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날 김밥 사서 보내고 알게 된 중요한 사실

[은경의 그림책편지] 국지승 지음 '엄마 셋 도시락 셋'

등록 2019.09.14 17:32수정 2019.09.1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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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그림책을 읽는 동안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을 때 이 글을 씁니다. 이번 글은 엄마의 이름으로 열세 살 딸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 기자말

"엄마 나 내일 현장체험학습."
"응. 밥은 사 먹는 거지?"
"아니, 선생님이 도시락 싸오랬는데?"

미안해. 깜박한 것도 아니고 아예 몰랐어. 집에서 막 일을 끝냈을 때가 오후 5시 반. 평소대로였다면 동네 마트에 가서 햄, 오이, 당근, 단무지 등 서둘러 김밥 재료를 사 왔을 거야. 그다음 오이는 길쭉길쭉하게 썰어놓고, 당근은 채 썰어두고 큰 쟁반을 꺼내서 김발이랑 참기름이랑 깨소금까지 다 세팅해놨겠지. 다음날 출근도 해야 하는데 아침에 그걸 다 하려면 시간이 없거든. 알람은 무조건 새벽 5시. 

나 어릴 적엔 소풍 가는 게 설레서 잠을 못 잤는데, 엄마가 되니까 너희들 도시락 못 싸줄까 봐 잠을 설치게 되더라. 정확히 5시에 울리는 알람 소리. 겨우 눈 비비고 일어나 밥을 안치는 것으로 시작되는 소풍날 아침 풍경. 햄 따위를 볶으면서 '췩췩' 하는 소리와 함께 취사가 완료되면 뜨거운 밥에 참기름과 깨소금을 아낌없이 '팍팍팍'. 

그다음 주걱으로 밥을 골고루 섞은 뒤 일회용 장갑을 낀 손으로 밥을 둥글게 덜어서 바삭한 김에 쫙 펴 바르는 거지. "앗 뜨거워 앗 뜨거워"를 연발하면서. 그 소리에 식구들 깰까 조심조심하면서. 그리고 각종 재료를 넣고 둘둘 말아주기만 하면 끝이야. 수북이 쌓인 김밥 하나하나에 참기름을 바르고 정성껏 칼질을 하면 도시락 싸기 끄읕!

이게 바로 네가 20개월 때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어린이집 시절부터 초등학교 졸업 무렵까지 소풍이나 현장체험학습을 갈 때마다 내가 해 오던 일이었어. 조금 늦게 출근해도 됐을 때는 아침으로 온 가족이 김밥 파티를 벌였지. 엄마는 일 년에 몇 번 하는 그 이벤트가 나름 좋았어. 너희들에게 부모로서 크게 잘해주는 건 없어도 '소풍 갈 때 도시락만큼은 직접 싸주자'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 도시락에 예쁘게 담긴 김밥을 볼 때마다, 그게 뭐라고 어찌나 뿌듯하던지. 

하지만 김밥 싸는 건 늘 만만치 않은 일이었어. 그래서 어쩌다가 너희들이 유부초밥으로 도시락을 싸 달라고 할 때는 내가 더 기뻤지. 아무래도 김밥보다는 재료 준비가 덜 하니까. 그래도 엄마는 엄마만의 특별함을 더하고 싶었어. 간 소고기를 볶아서 밥 속에 넣는 건 그래서야. 시중에서 파는 것에 든 속재료는 정말 부실하게 보였거든. 그런 나에게 네가 솔깃한 제안을 했어.

"엄마, 그냥 김밥 사. 엄마도 새벽에 김밥 싸고 출근하려면 힘들잖아."
"와, 그렇게 말해주니 너무 고맙다. 근데 왜 지금까지는 엄마가 도시락 싼다고 할 때 별 말 안 했어?"
"음... 그땐 내가 아직 철이 안 들어서?"
"으응? 지금은 철이 들었어?"
"5학년 때보다는 그렇지 않을까?"

철든 너한테 아직 철 안 든 엄마가 낚일 줄이야(왜 그랬을까...ㅠ.ㅠ). 다음날 아침 6시. 출근 준비를 대강 마치고 부랴부랴 김밥을 사러 갔지. 세상에 그 시간에 김밥을 사러 오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엄마는 처음 알았어. 15분을 기다린 끝에(새벽 6시에 주문이 밀려서!) 겨우 김밥을 들고 집으로 와서 도시락에 담으려는데... 아...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가끔 먹는 꼬마김밥이었는데, 그날따라 어찌나 속이 부실해 보이던지. 아삭아삭한 오이도 없고 말이지. 속이 상했어. 비뚤비뚤 잘라진 김밥 모양도 맘에 들지 않았고. '아... 그냥 내가 쌀 걸. 잠깐 고생하면 되는 건데...' 출근하는 발걸음이 도시락을 싸고 나올 때보다 더 무거웠어. 뭔가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어. 
 

국지승 지음 '엄마 셋 도시락 셋' ⓒ 책읽는곰

 
국지승이 쓰고 그린 <엄마 셋 도시락 셋>은 샛별유치원 소풍날, 하나 아파트에 사는 세 엄마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이야. 엄마처럼 직장에 다니는 지선씨는 서툰 솜씨로 김밥을 싸고, 그림 작가로 일하는 다영씨는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해 꼬마김밥을 부랴부랴 사러 나갔지. 세 아이를 키우는 미영씨도 아이들을 돌보면서 샌드위치를 도시락으로 쌌어(feat. 아빠들은 죄다 어딜 간 건지).

각자 일터와 집에서 '싸준 도시락을 잘 먹었나'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는 사이 작가는 말해. '(처리해야 할 일에 바쁜) 지선씨는 모릅니다. (그림 마감에 바쁜) 다영씨도 모릅니다. (해도 끝이 없는 살림을 하느라 바쁜) 미영씨도 아직 모릅니다'라고. 뭘 모른다는 걸까. 궁금해하며 페이지를 넘기다가 알게 되었어. 엄마들은 모르고 아이들은 아는 것 말이야.

엄마도 그랬나 봐. '초등학교 마지막 현장체험학습인데...'라는 생각만 했어도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꽉 차는 아침을 보냈을 텐데... 이쯤 되면 엄마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좀 궁금하지? 엄마가 이날 배운 거, 그러니까 너무 '해야 하는 것'만 고민하지 말라는 말이 하고 싶었어. 

힘들게 김밥 싸야 하는 것만 생각했지, 초등학교 시절 네 마지막 도시락이라는 걸 생각 못한 엄마처럼 말이야. 봄이 오는지도 모른 채, 꽃들이 지천에 피었는지도 모른 채 하루 하루 해야할 일들을 해내느라, 바쁘게 살기만 했던 그림책 속 세 엄마들처럼 말이야. 

물론 책임을 다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 하지만 주변을 살피는 것도 필요하다고 봐. 때로는 그 주변에서 인생의 의미나 재미를 찾게 될 때도 있더라고. 엄마가 김밥을 싸느라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었어. 뿌듯했고 너희들이 맛있게 먹을 생각에 실실 웃음이 날 때가 훨씬 많았어. 
 

워킹맘 지선씨처럼 20개월 이후부터 열세살 무렵까지 직접 만들었던 김밥. ⓒ 책읽는곰

소풍날 도시락이 너에게도 그저 한 끼 때우는 밥은 아니었을 거야. "역시 우리 엄마 김밥이야." 오랜만에 그런 마음 들지 않았을까? 학년이 올라가고 철이 들수록 '김밥을 싸고 출근하느라 엄마가 좀 힘들었겠네' 하지 않았을까? 5학년때와는 달랐던 지금의 너처럼 말이야. 

김밥집 도시락 하나 보내면서 진짜 많은 생각을 했다, 그치? 어쨌거나 이날 네가 나에게 준 가르침, 엄마도 잊지 않을게. 그래도 엄마에겐 아직 기회가 남았어. 네 동생 도시락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싸야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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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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