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걸리지 않는 자유인 조영삼, 그가 택한 사드 반대와 죽음

[추모글] 고 조영삼 열사 2주기를 맞이하며... 원익선(원불교 교무)

등록 2019.09.17 16:02수정 2019.09.1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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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반대를 외치며 분신한 고 조영삼씨의 마지막 노제가 지난 2017년 9월 23일 오후 경북 성주군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진행됐다. 유족들은 노제에 앞서 사드가 배치되어 있는 롯데골프장 입구에서 추도기도회를 가졌다. ⓒ 조정훈

 
"문재인 대통령님, 저는 오래 전 독일에 있을 때부터 대통령님을 지지하고 존경해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드는 안 됩니다. 대통령님도 사드는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긴장과 전쟁의 위험만 가중시킬 것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2년 전 조영삼의 죽음, 그 의미

조영삼 열사. 2년 전인 2017년 9월 19일 낮 4시 10분경,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앞에서 분신하고 다음 날 운명한 그. "사드 반대"를 외치며 자신의 온몸을 불꽃으로 만들어버린 주인공.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세상을 비출 정의와 평화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도록 하고자 했으며, 또한 그 순간까지 그렇게 살아온 그는 지금 허공 어디쯤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을까(관련기사: '사드 배치 반대' 분신, 재독 망명객 조영삼씨 숨져).

그가 보고 싶다. 맑고 맑은 순록과 같은 그의 눈빛. 맹자는 그 사람을 알려면, 그의 눈빛을 보라고 했다.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는 데는 눈동자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눈동자는 능히 자기의 악을 엄폐하지 못한다. 마음이 올바르면 곧 그 눈동자가 맑고, 마음이 올바르지 않으면 곧 그 눈동자가 흐려지게 된다. 그 하는 말을 듣고서 그 눈동자를 보니 사람이 어찌 그 마음을 숨길 수가 있겠는가?"

나는 영정을 통해 그의 눈빛을 본다. 그가 대리고(代理苦)의 삶을 살다간 영혼을 지녔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내 비록 안목 없는 삶을 살아왔지만, 그 맑고 푸른 영혼은 직감할 수 있다. 한번도 그를 만난 적은 없지만, 나는 알 수 있다. 그가 이 땅의 고통과 슬픔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갔다는 사실을. 우리가 석가를, 예수를, 공자를 만나지 않고도 그들이 우리 무명(無明)에 헤매는 중생들을 위해 어떻게 살고,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갔는지는 알고 있지 않는가.

조영삼 열사, 그를 생각하면 눈물만 흐른다. 그의 아들 한얼이를 보면 더욱 눈물이 흐른다. 그의 아내인 엄계희씨는 이 날만 돌아오면 얼마나 가슴이 미어터질 것인가. 조영삼 열사의 한과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나 또한 사드가 들어가던 2년 전 4월 26일과 9월 7일, 박근혜-문재인 정권이 연이어 사드를 소성리에 집어넣고자 각각 8천 명의 경찰이 우리 평화운동가들을 에워싸며 군화발로 짓밟을 때, 미국 대사관 앞으로 달려가 단식으로 항거하고자 했다. 비록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후배에게 나무관 하나 준비해 달라고 부탁해놓고.


그의 분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부조리하고 부정의한 이 땅의 현실. 호시탐탐 주변에서 노리는 이 땅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몸 하나로 얼마나 안간힘을 쏟았던가. 그는 유서에서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남북경협, 평화통일, 동북아 균형자 역할 등을 통한 우리 후손들의 미래가 보이기 때문"에 사드에 밀리면 안 된다고 한다. 사드 무용론은 이제 어린아이도 안다. 미국이 대중국, 대러시아를 위해 설치한 미사일 방어망이라는 것을. 한반도는 강대국의 밥이다.

그는 또한 "임시배치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사드배치를 앞당긴 것은 현실국제정치의 냉혹한 벽을 뚫지 못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며 사드배치가 이 땅의 운명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음을 설파하고 있다. 국보법에 의해 체포되어 재판을 받거나 감옥에 갇히면서, 또한 해외에서 망명생활로 한반도의 운명을 절절히 체험한 것에서 나온 애절한 목소리였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의 자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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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8월 평양의 이인모씨 집을 방문해 이씨의 가족들과 현관에서 찍은 사진. 정중앙에 서 있는 사람이 조영삼씨다. ⓒ 조영삼

 
인민군 종군기자 출신의 장기수 이인모 노인을 만나 그를 북한에 송환되기까지 돌보고, 그 인연으로 북한에도 다녀온 것은 이러한 한반도의 운명을 어떻게든 작은 힘으로 개척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부인 엄계희씨도 장례식 때, 그의 삶이 "너무 이상주의라고 생각했는데 절대 이상이 아니고, 우리 국민의 꿈이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촛불의 정신이었다. 무혈혁명의 촛불이 내건 적폐 중에는 남북의 평화를 방해하는 사드배치도 엄연히 들어있음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관련기사: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았던 '나그네' 조영삼).

그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우리끼리처럼 말로만 민족, 민족 하지 말고, 민족 앞에 모든 걸 내려놓으십시오"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그 외침 덕분인지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세계에 자랑스럽게 보여주지 않았던가. 70여 년간의 굳은 분단의 장벽이 몇 번 만남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지랴만, 이렇게라도 만난 것은 강한 바람 앞에 비록 풀잎처럼 눞더라도 결코 뽑히지 않는 민중들이 끊임없이 외치며 강인하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소리쳐 부른다. 그리고 "저는 대통령님을 인간적으로 존경했고 사랑했습니다. 이 세상 소풍 끝내고 나서도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의 산화가 사드철회를 위한 미국과의 협상에서 한 방울이나마 좋은 결과의 마중물이 된다면 연연세세 가문의 큰 영광으로 알겠습니다"라며 사드철폐를 꼭 해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가 목숨을 이 세상속으로 내던진 결정적 이유는 여기에 있다. 허공이 되어, 대지가 되어, 두 눈 부릅뜨고, 이 땅에 남아 있는 가족과 이웃과 전 민중이 진정 평화롭게 살아가길 희망해서다. 그는 죽어서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들 곁에서.

아, 유언의 마지막 덧붙이는 글은 차마 눈물이 어려 읽지 못하겠다.

"저의 행동에 설왕설래 말이 많을 줄로 사료됩니다. 개의치 않습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의 자유인'으로 살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한 인생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아직 이 세상 소풍 끝나지 않는 분들, 외람되지만 처와 어린 아들내미 부탁합니다."

그는 향기 가득한 국화꽃처럼 만개되어 스러져갔다. 결코 피기 전에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단지 앞으로 멀어져 갔을 뿐이다. 그는 여전히 우리 앞을 걸어가고 있다.

<숫타니파타(경집)>에서 석가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서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법문을 한다. 열사는 이 땅과 이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그렇게 걸어갔다. 그는 고독한 수행자였다. 민중의 아픔을 자기화한 평화의 수행자, 정의의 십자가를 매고 한반도의 골고다 언덕을 홀로 걸어간 고독한 수도사다.

그를 우리 마음에서 내려놓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가 원했던 것처럼, 죽음의 사드를 그 주인에게 되돌려주지 않는 한 그를 놓아줄 수가 없다. 그는 지금 사드가 들어간 소성리의 달마산 언덕에 우뚝서서 바라보고 있을 게다. 가끔은 산록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우리 평화지킴이들의 볼을 시원하게 부벼줄 때, 그가 이 땅에서 숨쉬고 있음을 느낀다.

열사의 2주기, 그를 추모하며, 한반도에 무용한 사드를 철폐하고, 이 땅에 평화를 불러오는 추모제가 18일 낮 2시에 성주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열린다. 많은 분들의 참석을 바란다. 마지막으로 고희림 평화의 시인이 열사를 위해 읊은 시의 마지막 구절을 그의 제단에 다시 바친다.

최고의 창과 방패는
전쟁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평화의 방패를 들고
통일의 창으로 물리치는 겁니다
이를 알았기에
님은
어린 아들과 아내를 남겨두고
평화의 제단 민족의 제단에
자신의 목숨을 올렸습니다
버릴 수 없는 조상의 마을을 지키려
소성리의 원통을 함께 느끼며
영혼으로 사드를 막겠다는 결단에 대통령은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으십시오
오늘 우리는 님이 데리고 간 사드를 영원히 묻습니다
님은 끝끝내 사드를 데리고 가셨으니까요
죽음으로 영혼으로 사드를 막아내고야 말았으니까요
부끄럽고 슬프고 분한 날입니다
지금 이 순간 님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할 뿐입니다

(평화의 바다로 먼저 가신 고 조영삼 열사께 / 고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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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삼 #사드 반대 #성주 소성리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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