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를 직접 만들어 먹으면서 생긴 일

[최소한의 소비 23] 적은 돈으로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요령

등록 2019.10.01 18:57수정 2019.10.0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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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를 사 먹을 사람이 될 것인가, 돈가스를 튀길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인가. 예전에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식당 사장님이 튀겨주는 돈가스를 먹는 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돈가스쯤이야 일해서 돈벌고, 그 돈으로 다시 사먹으면 그만이었다. 쉽고 간단한 일이었다.


돈가스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삶의 대부분을 외주화 하게 되었다. 먹는 거에서 아이 양육, 더 나아가 행복까지 돈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이 오감 발달을 위해 아이와 가을 들판으로 나가기보다, 오감 놀이 센터에서 부직포로 된 허수아비 옷을 뒤집어 쓰게 했다. 집 앞 들꽃으로 환해지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고, 유행에 발맞춘 브랜드 옷과 작고 반짝이는 액세서리들을 보며 웃었다.

편했다. 돈이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 줬으니까 말이다. 돈가스는 맛있고, 사진 속 아이는 웃고 있으며, 번듯하게 차린 나는 그럴싸했다. 편리함에 도취되어 돈가스를 직접 튀기는 선택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평생 무탈하게 돈 벌고, 돈 쓰면 될 줄 알았다. 낯선 이의 노동을 돈 주고 사고, 사고, 또 사면서 내 삶을 그렇게 엮어갈 수 있을 줄 알았던 거다.

변수 없을 줄 알았던 삶이었건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던 변수가 툭 떨어졌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의심없이 매달 급여가 찍히던 내 통장이었는데, 어느 순간 텅 비어버린 거다. 육아휴직을 시작했고, 또 연장했기 때문이다. 육아휴직 첫 1년에는 월급의 반의 반이라도 받았는데, 육아휴직을 연장하니 그마저도 받을 수 없었다. 육아휴직 동안이긴 하지만, 우리는 외벌이가 되었다.
 

소비 없이 무언가를 할 수 없는 무능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집 앞 정육점에서 떼 온 돼지고기 안심살에 튀김 옷을 입히는 일은 자립의 상징이다. ⓒ 최다혜

 
한쪽 소득이 숭덩 토막 나서야 질문했다. 돈가스를 사 먹을 사람이 될 것인가, 돈가스를 튀길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인가. 조금이라도 저축을 하려면 돈가스를 직접 튀겨야 했다. 돈으로 바꾸던 일을 직접 할 줄 알아야, 은행에 빚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의외로 돈가스를 튀기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심지어 정육점에서 방금 떼온 고기로 갓 튀겨내니 맛있었다. 비루한 실력이지만 내 힘만으로도 낯선 이의 노동을 메울 수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충당한다는 면에서, 외식 대신 집밥을 하는 건 일종의 자급자족이었다. 밭을 갈고, 씨앗을 뿌려, 작물을 거두는 것만이 자급자족이 아니었다. 도시에서도 충분히 자급자족할 수 있는 영역이 있었다.


외식 대신 집밥을 시작으로 남동생 결혼식 때 혼주 메이크업 서비스 대신 직접 화장하고, 머리 매만졌다. 영아 사교육 대신 매주 도서관에서 열댓권의 책을 빌려와 읽어주고, 근처 공공 전시와 체험 시설 부지런히 드나들기도 했다. 최신 가전제품에 길들여지지 않기 위해 빗자루를 들었고, 건조대에 빨래를 널었다. 시시콜콜하게 나열했지만, 내 힘으로 해낼 수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는 이웃들과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까지 자급자족 해 보았다. 배를 불릴 만한 먹거리는 아니지만, 삶을 삶답게 하기 위해 배움과 성장이 빠질 수는 없었다.
 

영아 사교육 대신 부모가 힘껏 아이에게 세상을 가르쳤다. 영아 사교육 없이도, 아이는 천천히 한글을 배워나가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 나갔다. ⓒ 최다혜

 
배움도 자급자족 할 수 있다

절약 모임 멤버 11명이 모여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이름하여 '작당(作黨)'.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지을 작, 무리 당이니 '짓는 무리'이란 뜻이면서도, 사전적 의미로는 떼를 지어 다닌다는 말이다. 작은 탁자에 11명이 몰려 앉아 글쓰기 이야기를 하는 풍경을 보면, 우리에게 꼭 맞는 모임 이름이었다.

우리는 몹시 어설프다. 먼저 나부터 위태롭다. 매주 PPT 자료를 준비해서, 2시간의 모임을 꾸려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글쓰기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니 감히 멤버들에게 '가르칠' 형편은 못 된다. 가진 지식을 나눠줄 수 있는 정도다. 강의료 지불 후 듣는 전문 글쓰기 강좌만큼 온전하지 못하다. 멤버들의 글쓰기 실력을 단번에 향상시켜줄 리도 없고, 좋은 편집자도 못 된다.

환경도 변변치 못하다. PPT 파일을 담은 5년 된 무거운 노트북을 에코백에 넣어, 모임 장소로 가져간다. 11명의 멤버들은 크고 넓은 스크린에 빔 프로젝터로 쏘여진 영사물이 아닌 작은 노트북 화면 하나에 의존해야 한다.

노트북에서 멀리 앉은 멤버들은 고개를 쭉 빼고 볼 수밖에 없다. 아파트의 작은 거실에 좌탁 세 개를 이어 붙였고, 함께 나눠 마시는 음료도 인스턴트커피 포장지를 쭉 뜯어, 커피포트 물을 받아 마신다.
 

매주 한 번, 11명의 멤버가 모여 글쓰기 모임을 한다. 어설픈 환경이지만 꾸준히 글 쓸 수 있는 동력이 된다. ⓒ 최다혜

 
모임의 리더인 나부터 모임 환경까지, 돈을 내고 듣는 강의만큼 최선이 못 된다. 흠 없는 상황에서 모임을 꾸려가진 못 하지만, 각자가 가진 최선으로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강의 자료를 만들고, 누군가는 쿠키를 구워오고, 누군가는 포도알을 씻어왔으며, 누군가는 현관을 열어주고, 따뜻한 커피를 내어준다.

무엇보다 우리는 강의료를 지불하고 들어야 하는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매주 한 편 씩 글을 쓰고, 공유하며, 합평한다. ​각자에게 직면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서 글쓰기를 택했기에, 배우는 게 기껍고 행복했다.

워킹맘으로서, 두 아들의 엄마로서, 결혼을 앞두고서, 후회 없는 노년을 위하여, 바니시를 직접 칠해 책방을 만들고 있는 예비 책방 지기로서, 글을 쓴 후 문제를 더 선명하게 바라봤다.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 했지만,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덕분에 콘텐츠 생산자 정도는 되었다.

글쓰기 전문 강사에게 배웠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문가의 손길이 최선이라 하여, 비전문가의 노력이 최악은 아니었다. 단지 차선일 뿐이었다. 공동체가 함께 모이면, 차선 즈음은 된다.

가난의 현대화를 극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돈으로 바꾸는 데 더 익숙하다. 그래서 돈이 떨어질 상황을 상상하면 불안해 한다. 소득이 끊기는 건 자연재해처럼 일어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게 아니다. 언젠가, 누군가는 겪을 일이다. 나처럼 아이를 양육하느라 소득이 줄어들 수도 있고, 건강상의 이유로, 사업의 실패로, 무엇보다 우리는 정년까지 일하고도 앞으로 30년을 더 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평생 지금처럼 돈을 잘 벌 수 있을 것처럼, 돈에 삶의 대부분을 맡긴다. 운동화 빨래는 세탁소에, 청소는 청소기에, 밥은 식당에, 교육은 학원과 온갖 체험 프로그램에 의존한다. 세탁소는 손빨래보다 낫고, 청소기는 빗자루보다 편하며, 식당밥은 더 맛있고, 학원 선생님은 더 잘 가르친다.

더 나은 물건과 서비스는 세상에 넘친다. 우리는 점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보다, 돈을 열심히 벌어 남에게 맡기는 걸 더 합리적이라 여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필연적으로 소득이 줄어들 어느 날을 맞이하게 된다. 외면하고 싶지만, 돈이 떨어질 그날을 상상하며, 우리는 불안해 한다.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의 저자 이반 일리치의 표현에 따르면, '가난의 현대화에 처해 있다'라고 한다. '가난의 현대화'란 모든 것이 풍요롭지만 돈을 벌어 상품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전문가에게 의존하다보니 개별 능력이 감퇴해버린 것이다.

현대인의 새로운 가난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보다 간단하다. 바로 돈으로 바꾸던 일을 직접 해보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도 상품 의존도를 낮춤으로써, 감퇴된 개별 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상품 의존도를 낮추는 길은 시장이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이 시대의 막을 내리는 길이다. 사회적으로 절제의 윤리를 키워 인간이 스스로 행동하고 이를 통해 필요를 만족시키는 시대를 여는 길이다.
-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중, 이반 일리치 지음.
 

육아휴직 중, 적은 돈으로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방법들을 익혀나가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편안한 시간 뒤에 반드시 금전적 불안만 있는건 아니었다. ⓒ 최다혜

  
육아휴직 중 잠시 외벌이 가정으로 살면서 곤궁한 살림을 꾸려가는 경험은 귀한 교훈을 주었다. 직접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 둘 늘려가면 경제적 능력과 행복을 어느정도 분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시작은 돈가스를 직접 튀겨봄으로써 생긴 일이었다.

내년이면 다시 복직한다. 맞벌이가 되는 만큼 많이 벌 수 있다. 그러나 예전처럼 많이 벌어 많이 쓰는 알고리즘으로 삶을 영위하고 싶지 않다. 워킹맘이 되어서도 간소한 삶을 살고 싶다. 직접 할 수 있는 일들을 늘림으로써 적은 돈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일상을 길들이고 싶다.

맞벌이 부부의 삶은 노력으로 극복하기 힘들 만큼, 시간과 체력이 부족하다.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잠시 경험했던 맞벌이 워킹맘의 일상은 녹록지 않았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만큼 최소한의 소비를 이어나갈 것이다. 나와 남편은 언젠가 나이가 들어 직장을 떠나게 될 것이고, 퇴직 후에도 수십 년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급자족하는 단순한 삶은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노후대책으로도 훌륭하다.

돈가스로 시작해서 글쓰기 모임까지. 적은 돈으로도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들을 차곡차곡 쌓았다. 어설프기는 하나 구태여 큰 돈을 쓸 이유 또한 없었다. 씀씀이를 줄이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보다 오늘, 지금, 여기를 산다. 손 발을 움직여,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나선다면, 먹고 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dahyun0421)에도 실립니다.
#최소한의소비 #글쓰기모임 #절약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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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 쓰고, 사랑합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 꿉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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