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 이후... '변화'는 바로 지금부터 필요하다

4월 11일 이후 한국여성민우회 임신중지 상담 이야기

등록 2019.09.27 18:46수정 2019.09.27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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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1일, "임신중지에 대한 여성의 처벌은 합당하지 않다"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와 함께 우리는 구시대적 악법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시 빨리 이루어져야 할 입법 작업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고, 여성들은 여전히 구시대의 처벌법과 함께 구시대적 상황을 살고 있습니다. 저희는 오늘 이 자리에서, 헌재 선고 이후 민우회로 들어온 임신중지 상담사례들을 소개하며, 정부와 국회에 변화를 촉구하고자 합니다.
 

'9.28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맞아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주최한 기자회견 <우리의 임신중지를 지지하라>에서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노새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 한국여성민우회

 
<첫 번째 사례> A님은 임신 8주차에 전화를 주셨습니다. 병원에서 수술비로 135만원을 현금으로 요구했다고 했습니다. 필요했던 설명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저, 비용안내와 함께, 수술 날짜를 잡고 가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헌법불합치 선고가 났다는 걸 뉴스를 보고 알고 있었는데, 여전히 불법적인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많이 위축되게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 사례> B님은 집을 나와 원가족의 지원 없이 병원비를 마련하고 있던 청소년이었습니다. 남성파트너는 임신사실을 듣고선 바로 연락을 끊어버렸고, 불법수술 비용도 불법약물 비용도 본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비용이라, 비용을 마련하는 동안 임신주수가 높아질 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청소년 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해보았지만, "출산을 할 경우에만 지원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 사례> C님은 수술을 받으러 병원에 갔지만 남성의 동의를 받지 못해 수술을 거절당한 사례였습니다. 남성은 임신사실을 알고 이미 잠수를 탄 상황이었으나, 병원은 남성의 동의 없이는 수술할 수 없다며 남성의 병원동행과 신분증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9.28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맞아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주최한 기자회견 <우리의 임신중지를 지지하라>. ⓒ 한국여성민우회

 
<기타사례> 이 밖에도, 유산유도제에 관한 문의들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는 유산유도제를 믿어도 되는지, 정품약은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 해외에서 약이 도착하는 동안 주수가 계속 높아질 텐데 더 위험해지는 것은 아닌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불법약물 사용이 알려지면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는 전화들이었습니다.

절박한 여성들의 문의전화 속에서 이 질문들에 대답해야 할 국회와 정부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지 궁금해졌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서, 누가 준비하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 사회가 낙태죄를 폐지하고, 여성의 건강과 생명을 중시하는 사회였다면, 이 여성들은 전적으로 다른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담 사례들에서 여실히 드러나듯, 여전히 여성들은 임신중지에 필요한 정보들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신의 안전한 의료서비스를 받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임신을 중지하는 방법에는 어떤 방법들이 있고, 각 방법은 어떤 장단점과 위험이 있는지, 이러한 정보들이 차별이나 낙인 없이 여성들에게 안내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정보 제공에 방해가 되는 장벽들을 없애나가고, 높은 비용이 누군가에게 너무 높은 문턱이 되지 않도록 국가가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이 아니라, 보다 안전하고 정확한 정보의 제공을 위한 기반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의료인들 역시 준비되어 있어야합니다.

 

'9.28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맞아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주최한 기자회견 <우리의 임신중지를 지지하라>. ⓒ 한국여성민우회

 
 

'9.28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맞아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주최한 기자회견 <우리의 임신중지를 지지하라> ⓒ 한국여성민우회

 


올해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맞아 국제 사회는 임신중지가 "의료서비스"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임신중지'라는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여성들은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한국 여성들이 불법적인 임신중지라도 받고자 애쓰며, 그 전후와 과정상의 기본권 침해와 사회적 고통을 감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루 빨리, 각 부처에서, 국회에서, 병원과 학교에서 실질적 변화들을 만들어가기를 촉구합니다.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9.28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맞아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주최한 기자회견 <우리의 임신중지를 지지하라>에서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노새 활동가가 발언한 내용의 전문임을 밝힙니다.
#임신중지 #낙태죄 #낙태죄헌법불합치 #임신중절 #임신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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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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