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인지 갓수성'이라는 조롱... '안희정 사건'을 보고 깨달아라

'가해자 중심 문화' 성찰하라는 대법원... '성폭력 사건' 에 대한 관점 변화하는 계기 되길

등록 2019.09.10 17:43수정 2019.09.1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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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행 선고 환영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안 전 도지사는 대법원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 받았다. ⓒ 이희훈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유죄가 확정됐다. 9일 오전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으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크게 '성인지 감수성'과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들어 유죄를 확정했다.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을 심리할 때에는(...)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한 한 편, "피해자의 진술은(...) 신빙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최종적으로 안 전 지사의 유죄가 확정된 바, 지난해 3월 언론을 통해 수행비서 김지은씨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 이후 지금까지 한국사회가 보여줬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또한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도 짚어보자.

'킹인지 갓수성'의 시대? 

법원 판결에 '성인지 감수성'이란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해 4월이다. 성희롱과 성추행을 이유로 해임당한 교수 A씨가 해임이 잘못됐다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1심과 2심 법원은 피해 호소인들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고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를 대법원이 뒤집으면서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표현을 최초로 사용한 것. 

이후 '킹인지 갓수성'이라며 이를 조롱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최고의 판단 기준으로 적용된다는 의미로 '킹', '갓' 같은  표현을 붙여 희화화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대법원이 해당 표현을 쓴 맥락을 보면 이것이 법적 절차나 논리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보긴 힘들어 보인다. 당시 판결요지를 살펴보자.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법원이 성인지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원칙은 법적 근거에 기반한 것이다. 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에 따르면 "국가기관 등은 양성평등 실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기본적인 원칙을 이야기한 것에 불과하지만, 국가기관인 법원이 소송의 심리 과정에서 성차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노력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해당 사건은 대학 교수와 학생 간에 일어난 일이다. 도지사와 수행비서의 관계에서처럼 '위력'이 발생할 수 있음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표현이 거슬린다면, '성인지적 관점'이라는 표현은 어떤가?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될 수 있으므로 그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하나의 '관점'인 것이다. 피해자가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에도 반대하는 이들 때문에 '킹인지 갓수성'이라는 괴상한 단어가 생겨났다. 

'킹인지 갓수성'은 안 전 지사 사건에도 등장했다. 많은 커뮤니티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조롱하며 '법 위의 법 아니냐', '킹인지 갓수성은 치트키(모든 것에 적용되는 강력한 한 수를 일컫는 말)다' 같은 반응을 보였다. 재판부가 어떤 측면에서 안 전 지사에게 유죄를 적용했는지, 위력이란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는지에 대한 부분은 무시한 채, ''감수성'으로 판결하느냐'는 불만을 표출하기에 바빴다.

피해자다움을 넘어, 권력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안 전 지사의 부인인 민아무개씨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언론이 보도하는 과정도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피고가 아닌 피고의 가족이 직접 나서서 '왜 저 사람은 피해자가 아닌가(혹은 될 수 없는가)'를 SNS를 통해 증명하기에 애썼던 것이다. 민씨가 김지은씨의 진단서를 SNS에 올린 것도 논란이 됐다. 많은 언론과 누리꾼들이 마치 이것이 김씨의 피해 주장을 뒤집을 수 있는 강력한 증거인 것 마냥 퍼 날랐다. 주고받은 메신저를 근거 삼아 성폭력이 아니라 단순한 연애 관계 아니냐는 반응도 심심찮게 나왔다.

피해자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거나 피해자답지 않다는 식의 피해자 탓하기(victim blaming)는 그간 많은 성폭력 사건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던 일이다. 위력이 작용하는 상하관계에서 성폭력이 일어나기 쉽다는 것을 감안하면, 제삼자가 피해자를 검증하려는 시도는 2차 가해에 가깝다. 성인지적 관점은, 일반 대중과 언론이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필요해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대법원 선고는 '성폭력 피해자 순수성 검증하기'에 열심인 언론과 누리꾼들을 향해 경종을 울리는 계기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대법원은 "일부 언행 등이 성범죄 피해자라면 보일 수 없는 행동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그러한 사정을 들어 피해자의 피해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기는 어렵다"면서 피해사실에 대한 피해자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성인지 감수성을 언급하며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통념적인 피해자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피해자를 탓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이제라도 바뀌어야 한다.

아직도 '킹인지 갓수성' 운운하며 '왜 피해자의 증언만 듣느냐'는 오해는 이제 끝낼 때도 되지 않았을까. 이번에 대법원이 '위력 행사'의 문제와 '가해자 중심 문화 성찰의 필요성'를 강조한 것에 집중하길 권한다. 정치적인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 가해자 중심의 문화를 만들고 방조해 왔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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