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삭발의 시간이..." 한국당의 실검 장악, 씁쓸하다

제도적 자원을 충분히 활용할 생각 않는 야당, 이대로 괜찮나

등록 2019.09.18 11:42수정 2019.09.1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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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재밌는 상상을 한 번 해보자.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청원 글을 올리고, SNS에 공유해서 청원 수를 늘리려고 노력하는 상황. 청원의 내용은 이렇다. "조국 법무부 장관을 파면해 주세요." 그 내용의 부적절함을 지적하기 전에, 다른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이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 글을 작성해도 될까? 물론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이 따로 주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시민들이 청원하는 내용의 대다수는 어떤 제도가 미비해서 생긴 문제거나, 이미 주어진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생긴 경우가 많다. 그걸 직접적으로 바꿀 힘이 시민들에게는 없으니까 국민청원이라는 제도를 사용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시민들이 가진 제도적 자원이다. 그리고 청원이 곧바로 법안 발의나 개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민이 가지고 있는 자원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이다. 그들은 법안을 발의하거나 개정할 수 있고, 폐지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그 자체로 막강한 권력이다. 국회라는 합법적인 시스템은 그들에게 그런 막강하고 합법적인 권력을 쥐여준 셈이다. 그렇다면 주어진 권력을 최대한으로 사용해 공동체를 이롭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사명일 테다. 

당연해서 굳이 해서 뭐하나 싶은 이 말은 그들이 합법적인 권력 행사의 기회를 내팽개치고 장외로 나갈 때 당연하지 않은 말이 된다.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그렇다. 

농성의 정치학: 누가, 왜 농성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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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중단' 김영오씨 위로하는 문재인 의원2014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은 '유민 아빠' 김영오씨 단식 중단을 위해 10일째 동조단식했다. 김영오씨 단식중단에 따라 문재인 의원도 단식을 중단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물론 정당의 장외투쟁이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세월 정치인들의 장외투쟁은 늘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택한 최후의 카드였다. 198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23일간의 단식은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곤 한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3주년 기념일인 5월 18일부터 6월 9일까지 구속 인사의 전원 석방과 해금, 해직 교수 및 근로자, 제적 학생의 복직 등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돌입한 것이다.

가장 가까이는 2014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이 유가족 김영오씨와 함께 동조 단식을 했던 사례가 있다. 독립적인 수사권 및 기소권 보장, 성역 없는 수사와 재발방지가 주요 골자였다. 당시 문 의원은 "가장 중요한 건 특별법에 유가족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 유가족이 납득할 수 있는 특별법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듯 장외에서 싸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명분이다. 가장 먼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라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문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식은 적어도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다. 물론 자유한국당의 투쟁 자체를 조롱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제도적인 수단을 충분히 사용했는지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2월 선거제 개편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것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민주주의를 부정한다느니, 좌파독재를 한다느니 하면서 여야 4당이 모두 합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반발하며 4월 철야농성을 한 바 있다. 국회 내에서 충분히 논쟁과 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판을 뒤엎고 국회 밖으로 나선 것이다. 

선거제 개편이 전 국민적 관심을 받으면서 그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었음을 무시한 처사와 다름없다. 우리는 한국당이 이후 국회 의안과 사무실을 가로막으며 소란을 피웠던 모습을 모두 기억하고 있지 않나. 이것을 두고 한국당의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하다면 설득력이 있을까?

제도적 자원을 쓸 수 없는 자들의 투쟁에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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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탑 고공농성중인 삼성해고자 김용희씨삼성해고자 김용희씨가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강남역 삼성생명 빌딩앞 CCTV철탑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씨는 36일째 단식농성중이다. ⓒ 권우성

 
제도적 자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이들이 그걸 내팽개치는 일을 볼 때마다 그 제도적 자원조차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지만, 언론에 보도가 안 되거나,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런 상황에서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해 보겠답시고 장외로 나돌기만 하는 이들을 보면 분노가 치밀 수밖에.

장외, 그러니까 합법적인 시스템이 주어진 공간 외부에는 오늘도 싸우는 이들이 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도로공사 때문에 계속 싸우고 있고,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는 강남역의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 중이다. 17일로 고공농성을 한 지 100일째다. 그 외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명절에도 쉬지 못하고 투쟁을 진행했다. 과연 이들이 제대로 된 관심을 받고 있긴 할까. 어디에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가, 바로 거기에 우리 사회의 차별적인 모습이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16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문재인 정권의 헌정 유린과 조국의 사법 유린 폭거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조국 파면을 요구하며 삭발을 했다. 덕분에 모든 관심은 그에게 쏠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도의적인 문제와 법적인 문제는 엄연히 다를텐데, '범죄자'(조국 장관을 향해) 운운하며 파면을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16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삭발의 시간이 왔다. 한국당 릴레이 삭발 시작인 거냐. 당신의 진정성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삭발한 황교안 대표의 사진을 보며 낄낄거리며 비웃고 있지만, 그 와중에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는 데에 성공하는 것을 보는 것은 전혀 유쾌하지 않다. 지금도 싸우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할 텐데, 정치는 그들을 대변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 정치를 코미디로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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