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의 죽음은..." 모두를 울린, 소설가 김훈의 한마디

[현장] 62일 간의 기록, '김용균이라는 빛' 북 콘서트

등록 2019.09.25 19:01수정 2019.09.25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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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저녁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 JU 다리소극장에서 '김용균이라는 빛' 백서발간 기념 북콘서트가 열렸다. 김훈 작가가 이날 북콘서트 문을 열었다. ⓒ 김종훈

 
"김용균의 시신은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머리는 롤러 위에, 몸통은 벨트 아래 떨어져 있었다. 현장을 돌아본 김용균특조위는 '일터는 깜깜했습니다. 위원회의 심정도 깜깜했습니다'라고 보고서의 서두에 썼다. 발전은 빛을 얻자고 하는 사업인데 발전의 원료인 석탄은 캄캄했고, 그 석탄을 빛으로 바꾸는 과정의 노동현실은 더욱 캄캄했다."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이자 소설가인 김훈 작가가 24일 저녁 서울 마포구 다리소극장에서 진행된 '김용균이라는 빛' 북콘서트를 열면서 담담하게 읽어 내려간 글 중 일부다.

이 자리에서 김 작가는 "죽음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까 죽음은 무의미한 통계 숫자처럼 일상화돼 아무런 충격이나 반성의 자료가 되지 못하고, 이 사회는 본래부터 저러해서, 저러한 것이 이 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여기게 됐다"면서 "지금 김용균이라는 빛은 비록 작지만, 인간이 잃어버린 감각들을 회복시켜주는 호롱불로 확산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작가는 "해마다 2천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노동 현장에서 안전사고로 죽어 나간다. 이렇게 해야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는가"라고 되물었다.

"경제사정이 어려울 때마다 경영자단체들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반기업 정서가 팽배해 있고, 법인세가 너무 많고, 안전 규제가 너무 무겁다는 것이다. 기업 오너나 고위임원들이 일반 직원보다 백 배 이상의 급여를 가져가면서 법인세와 상속세를 깎아달라고 하면 반기업 정서는 저절로 일어선다. 반기업 정서는 기업이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 이렇게 해야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는가."

깜깜한 조명 아래 김 작가가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에 부쳐'라는 제목의 글을 모두 읽자 객석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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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중 사고로 사망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 이희훈

   
지난해 12월 11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다 사망한 스물넷 청년 김용균씨. 사고 이후 김씨의 가족들은 김씨의 동료들과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시민사회 단체 등과 함께 62일 동안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백서 '김용균이라는 빛'은 그 활동을 엮은 책이다.

"금쪽같은 아들을 둔 엄마 김미숙"


이날 현장에서는 당시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를 이끌었던 관계자들이 발언자로 나서 그간 풀지 못했던 당시의 뒷이야기를 전했다.

시민대책위 활동 기간 62일 중 59일 동안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의 발이 돼 동행한 백승호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선전국장은 "1만1000km를 주행했다"면서 "김미숙씨는 그저 엄마였다. 금쪽같은 아들을 둔 엄마였는데, 아들이 억울하게 죽었는데도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 상황이 (어머니에게) '혼자 싸우면 안 된다'라는 확신을 서게 한 것 같았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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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저녁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 JU 다리소극장에서 '김용균이라는 빛' 백서발간 기념 북콘서트가 열렸다. ⓒ 김종훈

 
김용균씨 사고 당시를 회상하며 말을 보탠 안재범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사고 다음날 회사는 '아무 지시도 안 했는데, 용균씨가 가지 말라고 한 곳을 갔다'라는 내용을 발표했다"면서 "회사는 용균씨를 가해자로 만들려고 했다"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회사의 이러한 태도가 용균씨 어머니가 시민들과 함께 '진상규명'을 외치게 한 직접적인 이유가 됐다는 것이다. 

김용균씨 사고 이틀 후인 12월 13일부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범국민추모제를 이끌었던 이사라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 집행위원은 "'뭐라도 하자'라는 생각에 추모문화제를 준비하게 됐다"라면서 "대책위원회도 없고 노조에서 조직적으로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첫 추모제에 시민 300여 명이 모였다. 김용균씨의 죽음은 다른 집회보다 유독 시민들의 참여율이 처음부터 높았다"라고 덧붙였다.

김용균씨 동료들 "현장 개선되지 않았다"

이날 북콘서트 현장에는 용균씨의 동료들도 함께 했다. 김용균씨가 사고를 당한 당일, 마찬가지로 야간 근무에 투입됐던 동료 장근만씨는 '62일 동안 함께 싸운 이유'에 대해 "어머니 김미숙씨가 매일 고생하는 게 보였다"면서 "그때는 장례를 치를 수 있을지 그 걱정만 했다"라고 당시의 어려웠던 과정을 회상했다.

그러면서 장씨는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의 50%를 떼어먹었다는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 지금까지 어떤 변화도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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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저녁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 JU 다리소극장에서 '김용균이라는 빛' 백서발간 기념 북콘서트가 열렸다. ⓒ 김종훈

 
조성애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9월 28일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청와대 앞에 모여 정부에 특별조사위원회의 권고안 이행과 직접고용, 사측이 떼어간 임금을 줄 것을 요구하는 집회를 할 것"이라면서 "더 이상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특별조사위원회의 권고안 실현을 위해 감시하고 살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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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저녁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 JU 다리소극장에서 '김용균이라는 빛' 백서발간 기념 북콘서트가 열렸다. 어머니 김미숙씨가 발언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 김종훈


마지막 발언자로 나선 김미숙씨는 "용균이가 억울하게 죽었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는 것으로 기억될 것이기에 위안을 갖는다"라면서 "투쟁백서 한 장 한 장을 읽으며 함께 울고 버텼던 수많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감당할 수 없는 큰 아픔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많은 분들 덕분이다.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조금이라도 풀기 위해 함께 해줘 고맙다"라고 강조했다.

김미숙씨는 "오는 10월 26일 노동자와 산재 피해 가족들이 불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 함께 만든 사단법인 '김용균 재단'을 출범할 예정"이라며 "비정규직 없는 세상,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하는 세상을 함께 만들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북콘서트 현장에는 세월호 유가족 합창단인 416 합창단도 함께했다. 이들은 산업재해 피해자 유가족 모임인 '다시는'과 함께 무대에 올라 빛이 된 용균씨를 기리는 노래를 합창했다.
#김훈 #김용균 #김미숙 #기업하기좋은나라 #북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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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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