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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사고 이후 8년... 일본인들은 왜 불교를 찾을까

[리뷰] 제11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국제경쟁작 <전좌-후쿠시마의 승려>

19.09.24 15:30최종업데이트19.09.2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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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국제경쟁작 <전좌-후쿠시마의 승려>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11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국제경쟁작 <전좌-후쿠시마의 승려(Tenzo)>는 후지산과 가까이 위치한 야마나시의 '전좌'로 살고 있는 류교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출가한 수도승의 결혼을 엄격히 규제하는 한국 불교와 달리(물론 한국에도 승려의 결혼을 인정하는 종파가 있긴 하다) 일본 불교는 대처승(아내나 자식을 두는 승려)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전좌-후쿠시마의 승려>에 등장 하는 류교 또한 아내와 자식이 있는 대처승이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전좌는 대중을 위해 먹을거리를 구하는 선종의 소임자를 뜻하는 단어다. 

대처승인 아버지를 따라 자연스레 스님의 길을 걷게 된 류교가 사찰 음식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음식물 알레르기를 심하게 앓고 있는 아들의 영향이 컸다. 10년간 수도생활 끝에 아버지의 사찰을 물려받게된 류교는 불교 신자 외에도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사찰 요리 교실, 요가 명상 수업을 개설 하며 전법 활동에 전념한다. 

그런데 <전좌-후쿠시마의 승려>에는 사찰 음식을 통한 대중 포교에 앞장서는 류교 외에도 또다른 수도승 치켄이 등장한다. 그는 지난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가족과 절을 잃은 아픔을 적극적인 재건 활동으로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여 준다. 
 

제11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국제경쟁작 <전좌-후쿠시마의 승려>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때 같은 절에서 수도 생활을 하며 오랜 교분을 쌓아온 류교와 치켄은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단 하나, 깨달음이다. 류교와 치켄이 속한 일본 조동종은 일본을 대표하는 선사 도겐(1200~1253)으로 부터 출발했는데, 중국 송나라에서 중국 조동종을 접한 도겐 선사는 귀국 후 묵조선을 수양하고 마음이 곧 부처라는 가르침을 설파했다. 

하지만 마음이 부처라면 세상에 부처 아닌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 모두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는 한 수도승에 질문에 조주 선사는 왜 없다고 답했을까. 몇 년 동안 불교 공부도 하고 참선도 기도도 해보았지만 부처의 행을 실천하기는 커녕, 부처님의 발바닥의 때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대다수 스님들과 달리 출가 후에도 결혼도 하고 자식도 있지만 엄연히 수도승의 길을 걷고 있는 류교 또한 승려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옳을 길을 가고 있는지 고민이 많은 듯하다. 류교가 음식을 통한 치유 활동 외에도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활동은 생명의 전화 상담인데, 류교에게 오는 내담자 대부분이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가족을 잃거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제11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국제경쟁작 <전좌-후쿠시마의 승려>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후쿠시마와 멀리 떨어진 야마나시에 살고있는 류교 또한 중생들의 건강과 치유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수많은 일본인들과 주변 국가의 안녕까지 위협하는 재앙으로 남았다. 류교의 사촌으로 대처승 집안에서 자랐지만 불교에 큰 관심이 없었던 토미타 카츠야 감독이 종교에 귀의하게 된 것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남긴 상처에 기인한다. 

<전좌-후쿠시마의 승려>는 류교가 자문을 구하는 사승(스승)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종교의 현실 참여를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 참여는 정치 활동, 개입이 아닌 사회 통합과 화합을 위한 갈등 치유에 앞장서는 종교의 역할을 뜻한다. 이는 깨달음 못지않게 보살도와 중생 구제를 중시하는 대승 불교의 지향점과도 크게 맞닿아 있다.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음식을 통한 치유를 택한 류교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시름에 잠긴 사람들을 위로하는 승려가 되기 위해, 모든 존재는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바로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 일본 불교의 현실에 대한 성찰과 비판 뿐만 아니라 궁극적인 깨달음과 보살도를 강조하고 있지만, 실상은 개인의 안녕과 가족의 성공을 위한 기복신앙에 치우쳐있는 한국 불교에도 시사점을 안겨주는 흥미로운 영화다.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각자의 방식대로 중생 구제와 치유에 앞장서는 수도승들의 이야기를 다룬 <전좌-후쿠시마의 승려>는 24일 저녁 8시 경기도 일산 메가박스 백석에서 한 차례 상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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