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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못 박힌 여성... 미국 의료보험 향한 신랄한 '풍자'

[리뷰] 미국 의료보험 제도를 둘러싼 유쾌한 풍자 <엑시덴탈 러브>

19.09.07 15:28최종업데이트19.09.0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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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덴탈 러브> 포스터 ⓒ (주)프레인글로벌

  
<화씨 9/11>로 2004년 제 5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마이클 무어 감독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인 미국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치는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그의 2007년 작품 <식코>는 미국 민간 의료 보험 조직인 건강관리기구(HMO)의 부조리적 폐해를 보여주며 무책임한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를 비판한다. 우리나라는 국가 차원에서 의료보험을 운영하는 반면 미국은 국가가 아닌 개별 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식코>에 등장하는 한 남자는 손가락이 잘렸지만 너무나 비싼 수술비 때문에 봉합수술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미국은 직장에서 의료보험을 대신 납부해 주는데, 이는 곧 취업을 하지 못하면 비싼 의료보험을 혼자 감당해야 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더구나 보험사의 승인이 있어야 치료나 약 지급을 받을 수 있기에 승인을 받지 못할 경우 비싼 의료비용을 환자가 오롯이 부담해야 된다.
  
2014년 미국 내 3200만 명의 저소득층 무보험자를 건강보험에 가입시키고 중산층에 보조금을 지급해 의료비 부담을 낮추고자 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오바마케어'가 시행되기 전까지 미국의 의료보험은 심각한 문제였다('오바마케어' 이후에도 미국 의료보험 제도의 문제는 완전히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는 한 마디로 돈이 없으면 죽으라는 말과 같다. 마이클 무어가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을 비행기에 태워 적대국인 쿠바로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하는 장면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엑시덴탈 러브> 스틸컷 ⓒ (주)프레인글로벌

 
이런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를 풍자한 유쾌한 코미디 영화가 <엑시덴탈 러브>(2015)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홍보가 되어 빛을 보지 못한 작품이지만 이 영화만큼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를 유쾌하면서도 신랄하게 비판한 영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서빙을 하는 동네 최고의 인기 웨이트리스 앨리스는 남자친구인 보안관 스캇에게 로맨틱한 레스토랑에서 청혼을 받는다.
 
한데 레스토랑에서 장식품 공사를 하던 직원의 실수로 앨리스의 머리에 못이 박혀버린다. 다행히 생명은 구했으나 머리에서 못을 빼내지 못하는 앨리스. 그녀에게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 이 못을 빨리 제거해야 함에도 의사는 비싼 수술비를 들먹인다. 한 마디로 돈을 가져와야 못을 빼준다는 것이었다. 앨리스가 이런 고난을 겪게 된 이유는 그녀가 지역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으며 머리에 못이 박힌 건 보험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앨리스의 머리에 박힌 못을 빼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럴수록 상태만 악화되어 간다. 스캇이 떠나가면서 점점 희망을 잃어가는 앨리스는 TV에서 한 남자를 보게 된다. 젊고 열정이 넘치는 정치인 하워드의 정의감 넘치는 연설을 들은 앨리스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하워드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말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고 주민들을 위해 일하겠다 말하는 하워드는 사실 출세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야망으로 가득찬 남자다.
  

<엑시덴탈 러브> 스틸컷 ⓒ (주)프레인글로벌

 
하워드는 자신을 찾아온 앨리스를 만나주지 않는다. 그에게는 성공을 위해 해결해야 할 더 급한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앨리스의 머리에 박힌 못이 그녀의 정신 상태를 바꿔놓고 때문에 그녀가 격렬하게 하워드에게 애정을 표현한 순간 하워드는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제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민간의 사고를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 제도를 안건으로 상정하고 통과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권력층은 의료보험보다 우주산업에 돈을 투자하길 바라면서 마찰을 겪는다.
 
앨리스가 사고를 겪으면서 만나게 된 인물들은 모두 문제를 하나씩 안고 살아간다. 그들은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작품에서 가장 웃픈 장면은 앨리스가 왜 자신에게 의료보험이 없느냐고 부모에게 따지는 장면이다. 부모는 과거 앨리스가 생일선물과 의료보험 중 생일선물을 택하면서 의료보험을 들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장면은 너무나 당연하게 지켜져야 할 건강권이 누군가에게는 선택의 문제가 되고 있다는 서글픈 사실을 알려준다.
 

<엑시덴탈 러브> 스틸컷 ⓒ (주)프레인글로벌

  
여기에 하워드는 자본가의 잇속과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대다수 국민들을 생각하지 않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은 의료보험 문제 외에도 총기사고 문제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매년 총기규제를 외치며 시위가 일어나지만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국민의 생명 대신 자본가들의 돈을 택한다.
 
<엑시덴탈 러브>는 머리에 못이 박힌 여자가 우연히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통해 웃음이 가득 담긴 풍자를 선사한다. 의료보험 제도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국인 미국은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고개를 돌린다. 작품은 이 무거운 주제를 심오하게 풀어내기 보다는 코믹하면서도 달달하게 담아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보장받아야 되는 건강과 안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엑시덴탈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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