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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멈춰 세운 영월 폐광촌 주민들... 난 그저 거들 뿐

[우먼 인 로컬 - 영월편] 석항트레인스테이 운영하는 이지혜 오요리아시아 대표

등록 2019.10.17 08:10수정 2019.10.17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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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남성이 아닌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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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오요리아시아 대표(가운데)는 석항 지역 주민들의 자립을 위해 석항트레인스테이에서 일 하시는 분들을 마을 주민들로 채용했다. ⓒ 유성호


지난 10년 동안 기차가 서지 않던 강원도 영월의 석항역.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지난 2018년 12월 22일 석항역에 기차가 섰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400여 명의 도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름 없는 강원도 폐광촌 석항에서 열린 크리스마스축제 여행상품은 행사 시작 5일 전에 이미 매진을 찍었고, 축제가 열리는 2박 3일 동안 영월 읍내까지 들썩였다.

한때 석항은 잘 나가던 탄광촌이었다. 천여 가구가 넘게 살았을 정도로 북적였고, 돈도 넘쳐났다. 하지만 탄광이 문을 닫은 후 동네는 활기를 잃어 버렸다. 특별한 관광자원도 없어 찾는 외지 사람도 없다. 그런 석항에 그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니, 마을이 난리가 났다.

이 놀라운 축제는 석항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석항트레인스테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석항트레인스테이 사업은 이채롭게도 서울에 적을 둔 사회적기업 '오요리아시아'가 맡고 있다. 강원도 폐광촌에서 사업을 벌이는 '서울 여자' 이지혜 오요리아시아 대표를 지난 8월 말 석항트레인스테이에서 만났다.

주민 자립이 먼저인 석항트레인스테이
 

석항트레인스테이 운영하는 이지혜 오요리아시아 대표 “주민 자립이 먼저”이지혜 오요리아시아 대표가 강원도 영월군 석항트레인스테이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역 주민들의 자립에 집중해 온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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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열린 석항크리스마스 축제 모습. ⓒ (주)오요리아시아

 
- 석항트레인스테이에 대해 소개를 해달라.
"석항트레인스테이는 2013년 영월군이 폐열차 9량을 이용해 열차 콘셉트로 꾸민 숙박시설이다. 총 68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카페와 식당도 있다. 열차 외관을 그대로 두고 내부만 깔끔하게 개조했으며 주로 가족 단위 여행객이 찾는다.

오요리아시아는 지난 2018년부터 3년간 석항트레인스테이 위탁운영을 맡게 됐다. 석항 운영뿐만 아니라 주민 교육 등을 통해 자립을 목표로 한다. 위탁받은 3년 중 마지막 해에는 지역주민들이 우리 도움 없이 직접 운영하게 된다. 내년부터는 주민들이 직접 운영한다."

- 석항트레인스테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석항 마을 주민인가?
"그렇다. 주민 8분 정도가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매니저 한 명은 정직원이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서울 본사에서 사람을 내려보내 영월에 상주하게 하자고 했다. 주민들이 우리를 믿게 하려면 매일 출근하는 사람을 두어야 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주민들이 이끌어 갈 곳인데 나나 본사 직원이 계속 있으면 자립이 어렵다고 봤다. 그래서 처음부터 주민 위주로 운영했다."

- 향후 주민들은 어떻게 운영하게 되는 건가?
"최근 주민들이 법인을 만들고 싶다고 뜻을 모았다. 그걸 도와드릴 예정이다. 2020년부터는 그동안 훈련받은 석항 주민들이 주체가 돼 이 공간을 책임지고 관리할 거다."

- 석항 트레인 스테이 매출은 얼마나 되나?
"한달에 천만 원씩은 매출이 난다. 성수기에는 더 많이 번다. 성수기에는 일이 좀 많긴 하지만 주민들끼리 다 할 수 있다. 시골은 더럽고 불친절하다는 인식이 있다. 청결과 친절, 이거 두 가지만 지키면 앞으로도 잘 될 거라고 본다. 우리가 청소 교육은 정말 확실하게 시켰다. 처음에는 청소가 제대로 안 돼서 서울에서 업체 불러다가 싹 다시 하기도 했다. 지금은 정말 깨끗하다는 말을 듣는다. 침구 세탁도 매번 한다."

- 2018년 석항크리스마스 행사는 어떻게 성공시켰나.
"작년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에만 이례적으로 청량리에서 석항까지 기차를 운행했다. 석항은 기차가 10년 전부터 서지 않던 역이었다. 없던 노선을 그때만 만든 셈이다. 처음에는 코레일에서 선뜻 승인을 해주지 않았다. 인구가 고작 백여 명인 석항에 사백명 넘게 올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나. 그래서 예약을 받기도 전이었는데 200만원어치 기차표를 미리 사버렸다(웃음). 예약할 테니 진행해 달라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사업을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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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항트레인스테이를 운영하는 강원도 영월군의 석항마을 주민들. ⓒ (주)오요리아시아

 
- 추진력이 대단하다. 지역에서 일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좋은 파트너를 만나야 한다. 특히 지역에는 청년이 간절하다. 이곳도 엄영광 매니저가 있어서 이만큼 돌아가는 거다. 엄 매니저는 석항 출신이다. 동네 청년 없이 5060대가 어떻게 일을 하나."

- 지역 주민들 반응은 어땠나?
"동네 청년이 일을 하면 좀 그런 게 있다. 우선 동네 사람들이니 서로 존대를 잘 안한다. 어릴 때부터 보던 얼굴이니까 하대하는 거다. 누구네 아들 이렇게 불렀는데, 하루 아침에 매니저님이라고 할 수 있겠나. 그래서 내가 볼 때마다 꼭 매니저님, 매니저님 그러고 다녔다(웃음). 그랬더니 주민들도 이제는 '엄 매니저'이라고 한다."

- 또 좋은 파트너들이 있었나.
"지난 2년은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기간이었다. 앞으로는 주민조직회가 석항트레인스테이를 이끌어나가게 된다. 주민들 모두 제대로 훈련받은 여성들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유미경님은 청소 교육과 카페 교육도 잘 이수하셨다. 카페를 맡은 문미순 바리스타도 있다. 주말에 바쁠 때 일을 도와주시는 김은미님, 황광옥님, 김영해님, 정계숙님 등 여사님들이 많다."

- 연고가 없는 지역이라 힘들었을 것 같다. 
"폐광 지역은 배타적이다. 서울 사람이 지역에 와서 뭐 해보겠다고 하면, 대부분 지역주민들은 뭔가 돈 되는 일을 해먹고 홀랑 튈 거라고 의심한다. 실제로 그렇게 되기도 한다. 나도 처음엔 그런 서울 사람들을 욕했다. 그런데 직접 일해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도 보이더라. 낭만적인 생각으로 지역에 왔다가 사람들이 서로 반목하고 주민들이 뒤통수치는, 그런 일을 겪다 보면 실망하고 나가떨어지는 거다.

우리가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할 때 주변 3개리 주민들이 같이 모여 밥을 먹었다. 주민들이 그러더라. 이렇게 모여서 밥 먹은 게 몇십 년 만에 있는 일이라고. 그전에는 주민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거다. 지역에서 이런 일은 부지기수다."

- 지역에서 사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뭔가.
"일거리가 많아서다. 돈 벌 구석이 있다는 게 아니라 해결할 사회 문제가 많다는 말이다. 예전에 나보고 굳이 네팔까지 가서 여성자립활동을 하냐고 묻더라. 한국에 온 이주여성들 삶이 어렵지 않나. 한국에서 자립을 도와준다고 해도 대부분 어렵다. 난 그들이 한국에 안 왔으면 좋겠다. 자신들 나라에서 자립하면 좋겠다. 그래서 네팔에 가서 자립을 도운 거다. 거기서 자립하면 한국까지 안 오고 잘 살 거 아닌가.

우리나라 이주여성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하지만 난 그건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문제라고 본다. 그건 지역도 마찬가지다. 서울은 온갖 기획들이 넘쳐나고 자원도 많다. 반면 지역은 너무 척박하다. 해결해야 할 미션이 있다는 거다. 네팔도 가는데 영월이나 제주쯤 못 가겠나."

반신반의하던 주민들 붙잡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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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의 석항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석항트레인스테이 모습. 기차 객실을 개조해 숙박시설로 만들었으며 식당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 (주)오요리아시아

 
- 지역 사람들이 서울에서 온 사람들을 잘 믿지 않을 것 같다.
"다 필요없다. 그냥 사업 성과로 보여주면 된다. 우리랑 같이 사업을 하면 돈이 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석항도 우리 전에 몇 년 동안 운영을 했지만 성과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랑 하니까 달라졌다. 매출도 나오고. 명목상으로 우리가 하는 전 주민교육사업이지만 엄연히 돈을 버는 사업이다. 복지가 아니라 비즈니스다. 당연히 주민들도 돈 버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무조건 매출에 돌진했다."

- 주민들을 수혜자로 보지 않는다는 건가?
"함께 일하는 사람을 (복지 수혜자로) 대상화시키면 그 사람이 당신을 파트너로 생각하겠나? 당신이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회복지사가 될 건지, 일을 가르치는 매니저가 될 건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나는 매니저다."

- 아무리 비즈니스 관계라 해도 실망할 때가 있을 것 같다.
"괜찮다. 네팔에서도 별일 다 겪었다. 거기선 돈도 떼먹고 사람들 뒤통수 치고 욕도 한다. 그리고는 나중에 찾아와서 뭔가를 해달라고 한다. 취약하고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행동한다. 이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긴다. 그런데 처음 지역에서 일하는 화이트칼라들은 그런 일을 못 견딘다. 상처받는다."

- 사람들과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
"이제 나는 지역 사람들에게 어떤 신뢰를 주어야 하는지가 보인다. 지역 사람들이 나쁜 건 아니다. 그들이 사기꾼인 건 아니지 않나. 서울 출신 엘리트 대졸자의 시선으로 지역을 보면 안 된다. 부수고 싸우면서도 지역에 사는 거다. 그걸 못 견디는 사람들은 튕겨져 나가는 거고. 의연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설사 누군가 오해를 했더라도 그걸 잘잘못을 가리면서 해명하려고 하면 안 된다. 찾아가서 '그게 그렇게 섭섭했어?'라고 물으면 15분 동안 자기가 얼마나 억울하고 서운했는지 술술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를 들어주면 그 사람은 내 편이 되는 거다. 반대로 그 말을 끊으면서 그거 아니라고 하면 적이 된다. 자기를 조금만 낮추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걸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

- 대단하다. 원래 그렇게 진취적으로 일하는 캐릭터인가.
"성과는 잘 나오고 성질은 더럽다고 사람들이 말한다(웃음). 지금 우리 회사에는 목표가 명확한 사람만 남아있다. 목표가 불분명한 사람은 같이 일하면 안 된다. 사람을 착취한다는 게 아니라 목표지향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터뷰 내내 이지혜 대표는 자신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 초점을 맞춰달라고 강조했다. 이제까지 그가 참여한 지역 사업이, 그가 떠나고 나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회적기업이 지역을 떠나도 주민 주도의 지역 사업은 계속된다.

1박 2일, 영월 석항트레인스테이에 머무르는 동안 이지혜 대표는 단 한 잔의 커피도, 한 끼의 식사도 공짜로 먹지 않았다. 삼겹살을 불판 위에 올리며 음료수를 추가할 때조차 계산을 잊지 않았다.

그가 하는 건 복지가 아니라 사업이었고, 함께 일하는 사람은 수혜자가 아니라 파트너였다. 과연 수익과 의미를 둘 다 잡은 사회적 기업가다웠다. '기업가'가 되어야 '사회적'도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그를 부를 때는 단어의 뒤에 방점을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 사회적 '기.업.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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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항트레인스테이에서 식당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석항마을 주민 유미경씨. ⓒ (주)오요리아시아


석항트레인스테이에서 식당 운영을 맡고 있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한 손맛을 지녔다. 게다가 직접 키운 식재료를 써서인지 음식 맛이 훌륭하다. 닭볶음탐과 삼겹살 연탄구이에 내놓는 밑반찬이 훌륭하다. 오요리아시아를 통해 청소와 객실 관리, 식당과 카페 운영 교육을 이수했다.

"이곳 음식은 제 손으로 직접 키운 식재료로 만듭니다. 첫 번째로 친절, 두 번째로 청결을 잊지 않고 있어요. 사람들이 많이 와서 365일 기차가 서는 석항역이 되면 좋겠습니다."

"영월군에서 적극 홍보해 주세요" (문미순, 카페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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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항트레인스테이에서 카페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석항마을 주민 문미순씨. ⓒ (주)오요리아시아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석항트레인스테이에서 카페를 운영한다. 이곳의 카페에는 책의 큐레이션도 훌륭하다. 직접 사회적 기업을 세우는 게 문미순씨의 꿈이다.

"영월 출신이어서 그런지 정말 제 일처럼 하고 있어요. 이지혜 대표님이 떠나면 저희가 석항트레인스테이를 운영해야 할 텐데 다른 건 몰라도 영업과 홍보가 걱정됩니다. 영월군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해주시면 참 좋겠어요."

"침구 깨끗하다는 칭찬에 보람" (김은미, 파트타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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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항트레인스테이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석항마을 주민 김은미씨가 일을 하고 있다. ⓒ (주)오요리아시아

 
직장은 따로 있지만 주말이나 성수기에 파트 타임으로 석항트레인스테이에서 일한다. 이곳 손님이 많아지면서 영월군에 대한 자부심도 늘어나고 있다. 열차에서 자는 추억이 생겼다는 리뷰를 볼 때면 보람을 느낀다.

"주민들 주도로 영업을 할 생각에 기대가 큽니다. 손님들이 침구가 깨끗하다고 하시면 보람을 느끼죠. 다만 겨울이 되면 기온이 떨어져 영업을 할 수 없는 게 단점입니다. 이 점도 차차 영월군과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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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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