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기억을 모아 우리 동네의 기억으로 담는다

['좌충우돌' 사회적경제 60] 지역의 기억을 축제로, '안녕?안녕!안녕...'

등록 2019.09.20 11:21수정 2019.09.2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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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기억들 
  
오래된 도시의 재개발, 재건축은 피할 수 없다. 아니,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사람들은 항상 헌집보다 새집을 추구하고, 좀 더 깨끗하고 번화한 곳에서 살고 싶어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생각이 가끔 깨질 때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복고 열풍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들은 더러 허름하고 낡더라도 자신이 지나왔던 과거를 그리워한다. 당시에는 지긋지긋했지만 지금에서 돌아보면 찬란했던 그 순간들.

혹자는 그것을 괜한 시간 낭비라고 폄훼하기도 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개인 본연에 대한 성찰일 수 있으며, 공동체에게는 현재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잘 살고 있는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와 같은 질문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쉽게 과거를 잊는다. 사회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빠르기도 하지만,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고민하는 문화 자체가 빈약하다. 과거를 불편해 하는 이들도 많고, 장밋빛 미래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도심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개발, 재건축은 이런 우리 사회의 공간적인 단면이다. 비록 최근에는 도시재생을 통해 새로운 시도가 진행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기존에 있던 것들을 보수하고 보전하기 보다는 낡고 오랜 된 것을 아예 부수고 새로 짓기를 선호한다. 그것이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라고 믿는다.
 

정겨웠던 공간의 소환 ⓒ 문화예술협동조합아이야

 
덕분에 도시의 오래된 공간은 계속 소멸되고 있다. 한 개인이 태어나고, 자라고, 신접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키우던, 누군가의 고향이었던 정겨운 공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다. 그리고 그와 함께 공간이 담았던 시간 역시 흐릿해져가고 있다. 대신 그 자리에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지만 정붙이기는 쉽지 않다. 익명성과 폐쇄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각박한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과거 공동체의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흔적 없이 사라진 공간에서 기억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은 현실. 따라서 사회적경제기업들이 이와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회적경제를 지역 기반의 경제라고 한다면 공동체가 공유한 기억은 구성원들의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그 사라지는 기억들을 모을 수 있을까? 강동구의 마을기업 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야(이하 '아이야')가 9월부터 10월까지 7차례 펼치는 '안녕?안녕!안녕...' 축제는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도이다.

기억의 소환과 그림책 프로젝트
 

그림책을 사진 놀이터로 ⓒ 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야

 
처음 아이야가 사라지는 공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근 30년 만에 결정된 고덕주공아파트의 재건축 때문이었다. 조합원들 대부분이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성 예술가였던지라 신접살림을 차리고 아이들을 낳고 키웠던 공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고향이 사라지는데 그냥 있을 수 없다는 절박함.

이에 아이야는 2016년 그림책 프로젝트 '안녕?안녕!안녕...'을 진행했다. 지역의 예술가들, 어린이들과 함께 사라지는 고덕주공아파트를 글, 사진, 미술을 통해 기록했다. 이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며, 기억의 힘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재건축 결정과 함께 먼 곳으로 이사를 가야했던 이들이 고맙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또한 위 프로젝트는 지역에서 마을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치는 계기가 되었다. 중앙정부나 광역 차원이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의 세밀한 기록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게 되었다. 그 결과 현재 강동구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는 마을기록관을 두어 마을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며, 2019년 개관한 서울기록원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게시하기도 했다.

도시재생축제 '안녕?안녕!안녕...'
 

신나는 예술여행_사라진 기억으로 노는 6가지 방법 ⓒ 문화예술협동조합아이야

 
아이야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신나는 예술여행 사업을 통해 위 프로젝트를 확장시켰다. 신나는 예술여행은 문화 기반이 부족한 곳에 문화예술 공연을 제공하는 문화 복지 프로그램으로서, 아이야는 기존의 그림책을 바탕으로 공연과 체험, 전시 등이 유기적으로 구성된 하나의 축제로 만들었다.

'사라진 기억으로 노는 6가지 방법'의 부제를 단 축제는 6개의 놀이터로 이루어진다. 사진 놀이터에서는 주민들이 그림책의 원화이기도 한 사라진 공간에 대한 사진전을 보며 자신의 사진을 찍고, 이야기 놀이터에서는 그림책을 기반으로 한 공연이 펼쳐진다. 만들기 놀이터에서는 주민들이 앞 공연의 연장선에서 이별을 고하지 못한 자신의 기억에게 안녕을 고하는 그림 엽서를 만들고, 재건축으로 사라지는 생명들에 대해 아쉬움을 담는다.
 

이야기 놀이터 ⓒ 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야

 
 

만들기 놀이터 ⓒ 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야

 
이후 열리는 당신의 이야기 놀이터는 이번 축제의 하이라이트다. 배우들이 그렇게 소환한 주민들의 기억과 아쉬움을 소재로 즉흥극을 한다. 주민이 직접 나와 과거를 회상하고 우리는 모두 그 시공간 속으로 빠져든다. 그 자리의 모든 이가 주인공이다. 마지막 저장 놀이터에서는 이 모든 것을 담은 액자를 만들며 오늘의 기억을 꽃 속에 담는다.

따라서 축제는 도시재생과 관련이 깊다. 도시재생이 재개발, 재건축을 지양하고 공동체를 강화해 기존의 삶의 터전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아이야의 '안녕?안녕!안녕...' 축제는 그 정의에 가장 부합되기 때문이다. 재개발, 재건축으로 기억을 상실해가는 시민들에게 과거 기억을 되살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같이 공동체를 만들어가자는 손길.
 
오래오래 기억될 하루였네요.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의 삶속에서, 공유하고 돌아볼 수 있는 기억이 주는 힘에 대해 생각합니다. 아주 멋진 공연으로, 작업으로 잘 다듬어가는데 힘 보태보려 합니다!
 - 6/5 강동구 소셜타운 공연을 본 참가자 소감
 

도시재생축제 <안녕?안녕!안녕...> ⓒ 문화예술협동조합아이야

 
실제로 '안녕?안녕!안녕...'은 이미 진행한 암사1동에 이어 성내2동, 천호3동 등 도시재생지역에서 진행될 예정이며, 도시재생과 관련된 축제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도심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서울의 도시재생지역의 대부분이 별다른 특징이 없는 바, 기억의 재구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이번 축제는 모두의 대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축제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전체 프로그램 기획·제작의 아이야 외에 사회적협동조합 함께강동, 사회적기업 ㈜놀자씨씨, 사회적기업 ㈜아립앤위립, 사회적기업 ㈜오라클라운지, LH소셜벤처 ㈜플라워앤가든인피플, 소셜벤처 ㈜천호프로젝트, 감성수업, 초록바람과 강동구사회적경제지원센터, 강동구마을공동체지원센터 등 지역의 다양한 조직이 각자의 색깔에 맞춰 함께 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매번 선언으로만 그쳤던 '도시재생은 사회적경제다'라는 명제의 가능성을 확인할 것이다.

현재 '안녕!안녕?안녕...'은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부디 많은 분들이 참여하고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축제의 일정 ⓒ 문화예술협동조합아이야

   
하루를 살아도 내가 사는 이곳은 우리 동네, 우리 고향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봐주세요

바라보고,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해주세요.
우리 아이들이 뛰어노는 이곳을,

기억 속 그 곳을 떠나왔지만
기억 속 그 친구가 곁에 없지만
우리가 기억하면
우리가 잊지 않으면
언제나 함께 하는 따뜻한 나의 살던 고향

지금 이 곳이
오래오래
아름다운 기억의 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안녕을 고하지 못하고 헤어진 이에게 편지를 쓰세요.
안녕, 나는 잘 있다고, 안녕, 보고싶다고…….

- 입체낭독극 '안녕?안녕!안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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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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