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여성의 농촌 삶을 소개한 일본책

나가츠 에츠코 씨, 《식민지하 생활의 기억, 농가에 태어나 자란 최명란 씨의 반생》

검토 완료

이윤옥(koya26)등록 2019.09.30 08:39
나가츠 에츠코(永津悦子, 70살) 씨는 자신이 쓴 《식민지하의 생활의 기억, 농가에 태어나 자란 최명란 씨의 반생 (植民地下の暮らしの記憶 '農家に生まれ育った崔命蘭さんの半生')》(三一書房. 2019.8)이란 책을 얼마전 기자에게 보내왔다. 이 책은 나가츠 에츠코 씨가 재일동포인 최명란(92살) 씨와의 대담을 통해 일제침략기 조선여성의 농촌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한 책이다.

 

식민지하의 생활의 기억 《식민지하의 생활의 기억, 농가에 태어나 자란 최명란 씨의 반생 (植民地下の暮らしの記憶 ‘農家に生まれ育った崔命蘭さんの半生’)》표지 ⓒ 삼일서방(三一書房)

  
 

최명란 씨 이 책의 주인공인 재일동포 최명란 씨 (92살) ⓒ 최명란

 
 
나가츠 씨가 이 책의 막바지 교정을 볼 무렵인 지난 5월 20일, 기자는 일본 가마쿠라(鎌倉)에서 나가츠 씨를 만났다. 나가츠 씨는 일본 고려박물관(1990년 9월, 조선침략을 반성하는 뜻에서 양심있는 시민들이 만든 단체) 조선여성사연구회 회원으로 2014년부터 재일동포인 최명란 씨를 만나 5년 동안 대담에 성공, 이번에 이 책을 펴내게 되었다.
 
가마쿠라의 한 찻집에서 나가츠 씨는 교정본을 내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이 책을 쓴 계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14년 고려박물관 주최로 '식민지 시절 조선의 농촌 여성' 전시회가 있었는데 그때 만난 최명란 씨를 수년 동안 대담하는 과정에서 얻은 자료가 있어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느 때는 아침 10시에 만나 낮 2시까지 점심도 거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등 지난 5년 동안, 나는 최명란 씨를 통해 조선여성들의 식민지 시기의 삶에 대해 푹 빠져 있었다."고 했다.
 
이 책의 배경은 1927년부터 1945년 동안으로, 이 시기를 실제 산 최명란(92살) 씨를 통해 '일제침략기 조선 농촌 여성의 삶을 일본에 알리고자 하는 의도'로 집필된 것이다. 하지만 최명란 씨는 1927년생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어나자마자 일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므로 최명란 씨가 대여섯 살 이후부터 1945년까지의 기간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더욱이 이 책에서 다룬 최명란 씨의 '조선의 기억'은 최명란 씨가 현재 92살이라는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사안에 따라서는 불명확한 점도 있을 것이다.(대담을 시작한 것은 87살부터 5년간)

 

최명란 씨 아버지와 어머니 갓을 쓴 최명란 씨 아버지와 어머니, 1965년 ⓒ 최명란

   

최명란 씨 혼인식 1945년 1월 3일, 최명란 씨 혼인식 ⓒ 최명란

   

최명란 통지표 최명란 씨의 영산공립보통학교 2년때의 통지표(1935년) ⓒ 최명란

   
무엇보다도 주인공인 최명란이라는 여성이 일제침략기 조선 농촌을 대표하는 인물일 수 있는가 하는 점에는 일말의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그 까닭은 최명란 씨 집안이 당시 조선 농민의 80%나 되던 소작농 가운데서도 유달리 자작지(自作地)가 많은 소작농이었다는 점과 1930년대에 조선 여성의 보통학교(소학교) 입학률이 8.8%(이 책 6쪽 참조)였던 시절에 최명란 씨가 보통학교를 마쳤다는 점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의 주인공인 최명란 씨는 일제침략기 생활 형편상 상위 20% 이내에 속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미리 알고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일제식민지 시기에 조선인(조선여성)들은 먹고살 만했다.'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해두고 싶다.
 
그렇다고 이 책의 의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지은이 나가츠 씨의 말대로 '식민지 당시 조선 여성의 삶'을 일부나마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높이 살만하다. 식민지 당시 조선에서 여성의 삶을 일본인이 5년 동안 생존자의 증언을 토대로 꼼꼼하게 기록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그러한 작업이 가능했던 것은 고려박물관 회원으로서 평소 '일본의 식민지 통치하의 조선, 조선인, 조선의 역사'에 많은 관심과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은 내공 덕이라고 생각한다.
 
나가츠 씨는 최명란 씨와의 대담을 해나가는 가운데 특히 두 가지 사항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하나는 농촌의 소작농 문제로 1925년부터 1939년까지 14년 동안 소작농이 39만호나 늘었는데 총독부가 농촌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점과 여성차별이 심했던 시대(일본도 마찬가지)에 조선여성들은 어떻게 이 시대를 살아냈는가 하는 점이라고 했다.
 

영산민속전시관에 전시된 농기구(1) 창녕의 영산민속전시관에 전시된 농기구(1) ⓒ 영산민속전시관

   

영산민속전시관에 전시된 농기구(2) 창녕의 영산민속전시관에 전시된 농기구(2) ⓒ 영산민속전시관

   

가마니 짜기 농한기에 가마니 짜는 모습 ⓒ 영산민속전시관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일본에 건너가기 전까지 기록(혼인 전 가족, 학교생활, 어린 시절, 고향의 명소, 혼인, 도일)이고, 2장은 자소작(自小作)농가의 생활(자급자족, 주거, 식량상태, 식사, 현금 수입이 되는 작물, 일, 비료, 길렀던 동물, 장작, 제사, 점)이며, 3장은 자소작(自小作) 농가의 여성(가사를 담당한 것은 큰오빠 올케, 밥짓기, 물길어 오기, 옷만들기, 빨래, 육아, 여자의 일생은 태어나서 시집가고 죽는 것 세 가지뿐)으로 되어있다.
 
부록으로는 경상남도 창녕의 영산민속전시관에 전시된 농기구 등의 자료와 최명란 씨가 가지고 있던 소장품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일본어로 되어있으며 지은이 나가츠 에츠코(永津悦子) 씨와의 누리편지 대담을 아래에 싣는다.
 
▶ 나가츠 에츠코(永津悦子) 지음, 《식민지하의 생활의 기억, 농가에 태어나 자란 최명란 씨의 반생 (植民地下の暮らしの記憶 '農家に生まれ育った崔命蘭さんの半生')》(일본 도쿄 三一書房. 2019.8)

 

에츠코 씨 책을 쓴 나가츠 에츠코 씨, 농사일을 하다 찍은 사진 ⓒ 나가츠 에츠코

 

- 책을 쓴 계기는 무엇인가?
 
"2014년 가을, 제가 소속된 고려박물관 조선여성사연구회에서 '근대 조선 여성의 역사와 재일 조선인 여성의 발자취'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연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담당한 것은 '식민지 시절 조선의 농촌 여성'이었다. 이를 위해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사 월보, 잡지, 신문 등 여러 자료를 접했다.
 
그러나 이 자료에는 여성의 삶에 대한 기록이 적은 데다가 특히 농촌 여성의 삶을 알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었다. 그런 가운데 농촌에서 나고 자란 여성으로 일본에서 사는 재일동포 최명란(대담 당시 87살) 씨를 소개받았다. 당시에는 전시회 자료를 얻기 위해서였지만 전시회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만나 많은 자료를 얻게 되어 책으로 만들기로 했다."
 
- 집필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
 
"2014년 5월부터 최명란 씨를 만난 이후 그해 전시회용 판넬을 만들었다. 이 자료는 2014년 9월 초부터 11월 말까지 고려박물관에서 전시했다. 전시를 마치고 고려박물관 조선여성사연구회 회지에 3회에 걸쳐 글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최명란 씨를 이후 수십 차례 더 만나 대담을 하고 그가 살던 고향인 창녕을 2017년 4월에 방문하였으며 그곳에 있는 '영산민속전시관'을 찾아가 농기구와 민예품 등의 사진을 확보했다. 자료수집과 대담, 집필까지 시간은 대강 5년 정도 걸렸다."
 
- 재일동포 최명란 씨는 어떤 사람이며 현재 건강상태는 어떤가?
 
"1927년 경남 창녕군 영산면 성내리의 농촌 출신이다. 그곳에서 나고 자랐으며 1945년 1월에 혼인하여 1946년, 일본으로 건너와 현재 가와사키에서 살고 있다. 올해 나이 92살이지만 건강은 매우 양호한 편이며 정확히 자신의 이야기를 기억해내고 있다. 유머 감각도 풍부한 편이며 일본어로 의사소통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나이가 많아서 식욕감퇴와 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명란 씨의 일본 생활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일이라 자세히 묻지는 않았으나 고생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5명의 자녀를 모두 훌륭히 키운 분이다."
 
- 식민지 시기에 조선 여성들의 생활에 대해서 작가의 느낌은?
 
"최명란 씨가 태어나 살던 시대(1927년생)의 경우, 특히 농촌은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 시대였기에 여성들의 고통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자급자족 시대에는 사람의 노동력만으로 농사를 지어야 했던 때인데 최명란 씨도 부모 형제자매, 조카 등 십여 명의 가족과 함께 살았다. 당시 조선의 여성들은 새벽 4시(여름의 경우)부터 일어나 밥을 짓고 밭일, 논일을 남성들과 함께했으며 짬짬이 육아와 빨래, 집안일까지 도맡는 등 평생을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살았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전근대 시기 일본의 여성들도 같은 형편이었다. "
 
- 책을 집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이 책은 재일동포 최명란(92살) 씨를 통한 식민지 시기의 조선 여성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것이다. 최명란 씨는 1946(19살)년에 일본에 건너와서 살았으며 이 책은 최명란 씨가 해방 전 조선에서 살 때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라 대담이 쉽지 않았다. 최명란 씨 기억에 의존해야 했던 것과 나 자신이 조선의 실정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점이 가장 어려웠다. 하나의 예를 든다면, 정확한 이해를 위해 당시 최명란 씨가 살던 집을 그림으로 그려서 이해해야 했으며 특히 한국의 가족관계의 호칭을 익히는 일이 매우 힘들었다. 또한 컴퓨터 조작이 쉽지 않은 점도 어려움의 하나였다."
 
- 이 책에서 특히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조선의 많은 농민이 고향을 떠나 살아야 했던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 시대 농민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일본 정부나 총독부가 조선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고 우월감을 품은 채 통치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식민지 때에 농촌에서 삶을 영위한 사람들에 대한 연구는 현재까지도 저조한 편이다.(일본의 경우) 이러한 사실은 결국 식민지화의 반성이나 가해 인식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 현재까지도 한국인에 대한 차별감정과 반한감정을 일으키는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려박물관 조선여성사연구회의 전시회를 계기로 조선여성들의 식민시기, 농촌 생활에 관한 자료가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금이나마 알리고 싶어서 부족하지만 이 책을 내게 되었다. 앞으로 식민시기 농촌을 포함한 조선인들의 삶에 대한 연구가 일본 내에서 확산되어 피해국가의 국민으로서 고향을 등지고 살아야했던 사람들의 '진정한 삶'의 전모가 밝혀지길 바란다. 아울러 이 책을 통해 일본이 식민시기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의 마음을 갖고 한일 사이 우호관계를 구축하는 다리 구실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우리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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