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퇴사는 무조건 뜯어말리고 싶다

[30대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잘못된 퇴사로 큰코다치지 않으려면

등록 2019.09.29 12:34수정 2019.09.29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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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대에 접어드니 지나온 시간이 이제야 제대로 보입니다. 서른과 마흔 사이에서 방황하던 삼십 대의 나에게 들려주고픈, 지나갔지만 늦진 않은 후회입니다.[편집자말]
4대 보험이 되는 직장에 입사하는 것이 장래희망인 적이 있었다.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돈이 찍히는 직장이 부러운, 가난한 프리랜서 작가의 지극히 현실적 희망이었다.

나도 정규직이었던 적이 있었다. 스트레스로 한쪽 청력을 잃고 퇴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잡지사에서 일하던 그때에는 연봉도 꽤 높았고, 일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관리자 역할을 맡게 되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 달에 열흘 정도는 야근을 해야 했는데 이것저것 변덕스러운 요구사항이 많은 상사들의 비위를 맞추기까지 해야 했고, 실적에 대한 부담도 많았다. 건강을 잃으면서 마음도 조금씩 회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그러자 회사를 그만둬야 할 이유들이 계속 생겨났다. 무엇보다 그만두지 않으면 계속 살던 대로 살 것 같았는데, 그 미래가 너무 암담했다.

돌다리도 몇 번이나 두들겨보고 건너는 타입이어서 주변에 의논을 했다. 그때가 약 14년 전이니 지금과는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인생의 하프타임이라는 말이 막 나오기 시작한 때여서 그런지 대부분 쉬어가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으라는 말도 덧붙였다.

마침 그만두고 싶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듣고 싶었던) 조언까지 들으니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일단 'STOP'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난 정규직과 이별했다.

회사가 그리워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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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실수는 안일했다는 점이다. 마구 액셀러레이터를 밟다가 급정거를 해버린 것이다. ⓒ unsplash

 
일한 만큼 월급이 제때 통장에 꽂히는 시스템을 아예 경험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그 맛을 본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정규직이 아쉬워질 때가 있다. 하루아침에 실직해도 실업급여도 못 받는 데다, 지역으로 내는 건강보험은 또 왜 그리 비싼지. 세상이 온통 도둑 같았다. 계약대로 일하고도 제날짜에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럴 때마다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익숙하지 않아 혼자 전전긍긍했던 날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일이 없는 시기에는 초조함에 구인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프리랜서의 여유나 낭만은 통장 잔고가 '0'에 임박한 상황에선 그야말로 사치스러운 말이었다. 이런 냉혹한 현실에 부딪힐 때마다 '좀 더 참고 다닐 걸 그랬나', '내가 상하지 않는 적정한 선을 찾아내서 가늘고 길게 갔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들곤 했다.


마흔 가까운 나이에 프리랜서가 되고 보니 새삼 회사가 내게 울타리 같은 곳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만 있을 땐 몰랐던 감각이었다. 내가 프리랜서로 자리를 잘 잡고 잘 나갔더라면 아쉬움과 후회가 덜했을지도 모르겠다. 냉정하게 말해 당시 나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옴팡지게 고생했다.

그래서 누군가 '퇴사'를 이야기할 때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질 않는다. 그 사람이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고단한 시간들이 먼지처럼 쌓였을지 충분히 가늠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밖 세상의 치열함을 알기에 노파심이 먼저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퇴사 후에 고생을 한 이유는 간단하다. 잘못된 퇴사를 했다. 결정적 실수는 안일했다는 점이다. 마구 액셀러레이터를 밟다가 급정거를 해버린 것이다. 사장님은 4개월의 휴직을 허락하며 다시 돌아오라고 했지만 거절했다. 아예 다른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 한 마디로 리셋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다 보니 사표를 쓴 이후의 시간에 대한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 나이는 생각하지 못한 채 내 경력이면 재취업이 그다지 어렵지 않을 줄 알았다. 근거 없는 낙관에만 기대서, 막연하게 출판 기획 쪽 일을 알아봐야겠다고만 생각했다. 무엇이 하고 싶은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1년간의 휴식 후 다시 일을 시작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때였다. '나이 많은 경력단절여성'이 돼서 재취업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망할 수밖에 없었다. 순전히 타의에 의해 프리랜서가 된 셈이다.

프리랜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어쩌다 운이 좋아(?) 방송작가가 됐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했는지 모른다. 프리랜서라는 정글에서 개인사업자로 살아남는 법을 전혀 모른 채로 어쩌다 던져졌으니 오죽했으랴. 안정적이지 않은 수입 때문에 눈 앞의 돈에 급급해서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마구잡이로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퇴사하기 전과 별다를 것 없는 상황에 한숨이 나왔고, 내 능력의 한계에 좌절하곤 했다. 한편으론 한 우물을 파면서 차장, 부장으로 승진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부러움만큼 내 선택에 대한 후회도 커졌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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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큰코다치지 않으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나도 좀 배워볼까 싶어서 찾아보니 괜찮은 아이디어와 모임들이 있다. 조심스레 기웃거려 본다. ⓒ unsplash

 
요즘은 '퇴사가 유행'이라는 말도 있다. 한편으로는 퇴사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회사 생활 이외의 모임을 통해 자신의 관심 분야와 취미를 살려 재미와 실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퇴사를 준비하기도 한다. 영리한 방법이다. 퇴사를 하는 데도 전략이 필요한 까닭은, 그것이 나다운 삶을 찾아가는 데 꼭 필요한 속도를 조절해 주기 때문이다.

퇴사를 생각했다면, 계획이 있어야 했다. 물론 인생이 계획한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스스로 어떤 콘텐츠를 갖고 어떻게 브랜드화해서 '마케팅'해야 할지는 발견하고 준비했어야 했다.

생각해 보면 바쁜 삶에 등 떠밀려 쫓기느라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퇴사하지 않더라도 내가 상하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는 동력을 얻는 일에 지나치게 무지했다. 난 전략 부재로 퇴사 이후에도 속도 조절에 실패했고, 그 결과 40대도 허겁지겁 살았다.

퇴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요즘, 퇴사를 잘 준비하는 20·30대에게서 오히려 많이 배운다. 덕분에 내 퇴사가 어떻게 잘못됐는지도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때 왜 그랬나 몰라' 하는 이불킥 수준의 후회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어차피 어떤 쪽의 생을 선택하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만큼 선택에 대한 후회도 어느 정도 있기 마련이다. 다음에 이야기하겠지만 퇴사 후 1년의 휴식기간이 나에게는 인생 최고의 낭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 그랬다. 어른이란 자신이 선택한 삶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 30대에 준비 없이 퇴사한 덕분에 정글에서 산전수전 겪으면서 멋지게는 아니지만 근근이라도 살아남았고, 이제는 내가 쓰고 싶은 글과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인지 조금씩 발견하고 있다. 내 선택에 구멍은 많았어도 지금의 내 삶에 불만이 없는 이유다. 좀 늦었다는 게 문제지만, 좀 늦게 가면 어떤가. 등 떠미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다만 사표를 준비하던 30대의 나에게는 조금 미안하고 아쉽다. 영리하게 속도 조절을 했더라면 몸이 망가지진 않았을 텐데. 또 삶의 90%를 차지했던 회사 생활의 비중을 줄이고, 조금 더 나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었다면 삶의 질이 조금 더 나아졌을 텐데. 만약 다시 그런 상황이 주어진다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경험해 보고 싶다. 일단은 회사에 다니면서 말이다. 회사 업무에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나에게 좀 더 안정적인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다.

그렇다면 오십을 앞둔 '지금'의 나에게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아직 조금 더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퇴사'는 여전히 나에게 뜨거운 화두이다. 외형상으로는 퇴사할 일이 없는 프리랜서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다음 계약이 안 되면 그게 바로 퇴사인 직종이기 때문이다.

또 다시 큰 코 다치지 않으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나도 좀 배워볼까 싶어서 찾아보니 괜찮은 아이디어와 모임들이 있다. 조심스레 기웃거려 본다. 이런, 나이제한이 있단다. 또 한 번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터져 나온다.

"그래. 뭐든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해야 한다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30대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퇴사 #영리한 퇴사 #정규직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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