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류석춘 : 파괴적 분노와 생산적 분노

[조국 사태, 난 이렇게 본다] 사회적 분노가 생산적인 방향의 에너지가 되기 위한 제언

등록 2019.09.27 08:12수정 2019.09.27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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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장관. 사진은 지난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나오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처음 지명된 이후로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었고, 다양한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은, 조국 장관 지명에 대한 격렬한 반대와 분노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조국 장관을 향한 공격에 대한 반대 방향의 분노 역시 강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분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역사적으로 어떤 분노는 국가와 사회를 더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어떤 분노는 국가와 사회를 더 힘들게 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내가 하는 분노는 정당하고, 상대방이 하는 분노는 부당하다'에 머물고 있다. 내가 하면 역사의 진보이고 대중의 명령이며, 네가 하면 홍위병이고 파시즘이다.

이런 수준으로는 더 나은 결론을 이끌어내기 힘들다. 한국 정치는 다이나믹하며 수많은 정치 사건들이 이슈가 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열정은 촛불혁명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리드할 수도 있지만, 다른 나라들이 겪었던 것처럼 사회의 퇴보를 일으키거나 포퓰리즘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분노가 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두 '분노'는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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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조국 교수 법무부장관직 자진 사퇴 촉구 제3차 서울대인 촛불집회'가 열린 모습. ⓒ 권우성

 
먼저 대의명분을 앞세우고 정파성을 낮춰야 한다. 정당 활동이나 정치적 호불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일이며, 정당을 거쳐서 여러 가지 정치적 발전을 만들어 낼 수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분노가 터져 나올 때, 그 분노가 정파성에 함몰된다면 그 분노 역시 해당하는 정파성에 동의하는 사람, 해당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갇혀 버린다. 그 밖에 있는 사람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굉장히 어려워진다.

그걸 해내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대의명분이 중요하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모두 분노할 수 있는 일이었다. 반면 조국 장관에 대해 반대하는 시위의 경우, 몇몇 대학교에서 일어난 시위는 초반에는 조국 장관의 자녀가 부당한 혜택을 얻어 대학교에 들어왔기 때문에 분노한다는 성격이 강했다. 이 시점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대의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나경원 의원 자녀가 서울대 의대 교수로부터 혜택을 받았다는 논란에 대해서 이 시위는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조국 밑에 나경원 이름 석 자를 더 넣음으로써 이 시위는 정파성을 넘어 가진 자들의 특혜를 모두 비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문턱을 넘지 못했다. 스스로 대의명분을 버리고 정파성에 갇힌 것이다.

반면 류석춘 교수의 발언에 대한 분노는 방향이 다르다. 한국 근대사의 아픔으로서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더 나아가 학생에게도 모욕적 발언을 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문제 인식을 공유하고 함께 분노할 수 있다. 류석춘 교수가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정파성을 넘어서 다같이 분노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지금 문제제기가 좋은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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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강의 도중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지난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류 교수 연구실 문 앞에 항의 글로 도배되어 있는 모습. ⓒ 유성호

 
분노가 위선으로 향하면 위험하다


그리고 위선에 대한 비난이 돼서는 안된다. 조국 장관을 비롯한 관계자가 받고 있는 불법행위 혐의 또는 부당한 행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 기준이 불법이냐 아니냐 여부에 머무를 수는 없으며, 불법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부당한 행동이라면 분노가 일어날 수 있다. 이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위선, 즉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은 타당한 분노를 일으킬 사유가 되기 어렵다.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평소에도 나쁘게 행동했는지 아니면 평소에는 굉장히 고결하고 옳은 말들을 했는지는, 그 사람의 행동 자체를 평가하는 데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고 본다.

위선이 불법보다 나쁘다는 지경에 이르면 단지 누군가 재수 없다는 이유로 더 악한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꼴이 된다. 인간적인 배신감·실망감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분노의 연료가 된다면 그 결과는 위선자보다 더 악한 사람들의 승리일 뿐이다.

판사는 불법에 대해서 경중을 가려서 가벼운 죄에는 가벼운 벌을 내리고 무거운 죄에는 무거운 벌을 내린다. 분노 역시 그 불법성과 그 부당함의 정도에 따라가는 것이 맞는 방향이다. 분노가 감정에 치우치고 위선을 향한다면, 사람들은 점차 옳은 주장을 하는 그 자체를 꺼리거나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옳은 말들을 하지 않게 되면 사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옳은 소리는 좀 부족한 사람들이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사회적 방향으로서 맞다.

'이도 저도 다 싫다'가 싫다

또한 정치 혐오는 경계해야 한다. 분노의 방향은 정파성을 초월하거나,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어떤 정파에 함몰돼서도 안 되지만, 모든 정치세력을 똑같이 거부하는 방향으로 가서도 안 된다.

모든 정치세력을 철저하게 거부하는 것은 결국 축적된 기득권층의 사회적 자본을 더 많이 가진 정치세력의 독재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일본 자민당의 아베 정권이, 대다수 시민들의 정치혐오와 무관심 속에 탄생한 정권이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공격성을 드러내고 도쿄올림픽 준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원인 중 하나가 일본의 민주주의 작동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드는 것은 현재 한국의 정치 환경에서 상당히 어렵다. 또한 새로운 정치세력의 역량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된 정책적 기반이 부재한 포퓰리즘에 빠지기 아주 쉽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이 현재 보여주고 있는 혼란스러운 모습이 그러하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은 좀 더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소수의 국회의원이라도 일단 당선시킬 수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보다 많은 국민들의 판단을 받으며 누군가는 탈락하고 누군가는 더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기존 정치세력의 긴장과 역동성을 불어넣는 방법이다.

지금의 정치인들은 분노를 경청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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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24일 오전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왼쪽은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며 삭발한 박인숙, 최교일 의원. ⓒ 남소연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분노 밖에 있는 사람들, 특히 기존 정치 세력들의 경청하는 자세다. 분노가 커져서 모든 것을 파괴하지 않도록, 기존 정치세력은 그들을 존중해주고 공감해야만 한다. 이것은 기존 정치 세력이 살아남고 지지를 넓히기 위한 필수 과정이기도 하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특정한 분노 현상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하고 비판하는 과정이 진행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정치 세력은 비판보다는 존중과 공감을 하면서, 그들의 분노를 다독여 주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파괴적 분노를 생산적 분노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특히 분노 뒤에 특정한 조직이 있거나 기업이 있다는 음모론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정한 조직이 있는가 없는가를 판별하는 일 자체는 애초에 중요하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지금, 모든 분노는 여러 가지 사회적 세력이나 움직임의 총합으로 나타난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조직이 있든 없든, 일정 이상의 사람들이 그러한 분노에 호응한다면 의미를 갖게 된다.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입장에서는 분노의 방향이 타당한가가 아주 중요하지만, 정치 세력의 입장에서는 분노의 방향보다 분노의 크기가 더 중요하다. 분노가 충분히 크다면 일단 경청해야 한다.

현재 정치 세력은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인사청문회 기간 동안 몇몇 의원들은 조국 장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분노에 대해 공감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하지만 어떤 의원들은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분노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발언도 뱉었다.

당 차원에서 조국 장관을 지지하는 것과 별개로, 분노한 사람들에 대해 더 몸을 낮춰 다가가는 모습을 더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열성적인 지지자들도 중요하지만, 정당의 성패는 결국 지지기반을 더 넓히는 데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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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23일 오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조국 #류석춘 #선택적 분노 #정치혐오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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