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경찰 울리고 만 '코드제로', 그날 새벽 벌어진 일

[이면N] 업무 중 중상... 그는 왜 소송을 택했나 "지금 상황 너무 비현실적"

등록 2019.10.01 14:01수정 2019.10.0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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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소년은 경찰을 꿈꿨다. 제복이 멋있었고, 경찰이 될 자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다른 직업은 실감이 안 났어요. 그런데 경찰을 상상하면 유일하게 가슴이 떨리더라고요. 주변에서도 다들 '경찰과 딱 어울린다'고 하니, 아 '천직이구나' 했죠."

27살에 그는 진짜 경찰이 됐다. 그리고 올해로 5년 차인 최지현 경장(31, 인천 중부경찰서 소속)은 요즘 "경찰복 입은 꿈을 꾼다"고 했다. 제복을 입은 지 1년이 넘어 꿈에서나 입는다고 했다. 그는 현재 휴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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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경장은 26일 약속된 인터뷰 장소에 도착하자 탁자 위에 형광펜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함께 갖고 나온 사건 기록 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쓰려고 한 것으로 보였다. 최 경장은 "부상 전에는 별로 쓸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 이정환


최 경장을 지난달 26일 만났다. 그는 2017년 취객을 검거하다 오른쪽 어깨에 중상을 입었다. 2차례 수술을 받았다. 공상 휴가·병가를 있는 대로 끌어다 썼지만 몸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휴직했다. 오른손잡이였던 그는 "거의 왼손잡이가 되어 가고 있다"고 했다. 무거운 걸 들 때도, 머리를 감을 때도 왼손을 쓴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강력계나 지구대 근무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어깨에 나사 5개를 박아 놨는데 부작용이 생기거나 나사가 꺾이면 대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외근 근무를 통해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으려던" 그의 목표가 꺾였다.

최 경장은 업무 중 중상을 입었음에도 막대한 치료비 상당 부분을 본인이 부담해야 했다. 사연을 접한 경찰관들이 자발적으로 모금 운동에 나섰다. 이 소식은 지난 10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최 경장은 "700분이 1500만원 가량 돈을 모아주셨다"고 전했다. "국가가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허탈감이 든다"던 그는 "얼굴도 모르는 경찰 동료분들이 이렇게 마음 써주신 게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그 날 새벽 1시... "처음부터 수갑을 채웠다면..."
 
2017년 2월 22일 새벽 1시, "한 손님이 여성 손님에게 집적거리고 행패를 부린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출동한 최 경장은 1시간 설득 끝에 취객 손님이 계산도 하게끔 도왔다고 했다. 그렇게 돌려보낸 후 지구대에 돌아온 지 5분도 안 돼 다시 신고가 들어왔다. '코드 제로', 긴급상황이었다. "손님이 문을 부수고 있다"고 했다. 현장에 출동했다. 취객이 문을 부수려고 한 것은 CCTV를 통해서도 확인했다.

현행범으로 체포하려 했지만 취객은 드러누웠다. "경찰이 죄 없는 사람 잡아간다"고 소리 질렀다. 일으켜 세우려 접근한 최 경장을 향해 취객은 발버둥을 쳤고, 이 과정에서 어깨를 수도 없이 맞았다고 했다. 그리고 함께 넘어졌다. 함께 출동했던 동료 경찰 역시 취객에 맞아 입술이 찢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서에 도착해 조서를 작성하는데 어깨가 계속 욱신거렸다고 한다.

취객에게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추가했다. 오히려 취객은 다른 경찰관에게 "(최 경장이) 자신을 때렸다"고 주장했다. 다행히도 현장을 촬영한 휴대폰 영상이 있었다. 이후 가해자는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벌금 800만 원 형을 받았다. 최 경장은 치료비 보전을 위해 가해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가해자는 보상을 거부하고 있다.
 
최 경장이 밝힌 사건 당일 경위다. 이후 최 경장은 5년 후유장해 판정을 받았다. 사건 후 수술비와 치료비는 차곡차곡 쌓였고, 최 경장은 "4200만 원 정도"로 추정했다. "앞으로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반드시 받아야 할 특수 재활 치료 대부분은 비급여 항목이다. 때문에 공무원연금공단에 청구 하더라도 전체 치료비의 20% 정도만 보상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그는 예상하고 있다. 민사 소송도, 공상 입증도, 치료도 모두 최 경장이 준비했고 대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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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경장이 취객의 폭행으로 부상을 입은 것은 2017년 2월 22일이었다. 최 경장이 26일 보여 준 재판 기록에 따르면 당시 상황은 '코드 제로(0)'로 분류됐다. 경찰의 신고 대응 단계에서 가장 위급한 상황을 뜻한다. ⓒ 이정환


그에게 2017년 2월 22일 새벽 1시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대처할 건지 물었다.


"처음부터 원칙대로 수갑을 채우고 연행했어야 했는데... 강제력 행사를 적절히 못한 게 화근이지 않았나, 주취자(취객)가 손이라도 부자연스러웠다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주변에서 강제력 행사 때문에 옷 벗는 선배들이 많아요. 주취자가 덤비다가 넘어졌는데 (경찰이) 폭행으로 고소당하고 합의금 물어주고, 그런 사례 많거든요. 자칫하면 과잉 진압으로 조사 받을 수 있고 수갑이나 테이저 건, 권총 등 있어도 사용을 잘 못해요."

이 같은 상황은 울산지방경찰청이 지난해 지구대·파출소 경찰관 52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비슷하게 나타난 바 있다.

현장에서 적합한 수준의 공권력을 행사했냐는 질문에 80.99%(422명)가 '미약한 수준의 공권력을 행사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중복응답) '강압이 있었다는 등 부당한 민원 제기에 시달리기 싫어서(365명)', '감찰·인권위원회 조사 등에 시달리기 싫어서'가 331명으로 조사됐다. 또한 517명이 근무 중 모욕이나 폭행을 당했다고 답했다. 그런 적이 없었다고 한 이는 4명뿐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이 공상자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인화 의원(무소속, 광양·곡성·구례)이 지난 17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공상을 입은 경찰공무원은 총 5,198명으로 조사됐다. 2017년(1,604명)에 비해 2018년 1,736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범인 피습에 의한 공상은 2017년 449건에서 2018년 520건으로 늘었다. 2018년 기준, 전체 공상의 29.95%가 '범인 피습에 의한' 부상이다.

더 큰 문제는 '범인 피습에 의한 부상'으로 인한 어려움을 경찰 개인이 감당하기 매우 어렵다는데 있다.

국가의 책임, 한 경찰의 책임... 누가 더 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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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지현 경장은 "일하다 다쳐도 걱정하지 않고 믿음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공상 보상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최 경장의 사건 관련 기록들. ⓒ 이정환


최 경장은 "변호사가 '합의금을 받기까지 최소 1~2년, 상대가 항소하면 또 1년이 걸릴 것'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마음이 힘들다고 했다. "모든 책임을 제가 지니 홀로 남겨진 느낌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공상 보상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에요. 일하다 다쳤는데 복직도 못하고... 경찰은 국민이 아닌가요. 가장 중요한 건 치료비를 전액 지원하는 거라고 봅니다. 비급여·급여를 나누지 말고요. 공상 전문 병원을 적어도 8도 지역마다 만들어서 정부 차원에서 빠른 치료를 전문적으로 해주고 빠르게 복귀할 수 있게 지원해줘야죠. 또 (경찰청에서) 특수 요양비 지원금을 지급하는데 2017년도에 쓴 거를 2018년에 처리해줘요. 1년 공백 동안 치료비는 개인이 부담해야 하죠. 어차피 지급해 줄 거라면 바로바로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치료비 지원 시기를 앞당기거나 아예 지원금에 기댈 일이 없게 전액 치료비를 지원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그는 특히 '공무원 재해보상법 21조 2항'에 대한 문제의식이 컸다. 법은 제1항을 통해 급여 사유가 제3자의 행위로 발생했을 경우 국가가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하며, 제2항에서는 공무원이 이미 손해배상을 받았을 때는 그 배상액 범위에서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재해 급여를 제공하되 원인을 가려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책임을 묻는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다. 최 경장 경우처럼 비급여 항목이 많을 경우, 가해자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묻는 '주체'는 더더욱 개인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 경장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가해자나 보험사로 전가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조항 때문에 치료비 전액을 못 받는 경우가 생긴다"라며 "내가 일하다 다치거나 죽어도 그에 합당한 대우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일할 수 있게 하루 빨리 개선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어느 날, 펑펑 울린 드라마 "저도, 제 사명감을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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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경장은 2017년 취객 검거 과정에서 당한 폭행으로 인해 2차례 수술을 받았다. 5년 후유장해 판정을 받은 그는 공무 중 부상을 입은 공무원이 치료비로 인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공상 보상 제도'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 ⓒ 이정환


지구대 경찰관들의 애환을 그린 드라마 <라이브>에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범인에게 총을 발사했지만, 불리한 정황 때문에 파면 위기에 처한 경찰관(염상수-이광수 분) 이야기가 나온다. 그로부터 목숨을 빚진 오양촌(배성우 분)은 염상수의 징계위원회에 출석해 섧게 울며 '후회'를 말했다.

"저는 오늘 경찰로서 목숨처럼 여겼던 사명감을 잃었습니다. 지금껏 후배들에게 '어떤 순간도 경찰 본인의 안위보다 시민을, 국민을 보호해라. 그게 경찰의 본분이고 사명감이다' 수없이 강조하고 말해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 그 말을, 모든 순간들을 후회합니다.

'피해자건 동료건 살리지 말고 도망가라. 네 인생은 국가, 조직, 동료, 그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우리는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현장의 욕받이다', 이렇게 가르치지 못한 걸 후회하고 후회합니다.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누가 감히 현장에서 25년 넘게 사명감 하나로 악착같이 버텨온 나를, 이렇게 하찮고 비겁하고 비참하게 만들었습니까. 누가, 누가 감히 내 사명감을 가져갔습니까. 누가...대체 누가 가져갔습니까. 내 사명감...." <2018년 5월 6일 드라마 '라이브' 최종화 중>

최 경장도 드라마를 봤다고 했다. 그는 "펑펑 울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도... 제 사명감을, 정말 되찾고 싶습니다."
#경찰 #공상 #라이브 #공무원재해보상법 #코드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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