인정과 법적책임 이행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었습니다. 유엔 등 국제기구의 조사와 보고서 채택, 세계 각국의 '위안부'결의안 채택, '위안부' 기림비 건립운동, 세계 시민사회들의 연대활동 등의 결과는 바로 죽음까지도 대면하려는 용기로 "이것은 알아야 합니다"를 외쳤던 "김학순 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1991년으로부터 28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는 사이 240명의 정부등록 피해자들 중 단 20명만이 생존해 있습니다. 생존피해자들은 대부분 병마와 싸우며 일본정부의 진심어린 사죄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정부의 책임인정과 진정한 사죄는 요원하기만 합니다.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수행을 위해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어린 소녀와 여성들을 사기와 강압 등을 동원하여 강제로 일본군의 성노예로 만든 전대미문의 전시성폭력 범죄인 일본군'위안부'문제. 아직도 우리는 가해자에게 범죄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했습니다. 과거의 범죄를 단죄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범죄에 용기를 준다고 했습니다. 일본국가에 의해 자행된 전시성폭력 범죄를 단죄하지 못한 지금, 우리는 미래의 범죄를 꿈꾸는 일본국의 만용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똑똑히 보고 겪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피해자들이 역사적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간절한 외침이 실현되지 못한 채 땅속에 묻히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앞장서서 이루어낸 결과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을 기록하여 기억을 이어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할 때입니다. 특히 피해자가 전국 어느 곳보다도 많았던 경남 지역사회에서 피해자 인권명예회복, 정의실현이라는 역사적 책무를 다하지 못한 데에 대한 반성과 함께 피해여성들의 외침을 무겁게 이어받아 역사적 과제를 적극적으로 수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오늘 경남지역의 일본군'위안부'역사관 건립을 시작하는 선포식을 가지며 범시민 기억기록행동의 걸음을 내딛고자 합니다. 김복득 할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던 두려운 일이 미래세대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본군'위안부'피해의 진실을 기록하고 기억해가야만 합니다. 이를 통해 굳건한 진실로 끊임없이 일본국가의 범죄를 물어 법적책임을 이행하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과거의 범죄가 미래에 재발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는 과거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는 인권과 평등, 평화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를 잇고 미래를 펼쳐나가는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의 건립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은 피해조사와 자료수집, 기록, 연구, 전시, 교육, 기림 등의 사업을 통해 인권과 평화, 역사 교육의 장이 될 것입니다. 피해여성들의 존엄회복은 물론 진실에 기초한 기록과 기억행동으로 정의를 실현하여 지금도 지구상에서 자행되고 있는 전시성폭력 범죄를 근절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미대세대에게 인권과 평화가 살아 숨 쉬는 행복한 세상을 물려주는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이 중요하고 시급한 역사적 책무는 경남 도민 모두가 함께 힘을 모을 때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경상남도와 시군 지방자치단체 또한 이 역사적 책무를 이행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경남지역 일본군'위안부'역사관건립에 함께 해주실 것을 도민 여러분께 간절히 호소합니다.

경남지역 일본군'위안부'역사관 우리 모두의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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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김복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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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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