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질타하는 'SK 시위대'의 분노가 공허한 이유

[조국 사태, 난 이렇게 본다] 조국에게 돌 던질 필요 없는 사회를 향해

등록 2019.09.16 13:47수정 2019.09.1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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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 남소연

 
여기 27살의 A씨가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딸보다 한 살 어리다. A씨의 축적된 '교육 자본'은 장관의 딸이 그러했듯, 부러움 혹은 박탈감을 자아낼 만하다. A씨는 이미 고등학교 때 교환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오며, 영어를 터득했다.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배웠던 불어는 성년이 된 이후 이내 능숙해졌다. 프랑스 신문과 방송을 보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영국, 미국, 호주 등으로 여행을 다니며 이루어진 현장 학습은 영어를 일찍 깨우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됐다. 영어방송을 자막 없이 보는 등 개인적인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약관의 나이에 이미 3개 국어를 할 수 있었던 A씨는 이를 바탕으로 국제적인 엘리트 코스를 차곡차곡 밟았다. 영어권 국가나 유럽의 선진국을 두루 경험한 것은 물론이요, 아르바이트로 마련한 경비로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하며 넓은 견문과 자립심까지 쌓았다.

A씨는 진로를 놓고 고민 중이다. 경제적 부담이 거의 없는 학업을 계속해 박사학위를 취득할지, 사업가인 아버지의 권유대로 무역업자의 길을 갈지 행복한 고민에 쌓여 있다. 어떤 길을 택하든 A씨의 미래는 어두울 것 같지 않다.

기득권의 특혜를 서민의 일상으로

예로 든 A씨는 가상의 인물이다. 배경은 한국이 아니라 스웨덴이고, 두 명의 실제 사례를 믹스했다. 스웨덴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최연혁 교수의 저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에 소개되는 사례다.

한 명은 영어와 불어에 능통하고 아프리카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딴 뒤 워싱턴에 본부를 둔 국제기구에서 일한다. 다른 한 명은 영어와 독어 실력이 유창하고 23살의 나이에 독일과 스웨덴을 오가며 바이오 가스공급기 무역업을 한다. 둘의 공통점은 이미 청소년기에 영어를 능숙하게 했고, 해외(미국과 독일)로 조기유학을 다녀왔다는 점이다. 20세 즈음엔 모국어를 포함, 3개 국어를 할 수 있었다.


충격적인(?) 것은, 아니 좀 짜증이 나고 허탈한 것은, '교육 자본'이 우수한 A씨의 사례가 스웨덴에선 무슨 고약한 기득권층의 'SKY 캐슬' 놀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스웨덴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특혜를 누리는 기득권층의 자녀가 아니더라도 영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한다. 오히려 영어가 안 되는 학생이 소수파다. 유럽 내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 국민의 89%가 영어를 구사하고 30%가 3개 국어를 구사한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교환학생 자격으로 영어권 국가나 독일, 프랑스 등을 유학하는 것은 스웨덴에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교육과정이다. 무상 지원금과 장기 저리 융자를 더한 국가 재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대학생이 유학을 가면 현지의 등록금과 물가를 고려하여 국내보다 더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학비가 거의 들지 않는데도 대학 졸업 시 학자금 대출의 액수가 미국에 필적하는 이상한 나라들이다. 이는 복지를 바탕으로 웬만해선 부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생활비를 해결하는 개인주의 자립 문화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공정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누구나 누리는 국가 차원의 지원을 통해 경쟁의 공정성을 높여주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셈이다.
 
유럽연합에서 조사하는 20~29세 청년세대의 독립비율을 보면, 덴마크 85.7%, 핀란드 83.7%, 노르웨이 80.4%, 스웨덴 76.8%로, 북유럽 4개국이 유럽 내 가장 높다. 네덜란드(61.2%), 프랑스(60.1%), 영국(58.4%) 등이 뒤를 따른다. 유럽연합의 청년세대 독립비율 평균은 43.9%로 북유럽 4개국의 절반 수준이다. - 유럽통계청
 
잘못이 잘못이 아닌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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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이 9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 이희훈

 
'강남좌파'를 자처한 조국 장관은 미국에서 조기유학을 했던 딸의 각종 특혜교육 시비로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교육과 복지의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실로 '웃픈' 지점은 어떤 나라에서는 학생의 보편적 권리인 것이 어떤 나라에서는 기득권의 특혜요, 위선이 된다는 것이다.

조기유학을 떠나는 것, 외국어를 빨리 습득하는 것, 양질의 고등교육을 이수하는 것, 더 폭넓은 고등교육을 위해 유학길에 나서는 것 등은 기본적으로 자아실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이러한 자유를 사회적으로 극대화하기 위해 공공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나라도 있다. 하지만 이런 교육의 자유가 한국에서는 계급의 고착화로 인식되거나 위선이라는 비난을 받기 일쑤다.

조국 사태의 방아쇠 중 하나였던 장학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굳이 장학금이 필요 없는 선진적인 교육재정 제도가 있다면, 장학금의 공정성 문제는 애당초 불거지지 않는다. 한국에선 나라를 뒤흔드는 사태로 비화되는 사건이, 유용한 사회제도가 갖추어진 나라에서는 시빗거리 자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조 장관 딸의 봉사활동 표창장 논란도 '웃프기' 그지없다. 앞서 언급한 최연혁 교수의 책에서, 스웨덴의 자원봉사 문화는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로 요약된다. 시골지역은 봉사자가 모자라지만 도시는 지원자가 몰려서 1~2년을 대기해야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적십자사, 국경없는의사회, 구세군, (소외가정과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에릭스엘팬, (소외아동을 돕는) 브리스 등 여러 단체의 사정이 마찬가지다.

이유는 노인 봉사자 때문이다. 시간이 넉넉한 노인 세대가 봉사활동에 열심이다 보니 젊은이들도 어릴 때부터 자기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세대를 불문하여 봉사활동에 병목 현상이 있을 정도라면, 이게 무슨 스펙으로 취급되거나 표창장이 남발되는 일은 애초에 상상하기 어렵다. 스웨덴의 대학입시에 대한 소개 글을 보아도 봉사활동 여부는 따지지 않는다(대학원의 경우, 예외적으로 봉사활동을 고려하는 학과가 있다고 한다).   

선을 넘은 부모, 조국과 나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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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앞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이희훈

 
조국 장관의 검증 과정에서, 그의 딸이 고등학생일 때 논문의 1저자로 등재된 일이 알려지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그 불똥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게 튀었다. 조 장관을 맹폭했던 나 대표였지만, 그의 아들 역시 (조기유학 중이던) 고등학생 시절 서울대 연구실의 도움을 받아 학술대회 발표문에 1저자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유력인사의 미성년 자녀가 다른 전문 연구자들을 제치고 1저자에 오르는 일은 장학금이나 봉사활동 표창장 같은 사안보다 훨씬 복잡한 층위의 문제이다. 이 글에서 그와 관련한 쟁점을 다 다룰 수는 없고, 앞선 나라들이라면 한국과 달리 사건의 어느 부분이 부각되었을지 짧게 고민해보고자 한다.

학계의 투명성과 공정성에서 여타 선진국은 한국보다 우수하다. 교수 이하 연구자나 대학원생의 권리 보장이 훨씬 잘돼 있다. 이는 논문 등의 기여도 평가와 그 기재가 정당하고 믿을 만한 절차를 거쳐 이뤄진다는 의미이다. 만약 지금껏 한국에서 학계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다면, 고등학생의 1저자 등재사건이 처음부터 심각한 의혹으로 떠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선은 학계를 믿고 보는 것이다.

조 장관의 딸은 '학부모 인턴십'이라는, 유복한 소수에게 접근성이 좋은 공식 절차를 통해 논문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나 원내대표 아들의 경우에는 음성적인 인맥이 동원되었다. 나 대표가 직접 서울대 교수에게 연락을 했고, 이를 통해 그의 아들이 학술대회에 1저자로 참여할 수 있었다. '뒷구멍'을 이용한 후자가 더 나쁘다는 말도 있는데, 아무튼 공통점은 상위층 부모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교육의 기회 균등에서 한국보다 우수한 나라들에서도 조 장관 딸과 나 대표 아들의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면, 교육을 통한 지위 세습의 측면에서 비판이 나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재력과 인맥에서 우위에 있는 이들이 그 지위를 이용하여 기회 균등을 노골적으로 저해했기 때문이다. 또한 특혜 시비와 별개로 부모의 과잉 개입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됐을 것이라 추측한다. 한국에서는 논란조차 되지 않는 좀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의 접근이다.

복지 선진국이란, 한 개인이 가족의 도움이나 관여가 없이도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개인주의 가치관에 바탕을 둔 사회이다. 이러한 가치관이 발현되는 모습 중의 하나는 자식이 부모로부터 일정 수준 이상의 지원이나 간섭을 동시에 받지 않는 것이다. 대학에 갔다고 해서 그 비용을 부모가 대주지도 않지만, 대학을 가야 한다며 떠밀지도 않는 것이 비근한 예이다.

조 장관 부부와 나 원내대표는 자녀의 교육을 위해 갖은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행위는, 불공정 논란 이전에, 자식이라는 개인에게 부모가 과도한 개입을 한 것이다. 부모가 나서야만 할 중대한 학문적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자녀의 학업이 망가지는 것도 아니었다. (알려지지 않은) 자녀의 입장에서 볼 때, 순수하게 본인이 원하여 어려운 학술 작업에 나선 건지도 의문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암묵적으로 지켜지는 '개인주의 자립'의 원칙은 경쟁의 과열을 방지하고 자녀와 부모 모두에게 삶의 피로도를 낮춰준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자녀의 교육을 위해 도움과 억압이 혼합된 형태로 전력투구하는 부모가 허다하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이로 인해 온갖 부작용이 난무한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관여가 적정한 선을 넘었다는 것, 이번 1저자 사건에서 문제시되지는 않았지만 바람직한 개인주의의 확립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앞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2013년에 프랑스의 15살 고등학생이 Nature지에 실린 논문의 공저자로 등재된 적이 있다. 아버지를 포함하여 16명의 천문학자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소년의 이름은 닐 이바타. 5살에 수학과 물리학을 배우며 천재성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급기야 은하의 시각화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며 논문에 참여하고는 과학 학술지의 최연소 연구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처럼 공저자의 전문적 기여도가 투명하게 드러난 경우라면, 고등학생이 아버지와 함께 논문의 공저자가 된다 한들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논문과 관련한 공부도 제안했지만, 이 역시 부모의 과도한 개입과는 거리가 멀다. 조 장관의 딸이나 나 대표의 아들은 닐 이바타의 사례와 차이가 크다. 이 둘의 경우엔 부모가 자녀의 학술 작업에 끼어들 만한 정당성이 부족했을뿐더러 학문적 이유도 전혀 없었다. ⓒ 장제우


진짜 가져야 할 의문

개인의 책임과 자립을 강조하는 스웨덴의 개인주의는 국가의 재정을 통해 실현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최연혁 교수의 저서에 소개된다. 최 교수가 일본에서 만났던 스웨덴 출신 한 유학생의 이야기다. 국제무역을 전공하는 이 유학생은 이미 중고등학교 시절 교환학생으로 미국, 프랑스, 스페인에 다녀왔고, 당시는 리츠메이칸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아버지의 무역회사를 더욱 키우겠다는 포부를 가진 이 청년에게 최 교수는 아버지의 지원을 받느냐고 물어보았다. 학생의 답은 이러하다.
 
"스웨덴에서는 18세가 되면 모든 것을 부모와 상의 없이 할 수 있습니다. 재정적인 부분도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죠. 중고등학교까지는 부모님이 교환학생 비용을 지원해 주셨지만, 이후부터는 재정도 계획도 제가 책임을 지지요. 공부를 하면서도 계속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대학등록금은 무상이니까 생활비를 버는 셈이죠. 또 스웨덴 학비융자국으로부터 3분의 1은 무상으로, 나머지는 장기 저리로 융자를 받습니다. 등록금이 비싼 나라로 유학을 간 학생들도 마음만 먹으면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 최연혁 교수의 저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이처럼 사회의 지원과 개인의 책임을 조화시키는 '개인주의 복지제도'는 개인과 국가 모두의 경쟁력을 높여준다. 최 교수의 말마따나 한국 역시 중고등학교 때부터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외국어 교육정책과 대학생이 해외에서 공부할 수 있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조 장관과 나 원내대표의 자녀들처럼 잘 사는 일부만이 개별 자금으로 외국에서 교육을 받으며 그것을 특권화하는 게 아니라, 국가의 자금, 즉 세금으로 보편적 권리화하는 것이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라는 참으로 공허했던 문구는 이런 과정을 통해 최대치로 실현된다.

이때 우리가 가져야 할 의문은 이런 것이다. '아무리 국가의 재정으로 교육 비용을 뒷받침하더라도 모든 국민이 그 혜택을 누리지는 않는다. 모두가 유학을 가고 고등교육을 받을 수는 없잖은가. 혜택을 입은 고학력자들은 온갖 이득을 얻겠지만, 그와 무관한 많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런 허점을 메우는 것이 또 세금이며 복지이다. 북유럽의 경우, 저소득층으로 갈수록 확실하게 더 많은 복지혜택이 제공되며 그 질과 양이 OECD 최고를 달린다. 저소득층까지도 한국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내며 부담이 크지만, 돌아가는 복지의 수준이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예컨대 살림살이에 대한 유럽통계청의 통계 중에는 '주거비를 무거운 부담으로 여기는지' 묻는 설문이 있다. 빈곤층의 경우 노르웨이가 15.9%, 스웨덴이 18.7%, 덴마크가 19.2%로 조사된다. 유럽 내 가장 낮은 수준이다. 가장 가난한 이들의 주거 문제를 일말의 결함도 없이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인상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이것이 순전히 복지 덕분은 아니지만, 복지가 아니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주거비가 무거운 부담인지 파악하는 조사에서 전 소득계층의 경우에는 노르웨이가 5.2%, 스웨덴이 7.2%, 덴마크가 9.0%라고 응답한다. 한편 '주거비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는 답변의 비중을 보면, 전 계층 기준으로 스웨덴이 64.2%, 노르웨이가 63.2%, 덴마크가 62.4%를 기록한다. 빈곤층 기준으로는 스웨덴이 47.6%, 덴마크가 46.3%, 노르웨이가 44.3%이다. 이러한 세 나라의 살림살이 관련 통계는 모두 유럽 내 가장 좋은 성적이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고르게 잘 산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조사결과이다. - 유럽통계청
 
모두가 모두를 뒷받침해주기

덴마크의 보통 사람들은 '자기들이 낸 세금으로 변호사, 의사, 검사 등 사회의 모든 엘리트들을 공부시켰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덴마크 국민이 이런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저소득층까지도 세금 부담을 크게 지는 나라이니만큼 자부심을 가져도 무방한 것이 사실이다.

가만 보면, 한국이야말로 저런 자부심이 꼭 필요한 나라가 아닌가 싶다. 한국은 세금의 활용도가 매우 낮은 나라이고 '내가 낸 세금으로 엘리트들을 공부시켰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또 엘리트들도 자기가 잘나고 스스로 고생해서 힘든 교육을 이수한 것이지, 사회의 지원으로, 수많은 동료시민들의 도움으로 그 자리에 올랐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지난 시간 우리는 이른바 사회지도층에서 온갖 불의가 분출하는 것을 지켜봐 왔다. 세금과 복지가 허술한 사회구조는 힘 있는 자들의 부조리를 만연하게 한 토양이었다. 동료 시민들의 연대적 지원으로 엘리트가 길러지는 사회에서는, 또 그 연대를 토대로 약자들의 처우를 향상시키는 사회에서는, 기저에 흐르는 도덕적 각성에 따라 권력자들의 일탈이 훨씬 잘 제어되기 마련이다.

'조국 사태'가 터진 이후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들은 그의 사퇴를 촉구하며 시위에 나섰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사회구조가 무엇인지, 자신이나 조국 가족뿐 아니라 모두가 잘 사는 길은 무엇인지 고민해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내 앞길에 걸리적거리는 요소만 없애버리고 싶다는 '한국식 공정'과 '한국식 개인주의'가 나부낄 따름이다.

조국과 기성세대의 악습을 질타하는 SK 시위대의 분노에 나 역시 많은 부분 동감한다. 그러나 조국과 마찬가지로 사회 속의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학벌의 위력이 과대한 각자도생의 한국에서, 구세대 엘리트 조국의 허물을 답습해가는 것이 바로 이들 차세대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공정성 수호를 내세우지만, 자신들의 위치가 곧 불공정의 상징임을 자각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성장한 엘리트들이 차후 기성세대를 대체한들, 여태껏 그래왔듯 한국 사회의 공정성이 향상되기는 어렵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는 모든 시민이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서로 긴밀한 도움을 주고받는 사회이다. 이런 세상에서라야 나뿐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억울함을 느끼지 않고 공정하게 고르게 잘 살 수 있다. 사회제도적으로 모두가 모두를 뒷받침해주고, 인간 내면의 선의가 구현되는 나라. 나는 한국 사회가 이런 방향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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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열린 '조국 교수 법무부장관직 자진 사퇴 촉구 제3차 서울대인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정문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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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중앙광장에서 고려대 학생들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자녀 ‘특혜 논란’ 진상규명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조국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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