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울 곳도 없어요, 추석 쇠러 우리가 애들에게 가야죠"

'역귀성' 고성 산불 이재민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

등록 2019.09.13 19:25수정 2019.09.1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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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 튼실하게 영글어 고개를 숙인 벼가 가을을 알리고 있다. ⓒ 정덕수


"말해 뭐 합니까? 뾰족한 수단이 없는데요. 지금 어디 좀 다녀와야 해서 제대로 얘기를 나눌 수 없네요. 미안합니다만 이 앞 집에 한 번 들려 얘기를 들어봐요."  

지난 봄 식목일을 하루 앞둔 4월 4일 저녁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미시령로 주유소 인근에서 발생한 고성·속초 산불로 1400㎡ 규모에 이르는 건축자재 도매업을 하던 사업장과 함께 사무실과 생활공간으로 사용하던 2층 구조의 벽돌집까지 모두 불에 탄 최점만(63)씨가 9일 한가위를 목전에 두고 현장을 찾은 기자에게 한 말이다.

"밖에 나가면 고성산불로 피해보상을 모두 받았다는 말들을 하는데 정말 속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그런 말에 분통이 터집니다. 30억 원이 넘는 자재와 창고가 모두 불에 탔는데 아직 우리 같은 소상공인에 대한 대책은 없습니다."

임시 거주하는 7평 남짓한 임시조립주택을 나서는 최씨와 부인에게 "추석이 며칠 안 남았는데 이번 추석에 자녀분들과 어떻게 지내기로 했나요"라고 물었다.

"집도 좁으니 자식들 여기로 오지 말라고 했어요. 다투고 돌아누울 자리도 없는데 자식들과 여기 어떻게 모이겠어요. 우리가 자식들 집으로 가기로 했어요."

"건축자재 도매업 해왔는데 건축자재가 모두 잿더미로"
 

임시주거용 조립식주택이재민들의 임시 거주를 위해 제공된 조립식주택은 예전 단열도 안 되던 조립식 컨테이너 주택에 비하면 기본 생활을 하기에 큰 무리는 없으나 협소해 4인 가족은 생활하기 어렵다. ⓒ 정덕수


   

이재민도 생활하려면 직접 농사를 짓거나 일을 해야 한다. 할머니는 외출 하셨다며 집을 안내한 손자를 따라 들어간 방에는 할머니가 정성껏 키운 고추를 말리고 있었다. 손자는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부모는 바로 옆 조립식주택에서 지낸다고 했다. ⓒ 정덕수


   

잠시 햇살이 비치자 빨래를 밖에 내놓았다. ⓒ 정덕수

 
오래 전 탄광촌에서 흔하게 만나던 사택처럼 보이는 임시조립식주택이 마을을 형성한 고성군 토성면 용촌2리엔 30여 호가 넘는 이재민이 생활하고 있다.

그 중 한 주택을 부부가 함께 쓰는 최씨는 "30여 년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에서 건축자재 도매업을 해 왔는데 이번 산불로 속초·고성·양양지역 철물점에 납품하던 건축자재가 모두 잿더미가 됐다"며 누렇게 벼가 알곡을 맺은 논을 가로질러 보이는 2층 구조의 가옥을 가리켰다.

2005년 양양에서 발생했던 산불로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 제공된 임시조립식주택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좋은 조건이라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임시 거주하는 조립식주택이라 한가위에도 가족이 모일 수 없다.

7평을 약간 넘길까 싶은 조립식주택엔 수도가 연결된 작은 조리대와 에어컨을 비롯해 TV가 설치돼 있다. 수세식 화장실에서는 간단하게 샤워도 할 수 있다. 여기에 냉장고와 침구류를 들여놓은 공간은 말 그대로 단칸방 그대로다.

"피해보상 받은 줄 알 때가 가장 힘들다"
 

용촌2리의 건축자재도매상4월 4일 악몽 같은 밤에 30년간 아끼며 부지런히 일구어 온 삶의 터전과 전 재산을 일시에 잃은 최점만씨의 건축자재도매상. ⓒ 정덕수


   

녹슨 건축자재들불에 타지는 않았어도 지난 5개월간 피해규모 조사 등의 이유로 방치되어 녹이 슬어 제 구실을 할 수 없는 건축용 자재 ⓒ 정덕수


   

중·소상공인 피해 신고액이 1431억 원에 달한다고 강원도가 밝혔지만 이 또한 현장에서는 아직 전체적으로 집계된 피해 규모가 아니라고 했다. ⓒ 정덕수

 
동해안 산불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피해규모는 1431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지원 대책이 미흡해 만나는 피해 중·소상공인들은 고통을 호소했다. 최점만씨의 소개로 만난 천막과 포장재 등 각종 건설자재와 조경자재 도매업을 했다는 최만수(60)씨도 그런 중‧소상공인 중 한 사람이다.

최만수씨는 자재창고 5동과 생활공간까지 모두 불에 타 15억 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어디에 사업장이 있었나요"라 묻자 손짓으로 가리키는데 지난 6월 22일 속초에서 통일전망대를 향해 가는 도로변에서 찍은 제법 규모가 큰 점포였다.

20년간 열심히 일을 했다는 최만수씨는 "다섯 달째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며 "사람들이 이미 모든 피해 보상을 받은 줄 알 때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가위엔 자녀분들이 계시는 곳으로 가시겠군요"라 묻자 최점만씨와 같은 대답을 했다.
 

화재 이후 5개월의 흔적용촌2리에서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속초고등학교를 지나 버스승강장으로 나오던 중 지난 4월 현장을 취재하며 만났던 속초시 장사동의 한 가옥은 아직 철거도 안 한 상태로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 정덕수

 
황경애 화가는 속초 영랑호리조트의 모아갤러리와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의 작업실 그리고 동해안을 찾는 지인들과 이용하던 고성군 토성면 성천리의 민가까지 총 3곳의 미술 관련 사업장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다. 

현행법상 중·소상공인 피해에 대한 복구비 지원은 명시돼 있지 않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엔 사망·실종 등 피해 주민에 대해서는 긴급구호와 주거용 건축물 복구비 지원이 가능하고, 농림어업 시설 등은 복구 지원이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중·소상공인 피해에 대한 복구 지원은 자금 융자만 가능하게 돼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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