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명절마다 시댁에 가야 하죠?" 필리핀 아내의 고민

여성 이주노동자의 명절 이모저모... 가족이 꼭 '위로'가 되진 않는다

등록 2019.09.13 13:37수정 2019.09.1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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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4총사가 일하는 농장시금치 재배가 끝나고 일주일 뒤에 일을 시작할 거라던 농장은 추석 연휴가 지날 때까지 무급 휴가다. ⓒ 고기복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민이나 한국인과 사는 모습은 다를 수 있지만, 사는 이치는 같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서로 보듬고 살기도 하고,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명절이면 그런 일은 더욱더 쉽게 일어납니다. 그들에게 명절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같은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쓰레이넛, 말라이, 쏘킴, 다린(모두 가명)은 사총사라고 불립니다. 넷 모두 캄보디아 출신인 데다 나이도 스물네 살로 똑같기 때문입니다. 넷은 농장 기숙사에서 먹고 자면서 마흔 동이나 되는 비닐하우스에서 대파, 브로콜리, 시금치, 상추 등의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비닐하우스 4총사인 셈이죠.

한국에 온 지 4년에서 4년 반으로 서로 입국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4총사는 모두가 이산가족입니다. 4총사를 이산가족이라고 하는 이유는 고국에 두고 온 부모형제 때문만은 아닙니다. 넷은 한국에서도 이산가족입니다.

비닐하우스 4총사는 지난주부터 농장 일이 없어서 쉬고 있습니다. 1주일 뒤에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던 사장님은, 태풍 때문인지 추석 지나서 일을 시작한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일하지 않는 동안 월급은 나오지 않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2주씩이나 돈도 못 벌고 이래저래 심란할 법도 한데, 4총사는 오히려 신이 났습니다.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쉬는 동안 넷은 용인이주노동자쉼터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비닐하우스 4총사 중에 쓰레이넛, 말라이, 쏘킴은 한국에서 만난 캄보디아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남편들은 모두 공장 노동자입니다. 결혼했지만 직장이 달라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도 힘듭니다. 평소 한 달에 두 번밖에 쉬지 못하는 데다 쉬는 날이 토요일인 농장 특성 때문에 일요일에 쉬는 남편들과 만나려면 사장님 눈치를 봐야 합니다.  한편 결혼하지 않은 다린은 일란성 쌍둥이입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 입국을 위한 한국어 시험 성적이 좋았던 동생은 공장에서 일합니다. 역시 휴무일을 맞추려면 어느 한 쪽이 일부러 휴가를 얻어야 합니다.
 

쉼터에서 식사 중인 이주노동자들가족을 만나러 떠난 친구들과 달리 쉼터에 남은 이주노동자들이 식사하고 있다. ⓒ 고기복


[쓰레이넛] 
쓰레이넛은 남편을 만나러 갔습니다. 남편이 추석 연휴 전후로 엿새 동안 휴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번 추석에 쓰레이넛은 남편과 진지하게 논의할 일이 생겼습니다. 사장님이 '성실근로자'로 재입국하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출국 후 3개월만 지나면 다시 입국해서 또다시 4년 10개월을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놓치기 아까운 기회입니다.

반면, 귀국 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 남편은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아이도 빨리 갖기 원하고 있습니다. 이번 추석이 설레기도 하지만 다툼이 있지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쓰레이넛은 남편과 같이 쉼터에 한 번 오겠다고 합니다. 남편이 한국에서 계속 사는 것을 동의해 줄 거라고 은근히 기대하는 모양입니다.

[쏘킴]
쏘킴은 비닐하우스 농장에 가기 전 사슴농장에서 일할 때 남편을 만났습니다. 사슴농장은 사료를 주거나 배설물 치우는 작업을 할 때 큰 힘을 필요로 하므로 남자들도 일 년을 버티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다. 옆 공장에서 일하던 남편은 쏘킴이 힘들어 할 때마다 용기를 북돋아 줬습니다.

사슴농장을 그만두기 전에 둘은 친구들 앞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2년 전 이야기입니다. 결혼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남편 회사가 경기 광주로 옮기면서 만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쏘킴 역시 비닐하우스 농장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만남은 더욱 어렵게 되었습니다.

쏘킴은 농장 휴무가 시작된 다음 날, 쉼터에서 하루 자고 곧바로 광주로 떠났습니다. 남편이 회사 사장님에게 쏘킴이 휴가 기간 동안 기숙사에서 지내도 된다고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남편 동료들은 휴가 기간에 친구를 만나든지 가족을 만나러 다들 어디론가 떠난다고 합니다.

쏘킴은 아무리 부부라고 하지만 회사에서 남자 기숙사에 여자를 들이는 경우는 없다는 걸 알기에 쉼터로 왔던 겁니다. 그래서 사장 허락을 얻어낸 남편이 여간 미더운 게 아닙니다. 사장님이 이산가족을 배려한 걸 보면 남편은 회사에서 인정받는 모양입니다.

[말라이]
말라이는 지난봄에 결혼했으니 한참 깨가 쏟아져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남편과 크게 다툰 이후로 남편이 먼저 찾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남편을 만나고 동생을 만나러 갈 계획을 세우지만, 말라이는 비닐하우스로 가기로 했습니다. 눅눅한 장판 위에서 혼자 자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씩씩거리며 남편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본다고 합니다. 투닥투닥 심술이 나긴 해도 아직은 신혼입니다. 이번 추석이 남편과 화해할 기회가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린] 
다린은 어려서부터 집안 살림을 했던 살림꾼입니다. 살뜰하게 동생을 챙기는 걸 보면 일란성 쌍둥이인데도 언니는 언니입니다. 동생은 제조업 노동자로 입국해서 언니보다 월급은 많지만, 한 번은 임금체불로, 또 한 번은 관리자 폭행 문제로 회사를 옮겼습니다.

다린은 동생이 혹시나 다시 회사를 옮겨야 하는 일이 생길까 봐 토·일요일에 쉬는 동생에게 오라 가라 말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한 달에 겨우 두 번 쉬는 토요일에 짬을 내서 혈육을 찾는 건 언제나 언니인 다린 몫이었습니다.

이번 추석도 다린은 동생을 찾아갑니다. 공장에 직접 가지 않고 수원역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동생 회사에서는 가족이라고 해도 외부에서 누가 찾아오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은 이주노동자쉼터에서 추석 음식도 만들고 가까운 민속촌에도 놀러 갈 계획입니다.

언니가 부담스러운 해치
 

캄보디아 음식해치 언니는 동생을 부를 때면 캄보디아 음식을 만들어주곤 했다. ⓒ 고기복


그런데 비닐하우스 4총사의 추석 계획을 지켜보는 해치(가명)는 착잡하기만 합니다. 해치는 이주노동자쉼터에 들어온 지 벌써 두 달이 넘습니다. 이제 보름만 더 지나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잃게 됩니다. 이주노동자들은 구직 신청 후 3개월 안에 직장을 찾아야 하지만, 고용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으면 이주노동자 스스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런 해치를 보며 닦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10년 전 한국에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로 왔다가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한국인과 결혼한 언니입니다. 언니는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고향에 돈을 자주 보내지 않았습니다. 사실 거의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런 언니를 두고 형제들은 욕심 많다고 원망했지만, 부모님은 제 앞가림만 해도 된다고 두둔하곤 했습니다.

해치는 3년 전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조카를 봤습니다. 당시 세 살배기 아기를 두고 있던 언니는 공장에서 일해야 할 만큼 살림이 고만고만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원망했던 마음이 조금은 사그라졌습니다. 지난해까지는 추석에 친구들을 데리고 언니 집에서 캄보디아 음식도 같이 만들고, 조카와 놀기도 하면서 이국땅에서 가족만한 게 없다는 걸 느끼기도 했습니다.

원만해졌던 관계는 지난 2월에 해치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부터 다시 소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언니는 아직 새파랗게 어린 애가 결혼한다고 트집 잡았지만, 이주노동을 와서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동생이 마뜩치 않았던지 결혼식에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언니가 추석에는 꼭 집에 들르라고 연락해왔습니다. 남편을 데리고 오라는 말은 없었습니다. 해치는 환영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남편을 설득해서 언니네로 갈지 말지 고민입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명절에 만나자고 하지만, 막상 가서 상처를 받을까봐 걱정입니다. 해치에게 차라리 명절이 없었다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왜 명절 때마다 시댁에 가야 하죠?"

메이첸(가명)은 결혼 2년차 필리핀 결혼이주여성입니다. 일요일마다 한국어교실에서 공부하고 평일에는 혼자 공부하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남편은 과묵하기 때문에 한국어가 쉬이 늘지 않습니다. 이번 추석에 메이첸은 시댁에 갑니다. 시댁 어른들과 음식을 만들며 명절을 지내고 오면 늘 몸도 마음도 피곤했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명절엔 당연히 가족과 함께 하는 거라고 말합니다.

메이첸은 몸이 피곤한 건 견딜 수 있지만, "애는 언제 가질 거냐"라는 시댁 어른들 질문이 참 난감합니다. 심지어 그 와중에 시누이들로부터 '일은 안 하냐'는 말을 들으면, 직장 구하지 말라고 했던 남편 탓을 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 메이첸이 바라는 건 아이가 아니라 일자리입니다. 하지만 국적도 없고 한국어도 서툰 데다, 남편이 반대하는 결혼이주민이 일할 자리가 흔치 않다는 걸 시누이들은 모르는 모양입니다.

메이첸은 즐거워야 할 명절이 한국어 공부보다 더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는 걸 남편이 전혀 몰라주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메이첸은 남편에게 묻고 싶습니다. "왜 명절 때마다 꼭 시댁에 가야 하죠?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인가요?" 애도 없으니, 둘이 오붓하게 지내도 될 텐데 말입니다.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민에게 가족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가족을 생각하며 고향을 떠났지만, 남은 이들은 고향 떠난 이의 고통을 헤아리려 들지 않습니다. 믿을 만한 건 가족밖에 없다고 하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속을 긁어놓는 일도 일어납니다. 그래도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명절에 함께 있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즐거운 만남을 기대해도 될까요? 다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고기복 시민기자는 용인이주노동자쉼터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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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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