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조국이 오늘의 조국을 이끌 수 있기를

[조국 사태, 난 이렇게 본다]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보내는 인권활동가의 말

등록 2019.09.17 20:13수정 2019.09.1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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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논란'은 9월 9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의 임명 결정을 통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됐습니다. 하지만 소위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시사점을 남기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조국 사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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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이 9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급기야 '듣지 않은 귀를 사고 싶은' 지경에 이르러서야 임명 절차가 완료됐다. 문화학자 누군가 머나먼 훗날, 오늘을 되돌아보며 이 과열된 '현상'에 주목해 이유를 분석해주면 좋겠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후보자로 지명된 후 임명되기까지 근 한 달 넘는 동안 벌어진 설전에 대해서.

이 논쟁이 조국 개인을 넘어, 계급과 세대에 대한 생산적 논쟁으로 승화될지 모르겠다는 기대를 잠시 했다. 하지만 결국 너는 내 편인가, 아니면 나의 적인가를 확인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누구의 편도 아닌 사람들의 글과 말은 '그래서 너는 입장이 뭐냐'는 결론 앞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 하는 형편이다. SNS에서 회자된 김상봉 교수의 <한겨레> 칼럼(서울대생의 촛불, 너릿재 너머의 아이들)은 어떤 글일까? 조국 법무부 장관을 찬성하는 글일까? 아닐까? 아니면 도대체 어떤 의미가 담긴 텍스트일까?

내가 기억하는 조국

이런 마당에 무슨 말을 보탤까 주저하며 글을 쓴다. '사모펀드라는 건 사모님이 하는 펀드인 줄 알았다'는 친구의 말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자괴감에 대해 쓸까? 그가 후보자일 때 발표한 보도자료에 대한 글을 쓸까?

지난 8월 20일 조국 당시 후보자가 내놓은 정책 공약은 한마디로 '진보적인 학자로서의 조국'을 찾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범죄를 반복하는 정신질환자를 국가가 적극 치료하여 국민들이 불시에 범죄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는 공언은 정신질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의 말이자, 반복되는 범죄에 대한 대책조차 담지 못한 형편없는 내용이었다.

폭력시위를 두고 처벌을 운운한 대목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귀에 딱지 앉도록 들었던 말들이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할 일이라고 밝힌 첫 내용이 이 정도일 줄 몰랐다. 기존 법무부 정책 내용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실망스러웠다.

'서는 곳이 다르면 풍경이 달라진다'는 말처럼 마땅히 자연인이었을 때와 국정을 운영할 때의 그는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떻게 다를 수가 있냐는 질문은 옳지 않다. 자신의 관점을 주장할 때 그는 혼자 서 있는 것이다.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은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비판하며 반대편에 설 수도 있다.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이 된다면,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모든 이들 앞에 서야 한다. 국민에게 위임받은 국가의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자일 때의 입장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조금 더 보수적으로 될 수밖에 없고, 조금 더 오른쪽으로 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그가 어떤 입장을 가지느냐는 과거의 그와 무관하지 않다. 오늘의 그가 입각한 데는 그의 과거가 인용됐기 때문이다. 편파적이어서는 안 되지만, 이 정부의 청사진에 포함된 오늘의 그는 과거 그가 보인 말과 글과 꿈이 세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국 법무부 장관의 오늘에 꼭 한마디는 하고 싶어졌다. 과거를 복기하는 것은 쓸모없는 일일지 모른다. 넘치고 넘치는 말들 속에서 한낱 인권활동가의 말이 뭐라도 될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기억하는 조국을 이야기할 생각이다. 그는 인권운동의 오랜 동지였고, 선생님이었고, 든든한 후원자였다.

학자, 그리고 인권전문가

<조선일보>는 그의 과거가 마치 범죄라도 되는 양 말했다.

"조국, 이해찬 등 범여권 21명 후원회장 맡았다" (9월 10일 보도)

그랬다. 그는 정치인 이해찬과 박주민, 은수미의 정치적 후원자였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고 노회찬 전 의원의 후원회장이기도 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쌍용자동차 해고자 출신인 국회의원 후보 김득중의 후원회장이기도 했다. 유력한 정치인도 아니었으며 당선권도 아니었던 김득중에게 손 내밀어준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쌍용차 해고자들을) 대신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잘 아는 사람들이 나서서 문제를 직접 푸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에 앞서 2010년경에는 권력의 눈치를 보며 제 역할을 못하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사직서를 던지며 한국사회 인권의 위기를 알리기도 했다. "국가권력과 맞서는 인권위원장의 당당한 모습은 사라지고 권력의 눈치를 보는 초라한 모습만 남았다"는 것이 사직의 이유였다.

학자이자 인권전문가였던 그의 면모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서부터 사회권과 경제민주화까지 폭넓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그의 입장과 연구는 탄탄하고 정교했다. 연구뿐만 아니라 실천의 영역도 좁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청와대에서 보여준 면모는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그는 민정수석으로 일하는 2년여간, 민정수석과 장관 사이의 공백기 동안에도, 차별금지법에 대한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해 법무부가 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을 세우는 과정에서 기본권의 핵심 가치들이 스르륵 사라질 때도 그가 한 일은 별로 없었다. 양심수 문제 등 자신의 연구 분야와 관련이 있고 민정수석으로서 관장할 수 있는 일에서도 용기와 결단이 보이지 않았던 건 나만의 오해일까.

'촛불정부'의 초대 민정수석으로서 과감한 적폐청산과 개혁을 이루었는지를 짚어보면, 평가가 냉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민정수석의 능력만으로 두터운 관료사회나 일 안 하는 야당을 어찌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정치적인 빚 없이 출발한 정부가 초기에 이뤘어야 할 개혁의 책임을 청와대의 수석 비서관이 피할 길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이란 인물을 두고 청문회 이전부터 벌어진 온갖 비난과 논평을 보는 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에 대한 책임을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지 아직 밝히기 어렵지만, 적어도 어제도 오늘도 그에게 맹비난을 퍼붓는 보수야당의 여러 인사들은 낯부끄러워 염치를 갖고 봐줄 수 없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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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회찬 당시 진보신당 대변인의 <노회찬과 삼성X파일-권력과 자본에 맞서 싸운 7년의 기록> 출판기념회가 지난 2012년 1월 10일 오후 노원구민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조국 당시 서울대 교수가 초청돼 '북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 신원경

 
양가적인 감정의 둑은 하룻밤에만 여러 차례 우르르 무너졌다 쌓이기를 반복했다. 마치 임명권자가 된 것처럼 말이다. 오늘 그를 지지하는지 아닌지 여전히 알 수 없는 나는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심정으로 지나가는 시간을 지켜만 봤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전히 그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향한 기대와 평가의 말들은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넘치는 발화 중 어떤 법무행정을 할 것인지, 어떻게 차별과 혐오로 물든 사회에서 인권을 지킬 것인지 묻는 말들은 적다. 검찰개혁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검찰의 나라에서 벗어나면 국민의 나라가 되는 것인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있으면서 적폐청산과 사회개혁의 성과를 냈는지 등의 질문도 별로 없었다. 지지에도 비판에도 스펙트럼은 넓을 수 있다. 그 스펙트럼의 어디에서건 질문은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에 선 분명한 주문도 필요하다.

나중이 아닌 지금, 오늘, 여기 현재를 살아가는 나와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그래서 조심히 희망의 말을 보태본다. 어제의 조국이 오늘의 조국을 이끌 수 있기를. 그렇게만 된다면 논쟁의 바다에서 그가 임명된 일이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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