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차리기 싫다" 명절 보이콧, 그러나

밥만 차리다가 보낸 세월, 여성들의 한탄은 과장이 아니었다

등록 2019.09.14 11:35수정 2019.09.1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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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연휴 3일째쯤 엄마가 나에게 '저녁에 뭘 해 먹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엄마의 표정은 전장의 고독한 지휘관, 진리를 구하는 구도자 같았다. 엄마가 치른 명절이 도대체 몇 번인가. 그는 내가 아는 최고의 명장이자 현자인데도 명절 때마다 똑같은 함정에 빠진다. 하물며 나 따위 애송이가 답을 알 리 있나.

나는 어설픈 답을 내놓는 대신에 엄마의 최근 행적을 더듬었다. 엄마는 연휴가 시작되기 최소 열흘 전부터 시장과 마트를 오가면서 식재료를 사 모았다. 식구가 다 모였을 때 왁자하게 먹을 요량으로 평소엔 어림도 없는 자연산 송이나 대게, 한우에도 값을 치렀다. 반찬과 국이 냉장고에서 진을 쳐도 매끼 조림이나 찜, 구이를 만들고 외식 찬스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엄마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메뉴의 공백과 맞닥뜨렸다. 그것은 엄마 인생의 최대 난제이자 영원한 미해결 과제요, 거대한 음모였다.

사실 이 글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명절 증후군이라 할 만한 사건, 속된 말로 핵고구마가 떠오르지 않아서 난감했다. 일단 나에게는 명절 증후군의 온상인 시가가 없다. 친척들은 공원묘지에서 잠깐 만나는데 서로 안부나 물을 뿐 사생활은 캐지 않는다. 부모님께는 유비무환의 자세로 사전 작업(협박)을 해놓았기 때문에 결혼을 강요받을 일도 없다. 한마디로 고구마에 사이다로 맞선 대서사가 탄생할 환경이 아닌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 집의 명절은 평화롭다. 단 하나, 밥만 아니라면. 명절의 시작이자 끝이고 전부인 밥, 때로는 단지 밥이었다가 고작 밥 한 끼가 되기도 하는 그 밥 말이다. 

나에게 여성은 '밥을 차리는 성별'이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 집의 명절은 평화롭다. 단 하나, 밥만 아니라면. ⓒ pixabay

 
경상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20년 가까이 산 여성으로서 감히 말할 수 있다. 나에게 여성은 '밥을 차리는 성별'이다. 그것은 곧 '여성인 나는 언제든 밥을 차려야 할 운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의 운명을 실감한 사건이 벌어진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해 겨울 엄마가 갑상샘암 판정을 받고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그러자 밥 차리는 일이 나에게 주어졌다. 아버지와 오빠는 밥을 차리는 성별이 아니다. 나는 운명을 거부할 새도 없이 밥을 차렸는데 하루는 부엌에서 쌀을 씻다가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결국 나와 같은 밥 차리는 성별의 외할머니가 다녀가시고 국과 반찬 따위를 얻은 다음에야 눈물이 그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경상도가 화근이라고 생각한 나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미련 없이 고향을 떠났다. 하지만 운명은 나를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호기심에 따라가본 농활에서 입만 열면 진보를 외치던 마을 대장은 내가 속한 부녀회에다가 잔치에 쓸 밥상을 주문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오빠와 살았는데 부모님은 나에게 아무것도 못하는 오빠를 대신해서 밥을 차리라고 했다. 

나는 왜 번번이 밥에 진 걸까? 아마도 밥을 얕잡아 본 탓이리라. 밥의 위력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강력했다. 밥만 차리다가 한 세월을 다 보냈다는 여성들의 한탄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인생을 밥에 저당잡힐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내 삶은 밥으로부터의 도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왜 비혼이냐고 질문을 받으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이유가 '밥을 차리기 싫어서'다. 비록 밥을 차리는 성별로 태어났으나 나는 그보다 산만한 글을 멋대로 쓰거나 곤하게 한숨 자는 것이 더 좋다. 

그런데 명절은 내가 밥 차리는 성별이라는 잊고 있었던 사실을 일깨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너무 당연해서 강요된 줄도 모르게 말이다.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 고작 며칠이라고 해도 나는 여전히 밥을 차리기 싫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부엌인 것도 서글프다. 이는 비단 우리 집만의 풍경이 아닐 것이다. 아직도 여성들은 부엌에서 만나고 수저와 밥공기, 국그릇을 챙기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명절만 지나면 찾아오는 후유증 
 

명절은 내가 밥 차리는 성별이라는 잊고 있었던 사실을 일깨운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부엌인 것도 서글프다. 이는 비단 우리 집만의 풍경이 아닐 것이다. ⓒ kbs

지금이라도 밥 차리기 싫다고 선언하고 명절을 보이콧할까? 그런데 이 대목에서는 해묵은 콤플렉스가 등장한다. 내가 명절을 보이콧하면 명장에서 노장이 된 엄마와 어린 조카들을 돌보는 새언니는 지원병을 잃는다. 너무나 한국 여자다운 이런 생각을 페미니스트 자아가 내버려 둘 리 없다.

'이게 진짜 싸움이야. 여기가 현장이라고. 집안에서 싸우지 못하면 밖에서 아무리 떠들고 책을 쓴들 무슨 소용이야?'

엄마는 내가 갈등의 소용돌이에서 와해되고 분열되는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는 여전히 저녁 메뉴라는 난제를 풀지 못한 채로 시름했다.

"네가 잘하는 음식 그거 맛있어 보이던데. 그거 해볼까?"

인스타그램에서 내가 만든 음식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하긴 엄마가 나의 분열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어느 정도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집밥스타그램'을 붙여가며 직접 만든 음식 사진을 열성적으로 올렸고 명절에도 한식이 지겨워질 무렵에 파스타나 샐러드를 자원해서 만들고 상에 올렸으니까. 

역설적이게도 밥은 차리기 싫지만 요리하는 건 좋아한다. 날 것을 자르고 다듬어서 맛을 내고 완성작을 먹어치우는 모든 과정이 좋다. 요리는 내가 나를 먹여 살리는 감각과 잠깐이나마 유능해진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 취미는 밥을 차리지 않음으로써 성립한다. 만약에 의무적으로 밥을 차려야 했다면 요리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우유 한 잔을 마시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자유와 나를 먹이는 수고,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다. 자유를 지키느냐, 수고를 감당하느냐는 전적으로 내 마음, 내 기분에 달렸다.

정형화된 고구마에 치이지도 않았는데 명절을 보내면 나름의 후유증이 시작된다. 서울에 와서도 원래의 감각이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돌아온 나의 작은 집, 이곳에서는 내가 밥을 차리는 사람이 아님을 안도하다가, 다음 명절에는 밥을 차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다시 우유와 사과 한 알에 적응하려는 차에 냉장고에서 웅크리고 있는 엄마의 음식을 발견한다. 엄마가 책을 읽거나 늦잠을 잘 시간에 만든 그 밥이 며칠간 나를 먹여 살린다.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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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여자>를 썼습니다. 한겨레ESC '오늘하루운동', 오마이뉴스 '한 솔로', 여성신문 '운동사이' 연재 중입니다. 노는 거 다음으로 쓰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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