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돈 달라고 한 최순실, 뭐든 다 들어준 삼성

[판결문으로 본 박근혜 국정농단 11] 삼성과 GKL의 동계영재센터 자금제공 사건 전모

등록 2019.10.04 18:32수정 2019.10.0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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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에 시작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관련 촛불시민혁명 3주년이 다가왔습니다. 1주일에 한 번꼴로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사건을 비롯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들을 다룹니다. 각 사건의 핵심내용 소개에 그치지 않고, 각 사건의 판결문을 바탕으로 사건 관계자들의 범죄 또는 부패 장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권력부패를 기억하는데 주춧돌이 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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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에서 열린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 강요 혐의 관련 공판에 장시호,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최순실이 출석해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최순실은 2014년부터 정유라 승마 지원을 명목으로 한 뇌물 사건을 기획하고, 2015년 1월경부터는 대기업 등의 팔을 비틀어 광고대행사 운영 수익을 거두겠다는 일에 착수했다. 자세한 내용은 앞의 연재 글(8, 9, 10회)에 소개했다.

그러면서도 최순실은 또 하나의 사건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광고대행사 운영 관련 사건을 벌이기 시작한 시점과 거의 비슷한 2015년 2월경부터다. 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설립한 뒤 삼성의 자금을 제공받고, 거기에 만족하지 못해 'GKL(그랜드코리아레저) 사회공헌재단'에 영재센터에 대한 후원금을 강요한 사건이다.

이 두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부터 소개한 뒤, 두 사건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우선 박근혜최순실이다. 사건을 기획한 인물은 최순실이고, 박근혜는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에게 지원을 요구하는 역할을 맡았다. 다음으로 최순실을 통해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된 김종 차관이다. 그는 문체부 산하기관인 GKL에 지원을 요구한 역할을 맡았다.

다음으로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다. 최순실의 지시에 따라 동계영재센터 운영을 맡아 사무총장이 된다. 이규혁 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도 있다. 최순실이 장시호 등을 통해 동계영재센터에 참여시킨 동계스포츠 종목 선수 중 한 명으로 센터의 전무이사를 맡는다. 이 두 사람은 최순실의 지휘 하에 삼성그룹이나 GKL 측에 건넬 사업계획서를 마련하고 지원방안 실무협의를 맡았다.

삼성 측의 인물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 황성수 제일기획 전무(중간에 삼성전자로 소속이 바뀐다), 이영국 제일기획 상무(삼성전자 상무에서 소속이 바뀌었다)이다. 김재열 사장은 빙상경기연맹 회장이었고, 이영국 상무는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옮긴 뒤 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었다.

그랜드코리아레저(GKL) 측의 인물로는 'GKL(주)'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기우 사장과 'GKL사회공헌재단' 이덕주 이사장이다. 이 두 사람은 앞의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그룹 측 임원과 달리 최순실 등의 강요에 따른 후원금 제공 '피해자'에 해당한다.


최순실, 조카 장시호에게 맡긴 동계영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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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0일 삼성그룹에 후원을 강요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받은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입구를 향해 뛰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최순실은 동계스포츠 종목 메달리스트들이 동계스포츠에 재능 있는 어린이 육성 사업을 한다는 명목으로 동계스포츠영재센터(이하 동계영재센터) 설립을 구상한다. 동계영재센터 설립과 운영에 드는 자금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연계하여 정부 예산과 기업 후원금으로 채우겠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2015년 2월 말, 최순실은 조카 장시호와 김종 문체부 2차관, 그리고 장시호와 잘 아는 사이였던 김동성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와 만나 회의를 한다.

장시호에게는 사단법인 형식으로 동계영재센터 설립 업무를 맡기고, 김종 차관에게는 법인 허가 절차를 지원하도록 하고 센터 설립 후 문체부의 예산 지원 등을 신경 써달라고 한다. 또 장시호와 김동성에게 동계스포츠 종목 메달리스트 확보를 맡기는데, 전직 국가대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이규혁도 그중 한 명이다. 최순실은 센터 설립에 필요한 초기 자금 5천만 원을 장시호에게 주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7월 14일, 최순실은 사단법인 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설립하고 장시호가 센터의 사무총장이 된다. 이규혁은 전무이사를 맡았다.

그러던 중인 2015년 7월 23일 오후, 최순실이 독일에서 귀국한다. 이때 최순실은 정호성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서 이틀 후(25일)에 박근혜와 이재용 부회장의 단독면담 예정 사실을 전달받는다. 박근혜가 정호성 비서관에게 면담 일정을 알려주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최순실은 박근혜와 이재용의 면담 일정을 확인한 뒤, 곧바로 장시호에게 연락해 동재영재센터 사업소개서와 빙상부·설상부 예산안 작성을 지시한다. 장시호에게 이렇게 말하며 급하게 필요한 자료임을 강조한다.
 
'내일(7월 24일) 아침까지 꼭 만들어야 해. 급한 거야. 늦어도 9시까지는 나와야 해.'

최순실은 자료에 들어갈 내용에 대해서는 이렇게 지시한다.
 
'승마 종목 사업계획서를 동계스포츠 종목으로 바꿔라. 삼성그룹에 갈 것이니 똑바로 잘 만들어라.'

삼성그룹으로부터 딸 정유라의 승마훈련 지원을 받기 위해 세운 계획서의 일부를 동계영재센터 사업으로 급하게 바꾸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지시에 따라 장시호는 밤을 새워 작업해 다음 날인 24일 아침까지 기존의 사업소개서를 바꿔 새 사업소개서와 예산안을 마련한다.

박근혜 "제일기획 김재열 사장에게 지원하게 하라"

이틀 후인 7월 25일, 전날을 포함해 이날까지 박근혜는 이재용 외에도 6개 재벌그룹 회장들을 만났는데,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에 동참하라는 취지의 말을 하였다. 하지만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와병 중이어서 이재용 부회장을 독대하면서 다른 재벌 회장에게는 말하지 않았던 것 2가지를 더 요구한다.

박근혜는 2014년 9월 15일 단독면담 때 요구했던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승마훈련 지원이 시원치 않다고 질책하면서 승마협회 부회장(이영국 상무)과 총무이사를 맡은 삼성전자 임원들을 교체하라고 요구한다. 박근혜가 요구한 또 다른 한 가지는 동계영재센터 지원이었다. 이날 박근혜는 이재용에게 이렇게 말한다.
 
'동계스포츠 메달리스트들을 활용하는 사업이 있는데 그게 잘 되면 평창올림픽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삼성그룹에서 올림픽 메인스폰서이니 지원을 해 달라. (빙상경기연맹 회장인) 제일기획 김재열 사장에게 지원하게 하라.'

이재용은 박근혜와 만난 다음 날이 일요일이었지만, 삼성그룹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과 회의를 하고 박근혜의 요구사항을 전달한다. 그러면서 장충기 사장에게 이렇게 지시한다.
 
'대통령이 말하는 사업이 어떤 내용인지 알아보라.'

장충기 사장은 이날 바로 제일기획 황성수 전무에게 이재용 부회장의 지시사항을 전달한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지원을 요청한 단체가 어딘지, 빙상연맹을 통해 지원요청이 들어온 것은 없는지 등을 알아보라고 지시한다. 장충기 사장이 황성수 전무에게 이 일을 맡긴 이유는 당시 황 전무가 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뒤 황성수 전무는 장충기 사장에게 '은퇴한 동계스포츠 메달리스트들이 만든 동계영재센터라는 단체가 있습니다'라고 보고한다.

최순실 "내가 위에다 전화 하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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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서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왼쪽)이 답변하는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을 쳐다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와 이재용 단독면담을 조금 지난 8월 초순, 최순실은 장시호를 시켜 김종 차관으로부터 삼성그룹에서 동계영재센터 지원 건으로 연락 왔는지 확인한다. 장시호가 아무런 연락이 없다고 말하자, 최순실은 장시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위(박근혜)에다 한 번 전화를 하는 게 낫겠다.'

최순실로부터 연락을 받았는지 박근혜가 8월 9일에 안종범 경제수석에게 이런 취지로 지시한다.
 
'삼성그룹이 동계영재센터에 5억 원을 지원하도록 하라.'

그러고 나서 열흘쯤 지난 8월 20일, 최순실의 측근인 김종 문체부 2차관과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이 만난다. 이 자리에서 김종 차관은 동계영재센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김재열 사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규혁 동계영재센터 전무이사를 만나보라.'

바로 다음 날, 김재열 사장이 이규혁 동계영재센터 전무이사를 만난다. 김재열 사장은 이규혁 전무이사와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협의한다. 이날 이규혁은 김재열 사장에게 최순실 지시로 장시호가 7월 24일에 완성한 사업소개서를 건네주었다. 그 뒤 한 달쯤 지난 9월 24일, 이영국 제일기획 상무가 장충기 사장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사장님, 동계영재센터 박재혁 회장과 후원 건 협의하였습니다. (삼성)전자 홍보팀에서 후원하는 방법으로 진행코자 하며, 내일 실무미팅은 본건 처음 시작했던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와 같이 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지급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삼성전자 '지원금 보낼 테니 사업자등록 하세요'

이영국 상무는 다음 날인 9월 25일에 장시호의 지시를 받고 나온 김*율 등 동계영재센터 직원들을 만나 지원방법 등에 대해 회의를 한다. 이영국 상무는 회의 결과를 빙상경기연맹 회장인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과 장충기에게도 보고한다. 이영국 상무는 이즈음 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2014년 11월 25일부터 최순실의 딸 정유라 승마훈련 지원 업무를 위해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에 취임해 있었고 삼성전자 소속 상무였다. 하지만 최순실이 정유라의 승마훈련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승마협회 부회장 등을 교체할 것을 박근혜에게 부탁하자, 박근혜가 2015년 7월 25일 단독면담 때 이재용에게 똑같이 요구했다.

그러자 이재용은 대통령과의 면담 이틀 후(27일)에 이영국 상무를 승마협회 회장사인 삼성전자 소속에서 빙상경기연맹 회장사인 제일기획 소속으로 바꾸어버린다. 그리고 이재용은 이영국에게 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을 맡게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 원래 제일기획 소속으로 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었던 황성수 전무를 삼성전자 소속으로 바꾼 뒤 승마협회 부회장직을 맡도록 한다.

그래서 이영국과 황성수 두 사람의 소속과 직책이 서로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두 사람 모두 이 동계영재센터 사건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 후 1주일쯤 지난 10월 2일, 삼성전자는 회사자금 5억 5천만 원을 동계영재센터 명의의 계좌에 송금한다. 이는 사업비 5억 원에 부가가치세 5천만 원을 더한 금액이었다. 명목은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여는 '제1회 동계영재 빙상캠프' 지원이었다.

이 돈은 '당연히' 삼성전자가 후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홍보 등 효과에 대한 검토나 후원금 규모 산출 근거에 대한 검토조차 없이 지급된 것이다. 사업내용 역시 부실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최순실이 동계영재센터에 대한 법인설립등기를 마친 날이 7월 14일이지만, 구체적인 사업을 하기 위해 필요한 사업자등록은 9월 30일에 이르러서야 했다.

이것도 자금 제공 내부품의서를 결재(9월 30일)하기 위해서는 동계영재센터의 사업자등록번호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삼성전자 측에서 사업자등록을 요청해 진행된 것이다. 그만큼 신생 단체이고 사업 경험도 전무한 곳에 5억 원씩이나 제공했다.

박근혜와 이재용의 추가 면담 전에 또 만든 사업계획서

그 후 넉 달이 지난 2016년 2월 14일, 최순실은 박근혜와 이재용이 다음 날 단독으로 또 만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최순실은 2월 14일 밤 9시 30분경에 장시호에게 전화해 다음 날 아침까지 영재센터 사업계획안을 보낼 것을 급하게 지시한다.

장시호가 최순실의 검토를 거쳐 만든 사업계획안은 '종합형 스포츠클럽 꿈나무 드림팀 육성계획안'(이하 육성계획안)이었다. 사업비 규모는 9억 7618만 원이었다. 장시호로부터 15일 아침 10시경에 이 육성계획안을 받은 최순실의 운전기사 방*훈은 이 서류를 곧장 청와대 이영선 행정관에게 전달한다. 이처럼 청와대에 영재센터 추가 사업계획안을 보낸 최순실은 박근혜에게 삼성그룹의 추가 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요청한다.

2월 15일, 박근혜가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이재용을 단독으로 만나면서 최순실의 요청대로 추가 후원을 요구한다. 최순실에게서 받은 '육성계획안'도 이재용에게 준다. 이번에도 이재용은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에게 박근혜의 요구사항을 이행하라고 지시하였고, 최지성과 장충기도 동계영재센터의 '육성계획안'을 받았다.

그 바로 다음 날인 2월 16일, 장충기 사장은 이영국 제일기획 상무(빙상경기연맹 부회장)에게 이 '육성계획안'을 전달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지시한다.
 
'이 자료에 있는 금액(9억 7618만 원)대로 후원하라.'

장충기 사장 지시를 받은 이영국 상무는 2월 22일에 이규혁 동계영재센터 전무이사를 만난다. 이 자리에서 이규혁 전무이사는 동계영재센터에 5년간 18억 3400만 원을 후원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동계영재센터 빙상 영재선수 지원 기획안'을 건네준다.

이영국 상무는 이규혁과 만남 내용을 장충기 사장에게 보고한다. 그러자 장충기 사장은 아무래도 대통령이 직접 요청한 금액을 제공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 이영국 상무에게 9억 8천만 원을 제공하라고 지시한다. 이영국 상무는 이규혁과의 만남과 장충기 사장의 지시사항을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에게도 보고하였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3월 3일에 회사자금 10억 7800만 원을 동계영재센터 명의 계좌로 송금한다. 박근혜에게서 받은 동계영재센터의 '육성계획안'에 적힌 사업금액 9억 7618만 원에서 반올림한 9억 8천만 원에 부가가치세 10%(9800만 원)를 추가한 금액이었다.

1차 후원금 5억 5천만 원이 제대로 집행되었는지 아무런 확인도 하지 않고 2차 후원금을 보낸 것이다. 이렇게 삼성그룹은 최순실이 만든 동계영재센터의 사업비 등에 쓰도록 모두 16억 2800만 원의 삼성전자 자금을 보내주었다.

삼성에 만족하지 않고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도 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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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4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3차 공개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기우 그랜드코리아레저(GKL) 사장이 대심판정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한편 삼성그룹을 통해 동계영재센터 사업비 5억 원을 2015년 10월에 받은 바 있던 최순실은 사업비와 운영비 등을 더 끌어모으고자 2016년 1월에 김종 문체부 2차관에게 이렇게 말한다.
 
'동계영재센터 사업을 확장해야 하는데, 그랜드코리아레저(주)에서 좀 도와줘야겠다. 그랜드코리아레저(GKL)에 사회복지재단이 있지 않냐.'

그랜드코리아레저(GKL)는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로서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 운영을 위해 설립된 법인이었다. 김종 문체부 2차관은 한국관광공사와 GKL에 대한 관리·감독 업무를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최순실은 김종 차관에게 위와 같이 요구한 것이다.

최순실의 요구를 받은 김종 차관은 역시나 자신처럼 최순실의 추천으로 GKL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기우 사장에게 연락하여 이렇게 요구한다.
 
'삼성도 후원을 하고,문체부에서도 지원을 하는데, 그랜드코리아레저에서도 동계영재센터에 2억 원 정도를 후원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

그러자 이기우 사장은 GKL이 자금 전부를 출연하여 설립한 비영리 재단법인 GKL사회공헌재단의 이덕주 이사장에게 동계영재센터에 대한 후원을 검토하라고 지시한다.

그 뒤 최순실은 조카이자 동계영재센터 사무총장인 장시호에게 이기우 사장의 연락처를 알려주며 이기우 사장과 협의하라고 지시한다. 이어 장시호는 이규혁 동계영재센터 전무이사에게 이기우 사장 연락처를 전하며 이렇게 지시한다.
 
'2억 원 정도를 후원받을 수 있을 것 같으니, 이기우 사장에게 연락해보라.'

이런 과정을 거쳐 2016년 1월 20일에 이규혁 전무이사는 이기우 사장을 통해 이덕주 GKL사회공헌재단 이사장을 소개받는다. GKL사회공헌재단 역시 문체부 제2차관 산하 관광정책실의 감독대상 기관이고 재단의 이사 추천을 모기업인 GKL과 문체부 등에서 하고 이사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는 문체부장관이었다. 그래서 이덕주 재단 이사장으로서는 모기업인 GKL 이기우 사장뿐만 아니라 김종 2차관의 지시를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이덕주 GKL사회공헌재단 이사장은 김종 차관을 통해 내려온 최순실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다. 그에 따라 이규혁을 비롯한 동계영재센터 실무자들과 GKL사회공헌재단 실무자들이 몇 차례에 걸쳐 만나 후원에 필요한 절차 등을 논의한다.
처음에는 동계영재센터에서 후원금 요구 명목으로 내세운 사업계획이 GKL사회공헌재단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GKL사회공헌재단 실무자들이 '우리 재단의 목적이 주로 어려운 분들을 돕는 것이니 대상자를 소외계층으로 해달라'고 설명하면 그에 맞추어 사업계획을 바꾸었다. 그래서 동계영재센터에서 제출한 최초 사업계획서에는 재단의 사업목적과 맞지 않는 '영재선수 해외전지훈련'을 위해 1억 2천만 원을 후원해달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는데, 나중에 이 부분은 삭제되었다.

최순실 "왜 찔끔찔끔 주냐"

그 결과 2016년 3월 23일에 GKL사회공헌재단은 앞으로 2억 원을 후원하기로 최종 결정하고 우선 4월 8일에 5천만 원을 보낸다. 이는 3월 3일에 최순실이 삼성그룹으로부터 동계영재센터 지원 2차 자금(10억 7800만 원)을 받은 지 한 달 쯤 후에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도 최순실은 GKL사회공헌재단에서 2억 원 중 일부만 주고 나머지는 아직 보내지 않자 5~6월쯤에 김종 차관에게 불만스럽게 말하며 이렇게 재촉한다.
 
'왜 찔끔찔끔 주냐. 빨리 달라고 하라.'

그러자 김종 차관이 이기우 GKL사장에게 연락해 이렇게 질책한다.
 
'이왕 주기로 한 것이면 한꺼번에 주지 그랬냐.'

그래서 이기우 사장이 이덕주 GKL사회공헌재단 이사장에게 나머지 금액 조기 집행을 지시한다.

GKL사회공헌재단은 특정 사업에 필요한 후원금을 보낼 때 후원 대상 사업이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경우에는 대부분 기간을 나누어 후원금을 보내고 있었다. 한꺼번에 돈을 보내면 후원금을 받은 곳에서 유용할 경우도 있고, 또 조금이라도 돈을 나눠서 보내면 재단 입장에서 이자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계영재센터에 후원금을 내라고 요구한 명목상의 이유였던 'GKL사회공헌재단과 함께 하는 빙상캠프'도 2015년 11월에 개최될 사업이었다. 그래서 1억 5천만 원은 9월에 보내는 것이 재단 측 계획이었다.

이런 사정이 있어서 빨리 보내지 못했다고 재단 측에서 설명하자, 동계영재센터에서는 '빙상캠프' 일정을 8월로 변경할 테니 후원금 1억 5천만 원을 6월 중에 지급해달라는 공문을 GKL사회공헌재단에 6월 8일에 보낸다. 그 결과 이날 GKL사회공헌재단은 1억 5천만 원을 후원금 명목으로 또 보낸다.

이렇게 하여 최순실은 김종 차관을 통해 GKL재단이 동계영재센터에 후원금 명목으로 2억 원을 내게 만들었다.

삼성의 동계영재센터 자금제공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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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5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구속중이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 이희훈

 
박근혜가 관여하여 최순실이 세운 '사단법인' 동계영재센터에 삼성그룹이 16억 2800만 원을 제공하게 한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이들은 돈을 요구한 쪽으로는 박근혜와 최순실, 장시호이며 이들은 모두 따로 기소되었다. 돈을 준 쪽으로는 이재용 부회장과 최지성 부회장, 장충기 사장이며, 이들 역시 돈을 요구한 이들과 별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돈을 달라고 요구한 쪽 중에서 박근혜와 최순실은 각각 상고심에서 '제3자 뇌물수수죄'를 선고(유죄)받았다. 동계영재센터를 제3자로 보아야 하고, 삼성그룹의 지배권 승계작업에 도움을 주고받겠다는 '부정한 청탁'을 대가로 이재용 부회장 등이 동계영재센터에 자금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판결되었다.

상고심에서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작업으로 진행한 현안에 해당하는 것으로 지목한 것들은 이렇다. 첫째, 비상장회사인 삼성SDS와 제일모직의 유가증권시장 상장, 둘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사이의 합병, 셋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이후 신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삼성물산 주식 처분 최소화, 넷째,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계획에 대한 금융위원회 승인 추진, 다섯째, 외국자본에 대한 경영권 방어 강화 추진.

한편 상고심은 2015년 7월 25일에 박근혜와 이재용이 단독면담 할 때, 지배권 승계를 위한 현안들에 관하여 이재용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의 우호적인 입장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양쪽이 모두 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런 상황에서 박근혜가 동계영재센터에 대해 자금제공을 요구하고 이재용 부회장이 그 요구대로 제공했던 것이라고 판결하였다.

그에 따라 돈을 준 쪽인 이재용과 최지성, 장충기는 상고심에서 제3자 뇌물공여죄를 선고(유죄)받았다. 뇌물공여금액만큼 삼성전자의 자금을 횡령한 혐의도 적용할 수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파기환송심에서 구체적으로 심리하라는 것이 상고심의 결론이었다.

돈을 받은 동계영재센터 사무총장이었던 장시호는 1심과 2심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강요죄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다. 장시호의 경우 상고심은 2019년 9월 현재 진행 중이다. 다른 피고인들(박근혜 등)에 대한 상고심 판결을 감안하면 상고심에서는 2심 판결이 파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유라 승마지원 명목 뇌물 사건과 달리 '제3자 뇌물죄' 적용

한편, 이 사건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승마지원을 명목으로 최순실이 세운 '코어스포츠'에 삼성에서 36억여 원을 송금한 사건(삼성은 코어스포츠 송금 외에도 말 3마리와 차량 4대를 직접 구입해 최순실에게 제공하기도 했다)과 달리 '뇌물죄'가 아닌 '제3자 뇌물죄'로 다루어졌다.

삼성은 코어스포츠에 용역대금 명목으로 돈을 송금했지만, 실상은 용역제공에 대한 대가가 아니었다. 그래서 검찰과 재판부는 실질적으로 돈을 받은 곳은 최순실이라고 보았다. 더 나아가 최순실과 박근혜는 경제공동체였던 만큼 공직자인 대통령이 뇌물을 받은 것으로 보아 공직자가 뇌물을 받은 경우에 적용되는 일반 '뇌물죄'가 적용되었다.

반면에 동계영재센터에 삼성이 돈을 제공한 이 사건의 경우에는 실제 동계영재센터가 수행한 사업에 소요되는 비용을 제공한 것이었다. 그래서 최순실이 실질적인 운영자이기는 하지만 최순실 개인이 아닌 법인으로서의 '동계영재센터'가 삼성의 돈을 실질적으로 받았다고 보았다. 그래서 공직자인 박근혜의 입장에서는 공직자가 아닌 제3자에게 돈을 제공토록 했다는 점에서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되었다.

그런데 '제3자 뇌물죄'의 경우에는 일반 '뇌물죄' 적용에 필요한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 외에 '부정한 청탁'이 존재해야만 적용 가능한 범죄이다. 그래서 이 사건에 대한 재판에서는 이재용 부회장 등이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제3자인 동계영재센터에 돈을 제공한 배경에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와 관련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박근혜와 최순실의 1심을 맡았던 재판부는 명시적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고 보아 '제3자 뇌물죄'가 아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강요죄'로만 유죄 선고를 내렸다. 이재용 등에 대한 2심을 맡았던 재판부도 '제3자 뇌물공여죄'에 대해 무죄라고 판결하였다.

반면 박근혜와 최순실의 2심 재판부와 이재용 등에 대한 1심 재판부는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보아 각각 '제3자 뇌물수수죄'와 '제3자 뇌물공여죄'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상고심 역시 '부정한 청탁'이 묵시적 형태로라도 있었다고 판단하여 유죄라고 선고했다.

GKL사회공헌재단에 대한 동계영재센터 후원금 강요 사건 재판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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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3일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음으로 문체부의 김종 차관이 관여하여 동계영재센터에 GKL사회공헌재단이 후원금 명목으로 2억 원을 지급하도록 결정한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이들은 돈을 요구한 쪽으로 최순실, 장시호, 김종이다. 최순실은 장시호와 김종과 따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박근혜는 이 사건에는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소되지 않았다. 돈을 낸 GKL 이기우 대표이사나 GKL사회공헌재단 이덕주 이사장도 대가를 바라고 돈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강요에 따른 피해자에 해당한다고 보아 기소되지 않았다.

최순실은 상고심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강요죄를 선고(유죄)받았다. 1심과 2심에서도 같은 결과였다. 장시호와 김종은 1심과 2심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강요죄를 선고(유죄)받았고, 상고심은 끝나지 않았다.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자 하면 각 피고인들에 대한 다음 사건의 판결문을 보면 도움이 된다.

박근혜의 1심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2017고합364-1(분리) 사건이고, 항소심 재판은 서울고법 2018노1087 사건이며, 상고심 재판은 대법 2018도14303 사건이다.

최순실의 1심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2016고합1202-1(분리) 사건이고, 항소심 재판은 서울고법 2018노723-1 사건이며, 상고심 재판은 대법 2018도13792 사건이다.

이재용 등 삼성측 3명의 1심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2017고합194 사건이고, 항소심 재판은 서울고법 2018노2556 사건이며, 상고심 재판은 2018도2738 사건이다.

장시호와 김종의 1심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2016고합1282 사건이고, 항소심 재판은 서울고법 2017노3802 사건이다.
#박근혜 #최순실 #동계영재센터 #삼성 #국정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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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참여연대에서 재벌개혁운동을 시작으로, 권력감시와 사법개혁, 반부패 운동, 정치개혁 운동을 경험하였습니다. 약 20년 시민운동 경험을 또 다른 곳에서 펼쳐보려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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