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흔적을 지우는 일, 그것도 사랑이었다

시인 김소연의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를 읽고

등록 2019.09.11 14:50수정 2019.09.1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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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주 전. 나는 연인과 웃으면서 헤어졌다. 3년의 시간은 커피를 홀짝이며 창문을 응시하다가 그렇게 쉽게 가버렸다. 그녀와의 헤어짐을 마음속으로 미리 준비한 것일까? 분노보다는 아쉬움이 나의 마음을 저며왔다. 아쉬움도 떠나갈 즈음에는 오히려 생각은 차분해 졌다. 이제 남은 건 이별을 혼자 마무리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김소연. 문학과 지성사 ⓒ 문학과 지성사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할지 망설이다가, 문득 김소연 시인의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라는 책이 내 눈에 들어왔다. 간만에 찾아온 외로움이 책 제목으로 눈길을 끌게 만들었다.

물론 이 책에는 속칭 보편적인 연애라고 하는 멜로드라마적 서사가 담겨 있지 않았다. 첫 페이지에서 부터 그는 사랑을 설렘으로만 포장하는 것과 거리를 둔다. 대신 이별이 적나라하게 포함된 사랑뿐만 아니라 왜곡되거나 쌍방향으로 통하지 않는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묘사한다. 

그리고, 그의 산문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읽는 내내 이 책은 리얼리티가 가득 담긴 다큐멘터리 인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이별을 마주하고 있거나, 서로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려는 연인들에게 이 책이 쉽게 읽힐 듯하다.
 
 "사랑에 대하여 무지한 채로도 사랑을 했던 나같은 이들이, 사랑으로 부터 소외된 것으로써 사랑을 소외시켰던 것이다."

특히나 그의 담백한 고백은 누군가를 사랑했던 과정을 꺼내보게 만들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책을 읽으면서, 사랑에서 이별까지 다다른 나의 상황 하나하나를 펼쳐봤다.
 
"노력을 했지만, 지속성이 떨어졌고, 애써 이해를 했지만 기억력이 짧았다. 노력과 이해가 습관처럼 저절로 몸에 배게 되는 세월이란 것이 그들에게도 찾아올 것을 믿었다." 

"세월이 오래 흘러 노력과 이해 없이 저절로 익숙해질 때까지, 그는 그녀를, 그녀는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바라보았다. 이상해서 흥미로운 사람으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의 책은 첫장부터 이별을 염두해두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공감할 만한 부분을 보여준다. 사실 보편적인 연애 관련 서적이 조명하고 있는 사랑은 설렘과 두근거림, 반함에서 연인으로 발전되기까지 필요한 기술 정도에 가깝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미묘한 차이가 점점 벌어지다 못해 각자 흥미로운 사람으로 방치되고 마는 사랑의 상황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만남의 순간을 진심으로 함께하지 못하고, 각자의 외로움은 깊어져만 가는 것이다. 

오래 사귄 커플들이 갑자기 헤어지게 되면 "어? 저 커플오래 잘 사귀다가 왜 헤어졌대?"라는 이야기가 주변을 맴돈다. 아마, 익숙함과 애틋함, 오래 갈 것만 같은 느낌이 더이상 사랑의 모습을 유지해 내지 못했다는 것을 그들만 알 것이다.  
 
 "사랑을 끝내는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기억 속에 서로 다른 절망으로 각자 빠져든다.

시작된 사랑에 대하여는 두 사람이 같은 회고를 할 수 있지만 끝낸 사랑에 대하여는 두사람의 입장 차이가 크다."

이별을 선택한 연인들은,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과거의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곱씹어 본다. 그러나, 작가는 끝난 사랑에 대한 가치판단을 멈추고, 그대로 두라고 이야기한다. 이별을 판단하려고 들면 들수록, 부분적 진실만 존재한 채 누군가는 반드시 나쁜 사람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별은 사랑했던 흔적을 최대한 지우는 일을 우선 수행해야 한다. 그래야 사랑했던 기억을 가까스로 오염시키지 않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랑했던 순간보다 더 깊이 이별을 사랑해야 한다."
 
작가는 결국 과거의 사랑에서 사랑하던 사람을 뿌리째 뽑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지나간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고 처음 연인과 포옹하듯 입을 다무는 것 또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사랑해온, 사람을 명사로 고정하는 사랑의 담론들에 비켜서서, 사랑이 더이상 감정의 영역에 머물러 있게  내버려두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학습해온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힘도 없다. 하지만 사랑함은 그렇지 않다. 삶이 사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세상이 사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세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만약 다음 사랑도 이렇게 된다면, 그리고, 똑같은 이별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든 붙잡고 하소연을 하고 입을 열지 않던가. 

그러나, 사랑함을 준비하라는 작가의 외침은 입을 열려던 나를 멈칫하게 했고, 이별은 그냥 끝이 아니라 사랑함의 과정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열리게 됐다. 

판이한 사랑 문화의 틀속에 같혀 끝모를 외로움, 적적함, 배고픔에 허덕이지 말고 온전한 외로움을 느끼고, 헤어짐 또한 사랑임을 이해하는 것이 해방되는 것임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가 곱씹어 보며. 

서로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고 있는 연인들이라면, 이 책을 덮을 때 즈음에는 사랑하는 또는 사랑했던 누군가와 함께 갈수도 있고, 달리 갈수도 있고, 인사만 할 수도 있다는 서사를 담담히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와 비슷하게, 이별을 마주한 이들은 아마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인연이라는 외로운 강에서 표류하게 될 것이다. 만약 우연히 만난 이와 사랑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이 책을 읽은 당신은 어떠한 이야기를 하게 될까.
 
시스템 속으로 진출하는 일과 안정적 입지를 욕망하는 일과 그럼으로써 더 큰 불안의 수렁 속을 헤매는 일을 그만두는 일.

새로운 경험의 세계로 입성하여 불안의 출렁임을 함께 즐길 용기를 내어주는 일.

안정보다는 표류를 함께 도모하는 일.

삶에 관하여 영원히 딜레탕트로 남는 일.

불안에 관하여 가장 전문적이고 능란해 지는 일.

이런 일을 함께할 사람을 곁에 두는 생을 그녀는 사랑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김소연 (지은이),
문학과지성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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