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시, 안중근이 추켜세운 '왕산 허위'를 잊었는가

[주장] 고향 구미사람들에게 들려드리는 쓴소리

등록 2019.09.25 14:36수정 2019.09.2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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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가 배출한 항일명장 허형식 장군 ⓒ 박도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
 
"군장님, 고향은 어디신가요?"

허형식은 한참 뜸을 들인 뒤 대답했다. 그는 그때까지 삼옥에 대한 잔상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내 고향? 여기서 상당히 머오. 조선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임은동 264번지가 내 고향 집 주소요."
"고향 집 주소를 아주 정확하게 외우십니다."


"행여 조국해방이 늦어 고향산천이 상전벽해로 변해 고향 집을 못 찾을까 주소를 여러 번 되뇌니까 아주 머릿속 깊이 새겨졌소. 내 생전에 가지 못할까 이따금 내자(아내)에게나 아이들에게도 집주소를 귀에 익도록 일러 주지요. 그들이라도 찾아가게."
"무슨 그런 말씀을?"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 하더만."

그날 밤 따라 허형식은 평소 그답지 않게 운명론적인 얘기를 자주 했다. - 박도 지음 <허형식 장군> 37-38쪽
 
위 장면은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이었던 허형식 장군이 1942년 8월 2일 밤, 북만주 헤이룽장성 청송령 계곡에서 소부대 활동을 마친 뒤 두 경위원과 함께 숙영을 하면서 나눴던 대화의 한 대목이다.

이튿날 이른 새벽 이들은 위만군(僞滿國, 괴뢰만주국) 토벌대에게 발각됐다. 허형식 장군과 경위원 한 명은 교전 중 장렬히 전사했다.

내 실록소설을 감명 깊게 읽었다는 대구 주재의 한 기자가 내게 허형식 장군 고향집을 같이 가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 일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침 지난 6월, 고향의 한 서점(삼일문고)에서 '동네서점 활성화 사업을 위한 일환'으로 북 콘서트를 연다고 하기에, 그 길에 그 기자를 안내했다.

2000년 내가 처음 그 동네를 찾아갔을 때 허형식 장군의 당숙인 왕산 허위 선생(1854~1908, 독립유공자)의 생가터는 대나무가 자라는 채소밭이었다. 2019년에 다시 가 보니 반갑게도 왕산허위기념공원으로 새단장돼 있었다.

그 공원 앞이 허형식 장군의 생가터였는데, 그 사이 5층 규모의 빌라 건물을 올려놨다. 항일명장의 생가터가 빌라가 된 것. 독립운동가의 생가터가 지자체의 관리 없이 다른 사람의 소유지로 넘어간 것도 놀라웠지만, 빌라의 이름을 보고 나서는 뒤통수를 쇠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일본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꽃의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동행한 기자에게 부끄러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를 훌쩍 떴다. 그리고는 머릿속에 '어쩌다 충절의 고장 선산 구미가 이렇게 됐을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왕산 허위 선생을 기리다가 만 구미시  
 

13도 창의군 군사장 왕산 허위 선생. ⓒ 허경성

 
이즈음 구미에서는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연인즉, 2016년 수자원공사 구미사업단에서 국가산단 4단지 확장 10호(구미시 산동면 신당로)에 2000여 평의 근린공원을 만든 모양이다. 기왕이면 이 공원에 구미가 낳은 독립운동가 왕산의 호를 딴 '왕산광장'과 전통누각인 '왕산루' 그리고 왕산 가문이 배출한 14인의 동상을 조성해 후세에 산 교육장을 마련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전임 구미시장은 주민공청회, 시민설문조사 등을 통해 공원 명칭은 '물빛공원'으로 하되, 공원 내 광장은 '왕산광장'으로, 전통누각은 '왕산루'로 이름 붙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지난해 구미시장이 바뀌자 일부 산동면 지역 주민 및 단체가 '왕산광장, 왕산루는 지역 정서에 맞지 않는다'며 구미시에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그러자 구미시는 이 진정을 받아들여 이미 결정된 사항을 주민공청회나 여론수렴 없이 번복했다. '왕산광장'은 '산동광장'으로, '왕산루'는 '산동루'로 바꿨다고.

이에 왕산 후손을 비롯한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1인 시위 등으로 구미시에 강력히 항의를 한 모양이다. 그런 가운데 구미시장은 왕산의 후손에게 고성을 내기도 했단다. 이 과정에서 왕산 허위 선생의 손자 며느리가 쓰러져 구급차가 출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구미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왕산 후손 허경성 옹 내외분 ⓒ 장호철

  
역사를 잊은 민족

나는 이런 일들이 일어난 근본 원인은 역사, 도덕심, 정의감에 대한 무지의 소치에 있다고 본다. 내가 전국의 의병전적지를 둘러보다가 안 사실이 있다. 전라도 보성의 어느 고을에서는 백범 선생이 잠시 머물다 간 곳까지 굳이 찾아서 '백범 유적지'로 자랑스럽게 기리고 있었고, 중국에서는 남의 나라 독립운동가도 자국 출신 못지 않게 받들어 기념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예로부터 충절의 고장이라고 일컫던 선산 구미 땅에서는 내 고장 출신의 구한말 13도 창의군 군사장을 지역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내친다는 사실에 그저 말문이 막힌다. 

안중근 의사는 재판정에서 왕산 허위 선생을 우리나라 최고의 애국자로 찬양했다. 심지어 왕산 선생을 형장으로 끌고 간 일본 헌병대장 아카시(明石)조차도 왕산의 인품과 그 고결한 지조에 감동하지 않았던가.

이 모두가 우리 역사를 모르는 우매한 백성들의 한심한 작태라 아니할 수 없다.

"평생 우리 근현대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다가 이제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우리 역사 교육, 특히 근현대사 교육에 대한 불만은 지금도 여전하다. 남의 강제 지배에서 벗어난 민족사회는 당연히 전체 교육과정에서 '민족해방운동사'를 따로 가르쳐야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 박도 지음 <항일유적답사기> 강만길 교수의 추천사 중에서

강만길 교수의 말대로 우리가 올바른 역사를 배우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나는 고향에서 들려오는 이런저런 얘기에 귀 막고 지냈다. 하지만 더 이상 침묵은 비겁한 행위로 '이건 아니다'라는 판단에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을 고향사람들에게 간곡히 전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아울러 이번 일을 계기로 보다 시민의식이 정의롭고 성숙한, 양식이 살아있는 구미로 발돋움하기를 고향 출신의 한 문인, 한 훈장이 충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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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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