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허리 휘는 마트 노동자들 "상자에 손잡이만 달아도..."

[현장] 마트노조 "종이상자에 손잡이만 달아도 부상 예방"... 고용노동부에 요구안 전달

등록 2019.09.10 14:20수정 2019.09.1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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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이 10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장교동 고용노동부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거운 상자에 손잡이를 설치하고 포장 단위를 줄여 상자 무게를 줄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김시연

   
"2리터 생수 6개 잠깐만 들어도 무거우시죠? 그걸 온종일 쌓고 옮기고 진열하는 게 우리 일입니다."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고용노동부 서울지방노동청 앞에 선물세트 포장 상자가 가득 쌓였다. 무거운 명절 선물세트 물량을 참다 못한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상자에 손잡이라도 뚫어달라며 찾아온 것이다. 

"상자에 손잡이 설치하면 허리 부담 10~40% 줄어"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김기완 위원장, 아래 마트노조) 조합원들은 10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장교동 고용노동부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의 요구는 소박하면서도 절실했다. 마트 노동자들 허리가 휘지 않도록 무거운 상자에 손잡이를 설치하고 포장 단위를 줄여 상자 무게를 줄여달라는 것이었다.

김기완 마트노조 위원장은 "입사할 때 건강했던 직원도 대형마트 3년 정도 다니면 병원에 다니기 시작하고 10년 이상 다닌 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팔다리 아프고 심각한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질량이 무거운 박스에 손잡이를 설치해 달라는 게 마트노동자들의 소박한 바람"이라고 밝혔다.

실제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지난 6월 26일 마트 노동자 5177명을 대상으로 '근골격계 질환 실태조사' 결과 69.3%가 근골격계 질환 증상으로 지난 1년간 병원 치료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관련기사 : "의자 앉으면 건방지다?" 마트 노동자 6.5시간 서서 일해 http://omn.kr/1juq0)

특히 마트에서 음료, 주류 등을 담당하는 후방 작업자의 경우 평균 10.8kg 상자를 하루 평균 403회 정도 드는 것으로 조사됐고, 선물세트가 들어오는 명절 물량은 평소보다 3~4배나 많았다.

당시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포장상자에 손잡이만 부착해도 중량물 무게를 9.7%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고, 작업 자세까지 개선하면 최대 38.7%까지 감소 효과가 있어 그만큼 요추부 부담이 줄어든다"고 밝혔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665조)에도 5kg 이상 중량물을 들어 올리는 작업을 할 경우 "취급하기 곤란한 물품은 손잡이를 붙이거나 갈고리, 진공빨판 등 적절한 보조도구를 활용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사업자는 상자에 손잡이를 뚫으면 틈새로 벌레가 들어가거나 제작 단가가 더 든다는 이유로 잘 지키지 않고 있다.

"손잡이 있는 상자 들어보니 신세계 만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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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이 10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장교동 고용노동부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거운 상자에 손잡이를 설치하고 포장 단위를 줄여 상자 무게를 줄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임의로 손잡이를 만든 상자를 들고 있는 이마트 성수점 장성민(왼쪽)씨와 홈플러스 합정점 오재본씨. ⓒ 김시연

 
홈플러스 합정점 가공 부문에서 일하는 오재본씨는 이날 "간장 5리터짜리 몇 상자면 15kg이 넘고, 설탕 3kg짜리 상자 4~5개를 동료들이 온종일 뛰어다니며 엘카(손수레)로 밀고 당기고 다닌다"면서 "누군가는 갈비뼈가 골절되고 허리디스크가 오기도 하고 하반신이 완전히 돌아가 수술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며 울먹였다.

오씨는 "명절 선물세트 물량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세트가 (아래, 위) 2단으로 쌓이는데 작업자가 들어갈 수 있는 길도 모두 막혀 있어 사다리로 올라가 내려야 한다"면서 "며칠 전부터 물건이 더 들어올 수 있으니 후방(창고) 정리해야 한다고 해서 어제도 저녁 먹고 10kg, 20kg짜리 상자 들고 정리하다 왔다"고 호소했다.

오씨는 "손잡이 있는 상자를 들어보니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돈도 안 들고 마트노동자들 건강권을 지키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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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형마트 창고에 쌓여있는 명절 선물세트 상자들 ⓒ 마트노조 제공

 
이마트 성수점에서 검품 업무를 맡고 있는 장성민씨도 "물건이 마트에 들어오면 분류하고 창고까지 전달하는 업무를 하는데, 물건을 끌고 다니며 하루 평균 3만 보를 걷는데 몸이 멀쩡하다는 게 말이 안된다"면서 "명절 앞두고 물량이 평소보다 몇 배 늘었는데 우리 파트 인원은 5명이 줄었다"고 밝혔다.

장씨는 "서로 아프지 않고 일하는 현장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이마트는 인원 줄이는 걸 멈추고 충원해 주길 바라고 상자에 손잡이도 생기고 물건도 소포장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이날 "마트 고객들도 2리터 생수 6개 묶음을 들 때마다 무겁다고 할 것"이라면서 "마트 노동자들은 그 무게를 훨씬 뛰어넘는 상자들을 손잡이도 없이 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위원장은 "상자 양쪽에 손잡이 구멍을 넣는다고 제작 비용에 큰 차이가 없다"면서 "고용노동부가 중재하고 체인스토어협회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마트노동자 조그만 고단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마트노조는 이날 기자회견문에서 "마트노동자들은 무슨 최신 설비나 기계적 보조도구를 제공하라는 게 아니라 그저 박스 양옆에 손잡이를 뚫어달라는 것"이라면서 "이 소박한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 병들지 않기 위해,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 싸울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고용노동부 담당자와 면담해 마트노동자 근골격계 실태 점검과 대책 마련, 모든 무거운 상자에 손잡이를 설치하고 포장단위를 소포장으로 바꾸라는 요구안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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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형마트 창고에서 노동자가 명절 선물세트 상품 상자 위에 올라가서 물건을 내리고 있다. ⓒ 마트노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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