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계동에는 기억이 가득했다"

서울 중앙중 학생들의 '우리 동네 산책길 지도 프로젝트'

등록 2019.09.18 08:27수정 2019.09.1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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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동 마을지도에 들어가는 그림과 유적지, 마을 가게 등의 그림을 모두 학생들이 직접 그렸다. ⓒ 이영일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골목골목에는 아이들이 북적북적했다. 딱지치기하는 아이들, 다방구하는 아이들, 고무줄놀이하는 아이들이 가득 찬 그야말로 놀이터였다. 동네 어른들은 아이들의 선생님이자 부모였고 또 보호자이기도 했다. 누구의 자식이 아니라 모두의 자식이었고 동네는 정겨운 삶의 모습이 담긴 마을공동체였다.

하지만 지금의 골목은 휑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돈다. 아이들은 모두 학원으로 내몰렸고 게임에 매몰되어 동네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서로 인사도 없고 오랫동안 주민과 함께 해 온 대중목욕탕, 이발소, 구멍가게들은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평소에 스쳐 지나가기 바빴던 삶의 공간이 마을공동체 바람이 불면서 다시 관심받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공동체성의 복권과 작은 마을의 변화가 출렁거렸다. 다양한 주민 나눔 프로그램과 공간 디자인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중 가장 대중적 소재는 마을지도 만들기였다.

마을 지도를 만드는 일은 가히 전국적인 유행이 되었다. 대부분 어른들이 참여하는 일이었지만 간간이 청소년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만들어 내는 마을지도는 어른들이 만들어 내는 지도와 크게 차이 나지 않았고 동네 유명한 곳을 소개하는 수준에 그치는 일이 많았다.

 '우리 동네 산책길 지도 만들기 프로젝트'
 

중앙중학교 3학년들이 만들어 낸 책 계동 지도책 ⓒ 이영일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기가 막힌 마을지도와 마을해설서를 펴냈다. 일명 '우리 동네 산책길 지도 만들기 프로젝트'다. 창덕궁길에 있는 학생 수 200여 명 미만의 서울 중앙중학교 학생들이 주인공이다.

이한솔 국어 교사와 금혜령 역사 교사, 이지현 미술 교사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에 대한 애정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심어줄까 고민했다. 서울형 혁신교육지구가 추구하는 학교와 마을의 협력 방법도 함께 고민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계동의 역사를 어떻게 녹여낼까도 숙제였다.
     
이 세 교사는 지난 겨울방학 때 계획을 수립하고 본격적인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2018년도에 교원학습공동체 활동과 국어와 역사 융합 수업 경험이 밑바탕 됐다. '공간'을 바탕으로 '시간'과 '사람'을 이어가기 위해 2014년부터 계동에서 '공간잇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공간 기획자도 섭외했다. 이 학교 3학년 학생들이 이 장대한 프로젝트의 참여자로 합류했다.
 

중앙중학교는 지난 4일, 크림슨홀에서 출판 기념 북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마을 주민들도 초청했다. 한바탕 신나는 한마당이었다. ⓒ 이한솔 중앙중학교 교사 제공

  
선생님과 학생들은 3월부터 사전 수업과 조사에 들어갔다. 5월부터 동네방네 답사하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계동 주민들과 장사하는 분들도 흔쾌히 이 계동 지도 만들기 인터뷰에 응했다.
      
아이들은 5월부터 8월까지 4개월여 동안 그야말로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국어과와 역사과 아이들의 노력도 훌륭했지만 미술과 학생들이 마을지도에 들어가는 동네 명소를 일일이 그려낸 것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었다.

이렇게 아이들의 열정과 마을에 대한 애착이 듬뿍 담긴 마을지도와 마을해설서가 탄생했다. 학교와 선생님, 아이들은 지난 4일 이 학교 크림슨홀에서 출판 기념 북 토크 콘서트도 열었다. 말 그대로 마을과 학교가 하나 되는 순간이었다.
      
아이들 마음속에 북촌 계동의 기억이 가득할 것
 

중앙중학교 이한솔 국어 선생님이 계동 지도를 만들게 된 배경과 과정을 종로구 관내 선생님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이영일

 
16일 오후 3시, 서울 효제초등학교 별관 5층 강당에 종로구 관내 초·중·고등학교 교사 40여 명이 모였다. 중앙중학교 사례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중부교육지원청 담당 과장과 장학사뿐 아니라 서울시교육청에서 서울형 혁신교육지구를 담당하는 참여협력담당관 수석 장학사도 참여했다.


이지현 미술 교사, 이한솔 국어 교사, 금혜령 역사 교사가 차례로 이 책을 만들게 된 배경과 과정, 행정 처리 등의 활동 내용을 소개했다. 선생님들의 발표에는 자긍심이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기운이 넘쳐났다. 다른 학교 선생님들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아이들의 활동을 귀담아들었다.

삶의 온기를 가르치는 마을교육공동체, 즐거움과 어울림의 기쁨을 알게 하는 혁신교육지구가 가장 이상적으로 진행된 땀방울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북촌 계동의 기억이 가득할 것이라는 확신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학교와 마을이 함께 마을을 지키고 역사를 가꿔 나가는 활동, 이런 마을결합형 학교 교육과정이 활발해지는 것이 청소년의 인성 함양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이한솔 중앙중학교 교사 제공

  
#서울 중앙중학교 #마을결합형 교육 #계동 #마을지도 #혁신교육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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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와 대학원에서 모두 NGO정책을 전공했다. 문화일보 대학생 기자로 활동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을 받았다. 이후 한겨레 전문필진과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지금은 오마이뉴스와 시민사회신문, 인터넷저널을 비롯,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기사 및 칼럼을 주로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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