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임대료가 월 3만원, 50대 창업자들의 천국

[내 인생의 하프타임]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만난 사람들

등록 2019.09.18 15:48수정 2019.09.1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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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경기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하프타임이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삶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을 준비하는 50대 남성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한동안 자유로운 시간에 몸을 맡겼다. 하지만 20여 년을 같은 시각에 일어난 내 몸의 시계는 여전히 규칙적이었다. 아침마다 카페로 또는 도서관으로 나간 이유다. 나처럼 글 쓰는 사람에게는 책이 있는 도서관과 커피와 테이블이 있는 카페가 최고의 공간인 것. 하지만 모두가 나 같지는 않을 거다.

직장을 다니던 사람에게 책상, 즉 고정된 자리는 큰 의미가 있다. 가구 혹은 공간이라는 원래의 뜻 외에도 은유하는 바가 큰 것. 당신이 앉을 책상이 자리하고 있다는 건 그곳이 어디든 아직 당신을 필요로 한다는 거다.


회사를 퇴직한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어디 자리 없을까?" 혹은 "책상만 주면 좋겠는데"라는 말들을 퇴직 후 아직 일을 잡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만큼 고정된 자리가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50대 남성에게 책상은 어쩌면 사회생활을 한다는 최소한의 증명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드는 기초 체력과도 같을 게 아닐까.

A(남, 56세) 선배가 그랬다. 20년 넘는 직장 생활을 마친 선배는 지금은 프리랜서 컨설턴트로 일한다. 주로 고객 회사에 가서 일하지만, 새로운 사업 설계를 위해서 고정된 사무 공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적당한 곳을 찾던 선배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알게 됐다.
 

서울시도심50플러스센터 서울50플러스재단 산하의 여섯 개 지역 센터 중 한 곳인 '서울도심권50플러스센터'. 8층 건물 중 5개 층에 센터 시설이 들어섰다. ⓒ 강대호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장년층의 새로운 길 찾기와 인생 재설계 등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서울시 산하기관이다. 현재 서울시 안에 세 개의 캠퍼스와 여섯 개의 지역 센터가 있다. 인생 재설계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커뮤니티 활동을 위한 공간을 운영한다.

특히 새롭게 사업을 펼치려는 창업자를 위해서 공유사무실도 제공하고 있다. 매년 초 공모를 통해서 선발된 사업자들에게 월 3만 원~5만 원의 사용료만 받고 1년간 (최대 2년) 사무 공간을 빌려준다. 신청 자격은 서울시민이거나 서울시에 사업자 등록을 한 단체여야 한다.

선발된 개인과 단체에 좌석 한 개를 배정하며 사업자 등록 주소지도 제공한다. 또한, 공용 사무기기 및 인터넷과 전용 회의실을 이용할 수 있다. 이런 물적 인프라 외에도 입주한 캠퍼스나 센터를 통해서 멘토링과 교육도 받을 수 있다. 입주 업체 간 네트워킹 지원도 활발하다.
  

서울도심권50플러스센터 공유사무실 서울50플러스재단에서는 합리적 가격으로 사무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 강대호


재단 산하의 캠퍼스와 지역 센터는 50대 이후 새로운 인생 설계를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A 선배도 그런 매력에 이끌려 '서울시도심권50플러스센터'에 입주했다고. 이곳은 재단 소속 여섯 개 지역 센터 중 하나로 종로3가역 인근에 있다.


"교통이 편리한 서울 도심에 이렇게 저렴하면서도 훌륭한 시설의 사무실을 얻는다는 건 큰 행운이지."

A 선배의 말이다. 파티션으로 구분된 책상 한 개 면적이 그에게 할당된 공간이지만 만족스러워했다. 둘러보니 같은 크기의 책상 10개가 있고 함께 쓰는 회의실이 보였다. 입구에는 포스터와 배너도 놓여 있었다. 입주한 사업자들이 벌이는 사업들을 홍보하는 배너였다. 

그는 "시설도 좋지만, 입주자들의 서로 다른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며 "그 경험에서 우러나온 사업 아이디어에서 배우는 것도 아주 많아"고 말했다. 포스터와 배너를 살펴보니 도시 여행 관련 사업과 미술 관련 사업 등 분야가 다양했다.
 

공유사무실 입주 사업자들의 홍보 배너 서울50플러스 공유사무실 입주 사업자들은 재단 시설을 활용한 사업을 펼칠 수 있다. ⓒ 강대호


마침 선배 소개로 다른 입주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B(남, 56세) 대표는 28년간 보험회사에서 일하다 1년 8개월 전에 퇴직했다. 그의 이름을 검색해보면 그가 대형 생명보험사에서 개발했던 상품 기사들이 나온다. 그는 인정받는 보험인이었던 것. 퇴사하더라도 같은 직종에 재취업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 그는 전혀 다른 길을 개척하고 있었다. B 대표가 그런 결심을 한 배경이 궁금했다.

"인생이 30년 단위로 나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30년은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로 바쁘고, 두 번째 30년은 사회에 진출했지만 살기 바쁘고, 마지막 30년은 싫든 좋든 은퇴 생활을 해야 하고. 바쁘게 살아왔던 삶이 어느 날 갑자기 확 꺾일 거라는 생각이, 한마디로 덧없이 훅 흘러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B 대표는 퇴사 전, 30년 가까운 직장 생활을 돌아보았다고 한다. 회사에서 맡았던 업무는 보람도 많았지만, 부담과 고민의 연속이었다고. 그래서 회사에 계속 다니거나 같은 업종의 다른 곳에 재취업하거나, 선택지가 많았지만, 마음이 가지 않았다. 익숙한 일을 계속한다는 건 그동안의 부담과 고민이 계속된다는 건데, 어쩌면 삶이 정체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돌아보면 회사에 다니면서도 경쟁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신상품을 개발했을 때 큰 희열을 맛봤다"라며 "그래서 익숙한 것보다는 새로운 걸 하고 싶어졌다, 그게 앞으로 30년을 살게 하는 힘이 될 것 같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B 대표는 28년간 몸담은 보험 업계를 떠났다. 대신 2년이라는 기한을 정해두고 앞으로의 30년을 위한 삶의 설계를 완벽하게 세우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역시 나름의 하프타임을 둔 것. 뭘 할지는 오래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미술을 새로운 30년의 업으로 삼기로 했다. 그런데 보험 상품 개발을 하던 사람과 미술이라니. 연결이 잘 안 됐다.

"제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잘 그리기도 했고요.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를 작품 활동으로 풀었죠."

2014년에 한 미술 대전에서 종합 대상을 받은 그는 자연스럽게 미술 관련한 일들로 사업 구상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미술 작가들과 연계한 사업을 펼쳤고, 지금은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명화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호응이 좋아서 '명화 해설사' 교육 사업까지 펼치고 있다.

B 대표뿐만이 아니었다. A 선배도 그렇고, 그 공간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삶의 후반부를 열심히 개척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취재하려고 찾았다. 재단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과 시설에 대해 글을 쓰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50플러스재단 교육 프로그램 새로운 삶을 설계하는 50대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제공한다. ⓒ 서울50플러스재단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하다 보니 공통점이 보였다. 내 마음을 가장 크게 두드린 건 '익숙한 것에 머무르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물론 익숙한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일 수 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익숙한 것에만 머문다면 변화의 바람에 밀려날 게 분명하다.

다음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걸 하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가장 당연한 사실이다. 많이 듣는 조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규격화된 세상에서 표준으로만 살아온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를 모를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마음이 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좋겠다. 그 소리가 당신이 좋아하는 걸 들려줄 테니까. 주변 다른 소리에 흔들리지 말고 마음이 들려주는 그 소리를 따라가 보는 거다.

마지막으로는 '길이 보이면 잘 다지고, 조금씩 넓혀보라' 말하고 싶다. 위에서 언급한 B 대표는 교육 프로그램이 호응이 높아지자 강사 양성 프로그램으로도 사업을 확대했다. 게다가 단계별 확장 계획을 이미 세운 듯 보였다. 그 과정에서 재단의 인프라를 적절히 이용했다. 물론 함께 입주한 다른 사업자들의 조언도 한몫했다.

도심권 50플러스센터가 자리한 종로3가 인근은 서울에서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이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속도도 느리고 분위기도 인근 을지로나 광화문과 크게 다르다. 나도 그 지역에 들어서니 저절로 속도를 줄이게 됐다. 하지만 센터 건물로 들어가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교육장에서, 커뮤니티 공간에서, 그리고 공유사무실에서 뿜어내는 에너지가 강렬했다. 내 몸에도 활기가 돌았다. 고민하고, 준비하고, 실행하는 사람의 인생 후반부는 활력이 넘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운영하는 자세한 프로그램은 공식 홈페이지(http://50plus.or.kr)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의 하프타임'은 격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내 인생의 하프타임 #서울50플러스재단 #공유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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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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