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세문경 무늬, 드디어 풀리다4

[차근차근 한국미술사23] 다뉴세문경, 과연 기하학적·추상적·상징적 무늬일까

등록 2019.09.06 13:46수정 2019.09.0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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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청동거울이 세상에 나온 지 60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이 거울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거울 뒷면의 무늬는 그때나 지금이나 '기하학적 추상무늬'이다. 앞으로 6회에 걸쳐 한반도 청동거울의 기원과 거울 뒷면의 무늬, 이 거울에 담긴 세계관은 무엇인지 밝혀 보고자 한다. - 기자말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사진168〉 다뉴세문경 뒷면(왼쪽)과 앞면. 지름 21.2cm. 기원전 3세기에서 2세기. ⓒ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뒷면 무늬는 기하학적·추상적·상징적 무늬일까


<한국사3-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국사편찬위원회, 1997)에서 이건무는 다뉴세문경을 일러 "얼굴을 비추어보는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라 태양빛을 반사하는 기능을 가진 종교적 주술적 의식에 쓴 의기의 하나"로 본다(218쪽). 이와 달리 심봉근은 중국 청동거울을 다루면서 "왕실이나 제후 등 지배계층의 권위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널리 사용되었을 것"이라 한다(앞의 책, 296쪽). 다음은 복천박물관과 유홍준의 견해이다.
 
동경은 제사장의 종교적 혹은 주술적인 도구로써 신과 접속하는 의기로써 (……) 태양이나 우주를 상징하는 도구로써 절대자의 뜻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활용되었을 (……) 왕을 비롯한 최고 지배자층의 무덤에서 출토된다.
- 복천박물관, 《신의 거울 동경》(2009), 8쪽
 
청동거울은 흔히 얼굴을 비추는 거울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제관이 햇빛을 반사시키는 의기로 사용하였다. 오늘날 무속에서 무당들이 춤을 출 때 사용하는 명두(明斗 또는 칠성명두)라는 놋거울과 같은 성격이다. 거울에 달린 꼭지는 손목에 끈을 끼우는 장치다. 그리고 거울 뒷면에 가는 선과 동심원을 기하학 무늬로 새긴 것은 태양과 햇살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 유홍준,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1》(눌와, 2012), 48쪽
 
이렇듯 우리 학계에서는 다뉴세문경을 '종교적' 의기의 하나로 보고, 그 문양은 태양과 햇살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이는 <다뉴세문경종합조사연구>(한국기독교박물관, 2009)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보고서에서 이청규는 거울 뒷면 무늬를 '기하학 무늬'라 하고, 거울을 "태양을 상징하는 신기(神器)로서 종교적 권위와 위세의 상징물인 바 그 수요자는 주지하다시피 당시 일정 지역 집단의 우두머리이거나 이에 버금가는 실력자"일 것으로 짐작한다(앞의 책, 33쪽).

그런데 이것은 모두 그저 '짐작'일 뿐이고 어떤 '근거'도 없다. 더구나 우리 한반도 역사에서 신석기와 청동기시대에는 종교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한마디로 신(神)의 형상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종교적 의기'로 단정 짓는 것은 문제가 있다.

거울 뒷면 무늬에 대해서도 미술사학자들은 기하학적 추상무늬, 기하학적 양식, 추상적·상징적 무늬라 하면서 거의 모두 비슷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뒷면에 있는 동심원 여덟 개도 팔원문 내지는 원권문이라 한다. 김원룡·안휘준은 <한국미술의 역사>에서 거울 뒷면 무늬를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신석기시대 이래 기하학적, 추상적, 상징적 무늬의 전통이 더욱 정치하게 발전된 양상을 드러낸다. 세문경은 당시에는 아무나 가지고 얼굴을 보는 도구가 아니라 그것을 몸에 달아 권력이나 초인간적 신통력·벽사력(辟邪力) 따위를 상징하는 의기로 쓰였으리라 추측한다.
-김원룡·안휘준,  <한국미술의 역사>(시공사, 2016), 43쪽
 
이는 앞에서 든 유홍준의 의견과 거의 같다. 하지만 김원룡·안휘준을 비롯하여 유홍준처럼 거울 뒷면 삼각형 속 빗금과 동심원을 기하학 무늬로 본다든지, 태양과 햇살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무늬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먼저 이 무늬는 '기하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고학자들이 어떤 무늬를 두고 '기하학적 추상무늬'라 할 때는 그도 이것을 모르고 있구나, 하고 고쳐 읽어야 한다).

또 한반도 청동기 미술은 '추상미술'이 아니라 '구상미술'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한반도 신석기인과 청동기인이 '추상미술'을 할 까닭이 없고, 문제는 우리가 아직 그것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뒤에 자세히 논할 것이다.
 

〈사진169〉 중국 청화백자 자라병. 1400년대. 〈사진170〉 분청자 철화 넝쿨무늬항아리, 높이 10.6cm. 국립중앙박물관. 〈사진170〉에서 천문은 두 개만 보이지만 뒤에 또 두 개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동서남북 하늘에 나 있는 구멍, 구름이 나오는 천문(天門)을 그린 것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천문화생(天門化生)과 사방오주(四方五州)의 세계관

〈사진169〉는 중국 청화백자 자라병(편병)인데, 가운데 동그란 원이 있고 그 안에 구름이 있다. 중국 학계에서는 이 둥그런 원이 무엇을 구상으로 한 것인지 아직 모른다.


나는 이것을 천문(天門)으로 보고, 이 천문을 통해 구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중국과 한국 그릇 역사에서 왜 이런 자라병이 유행했는지도 잠깐 밝힌 바가 있다(조선백자 자라병과 암사동 신석기인의 천문 세계관 http://omn.kr/1dw0h). 천문에서는 구름이 나오려고 힘 있게 움직이고 있고, 그 둘레에는 덩굴 풀과 꽃을 그렸다. 이 세상 만물이 천문에서 비롯한다는, 천문에서 나오는 구름에서 비롯한다는 천문화생(天門化生)과 우운화생(雨云化生)을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사진170〉은 분청자 철화 넝쿨무늬항아리다. 우리 학계에서는 '구름(云)'을 아직도 당초문(唐草文) 내지는 인동문(忍冬文)으로 보고 있다. 당초는 당나라풍(唐風) 또는 이국풍(異國風)의 덩굴무늬로 보는 데서 온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당초도 아니고 인동도 아니다(인동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 나는 구름(云)으로 본다(〈사진171〉 참조바람).

그래야 동그란 점으로 표현한 천문(天門)까지 한 묶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학계 또한 중국 학계와 마찬가지로 동그란 점 천문을 아직 보지 못하고 있다. 이 그릇에서 천문은 모두 네 개다. 동서남북 하늘에 나 있는 구멍, 구름이 나오는 구멍인 셈이다. 그리고 아가리까지 하면 다섯 개가 된다. 동서남북과 중앙, 이렇게 사방오주(四方五州)의 세계관을 그릇에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사진171〉 구름운(云) 자 갑골문. 구름운(云)은 위상 갑골문 ‘二’에서 비롯한 글자이다. 위상 갑골문 ‘二’에서 아래 가로획은 파란 하늘을, 위 짧은 가로획은 하늘 속 물(水)을 뜻한다(허신은 위상(二)을 지사문자로 보지만 나는 상형글자로 본다. 그에게는 신석기 세계관이 없다). 오른쪽 갑골문은 위 가로획과 아래 가로획을 세로획으로 이어 놓았는데, 이것은 y축에서 본 천문이다. 이에 견주어 〈사진169-170〉의 천문은 x축에서 본 천문이다. ⓒ 김찬곤

 
세계 신석기인의 천문(天門) 세계관

세계 신석기인의 천문(天門) 세계관은 중국(여와와 홍수 이야기, 신석기 그릇, 전한의 막새기와와 청동거울), 유대인(<성경> 〈창세기〉 7장에 나오는 '구멍·창·창문(들)'), 박트리아(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북부), 덴마크 청동기 제기, 유럽 이베리아반도(스페인, 포르투갈, 안도라, 지브롤터)의 신석기 이베리아인, 고대 이탈리아 신석기 시대의 에트루리아인, 그리스 스키로스, 북미의 애리조나·아칸소·미시간과 남미의 페루 신석기 신화·그릇·석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성경> 〈창세기〉 7장에 나와 있는 천문을 들어본다.
 
이레가 지나자 장대비가 쏟아져 홍수가 났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2월 17일, 바로 그날 땅 밑에 있는 큰 물줄기가 모두 터지고 하늘은 구멍이 뚫렸다. 그래서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장대비가 쏟아졌다.
- <공동번역 성서>(1977) 창세기 7장 10-12절
 
위 구절에 나오는 '구멍'은 하늘 속 통로, 즉 천문(天門) '하늘 구멍'(8장 2절)이다. 번역을 누가 했느냐에 따라 이 구멍(천문)을 달리 옮기기도 한다. 대한성서공회에서 낸 <관주 성경전서>(개역 한글판, 1995)에는 '구멍'을 '하늘의 창'으로, '구멍이 뚫렸다'는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로 옮겼다. '하늘의 창들'처럼 복수접미사 '들'을 붙인 까닭은 이러한 창(구멍, 천문)이 하늘에 많다는 말이다. 동서남북 그리고 한 중앙에 난 창(천문)이 아닐까 싶다. (다음 호에 이어서 씁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국보제141호다뉴세문경 #김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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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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