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에서 살아오니, 죽음보다 더 끔찍한 현실

폭행과 살해협박 일삼던 동거남, 끔찍한 범행 후 자살로 생 마감

등록 2019.09.11 17:32수정 2019.09.1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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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남에 의한 폭행사건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최윤경씨(뒷모습)가 ‘마음채움(범죄피해심리상담센터)’ 이성애 센터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충남시사 이정구

 
"여보세요. 경찰서죠. 저 좀 살려주세요. 권기영(가명, 동거남)이 망치를 들고 저를 죽이겠다며 따라오고 있어요. 너무 무서워요."
- 최윤경(48·가명, 충남 아산시 신창면)

"진정하세요. 차량을 멈추지 말고 계속 도망가세요. 위치 추적을 위해 전화는 끊지 말고 계속 운행하세요."
- 경찰


"그날 하루는, 공포영화보다 더 공포스러웠다"

최윤경씨는 그날의 끔찍했던 하루를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 쳐진다.

2019년 3월 30일 토요일 오후 4시. 평소 동거남 권기영(60·가명)의 폭행에 시달리던 최씨는 신변보호를 요청하기 위해 아산경찰서를 찾았다. 최씨가 경찰에 긴급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를 지급해달라고 했으나 "주말이라 어렵다. 월요일에 다시 오라"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그날 밤 10시 20분. 최씨가 운전하던 승용차를 뒤따라오던 1t 트럭이 들이받았다. 트럭 운전자는 동거남 권씨였다. 권씨는 승용차로 다가와 차문을 열라며 소리쳤다. 그의 손에는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망치가 들려 있었다. 겁에 질린 최씨는 도어 잠금 상태를 확인하고 112로 급히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최씨는 "곧 잡혀서 죽을 것 같다"고 울먹이며 계속 비명을 질렀다. 최씨는 공포에 질려 숨이 막히고 사지가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운전을 못할 것 같았다. 자신의 위급상황을 호소했지만 경찰은 최씨에게 진정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10여 분을 달렸으나 경찰은 나타나지 않았다.

최씨는 자신이 일하던 도고온천 휴양시설로 돌진했다. 운이 좋으면 시설 안에서 누군가 도움을 줄 것이고, 운이 나빠 자신이 살해를 당하더라도 시설 안에는 CCTV가 있어 증거가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에서 내려 시설 안으로 뛰어 들어가 도움을 요청하려는 순간 뒤따라온 차에서 내린 권씨가 먼저 최씨의 도주로를 차단했다. 권씨는 망치로 차 유리를 부수고 강제로 최씨를 끌어내렸다. 이어 권씨의 망치는 무자비하게 최씨의 머리를 가격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최씨를 10여 차례 가격한 권씨는 유유히 현장에서 사라졌다. 최씨에 따르며, 최씨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다던 경찰은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너의 엄마를 죽였다"

당시 최씨에게는 직장생활 하는 딸과 군복무중인 아들이 있었다. 사건 후 권씨는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는 딸과 군복무 중인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너의 엄마를 죽였다"고 말했다.

소식을 들은 딸은 당장 아산으로 내려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엄마를 보고 충격에 빠졌다.

동거남의 망치폭행 사건 후 최씨는 구급차로 긴급 이송돼 4시간의 수술 끝에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두개골이 파열되면서 각종 신경부위가 손상돼 균형 감각이 없어지고, 청각능력을 상실했으며, 이명에 시달리고 있다.

직장인이었던 딸은 최씨 간호를 위해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또 사고처리를 위해 최씨가 동거남 권씨로부터 폭행당하는 장면이 담긴 CCTV를 봐야 했다. 이후 딸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건발생 18시간 후 동거남 '자살'

권씨는 망치로 수차례 가격한 후 최씨가 의식을 잃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죽은 것으로 인식했다. 그 자리를 벗어난 권씨는 최씨의 자녀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너의 엄마를 죽였다"고 말한 후 공주시 탑골길 야산으로 도망쳤다. 이곳은 그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마을이다.

권씨는 야산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사건발생 다음날인 3월 31일 오후 4시 40분 경찰은 공주시 탑골마을 야산 중턱에서 나무에 목을 매 숨진 권기영씨를 발견했다.

지금까지 경찰이 피해자 최씨에게 준 '사건확인서'를 토대로 당시 사건을 재구성해보았다. 시간을 24시간 전으로 되돌려보면 이 사건에 너무 큰 아쉬움이 남는다. 경찰이 신변보호 요청을 하러 온 최씨를 월요일에 다시 오라며 되돌려 보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한밤중 살해 위협을 받으며 도주중이던 최씨를 경찰이 조금 더 빨리 찾아냈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위치추적중이라던 경찰은 사건을 예방하지 못했고 범인도 검거하지 못했다. 결국 최씨는 끔찍한 피해를 입었고, 범인은 하루가 지난 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경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죽음보다 비참한 현실과 만나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란 최윤경씨는 한 때 꿈의 직장으로 불리던 K은행 직원이었다. 이 곳에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고 두 명의 자녀를 낳아 기르며 행복한 미래를 설계했다. 그러다 1997년 IMF를 만나면서부터 둘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둘은 은행을 떠나야 했고, 명예퇴직금으로 받은 돈은 남편이 사업자금으로 모두 날렸다. 이후 더 이상 부부의 인연을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던 중 최씨는 권기영씨를 만났고, 그의 권유로 아산에 정착해 살다가 권씨의 폭력에 비극적인 상황을 맞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최윤경씨는 죽음보다 더 비참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은행원 시절의 경력을 바탕으로 기업 등 다양한 곳에서 경리업무를 맡아 경제활동을 해왔지만 지금은 몸을 크게 다쳐 근로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최윤경씨 가족은 누구도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 38만 원의 임대아파트를 지켜낼 여력도 없다. 얼마 안 되는 정부지원금은 병원비, 약값으로 모두 소진하고 당장 의식주 해결마저 힘들다.

최윤경씨 가족이 그동안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훌훌 털고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웃들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
덧붙이는 글 ☞<충남시사><교차로>는 삶이 벼랑 끝에 내몰린 어려운 이웃을 발굴해 지원하고 응원하는 ‘희망나눔 1004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동행을 위한 1인1구좌(1004원) 기부운동에 시민여러분들의 따뜻한 관심과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후원문의:041-555-5555) 이 기사는 <충남시사신문>과 <교차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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