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서울대 집회'에 갔나

[조국 사태, 난 이렇게 본다] '합법적 불의'의 고리,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등록 2019.09.09 20:41수정 2019.09.09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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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논란'은 9월 9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의 임명 결정을 통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됐습니다. 하지만 소위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시사점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장부승 관서외국어대 교수의 글을 게재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조국 사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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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퇴 촉구 서울대 2차 촛불집회서울대 총학생회 주최로 지난 8월 28일 오후 서울대 아크로광장에서 열린 '조국 교수 STOP! 제2차 서울대인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지난 8월 28일 저녁 난 서울대학교에 있었다. 젊은 후배들 가운데 앉아 마스크도 하지 않은 채 "조국 교수 법무부장관 후보자 사퇴" 구호를 함께 외쳤다.

내가 집회에 가겠다니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특히 걱정이 크셨다. '조국 후보자는 살아있는 권력의 핵심인데 그를 비판하다 불이익이라도 당하면 어쩌느냐'고 걱정이셨다. 그래도 갔다. 부끄러워서 갔다. 후배들에게 볼 낯이 없고 미안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뭔가 사죄하고 싶어서 갔다. 

부끄러워서, 미안해서 갔다

조국 후보자의 딸은 일반인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여러 혜택을 누렸다. 고등학생이 병리학 전문가들이 작성한 논문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알지도 못하는 대학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연구 등에 참여할 수 있었다. 신청하지도 않았는데, 낙제를 했는데 장학금을 받았다. 4년제 대학 총장의 직인이 찍힌 표창장도 받았다. 국책 과학기술연구소에 가서 인턴도 했다. 

이렇게 예외적인 일들이 조국 후보자 딸에게 연속됐는데, 조 후보자는 이 모든 것이 부모 도움 없이 딸이 이룬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불공정해 보일 수 있지만 불법은 없었다고 했다.  

'합법적 불의'라는 구린내

내가 이 '합법적 불의' 혹은 불공정해 보이지만 절차적 합법이라는 주장에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8년 나라를 뒤흔든 병역 비리 사건이 있었다. 헌병 출신 원용수 준위 그리고 역시 헌병 출신 박노항 원사가 브로커 역할을 하며 민간인·군인·군무원이 병역면제·보직 조정 등 100여 건 이상 비리에 개입해 100억 원 이상 뇌물이 오갔다.

당시 원용수 준위의 수첩에서 무려 443건의 병무 청탁에 관련된 400명의 이름이 쏟아져 나왔다. 이중 7명 구속 기소, 29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원 준위의 수첩에서 쏟아져 나온 이름 다수는 민간인이었지만 그중에는 장성 7명 등 133명의 군인 이름도 있었다. 

병역 비리를 덮어버린 '합법적 불의'
 

대규모 병역 비리를 보도한 1998년 6월 23일자 경향신문 기사(1)1998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대규모 병역 비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사건 주범 중 한 명이었던 원용수 준위의 수첩 내용을 토대로 병역 비리를 보도하고 있는 1998년 6월 23일자 경향신문 기사의 한 부분이다. ⓒ 경향신문

대규모 병역 비리를 보도한 1998년 6월 23일자 경향신문 기사(2)1998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대규모 병역 비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사건 주범 중 한 명이었던 원용수 준위의 수첩 내용을 토대로 국군 고위 장성들의 병역 비리 연루 가능성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는 1998년 6월 23일자 경향신문 기사의 한 부분이다. ⓒ 경향신문

 
그러나 군인들 대부분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장군들 중 비육사 출신 육군본부 부관감만이 유일하게 사법처리됐다. 군의 핵심이었던 육사 출신 엘리트들은 거의 처벌받지 않았다. 당시 국방부가 밝힌 이유가 바로 '불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장성들의 청탁 내용을 보니 금품거래가 없었고, 직권남용도 없었다는 것이다. 연락은 했지만 불법 청탁이나 개입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 병역 비리를 알고 있었다. 카투사 시험을 봐서 1996년 여름 입대한 나는 카투사들의 인사행정을 담당하는 용산 주재 미8군 한국군지원단본부(아래 단본부)에 배치됐다. 용산에 근무하면서 단본부와 용산 소재 고급사령부에 근무하는 사병들을 보니 뭔가 이상했다. 

여기엔 왜 이리도 부잣집, 고위직 아들이 많을까? 사병들끼리 서로 친해지다 보면 집안 배경도 알게 된다. 용산에는 재벌 그룹 간부, 고위 관료, 군 장성 아들이 많았다. 나처럼 시골 출신에 대학도 못 간 말단 공무원을 아버지로 둔 사람을 찾기가 오히려 어려울 정도였다. 

그 희한한 인적 구성이 아주 우연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대 선임병들과 가졌던 저녁 자리에서 한 선임병이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해줬다.

당시 카투사는 공정을 기하기 위해 추첨으로 보직을 결정했다. 카투사 훈련 마지막 날 모든 사병들이 모인 가운데, 한 명씩 무작위로 구슬을 뽑았다. 구슬에 적힌 번호대로 자대와 보직이 결정됐다.

그런데 일부 사병들에게는 사전에 구슬이 제공된다는 것이었다. 부모가 브로커를 통해 부탁하면 그 부모 자제들을 따로 불러내 구슬을 손에 쥐어 준다는 것이었다. 매 기수별 몇 명에게 구슬이 주어지는지, 1인당 단가가 얼마인지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불의를 외면한 부끄러움

놀란 나는 번민했다. 번민 끝에 헌병대에 제보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스스로 불안했는지 결행 전 아버지와 상의를 했다. 아버지는 대경실색했다. 제보를 해선 절대 안된다고 극구 말렸다. 제보를 했다가는 오히려 나만 치도곤을 당할 것이고, 근무 환경이 열악한 타 부대로 전출 가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라 하셨다.

부친의 간곡한 만류에 결국 결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병역 비리는 세상에 드러났고 수사가 시작됐다. 수사 결과를 보니 놀랍게도 아버지 말이 맞았다. 내가 제보하려던 그 헌병대 사람들이 사건의 주모자들이었던 것이다. 

이때 경험은 깊은 상처와 부끄러움으로 남았다. 헌병이 오히려 범죄자라니. 믿었던 어른들에게 배신당한 느낌이랄까. 더욱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말하지 못했다는 무기력과 열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전역 하면 달라질 거라 믿었다. 비리는 군대라는 특수 환경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장관 딸 사건을 덮어 버린 '합법적 불의'
 

2010년 외교장관 딸 채용 비리 의혹 사건 때 유명환 당시 외교부장관은 "오히려 인사 라인에서는 장관 딸이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한 걸로 보고를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 권우성

 
2010년 또 하나의 '합법적 불의'가 나라를 흔들었다. 외교부 5급 사무관을 특채로 1명 뽑았는데, 하필 현직 외교부장관 딸이 뽑힌 것이다. 채용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원래 1차 모집에 8명이 지원했는데, 모집 자체가 무효화됐다. 2차 모집에 6명이 지원했는데 그중 1명, 장관 딸만 뽑혔다. 채용 공고 기간도 통상보다 길었다. 응시원서와 함께 내야 하는 TEPS(텝스) 영어 성적표를 장관 딸이 8월 10일에 입수했는데 공고 마감을 8월 11일로 해줬다. 1차 모집 당시 장관 딸의 TEPS 성적은 높지 않았다. 반면 나중에 획득한 그녀의 성적은 50점가량 높았다. 장관 딸이 보다 좋은 성적을 제출하도록 1차 모집을 무산시키고 2차 모집을 실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면접 채점표를 보니 더 이상했다. 면접위원 5명 중 외부위원 3명은 탈락한 2순위자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줬다. 반면 외교부 간부들이었던 내부위원 2명은 장관 딸에게 만점 가까운 점수를 줬고, 2순위자에게는 외부위원들에 비해 현격히 낮은 점수를 줬다. 게다가 내부위원 2명 중 1명은 채용과정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외교부 인사기획관이었다. 

파문은 일파만파 번져 나갔다. 그러나 다들 '불법은 없었다'고 항변했다. 유명환 당시 외교부장관은 처음에는 모른다고만 하더니 나중에는 자기 딸이어서 더 엄격하게 취급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장관 딸에게 만점 가까운 점수를 준 외교부 고위 관료는 자신은 누가 장관 딸인지 몰랐다고 했다. 지휘 라인에 있던 고위 외교관들도 장관 딸 응시에 대해 몰랐다거나 사후적으로 알게 됐다고 했다. 
 

SBS 8뉴스 보도 화면 갈무리2010년 외교장관 딸 채용 비리 의혹 사건 당시 채용에 관여했던 일부 외교부 관료들은 채용 과정에서 해당 응시자가 현직 장관의 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증언했다. 사진은 2010년 9월 3일 SBS 8뉴스 보도 화면 갈무리. ⓒ SBS


이번에도 불법은 없었다. 공고 기간을 얼마로 해야 된다는 법률은 없다. 외교부가 임의로 정할 수 있다. 1차 모집 무산은 적절한 후보자가 없었기 때문이라 했다. 1차 모집 공고를 내면 무조건 누군가 뽑아야 한다는 법률은 없다. 단 1명 뽑는 데 장관 딸을 뽑으면 안된다는 법률도 없다. 장관 딸에게 높은 점수를 주면 안된다는 법률도 당연히 없다. 

그런데도 외교부장관은 사과하고 사퇴했다. 국민 정서를 읽지 못해 미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 장관은 검찰 조사도 받지 않았다. 법률을 어긴 것이 없으니 검찰이 나설 이유가 없다. 결국 장관이 도의적 책임하에 퇴진하고, 해당 인사기획관이 중징계를 받는 선에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정말 도의적 책임 말고 아무 문제도 없었던 것이고, 모든 것이 오로지 인사기획관의 과도한 충성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을까? 

외교관 자녀만 갈 수 있는 유학휴직

외교부장관 딸 채용 문제가 불거지면서 과거 외교관 자녀들에게 주어졌던 각종 특혜 문제도 고구마 줄기처럼 드러났다. 

외교부에서는 옛날부터 해외연수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다. 외교관이 아니라도 공무원들에게 2~3년간 정부 지원으로 해외 유수 교육기관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는 것은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까지 외교부는 외무고시 2부 출신들의 해외연수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외무고시 2부는 원래 해외에서 오래 산 재외동포 자녀들을 외교관으로 영입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해외에서 6년 이상 수학한 사람들에게만 응시자격을 줬고, 시험도 모두 영어로 치렀다. 그런데 이렇게 채용한 인력을 다시 해외 경험을 쌓도록 해외연수를 보낸다면 앞뒤가 안 맞는다. 

이렇게 해외연수 길이 막히자 외무고시 2부 출신인 한 외교관이 '유학휴직'을 신청했다. 외교부는 통상 유학휴직을 허용하지 않는다. 유학휴직을 허용하면 가겠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다. 그런데 이 외교관에게는 어찌된 일인지 2년 유학휴직이 허용됐다. 그녀의 부친은 당시 외교부 현직 고위 관료였다.

그녀가 유학휴직을 다녀오고 나서 제도가 바뀌었다. 외무고시 2부 출신도 해외연수를 보내주게 된 것. 그녀는 다시 2년짜리 해외연수를 가게 됐다. 공무원 생활 시작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아 해외유학만 4년을 하게 된 것이다. 

이상한 케이스는 사실 한둘이 아니었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외교부 차관이던 시절 반 차관은 외교관들의 유학휴직을 기간을 막론하고 일체 금지시켰다. 전에는 해외 로스쿨 3년짜리 JD 과정에 2년 국비 연수를 보내주면서 나머지 1년은 유학휴직을 허용해 주는 관행이 있었는데, 이렇게 해서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외교관들이 사표를 내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반기문 차관이 아예 유학휴직을 금지시킨 것이다. 

그런데 몇 년 후 한 외시 2부 출신 외교관이 무려 3년짜리 유학휴직을 받아 해외 로스쿨로 떠나게 된다. 그의 아버지 역시 외교부 고위 관료 출신이었다. 이를 보고 다른 젊은 외교관들도 로스쿨 입학 허가를 받아와 3년짜리 유학휴직을 보내 달라고 했다. 하지만, 평민의 자녀인 다른 외교관들에게 예외적 특혜는 주어지지 않았다. 왜 안 되는지 딱히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었다. 분노한 일부 외교관들은 사직서를 제출했다. 

외교부장관 딸 사건이 터지자 행정안전부가 인사 감사를 실시했다. 이번에도 결론은 같았다. 불법은 없다는 것이다. 일부 외교관 자녀들에게 '예외적' 혜택이 주어지긴 했으나 규정에 위배된 바는 없다는 것이었다. 

행정안전부 감사 결과를 보고 나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외교부 들어와 처음으로 '때려 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무도 설명 못하는 예외적 결과

행안부 감사 결과가 틀린 말은 아니다. 규정에 위배된 것이 없고, 불법은 없다. 어떤 사람을 특채 외교관으로 뽑을지, 어떤 외교관에게 유학휴직을 얼마나 허용해 줄지, 누구를 해외연수를 보낼 것인지 말 것인지 모두 장관의 재량사항이다. 그리고 이 결정들은 외교부 고위 간부들로 구성된 인사위원회 의결을 거쳤다. 

그러나 이러한 절차적 합리성은 여전히 예외적 결과를 설명해 주지 못했다. 왜 1명을 뽑는데 희한하게도 장관 딸이 뽑혔을까? 왜 다른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유학휴직의 특혜가 '예외적으로' 고위 공직자 자녀들에게만 주어졌을까? 왜 그 합법적 프로세스는 유독 일부 특정인 자녀들에게만 작동했을까? 왜 용산에는 그토록 사회지도층 아들들이 많았을까?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연대급 정도 밖에는 안되는 부대의 사병 인사를 담당하는 부관과에 장군들이 전화 걸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외교부는 좁은 곳이다. 외무고시 출신 외교관들의 숫자는 전국 검사 숫자의 3분의 1도 안된다. 누가 장관에게 어떤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지, 그 편지에서 얼마나 절절하게 자신의 집안 사정과 자녀의 처지를 설명하며 선처를 구했는지, 그 내용까지도 다 알게 된다. 세상에 비밀이 없다. 

그러나 이것이 불법인가? '내 새끼 좀 잘 봐주세요' 하고 편지 보내고 전화했다 한들 금품이 오간 것이 없으니 대가성이 없다 할 것이요, 인사권자는 청탁이 있었다 해도 자신은 청탁에 흔들린 바 없으며, 주어진 권한을 절차대로 행사했을 뿐이라고 항변하면 그만이다. 

예외적 특혜로 보이지만 불법의 결과가 아니라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항변하면 어쩔 것인가? 우리는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인 육사 출신 군인들과 외시 출신 외교관들이 보여준 이 '합법적 불의'를 무슨 근거로 비판할 것인가? 오로지 합법성과 절차만이 잣대라면 우리가 그들을 비판할 근거는 사라진다. 

잘못보다 잘못을 옹호하는 엘리트들이 더 문제

사실 내가 더욱 분노한 것은 '합법적 불의'라는 변명이 풍기는 구린내보다도 그 구린내를 덮으려는 우리 사회 엘리트들의 태도였다. 

20여 년 전 병역 비리가 터지자 국방부는 비리 척결보다는 변명에 급급했다. 군 장성의 아들들을 위해 영향력이 행사된 경위가 드러났는데도 국방부는 이들을 무혐의 처분하면서 '불법'은 없다고 했다. 

한 장군의 아들이 어학병으로 배치되도록 하는 과정에 그 장군의 보좌관이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이 밝혀졌는데도 국방부는 해당 장군의 개입 사실이 없으며, 그 보좌관은 해당 장군의 부인의 의향을 전달했을 뿐이라고 했다. 장군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 장군 부인의 의사를 보좌관이 전달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대가성 있는 금품이 오간 적이 없으니 불법성이 없다는 주장 역시 군부 엘리트들의 전가의 보도였다. 그러나 끈끈한 선후배 관계로 엮여 수십 년 운명을 같이 하는 육사 출신 간부들간에 돈 말고도 오갈 수 있는 영향력은 다양하다. 향후 승진이나 보직 등에서 밀고 당겨줄 수 있는 기회는 무궁무진하다. 그래도 대가성 금품 거래만 없으면 '합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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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 권우성

 
외교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외교부는 대한민국 정부기관 중 서울대 출신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소위 'SKY 출신'들이 매년 외무고시 합격자의 3분의 2 정도를 싹쓸이한다. 대한민국 엘리트들의 집합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막상 장관 딸 사건이 터지자 외무 관료들은 자기 편 지키기에 급급했다. 사석에서 한 대사는 "외교부장관이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다른 대사는 "사안의 경중에 비해 언론의 대응이 지나치다"라고 하기도 했다. 공직사회의 최고위급이라는 1급 관료가 특정 외교관 자녀들에게만 유학휴직을 허용하는 것이 절차상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당시 국회가 연 청문회에 소환된 외교관 자녀의 부친들은 갖은 핑계를 대고 청문회 출석을 회피하거나 아니면 청문회에 나와 '절차적 합법성'과 자신의 결백만을 강조했다. 평소 국가이익과 애국심을 그토록 소리 높여 외치던 그 멋진 군인, 외교관 엘리트들은 막상 자기 아들과 딸의 문제가 닥치자 '합법'과 '절차'만을 주문처럼 외워댔다. 

1998년 병역 비리나 2010년 장관 딸 사건이나 모두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일이 아니다. 불의하다 생각되는 일들이 반복돼도 침묵만 하다 보니 그 지경까지 간 것이다. 

외교부 시절 나는 선배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왜 외교관 자녀들이 외교관들의 선망의 대상이라는 북미국이나 주미대사관에 저리도 많이 가 있나요?" 대부분 선배들이 즉답을 회피하며 말머리를 돌리곤 했다. 

그나마 대답을 한 어떤 선배는 "그 문제는 외교부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 중 아주 경미한 문제일 뿐이야"라고 답했고, 또 다른 선배는 "어차피 국장급쯤 가면 다 실력으로 걸러질 것이니 큰 문제 없어, 일이나 열심히 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선배는 "인사라는 게 원래 정실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거야"라고 하면서 나를 세상물정 모르는 애송이 취급하기도 했다.

도덕적 절대주의는 비판을 묶어버린다

누군가는 필자에게 이렇게 반론할지 모르겠다. '당신도 서울대 출신에 고시 합격자로서 특혜를 누린 것 아니요? 당신보다 더 힘들게 산 사람들도 있는데, 그깟 엘리트들간의 작은 혜택을 갖고 왈가왈부하지 마시오'라고. 

맞다. 나도 서울대를 나왔고, 고시에 합격했으며, 나라에서 보내주는 유학 혜택을 받아 외국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 나 역시 용산에서 군 생활을 했고, 해외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다. 살아오면서 내 손과 얼굴에도 더러운 오물이 덕지덕지 묻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뻔히 눈에 보이는 불공정과 불의에 침묵해야 하나?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한복음 8장 7절) 하신 것은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지 못한 사람은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라 하신 것이 아니라, 남을 도덕적으로 비판할 때는 반드시 스스로의 잘못도 함께 돌아보는 도덕적 긴장감을 잃지 말라는 뜻이다. 

자신의 손과 발과 얼굴이 구정물에 적셔진 사람은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과 밝은 태양을 볼 자격도 없고, '이 구정물을 다 치워버려야 한다'고 말 한 마디 할 수 없는 것인가? 우리는 오로지 흠결없는 사람만이 남을 비판할 수 있다는 도덕적 절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도덕적 절대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사실 비판자들의 입을 틀어 막으려는 숨겨진 의도를 갖고 있다. 도덕적 절대주의로 천국에 갈지는 모르지만 세상을 바꿀 순 없다. 

도덕적 이중기준이 '조국 사태'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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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는 모습. ⓒ 남소연

 
오늘의 소위 '조국 사태'는 오로지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와 그 가족만의 잘못으로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 엘리트들 사이에 만연해 있던 도덕적 이중기준이 조국이라는 개인의 이중성과 위선을 통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조국 사태'가 이 지경까지 곪아 들게 된 데에는 바로 나 자신, 우리 자신의 책임도 적지 않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주변에서 부정의를 본 것이 한 둘이 아니다. 어떤 친구는 어려서부터 값비싼 스포츠카를 몰고 다녔다. 어디서 돈이 나서 이런 비싼 차를 샀냐고 하니 자기 아버지 회사 영업용 차량이란다. 공작기계를 만드는 회사에서 스포츠카가 왜 필요할까? 그리고 회사 영업용 차량을 왜 회사 사장 딸이 타고 다니는 것일까? 명백한 회사 재산 횡령이다. 하지만 나는 허허 웃기만 하며 아무런 말을 못했다.

어떤 서울대 선배는 장인이 운영하는 회사에 자기 부인이 이사로 등재돼 있다고 자랑처럼 말한 적이 있다. 전업주부가 웬 회사 이사? 이름만 올려 놓고 월급을 받는 것이다. 야당의 모 중진 의원의 큰 누나도 해외에 거주하는 자기 딸을 자기가 운영하는 학교에 이사로 올려 놓고 따박따박 월급만 주다가 적발돼 실형(집행유예)을 선고받은 바 있다. 우리 사회 엘리트의 민낯이다. 그런 민낯을 옆에서 보고도 나는 침묵했었다.

'촛불'은 '합법적 불의'에 반대했던 것

3년 전 이화여대에서 정유라 사건의 단초가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합법적 불의'의 진한 구린내가 다시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제발 이번만은 누군가 이 냄새를 청소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것도 바로 그런 간절한 염원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촛불의 힘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린 뒤에 등장하는 새로운 위정자들은 좀 달라지기를, 그 새로운 힘으로 우리 사회에 진동하는 이 '합법적 불의'의 구린내를 말끔히 씻어내 주기를 바랬다.  

구린내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새로운 진보 권력자들은 옛날 내가 봤던 육사 출신, 외시 출신 엘리트들보다 더 가열차게 이 냄새를 '합법'과 '절차'의 명분으로 덮으려 하고 있다. 

조국 주변엔 불의한 사람이 많다?

조국 후보자는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으며 어떤 불의와 불법에도 개입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그의 주변에는 비겁하고 불의한 사람 투성이다. 

단국대 장영표 교수는 일면식도 없는 고등학생이 이메일로 요청하자 그녀를 자기 논문의 제1저자로 올려줬다. 장 교수는 왜 이런 어마어마한 모험을 했을까? 공주대의 한 교수 역시 알지도 못하는 고등학생이 부탁하자 인턴을 시켜주고 해외 학술대회 참가도 시켜줬다. 왜 조국 교수 딸에게 이런 호의와 특혜를 베푼 것일까? 

서울대 인권법센터 역시 조국 교수 아들 딸과 장영표 교수 아들에게 인턴 기회를 줬다고 한다. 고등학생으로 서울대 인권법센터에서 인턴을 한 사람은 이들 셋뿐이란다. 이 놀라운 우연에 대해 조국 후보자는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대표 과학기술 연구소 중 하나인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자기 담당업무가 아닌데도 며칠 근무하지도 않은 조국 교수 딸에게 인턴증명서를 발급해줬다. 이 역시 조국 후보자와 그 아내는 자세한 경위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조국 후보자 딸은 자기 엄마가 근무하는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돈도 받고 대학총장 직인이 찍힌 표창장까지 받았다고 한다. 재산도 많은 조국 교수 딸은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1년간 단 한 과목만 들으면서 장학금을 받았고,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는 낙제를 하고도 신청하지도 않은 장학금을 여섯 학기나 받았다. 이런 특혜는 조국 교수의 딸에게만 주어졌다고 한다. 도대체 왜? 누가 좀 이 기막한 예외의 연속을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 

과거 엘리트와 요즘 진보 엘리트, 뭐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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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지난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도착, 취재진 앞에 서서 간단하게 입장을 밝히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소위 진보 엘리트라는 사람들은 이 대단한 예외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기는 커녕 오히려 견강부회와 아전인수로 옹호만 거듭하고 있다. 조국 후보자와 그의 가족이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 하기도 하고, 언론의 과도한 대응이 문제라 진단하기도 한다. 20년 전, 10년 전 엄청나게 예외적인 결과들 속에서 벌어진 일을 '합법성'의 핑계로 덮으려던 육사 출신, 외시 출신 엘리트들과 지금의 진보 엘리트들은 과연 무엇이 다른가? 

서울대 촛불집회가 끝나고 서울대 정문 앞에서 버스를 탔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이 흐려져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부끄러웠다. 지난 20년간 이 불공정을 없애는 데 내가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후배들에게 참으로 부끄러웠다. 

사실 고백컨대 난 저들을 부러워 한 적이 있다. 제대로 된 '빽' 하나 없는 내 신세를 한탄한 적도 있다. 우리 아버지는 왜 이리 힘도 없고 돈도 없을까? 날 끌어주는 사람 어디 없을까 하는 생각에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의 카르텔에 나도 어떻게 한 번 들어가 볼까 궁리해 보기도 했다. 그것이 더 부끄러웠다. 

"아버지, 당신이 틀렸습니다"

늦게 집에 돌아오니 평소 일찍 주무시던 아버지는 뜬 눈으로 날 기다리고 계셨다. 뭔 일 있지 않을까 걱정했다면서 빨리 들어가 자라고 하셨다. 돌아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니 아버지께서 입버릇처럼 내게 해주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힘이 없어 널 많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돌아서는 아버지 뒷통수에 대고 나는 속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가 틀렸어요. 힘이 다가 아닙니다. 힘이 정의가 아니고 정의가 힘입니다. 내 반드시 아버지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말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9월 9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후보자를 신임 법무부장관에 임명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현행법상 대통령은 청문회 결과와 무관하게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장관에 임명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조국 교수를 법무부장관에 임명한 것은 합법이다. 그러나 이제 조국 후보자는 '개인'이 아니다. 그 '합법적 불의'와 '이중기준'의 상징이 이제 법무부장관이 됐다.

나는 이제 침묵하지 않겠다. 글이면 글로, 말이면 말로 항거할 것이다. 말도 글도 안 되면 담벼락에 대고 발길질이라도 하겠다. 누가 내 얼굴의 구정물을 지적하며 혼내면 기꺼이 혼나겠다. 그러나 '합법적 불의'를 없애고자 하는 내 소망을 죽이진 못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내 눈에 '합법적 불의'가 눈에 띄면, 나는 내가 본 대로 들은 대로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 사회 '합법적 불의'의 고리가 끊기고 그 구린내가 가셔질 때까지. 후배들 앞에서 느끼는 이 부끄러움이 가라앉을 때까지.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장부승 교수는 15년간의 한국 외교관 생활 후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이후 미국 스탠포드대 아태연구소, 랜드연구소 연구원 생활을 거쳐 현재 일본 오사카 소재 관서외국어대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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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스탠포드대학교 쇼렌스틴 펠로우, 랜드연구소 스탠턴 펠로우를 거쳐 현재는 일본 오사카 소재 관서외국어대 교수 재직중. 일본 및 미국, 유럽,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다양한 학생들을 상대로 정치학을 강의하고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booseung.chang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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