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삭발은 내게 모욕감을 줬다

[주장] 그로 인해 떠오른 '삭발의 추억'... 정치적 의도 뻔한 삭발은 공감 못 얻어

등록 2019.09.17 20:11수정 2019.09.1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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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16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 이희훈


16일, 제1야당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조국 법무부장관 파면을 촉구하며 삭발식을 거행했다. 앞서 열린 이언주 무소속 의원의 삭발식과 박인숙 한국당 의원, 김숙향 서울 동작갑 당협위원장의 삭발식은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황교안 대표의 삭발식은 그냥 코미디라고 웃어 넘기기에는 너무 씁쓸했다. 그들의 행위는 과거 삭발을 경험했던 내 추억을 소환해 냈다.

삭발의 추억

필자는 '두발자유화'가 시행되기 전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시절에는 이발비라도 아끼기 위해 친구들과 소위 바리캉(이발기)을 사서 서로 이발해줬다. 솜씨가 서툴러서 머리카락을 뜯겨가며 이발했고, 조금만 길어도 등교 시간에 교문 앞 두발 검사에 걸려 가위로 머리카락을 잘리는 수모를 당해야만 했다. 가위로 머리카락이 잘리면 머리 안쪽으로 아주 깊게 파여, 아주 짧게 밀어도 가위질 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소위 '빡빡머리'로 깎을 때에도 나름 헤어스타일이 있었다. 1부(대략 3mm)는 아주 짧게, 2부는 조금 길게, 3부는 더 길게 머리카락을 남기는 형태였다. 이번 황교안 대표의 삭발식은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자주 이발할 수 있는 아이들이 이발하던 '3부 스타일' 정도 되겠다.

두발 단속에 걸려 가위로 머리카락을 잘린 뒤 이발하면 소위 '고속도로'가 깊게 파여 면도기로 밀어야 가위질 흔적이 없어질 정도였다. 그 흔적을 없앤다고 면도기로 밀고 오면 '반항한다'며 또 선생님한테 면박을 당했다. 폭력적인 시대였고, 학교는 폭력교사들이 활보하던 시대였다.
   
고등학교에 가서야 스포츠머리가 허용됐지만, 그 역시도 중학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중에도 머리를 기르거나, 교복을 나팔바지나 통이 좁은 소위 빽바지로 늘이거나 줄여 입거나 해서 남들과는 다른 포인트를 줘 자기만의 패션을 만들어갔다. 중고등학교시절 모두 교복에 갇혀 있긴 했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 톡톡 튀는 자기만의 개성을 창출해내곤 했다.

고등학교 3학년 졸업사진 찍는 날, 난 두발 단속에 걸렸다. 두발단속에 걸린 친구들이 선생님께 애걸복걸해 졸업 사진만 찍고 삭발을 하기로 했다. 우리 반에서는 나를 포함해 3명 정도가 걸렸는데, 약속대로 졸업사진을 찍고 불려가 삭발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일주일 뒤, 사진촬영이 잘못돼 다시 찍어야 하는 학생들이 호명됐다. 두발 단속에 걸렸던 3명의 이름이 불리고 나서야, 선생님한테 속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졸업앨범을 보면 머리를 빡빡 밀고 졸업사진을 찍은 친구들이 꽤 많다. 이런 상황이라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머리를 기르는 친구들이 많았다. 기르지 못하고 잘려나간 머리에 대한 한이자, 애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애써 길렀던 머리는 입영을 앞두고 또 한 번 잘려나가야 했다.


1987년 4월 삭발투쟁과 교생실습

1987년 4월 3일, 전두환 군부독재는 '호헌선언'을 하고, 대학생들은 '호헌철폐!'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대학생들의 삭발투쟁이 시작됐다.

대학 4학년이었던 나는 총학생회나 학회에서 맡고 있던 일들로 인해 삭발투쟁에 참여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고민이 많았다. 5월부터 교생실습을 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과감하게 삭발을 했다. 

교생실습 첫날, 운동장에서 치러진 조회에서 교장 선생님의 소개를 받았다. 나를 포함한 남학생 교생은 2명이었는데, 그 친구도 나와 함께 삭발한 친구였다. 교장 선생님의 표정은 상기됐다.

"흠, 여러분, 오늘 교생실습을 나온 선생님들을 소개하겠습니다. 특별히 저기 두 분의 남자 선생님들을 보세요. 머리가 얼마나 단정하고 좋습니까? 남학생들은 저 교생 선생님들 본받아 머리 좀 짧게 하고 다니세요. 흠흠…."

난데없는 칭찬에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다음 날 조간신문에 'H대학 학생들 4.3호헌철폐를 주장하며 삭발투쟁'이라는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그 H대학은 바로 내가 다니던 대학이었다. 그 기사를 보고 앞뒤정황을 알아차린 교장 선생님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한 달 교생실습 기간 내내 시달렸다.
  
그런 가운데서도 교생실습 수업이 끝나면 바로 거리로 나가 시위에 참여했고, 우리를 알아본 학생들은 "교생 선생님 파이팅!"으로 환호하며 응원했다. 그리고 그해 '1987년 6월항쟁'이라는, 현대사에 굵직한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내게 '삭발'은 나름의 의미가 있었던, 자부심을 품을만한 청년 시절의 추억의 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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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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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 삭발식을 통해 자른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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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16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그런데 이번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삭발식들을 보면서 그런 의미 있는 추억들이 모욕 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앞선 여성 의원들의 삭발식은 그냥 코미디 정도로 여길 수 있지만, 특히 황교안 대표의 삭발식이 생중계되는 것을 보면서 자괴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삭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가 당 대표가 된 이후, 당 지지율이 정체되면서 그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조국 논란에도 당 지지율은 좀체 오르지 않고 있다. 이런 정치적인 속내가 작용하면서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을 빌미로 삭발투쟁을 해 당내의 입지를 굳히려는 속내가 느껴지면서, 과거 군부독재시절 행해졌던 '삭발투쟁'의 의미까지 오염되는 느낌이다.

1980년대에 삭발을 하면 눈에 잘 띄기 때문에 시위할 때에도 표적이 되기 쉬웠다. 요즘이야 '스킨헤드'가 하나의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1980년대 삭발은 시대에 대한 저항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 머리를 빡빡 밀면 "너 무슨 불만 있냐?"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던 시대였다. 그런데 스킨헤드가 하나의 스타일이 되기도 한 이 시대에 '삭발투쟁'이라는 것은 왠지 진부하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것도 아니고, 편협한 정치적인 판단과 자기의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서 하는 삭발식이 무슨 감동을 줄 수 있겠는가? 물론, 그들은 결의에 차 있다. 그러나 그들의 결의가 진실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계산에 따른 것이기에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자유한국당과 황교안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는 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들보 낀 자신들의 허물에는 관대하면서 남의 티끌을 대들보로 확산하며 정치놀음에만 여념 없는 행태는 동의받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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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삭발 "의원들 모두 머리깎고, 의원직 던져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17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앞에서 '문재인 대통령 퇴진과 조국 법무부장관 구속'을 요구하며 삭발했다. 김 전 지사는 "대한민국과 어린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하겠다. 하지만 머리밖에 깎을 수 없는 미약함에 죄송스럽다"고 밝히며, 국회의원들을 향해서는 "전부 머리깎고, 의원직 던지고, 문재인을 끌어내려야 한다"고 외쳤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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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상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17일 오후 동대구역 앞 광장에서 조국 법무부장관 사퇴를 촉구하며 삭발을 했다. ⓒ 조정훈

 
#삭발식 #황교안삭발 #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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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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