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교수가 말하는 '조국', 그의 속내

[반일 종족주의 ⑨] 에필로그 등에 담긴 토로에서 읽을 수 있는 것

등록 2019.09.23 07:25수정 2019.09.23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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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종족주의>가 논란입니다. 몇 회에 걸쳐 이 책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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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유튜브 방송 '이승만TV'에 출연한 모습 ⓒ 이승만TV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는 도발적인 '물건'이다. 반일감정을 '반일 민족주의'도 아니고 '반일 종족주의'로 폄하하면서, 원시적이고 저급한 감정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이 책 '에필로그: 반일 종족주의의 업보' 편에서 그는 "반일 종족주의는 이 나라를 다시 한번 망국의 길로 이끌어 갈지 모릅니다"라고 경고했다. 지금처럼 일본을 대했다가는 또 한 번 망할 수 있다는 경고다. 한·일 갈등이 격화되는 속에서 총구를 한국 쪽으로 겨냥하면서 '그만하고 닥쳐!'라고 엄포를 놓고 있는 셈이다.

위기감

<반일 종족주의>는 그렇게 도발적이면서도, 동시에 엉성하다. 일제 식민지배가 한민족의 경제성장에 기여했다고 누누이 강조하다가, 갑자기 '일제강점기 때 한반도 전체 재산의 85%가 일본인 소유였다'고 말해버린다. 식민지배가 결국 일본인을 위한 것이었음을 시인해버린 것이다. 일본이 두고 간 재산이 그 정도로 많으니, 한국이 식민지배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게 아니라, 실상은 일본이 받아갈 게 더 많았었노라고 주장하려다 보니 그런 실수도 범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식의 논리적 충돌이 이 책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은 여섯 명의 저자가 공동 집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책이 학술적 정합성보다는 다른 것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데'라는 것은 다름 아닌 '정치적 목적'을 말한다. 책의 궁극적 의도가 정치적 목적에 있다 보니, 논리적 정합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말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공동 저자들이 정치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은 에필로그에서도 나타난다. 이 부분의 필자인 이영훈 교수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망국의 예감'을 거론하면서 정치권과 학계의 결단을 간접적으로 촉구한다.
 
"반일 종족주의는 이 나라를 다시 한번 망국의 길로 이끌어갈지 모릅니다. 109년 전 나라를 한번 망쳐본 민족입니다. 그 민족이 아직도 그 나라가 망한 원인을 알지 못하기에, 한번 더 망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하자고 주장하는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지 않습니까. 절반의 국민이 그들을 지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망국 예감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그 근원을 이루는 반일 종족주의의 횡포에 대해 이 나라의 정치와 지성이 너무나 무기력하기 때문입니다."

이영훈 교수가 말한 '반일 종족주의를 가진 집단'이 누구인지는 그의 말에서 쉽게 드러난다. 그게 정확히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도록 하고자 '현재 정권을 잡고 있다'는 점과 '유권자 50% 정도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을 친절하게 명시했다.

반일 종족주의 세력의 횡포에 대해 "정치와 지성이 너무나 무기력"하다고 그는 한탄했다. 정치권과 학계가 무기력에서 벗어나 무언가 행동을 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반일 종족주의>를 내놓게 됐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정치적 목적을 띠고 있다 보니, 학문적 정합성은 아무래도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 곳곳에서 논리적 모순이 자주 발견되는 것은 그 때문이라 볼 수 있다.

흔히 학자들은 정치권과 학계를 열거할 때 학계를 먼저 언급한다. 이영훈 교수는 '정치와 지성'이라면서 정치권을 먼저 언급했다. 그가 정치적 해법의 필요성을 얼마나 절실히 인식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영훈 교수의 목적은 일본을 변호하는 데만 있는 게 아니다. 그가 위기를 강조하는 것은 한일관계뿐 아니라 다른 것도 곤란에 처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무엇인지가 위 인용문에서 드러난다. 반일 종족주의 외에, 그가 위험시하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다.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하자고 주장하는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말에서 그의 위기의식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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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개헌안'에 쏠린 눈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이 2018년 3월 20일 오전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중 전문과 기본권 부분의 내용과 조문 배경 등을 설명했다. 시민들이 이날 서울역에서 중계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하자고 주장한다'라는 것은 작년 3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대통령 개헌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영훈 교수 말대로 이 개헌안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삭제된 것은 결코 아니다. 개헌안 전문(서문)에서도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고 했다.

그런데도 그가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이 개헌안에서 재벌과 대기업보다는 도시서민·노동자·농민·중소기업 등의 이익이 좀더 강조됐기 때문이다. 개헌안 제125조 제2항에서는 '경제주체 간의 상생과 조화'가 규정됐다. 종래처럼 재벌과 대기업 위주가 아니라 모든 경제주체가 다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조항이다. 이른바 경제민주화가 강조됐던 것이다.

이영훈 교수가 '자유민주주의가 헌법에서 삭제됐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경제민주화의 강화로 인해 재벌과 대기업 위주의 자유시장주의가 위협 받을까봐 염려하고, 자본가의 경제적 자유를 내용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또 다른 측면이 위험에 처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에필로그에서 최근의 최저임금 인상을 "최저임금의 과격한 인상"으로 과대 포장하는 것이나 "아마추어 집권 세력이 분배 지향과 규제 일변의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재벌과 기업을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가 공정하게 분배를 받게 하려는 최근의 경제정책적 흐름에 대한 불만을 표명한 것이다.

이는 그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는 자본가의 자유로운 시장 지배를 지향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의 자유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절박감을 품고 <반일 종족주의>를 내놓았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 탄핵'에 비통함 느꼈던 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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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억지탄핵 원천무효"제98주년 3·1절인 2017년 3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네거리에서 열린 '제15차 박근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대회'에 참석한 친박단체 회원과 시민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결정 각하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그가 위기의식을 한층 더 강하게 품게 된 계기가 있다. 바로 2016년 촛불혁명이다. 에필로그에서 그는 이 점을 솔직하게 토로한다.
 
"권력이 허점을 보이자 대중은 얼마나 잔인해졌습니까. 여성 대통령을 벗기고 묶고 목을 치고 시체를 운구하는 퍼포먼스가 백주의 광장에서 자행되었습니다. 정치가들은 얼마나 비열하였습니까. 대통령을 배반하고 탄핵을 주도한 세력은 개인적 원한에 이끌린 소인배들이었습니다."
 
'잔인한 대중'과 '정치 소인배'들에 이어 '정치적인 헌법재판관들'마저도 그에게 충격과 비통을 안겨주었다.
 
"법관들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해서 안 될 짓을 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재판하였습니다. 탄핵이 판결되는 날, 국민의 절반은 축배를 들었지만, 절반은 비통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영훈 교수를 비롯한 뉴라이트들이 촛불혁명 이후로 어떤 심경을 품었는지는, 이영훈 교수의 스승이자 뉴라이트의 구심점 중 하나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의 언급에서도 잘 드러난다. 촛불혁명 기간에 안병직 교수는 이명헌 전 교육부장관 및 윤평중 한신대 교수와 '대한민국이 사는 길'이라는 주제의 대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안병직 교수는 대한민국은 '보수세력의 조국'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진보세력한테는 대한민국이 그런 조국이 되기 힘들다고 그는 말했다. 철학문화연구소가 2017년 3월 발행한 <철학과 현실> 제112호에 따르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보수는 자기들이 건국하고 발전시켜온 대한민국이니까, 대한민국을 자기의 조국이라고 인정하지요. 그런데 진보는 반외세운동·민주화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과 대립하고 싸웠으니까, 대한민국을 선뜻 자기의 조국이라고 인정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1919년이 아닌 1948년에 건국됐다는 전제하에, 1948년 정부수립을 주도한 보수세력이 이 나라를 만들고 발전시켜온 주역이라고 생각하는 안병직 교수의 인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의 주장은 기존 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보수진영의 애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을 자기들만의 조국으로 생각하는 보수의 편향된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일반 대중과 상대 진영을 대한민국의 객(客)으로 바라보는 그릇된 인식이다.

1919년 임시정부를 계승하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부터 위 대담이 있었던 2017년 초반까지의 69년 기간 중에서 김대중 및 노무현 집권 기간 10년을 빼면, 보수진영이 좋아하는 정권이 집권한 기간이 69년 중의 85.6%나 된다. 이러니, 보수의 입장에서는 총 한 자루 들지 않은 '객'들의 호통 앞에 박근혜 정권이 코너에 몰리고 정권이 힘없이 바뀌는 현실이 분통 터질 일이었던 모양이다.

이영훈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는 보수 진영의 그 같은 분통을 대변하고 있다. 자신들이 오랫동안 지배해온 대한민국이 '평범한 만인들의 나라'로 변할지 모른다는 위기감. 그래서 지금의 경향에 제동을 걸고 보수의 단결을 촉구하고자 이런 '물건'을 들고나왔다고 말할 수 있다.

에필로그에서 이영훈 교수는 "아무리 돌아봐도 시대의 목탁으로서 정신문화를 인도한 철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라며 대한민국의 현실을 개탄했다. 그래서 그 자신이 '시대의 목탁'이 되어 반일 감정에 철퇴를 가하고 자유시장주의를 사수하고자 <반일 종족주의>를 세상을 향해 던졌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그들만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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