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해도 행복한 여행, 순례

[서평] '순례, 세상을 꽃피우다'

등록 2019.09.15 14:42수정 2019.09.1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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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이라는 말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게 여행 아닐까 생각됩니다. 책으로 읽거나 말로 전해 들으며 상상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입체적이지 않습니다. 호기심은 자극할지 모르나 실감나지 않습니다. 상상력은 글에 갇히고 감동은 표현력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직접 찾아가 두발로 걸으며하는 여행은 머리로만 하지 않습니다. 오감으로 더듬어 갑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 귀에 들리는 것들, 냄새로 다가오는 것들, 느낌으로 더듬을 수 있는 것들, 분위기로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 오묘하게 간섭하거나 충동질하며 잠재하고 있던 감정까지 일깨워 입체적 감동으로 발현됩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는 설렘은 출가수행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 가 봅니다. 여행을 하면서 겪게 되는 애로나 아쉬움, 여행 후 가슴으로 그려 쓰는 소감 또한 출가수행자라고 해서 별다르지는 않은가 봅니다.

<순례, 세상을 꽃피우다>
 

<순례, 세상을 꽃피우다> (엮은이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 펴낸곳 ㈜조계종출판사 / 2019년 9월 10일 / 값 17,000원) ⓒ ㈜조계종출판사

<순례, 세상을 꽃피우다>(엮은이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펴낸곳 ㈜조계종출판사)은 2013년부터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주관으로 이어지고 있는 해외순례에 참가하였던 순례자들이 7년 동안의 순례를 40여 편의 글로 담은 이야기입니다.

언뜻 기행문처럼 읽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마음 기울여 읽으면 출가수행자가 구법(求法)의 길을 따라 걸으며 거둔 전법의 알갱이들이 점차 농도를 더해갑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나 감흥보다는 전설처럼 남아있는 불교역사를 더듬어가는 여정은 여행을 여행이라 하지 않고 순례라고 하는 까닭을 알려줍니다.

구법의 길은 부처님이 태어난 인도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인도, 네팔, 중국, 일본, 몽골, 티베트, 부탄, 우즈베키스탄,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미국…. 사람 사는 곳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게 구법의 길이고 순례의 여정입니다.
 
그러나 역시 외국 가면 애국자 된다고 비행기를 타고 더 낯선 외국인들 사이에 섞이자 회색 유니폼이 참 돋보이더이다. 눈에 잘 뜨이니 좋았고, 다니다가도 늘 둘러보며 회색만 찾게 되고 시야에 회색이 보이면 일단 안심이 되고 든든하니 회색이 그리 따뜻한 느낌을 주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또한 한국 승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스레 느껴졌습니다. 확실히 소속감을 채워주기에는 외국이 최고인 듯합니다. -<순례, 세상을 꽃피우다> 086쪽-
 
부처님이 설법을 하던 영축산에서 삭발을 하고, 잿빛 승복을 입고, 황토색 진한 가사까지 갖춰 입은 무리의 스님들이 목탁소리에 맞춰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모습은 울림이고 감동입니다.

출가 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입버릇이 되었을 만큼 자주 독송하였을 게 뻔한 게 반야심경이지만 순례자가 돼 영축산에서 독송하는 반야심경은 뜻도 의미도 달랐을 겁니다. 마음에서 이는 감동은 구도의 각오를 다지는 맹세가 되고, 가슴에서 울컥 거리는 감정은 구도의 각오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글 속에 그런 감동과 느낌, 그런 각오와 의지가 주렁주렁합니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곳으로의 여행은 척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순례의 여정에 동참한 순례자들은 척박함은 불법으로, 불편함은 감동으로 승화시키며 여정을 이어갑니다.

책은 돈 주고 가라해도 마다할 여정에서 조차 순례자로서의 감동으로 빚어 쓴 순례 담이기에 읽는 이의 마음까지도 어느새 순례의 무리에 동행하게 하는 독서 순례가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순례, 세상을 꽃피우다> (엮은이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 펴낸곳 ㈜조계종출판사 / 2019년 9월 10일 / 값 17,000원)

순례, 세상을 꽃피우다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지은이),
조계종출판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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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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